영화로운, 시간 (한예리 화보 & 인터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영화로운, 시간 (한예리)

2021-02-24T15:34:15+00:002021.03.03|FEATURE, 피플|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아칸소의 작은 농장으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을 그린다. 한 가족을 향한 다정하고 유쾌한 시, 조화하려는 두 세대가 만나 빚어내는 화음, 짙게 드리운 알싸한 미나리의 향취. 영화 <미나리>의 주역 한예리의 오늘날이 여기 있다.

케이프와 검정 롱부츠는 모두 루이 비통, 버건디 레더 스커트는 제이백 쿠튀르, 골드 링은 포트레이트 리포트 제품. 모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전 세계 영화제 36관왕, 76개 부문 노미네이트. 어제 당신이 출연한 영화 <미나리>가 세우고 있는 기록을 정리해봤다. 오늘 촬영하는 사이 59관왕으로 금세 기록이 바뀌었더라.

한예리 와, 그새 59관왕!

 

지금 당신의 기분이 어떨까 상상해보려 했는데, 글쎄 잘 안 된다.

작년 이맘때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마쳤을 땐 확실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뭉클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극장에서 나와 자신에게 <미나리>는 어떤 영화였고 자신도 이민자인데 영화를 통해 마치 어린 시절을 만난 것 같다고 감정을 쏟아내면서 피드백을 들려줬으니까. ‘아, 우리가 영화를 잘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시간을 주고있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다. 출연진끼리도 ‘잘했어, 잘했어’ 하면서 끌어안으면서 울었는데 지금은….

 

팬데믹이라는 커다란 벽이 있는 거지.

그렇지. 수상 소식은 들려오는데 직접 영화제에 가지 못하고 정작 국내 개봉은 아직이니까. 사실 그때만큼의 감동은 없는 것 같다. 매일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만큼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일 테지만 ‘나 대단한 일 해냈어! 우리 영화 짱이야!’ 이런 생각은 안 든다. 그리고 크게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달까.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그저 내 인생에서 좋은 시간과 좋은 일이 생겨난 것뿐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작년 선댄스 영화제에 갔을 당시를 담은 브이로그를 봤는데, 그땐 확실히 상기돼 보였다.

모두가 그랬다. 서로 얼싸안고 울고(웃음).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해 대뜸 ‘여기 강원도 같지 않나요?’라고 당신이 말할 때 그렇게 해맑아 보일 수 없었다.

하하. 굉장히 작은 시골 마을인데다 눈이 사방으로 뒤덮여 있었다. 조금만 걸으면 스키장도 나오고. 그래서인지 꼭 강원도 태백 같은 거다. 그런데 태백이 솔트레이크시티에 결코 꿀리지 않는다(웃음). 한국이 사실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구나 새삼 느꼈다.

 

그곳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으로 관람했을 텐데,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나?

사실 처음에는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내가 맡은 캐릭터만 몰두해서 보게 되는 게 있으니까. 게다가 GV나 다른 일정도 있어서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굉장히 아름다운 뭔가를 봤다는 느낌은 확실히 있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보면서 그 모든 걸 해낸 정이삭 감독이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3월 3일로 개봉 일자는 잡혔지만 시국 탓에 적극적으로 극장에 가서 보시라 권할 수도 없겠다.

다행히 <미나리>는 지금 당장이 아닌 삶의 어느 순간에 마주해도 의미 있는 영화다. 아내 모니카(한예리),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 할머니 순자(윤여정)의 삶을 모두 자신의 삶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영화라. 그리고 그들의 삶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자조적 시선을 보내거나 감정을 푸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조금 떨어져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다. 꼭 지금이 아니어도 자신이 모니카, 제이콥처럼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영화를 보면 또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나는 <미나리>가 그래서 좋은 것 같다.

검정 드레스는 앤아더스토리즈 제품.

당신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나?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 그냥 내 옆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잘 표현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마음, 감독님이 가진 마음이 너무 예뻐서. 영화가 정말 정이삭 감독처럼 나왔다. 이래서 감독이 굉장히 중요하구나 다시 한번 느꼈고.

 

정이삭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진짜 사람 좋다. 굉장히 단단한 사람이다. 강하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 정이삭 감독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어린 시절 데이빗(앨런 김)처럼 아팠지만 잘 딛고 일어나 살아간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그의 어린 시절과 공명하는 부분이 크다. 곁에서 그를 보면 종교적 믿음이 그의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라는 게 느껴진다. 사실 예전에는 종교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이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렇게 에너지가 좋은 걸까? 어떻게 이렇게 충만하지?

 

그리고 그런 기운은 전염되니까.

맞다. 나는 그게 굉장히 의문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 따뜻하지? 그 밑에는 분명 종교의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

 

2019년 여름 촬영을 시작했다 들었다. 실제 촬영지도 아칸소였나?

오클라호마주의 털사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촬영했는데, 실제 아칸소와 가깝다. 한창 더울 땐 40~42도까지 기온이 올라가는 곳이다. 그리고 다섯 가족의 집이었던 트레일러 안은 더 덥다. 트레일러에 에어컨도 들였는데 다들 얼굴이 벌게져서 촬영하다 중간중간 얼음도 먹고(웃음). 더위가 가장 힘들었다. 사실 나머지는 한국에서 촬영한 것과 굉장히 비슷했다. 예산이 적어서.

 

어쩐지 트레일러에서 촬영한 장면을 보면 이상한 습기가 느껴지더라.

그치! 다들 약간 촉촉하지 않나?(웃음)

 

털사에서의 하루는 어떻게 흘렀나?

우리가 총 25회차를 촬영했다. 아침에 눈 뜨면 촬영장에 가고 끝나면 다시 숙소로 돌아오고. 일주일에 딱 5일을 촬영해서 주말엔 홀푸드 마켓도 가보고 커피숍도 갔다. 사실 털사가 가볼 만한 데가 많은 곳이 아니다. 그리고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일단 걸어 다니질 않는다(웃음). 거리에 아무도 없으니까 다니긴 좋았지.

 

타국에서, 게다가 가족으로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동료 배우들과 돈독해질 수밖에 없었겠다.

에어비앤비를 빌려서 윤여정 선생님과 60일 동안 같이 지냈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빨리 친해졌다. 에어비앤비가 아지트가 돼서 매일 시나리오 회의하고, 같이 밥도 해 먹고. 가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란 사람을 굉장히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선생님이 되게 매력적인 사람이지 않나. 일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거침없고 두려움 없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항상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덥석덥석 일을 해내시는 거다. 그걸 보면서 부딪쳐보지도 않고 겁을 냈던 내 지난날이 많이 생각나기도 했고. 그리고 굉장히 유머러스하시다.

 

그건 그녀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확인했다.

그렇지. 슬픈 순간에도 비극을 희극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그거는 그냥…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거다. 쉽게 가질 수 없는 유머 감각이고, 그게 윤여정이란 배우를 지금까지 있게 한 힘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참 매력적인 배우구나,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서글픈 일일지 모르면서도 모든 면에서 편해지는 부분이 있겠다, 선생님을 가까이서 보면서 참 많은 걸 느낄 수밖에 없다.

크림색 니트 카디건과 니트 스카프는 코스 제품.

부부로 호흡을 맞춘 스티븐 연과는 어땠나?

스티븐은 마음이 굉장히 열려 있는 배우다.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랄까. 또 굉장히 솔직하고. 본인이 연기를 하다 막히거나 불편한 지점이 있으면 확실히 얘기한다. ‘예리야 우리 어땠어?’ ‘한 번 더 가고 싶어?’ 그걸 부끄럽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뭔가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많이 주는 배우였다. 같이 리딩할 때 보면 고민이 많은 타입인데 현장에선 정말 동물적으로 뭔가를 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막상 현장에서 그가 연기하는 걸 보면 아주 라이트하고 심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티븐에게 이 작품은 굉장히 남다르고 본인의 유년 시절이 투영된 작품이기 때문에… 나도 좀 더 잘 해내고 싶다, 이 사람이 이 영화를 사랑하고 애정하는 만큼 나도 모니카를 대할 때 충실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당신이 맡은 모니카는 자칫 전형적인 어머니상으로 비칠 수 있는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전형성을 탈피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나?

오히려 전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특한 순자와 제이콥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왜냐하면 한 세대와 한 세대 사이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이니까. 제일 발을 잘 붙이고 있어야 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 계속되니까 강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고, 남편으로부터 가족을 떠나도 된다는 말을 듣지만 결코 가족을 버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지쳤다’고 말할 뿐이지.

맞다. 헤어지자는 말을 끝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쳤다는 말도 실은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거고. 모니카는 가족을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서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당신이라면 어땠을 것 같나?

나라면 당장 한국으로 친정엄마 보러 돌아갔을 거다(웃음). 애들 데리고.

 

어쨌든 <미나리>는 당신의 첫 미국 데뷔작이 됐다.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배우들을 보면 각자만의 사정과 이유가 있던데.

사실 털사의 땡볕 아래서 촬영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해외 진출!’이라고 대서특필하는 걸 보고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미국 진출을 노리고 이 작품을 한 건 절대 아니다. 단지 대본이 좋고 감독님이 좋고 이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이 좋아서 선택한 거지. 또 이런 영화를 만날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다음에 내가 소비되는 형태로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목적은 미국에서 영화를 찍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훗날 <미나리>는 당신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모르겠다. 너무너무 좋은 영화지만 내 필모에 있어 어떤 영화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건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 한 10년은 지나봐야? 물론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은 시간이었고, 다시는 없을 시간이었다. <미나리>의 한 부분을 담당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고. 영화가 의미 있게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이번 영화를 통해 사람을 많이 얻었다. 여정 선생님, 스티븐, 정이삭 감독 등등.

초록색 니트 머플러는 문선, 드롭 이어링은 라비쉬에 x 아몬즈 제품. 검정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당신에게 가족에 얽힌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

엄마, 여동생이랑 목욕탕에 갔던 때. 여동생이 아직 갓난아기라 엄마가 동생을 대야에 넣고 조심스럽게 씻긴 기억이 있다. 나는 막 머리를 감고 있고. 나도 어렸는데 뭔가를 해보겠다고 되게 용썼던 기억이 있다(웃음). 아마 한 네 살쯤이었던 것 같다.

 

네 살이면 그때도 무용을 하고 있었겠다. 언젠가 당신이 ‘생후 28개월부터 무용을 했다’고 농담을 던진 기억이 난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용을 전공하다 돌연 당신을 배우의 길로 이끈 건 무엇이었나?

단지 연기 자체가 재미있었고 현장에 가는 게 좋아서 계속 촬영장에 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조건 서른까지만 하고 생계를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사실 무용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가 독립영화를 한 기간이 길었던 거다. 굳이 상업 영화로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초반 독립영화를 할 땐 연기자로 불리는 게 어색했다. 그러다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을 만났는데 나의 비전을 들려주는 거다. ‘그런가? 내가 상업 영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인가?’ 싶었지. 그리고 무용에 지쳐 있기도 했고 나라는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마침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무용에서 연기로 바뀐 거다.

 

오늘 촬영장 입구에 방문자 명부가 놓여 있었다. 특이하게 이름 옆으로 직업을 쓰게 돼 있었는데, 당신이 ‘배우’라는 두 글자를 정직하게 적었더라.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도 보면 직업을 여러 개 가지고 있지 않나. 나는 배우도, 무용수도 하는 거다. 지금은 배우이기 때문에 무용은 안 할 거야, 이런 생각 자체가 없다. 그냥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다.

 

당신이 연기를 시작한 계기를 보면 ‘배우가 될 거야’라는 자기 확신보다 ‘배우가 틀림없어’라는 주변 확신이 더 컸던 것 같다.

무용 외에 다른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당황스럽고 급작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지. 나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되게 사기꾼 같잖아. 그래서 더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특히 어린 나이였으니까 뭔가 큰일이 벌어지는 것 같고. 그런데 지금 드는 생 각은 ‘사람은 되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사는구나’다. 이렇게 살다가 또 다른 식으로 직업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무용을 하다가 죽겠지’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영화를 찍고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뭔가를 장담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는 당신의 인생에 일어난 엄청난 사건이었겠다.

그렇지. 그런데 이렇게 5~6년 하다가 연기를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한테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까.

 

여태 약 40편에 이르는 다작을 한 사람의 말 치곤 참 ‘쿨’하다(웃음).

참 많이도 했네(웃음).

 

물론 특별 출연 영화까지 합산한 숫자지만, 어떻게 가능했을까 생각은 든다.

우선 학교에서 정식으로 연기를 배우지 못했다. 연기를 배우고 싶으면 일단 현장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하는 것도 몰랐고.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계속 그냥 가는 거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늘었다.

검정 스윔슈트는 가니, 검정 시스루 원피스는 레하, 검정 스틸레토 힐은 로저 비비에, 다홍색 비니는 코스 제품.

여태 맡은 배역 중 가장 친밀감을 느끼는 인물이 있나?

글쎄, 다 내 안에서 나온 것들이라 아예 다른 어떤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모두가 나와 어느 정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촬영할 땐 그들로 인해 내가 조금씩 변하기도 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장률 감독의 <춘몽> 속 당신이 맡은 캐릭터 ‘예리’가 이해된다. 극 중 예리가 왜 마지막 순간 불가해한 춤을 췄는지도 왠지 알 것만 같다.

장률 감독님이 정말 좋아하겠다. <춘몽> 봤다고 얘기한 분이 별로 없어서(웃음).

 

배역을 떠나 인간 한예리를 이해하기 위한 단서를 몇 가지 알려달라.

그냥 되게 평범하고, 그리고 되게 대충 살고(웃음). 늘 ‘언젠가는 되겠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거든. 어느 순간 뭐든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기를 쓰고 해봤자 내 마음만 괴롭기도 하고. 모든 걸 조금씩 내려놓고 ‘최선을 다했어. 뭐, 그런데 안 됐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그게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고 경험을 통한 것일 수도 있고. 이런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무용에서 배우로 갑자기 전향한 경험이 당신을 한층 홀가분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일순간 배우로 변신해서는 아니고 오히려 과거 무용을 오래 했기 때문에 지금의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무용은 육체적으로 훈련하는 시간의 연속이지 않나. 당장에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안 되는 걸 천 번, 만 번 하는 거다. 뭔가를 해내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그럼에도 그게 안 될 수도 있고. 어렸기 때문에 굉장히 치열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연기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만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늘 조절하고 있다. 그래야 오래 하지. 안 그러면 또 도망간다.

 

지금 답변을 들으니 정말 어느 정도 답이 내려진 듯하다.

그런데 모르지. 이러다 내년 돼서는 ‘모르겠어! 시집이나 갈래!’ 할 수도 있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