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 Time (김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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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텐션, X1의 시간을 통과해 솔로 뮤지션으로 도약한 김우석의 손에는 감도 높은 프로듀싱 능력을 발휘해 완성한 두 장의 앨범이 쥐어져 있다. 스스로가 정답이라는 뚜렷한 자기 확신을 무기로, 김우석은 다가올 내일을 향해 달린다.

이너로 입은 그물 패턴의 망사 티셔츠와 셔츠, 검정 벨티드 팬츠는 모두 Dries Van Noten, 프린팅 검정 타비 슈즈는 Martin Margiela 제품.

프린트 티셔츠는 Wild Donkey by Beaker, 체크 팬츠는 Haver Sack by Beaker, 비즈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은 Fendi, 파스텔 색상 비니는 Cos 제품.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한 날씨다. 오늘 촬영이 없었다면 어떤 하루를 보냈을 것 같나?

김우석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을걸?(웃음) 집돌이로는 자신 있거든. 강아지들이랑 놀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 나간다. 지루해지면 작업하면서 남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작업실이 있나 보다.

초안 작업은 집에서 하는 편이다. 물론 가정집이라 소리를 크게 틀어놓을 수 없기는 하지만. 트랙 위에 멜로디를 얹어보기도 하고, 가사를 끄적이기도 한다.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싶으면 정식 작업실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보내 코러스를 쌓거나 하는 식이다. 요즘엔 영상 통화로 작업할 때도 많다.

지금까지 솔로 음반을 2장 발표했다. 거의 모든 곡의 작사, 작곡을 직접 맡더라. 처음 곡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스무 살 때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지인을 만나면서 시작했다. 이후 오디션 프로그램 엠넷 <프로듀스 X 101>을 통해 X1으로 데뷔하면서 정식으로 작곡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부터 시간만 나면 틈틈이 곡을 작업해 회사에 보냈다.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까여’ 봤지. 그땐 치기 어린 마음에 ‘왜 안 되는 거지?’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들어보니 왜 안 됐는지 바로 알겠더라(웃음).

당신을 키보드 앞에 서서 음악을 만들게 하는 순간, 혹은 그 힘은 무엇인 것 같나?

영감이 무엇이냐는 질문처럼 느껴지는데 영감을 얻는 순간은 사실 너무 많다. 그런데 내가 음악을 계속해서 하는 원동력은 무조건 팬인 것 같다. 팬들 때문에 열심히 하게 되고, 작업하면서 들려줄 생각에 신이 난다. 원래는 팬 송으로 기획하지 않았다가도 가사를 붙여보면 팬 송으로 바뀌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올해 발매한 앨범 <Tasty>의 수록곡인 ‘Better’도 비슷한 과정에서 탄생한 곡이다.

뮤지션들이 작사를 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자주 쓰게 되는 단어가 있다고 들었다. 당신에게도 그런 단어가 있나?

요즘엔 좀 덜 쓰려 하는데 ‘내일’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쓰는 것 같다. 어쨌든 오늘이라는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 전부 과거가 돼버리지 않나. 무수히 많은 과거가 있지만, 반면 내일은 단 하루뿐인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이 너무 소중한 거지. 우리 모두 내일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다 같이 내일을 만들어가자는 의미에서 가사를 쓸 때나 팬들에게 편지를 쓸 때나 내일이란 단어를 많이 떠올리더라.

지금 당신이 만드는 음악을 어떻게 묘사하겠나?

그림이지 않을까? 팬들이랑 함께 그려가는 그림. 과정으로 따지면 아직 스케치도 끝나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 작년에 1집 <Greed>, 올해 2집 <Tasty>를 발표했는데 스스로 생각했을 때 발전한 것 같아서 지금으로선 만족한다. 나는 항상 그렇게 살아왔거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100퍼센트를 다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50뿐인데 남들이 정한 기준이 100이라 해서 그것에 휘둘리면 결국 남는 건 자책뿐이더라고.

그럼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맞추려 스스로를 채찍질한 순간도 있었나?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지. 항상 남들이 정한 기준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야 하는 직업이니까. 스스로 정한 기준을 지키자고 자주 되새기다 보니 조금씩 컨트롤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작업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작곡 시작하지 말걸’ 싶은 때도 있다. 마음이 급해질 땐 회사에 미리 곡 받아놓은 것 없냐고 물어볼 때도 있고(웃음).

하얀색 셔츠는Fendi 제품.

니트 카디건과 팬츠 셋업은 Bottega Veneta 제품.

작업한 곡이 제법 쌓였을 것 같다. 언젠가 당신의 곡을 선물하고 싶은 뮤지션이 있나?

박효신 선배님. 예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다.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박효신 선배님이 ‘야생화’를 발표하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정오에 음원이 풀린다는 소식을 듣고 11시부터 컴퓨터 앞에서 대기했다. 기다리는 1시간 동안 지난 콘서트 영상을 계속해서 돌려보고. 처음 가수를 제안받았을 때도 전혀 생각에 없던 직업이었지만 ‘한번 해볼까?’ 생각하게 만들어준 사람이 박효신 선배님이다.

박효신의 팬임을 자처하는 이들을 보면 저마다 좋아하는 이유가 명확하더라.

처음엔 친구를 통해 알게 됐다. 치킨을 시켜놓고 선배님의 콘서트 영상을 같이 봤는데 2시간 남짓한 그 영상을 앉은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이후로 미친 듯이 봤다. 심심하면 콘서트 영상을 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무대의 뒷배경만 보고도 몇 날 며칠 어디서 한 공연인지 알겠더라고(웃음). 선배님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도 지켜봤는데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야생화’로 다시 대중 앞에 서기까지 5년이 채 걸리지 않더라. 그걸 보면서 ‘대단하다’ 생각했지. 이유 있는 고집을 가진 뮤지션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정한 길을 확고히 걸어가는 사람이고, 하고자 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실행력까지 갖춘 사람이다.

그 정도로 한 뮤지션에 열광하고 동경했던 사람이 가수를 제안받았을 때 ‘전혀 생각에 없는 직업이었다’고 말한 대목은 좀 의외다.

내가 낯을 엄청 가린다. 연습생이 되기 이전까진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도 노래 한 곡 부른 적이 없을 정도니까. 어렸을 땐 이런 생각이 있었다. 무대를 즐기는 누군가를 보면 굉장히 멋져 보이는데 막상 내가 무대에 올라 평가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무섭고 아찔해지는 거지. 그래서 연예인이 되리라곤 아예 생각을 못 했다.

문득 당신의 학창 시절이 궁금해진다.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중학생 무렵부터 공부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기도 했고. 가정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미래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엄마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연습생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사치처럼 느껴졌다. 막연히 서울에 가려면 돈이 많이 들 것만 같았고. 고향이 대전이거든. 서울에 가본 적도 없고 낯도 많이 가리는 내가 과연 가수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내 미래를 생각하는 게 재미있었다. 지루하지 않았다. 그때 꿈꾸던 대로 살았어도 아마 재미있게 살고 있을 거다. 어느 시절에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었고 또 다른 어느 때에는 프랜차이즈를 경영하는 CEO가 되고 싶었다. 군대도 열아홉에 일찍 가려고 했고.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마흔다섯 살까지의 계획을 짜놨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술술 잘 풀렸을까 싶긴 하지만(웃음). 그래도 그땐 내 미래를 그리는 게 재미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까 ‘내일’이란 단어가 좋다고 말한 것도, 결국 가수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다.

현실적인 내일을 그리던 당신이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엄마가 울면서 한 번만 해보자고 하셨다. 어머니 딴엔 그래도 예쁜 내 자식인데 아쉬우셨던 거다. 영 적성에 맞지 않으면 한 달이 되든 두 달이 되든 좋으니 그만둬도 된다고, 그러니 일단 해보자고. 그렇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정말 적성에 안 맞았다. 춤과 노래를 배우는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란 생각도 들었고 춤을 추고 있는 내 모습을 거울로 차마 못 보겠더라고. TV에 나오는 가수들이 추는 춤은 멋있는데 내가 하면 왜 웃기는 걸까, 엄청 자책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 날이 많았을 것 같다. ‘엄마 나 때려치울래!’

엄청 많았다(웃음). 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이것밖에 못해?’라고 말하면 오기가 생겨서 어떻게든 해냈으니까. 어느 날엔 도저히 못하겠다 싶어 레슨을 받다가 집으로 가버린 적도 있다. 어린 나이니까 힘들다고 울면서 투정을 부린 거지. 그때 한 3~4일 집에서 쉬었던 것 같다.

3~4일 사이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나랑 안 맞아’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린 마음이었지. 그대로 포기하려 했는데 우연히 틴탑 선배님들의 연말 가요제 무대의 백업 댄서로 설 기회가 생겼다. 심지어 모자까지 푹 눌러써서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상태로 잠깐 선 무대였다. 마침 모자를 벗어 던지는 안무가 있었는데 그때 환호성이 굉장히 크게 들려왔다. 그 순간 처음으로 ‘어쩌면 가수가 나랑 잘 맞는 직업일 수 있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느낀 감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매일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레이 컬러 니트 집업은 Raf Simons by G.Street 494 Homme, 구조적인 데님 팬츠는 Y-Project by G.Street 494 Homme 제품.

실크 셔츠와 블루종 점퍼, 벌룬 팬츠는 모두 Saint Laurent, 에나멜 소재의 구두는 Jimmy Choo 제품.

자신과의 투쟁 같던 시절을 지나 올해 솔로 뮤지션으로 2장의 앨범을 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무대는 내가 직접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나?

X1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 작업에 매진했던 때. 회사로부터 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직접 만들어 보내줘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내가 부를 음악을 내 손으로 만들어보는 재미를 처음 느껴본 것 같다. 물론 그 이전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당시 ‘마지막이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고,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배우면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크다. 지금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너무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까.

지난해부터 ‘욕망 3부작’이라 불리는 솔로 음반 작업을 펼치고 있다. 1집 <Greed>를 통해 참을 수 없는 욕심의 순간을 말했다면 올해 발매한 2집 <Tasty>를 통해선 식욕을 닮은 달콤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욕망을 주제로 3부작을 펼치고 싶은 이유가 있었나?

한창 자제력, 절제력을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억누를 수 없는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을 때 욕망이 마침 떠오르더라고. 이걸 앨범 단위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기획으로 이어졌다.

<Tasty>의 마지막 곡인 ‘Next’는 곧 발매될 마지막 3부작을 암시하는 예고편처럼 보인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가 풍기더라.

그렇게 세게 가진 않을 것 같다. 1집과 2집의 중간 지점의 음악이 되지 않을까. 세 번째 앨범에 대한 키워드는 처음 생각한 그대로 갈 것 같긴 한데… 우선은 비밀로 해두고 싶다(웃음).

앨범을 작업하며 내내 욕망이란 무엇일지 그려 나갔을 테다. 당신은 무엇을 욕망하는 사람 같던가?

확실히 사랑인 것 같다. 단순히 일대일 관계의 연애 감정만이 아닌 좀 더 광의의 사랑. 지금처럼 다수에게 사랑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를 몰랐던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도 좋고, 반대로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되는 계기를 듣는 것도 싫진 않다. 그 계기를 들으면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내 약점이구나’ 깨닫고 보완할 수 있으니까. 정말 포괄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좋은 것 같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관심일 수도 있겠고.

가죽 점퍼는 Celine by Dancing Kids, 슬리브리스와 데님 팬츠는 R13 제품.

빨간색 재킷과 버뮤다 쇼츠는 Fendi 제품.

최근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생각은 무엇인가?

타인의 판단과 스스로의 판단 사이에서 계속 부딪치는 중인 것 같다. 지난 작업을 돌이켜보면 항상 ‘하지 마’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소신대로 밀어붙였을 때 좋은 결과를 냈던 것 같거든. 그런데 요즘엔 주변에서 만류하면 ‘그런가?’ 싶은 순간이 많아졌다. 과거엔 잃을 게 없었는데 지금은 잃을 게 생긴 느낌이랄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당신이 ‘맞다’ 생각하는 게 언제나 정답일 거다.

그렇게 믿으려 한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처음엔 회사에서도 내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한다. 여태 결과가 나쁘지 않았으니까. 물론 이렇게 인식이 바뀌기까지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회사와 인연을 맺은 지 7년째니까.

당신이 가진 가장 큰 야망은 무엇인가?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것. 멀리 봤을 때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 지금 당장은 나를 좋아해주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먼 훗날까지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그런데 자신 있다. 지금처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지킬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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