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싱글로 돌아오는 '그리즐리' 인터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너에게 들려줄 (그리즐리)

2021-02-02T14:52:29+00:002021.02.03|FEATURE, 피플|

카멜레온 같다는 표현은 너무 흔한 수식일지 몰라도, 적어도 싱어송라이터 그리즐리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구임은 맞다. 무한으로 펼쳐진 팔레트처럼, 막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스펙트럼처럼 그리즐리는 앞으로 우리에게 들려줄 음악이 무궁무진하다.

니트 베스트와 팬츠 모두 르 쥬 파리, 장갑은 언더커버, 브로치와 목걸이, 귀고리는 모두 디올맨 제품.

요즘 한파특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오늘 이렇게 시원하게 몸을 드러내고 촬영하게 해서 미안하다.

그리즐리 아니다. 몸은 늘 구비돼 있다. 이런 촬영 좋다(웃음). 운동을 너무 좋아하고 잘한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육상, 수영 선수로 뛰었으니까. 보통의 대한민국 엄마들이 그렇듯 어느 날 엄마가 나를 공부 영재로 착각하고 국영수 과외를 네댓 개 붙이기 전까지는 매일 운동만 했다.

 

K-교육의 산물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거네.

그 자체였다 (웃음). 문제는 음악을 하겠다고 친형과 단둘이 서울로 올라 오고부터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는 거지. 고향이 부산이다.

 

교육열 높은 부모님 아래 자랐다면 음악으로는 눈도 돌리지 못했을 것 같은데.

반대가 엄청나게 심했다. 그래서 첫 앨범을 내기 전까진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렸다. 2014년 첫 앨범 <달세뇨 (D.S)>가 나오고 나서야 부모님을 찾아가 앨범을 보여드리며 ‘저 사실 이런 사람이에요’ 말씀드렸을 정도다.

 

그토록 음악가의 길을 걷고 싶은 이유가 있었나?

어린 시절 형의 영향이 컸다. 형과 형 친구들이 실용음악 학원에 다녔는데 난 형들이 마냥 좋아서 학원까지 따라다니는 애였다. 그때가 열네 살이었는데 형들과 어울리다 보니 굉장히 어린 나이에 흑인 음악을 접하게 됐다. 그때 가장 좋아한 가수가 에릭 베넷이다. 또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내가 노래를 좀 잘 부르는 편이었다(웃음). 잘 부른다고 옆에서 부추기니까 ‘그럼 해볼까?’ 하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

 

2014년 첫 앨범 <달세뇨 (D.S)>를 내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세어보니 정규 앨범 2장, EP·싱글 앨범은 무려 20장이더라.

작년이 특히 피크였다. 발매한 앨범만 7장이니까. 실험 아닌 실험을 실컷 해본 한 해였다. 음악 만드는 걸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도 2~3개 곡을 스케치할 정도인데, 예전엔 아주 사소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가 생각한 퍼즐이 맞춰지지 않으면 곡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문득 만든 걸 전부 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테스트이기도 했고.

 

실험은 성공적이었나?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여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만 알았다면, 이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까지 알게 됐으니까.

 

디스코그래피를 살피면 음악적 장르를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알앤비, 포크, 힙합 등을 자유롭게 넘나 들었다.

한 장르만 파야겠다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팬들조차 나에게 ‘색깔이 없다’고 말할 정도니까. 가끔 부러울 땐 있다. 특정 장르 하면 어떤 인물이 대번에 떠오르는 경우 말이다. 단지 나한테 많은 감성이 있으니까 그걸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표출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특정 분야에 국한되고 싶지 않다.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보다(웃음

 

서울에 폭설이 내린 며칠, 작년 당신이 발매한 앨범 중에서 <삶, 숨, 쉼>을 자주 꺼내 들었다. 음표든 감정이든 끝없이 침잠한다는 인상이 짙게 스쳤는데, 앨범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2018년 겨울에 아무 계획 없이 짐을 챙겨서 체코로 떠났다. 프라하, 할슈타트, 파리 등을 도는 2개월 동안의 긴 여행이었는데 불쑥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틈틈이 메모를 적었다. 한창 그로기 상태일 때 떠난 여행이어서인지 마주한 모든 것이 치유의 대상이었다. 딱 2개월, 그 시간만큼은 내가 진짜 아티스트였던 것 같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계산해서 한 행동이 하나도 없다. 단지 글이 쓰고 싶어서 쓰고, 단지 걷고싶어서 걸었다. 한국으로 돌아와보니 앨범 하나를 쓸 정도의 글이 쌓여 있었다. 집에서 노트북을 붙잡고 글을 정리하는 데만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앨범을 완성하기까진 거의 1년이 걸린 것 같다.

 

메모장에 어떤 글이 있던가?

비둘기, 아이들, 프라하에서 마트에 갔는데 연세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입구에서 내가 편히 들어오도록 문을 잡아줘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이야기…(웃음).

 

문 잡아준 거에 감동해 울 정도면 정말 힘들 때 떠난 여행이 맞나 보다(웃음).

많이 힘들었다. 그때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뭔가를 기대해본 시기였는데 그 기대에 철저히 배반당했으니까. 2018년 음악 경연 프로그램 SBS <더 팬>에 출연했다. 방송에 나갈 땐 적어도 톱 3 안에 들 줄 알았다. 분위기가 그랬다. 그런데 첫 라운드에서 탈락하고 소위 ‘멘탈’이 나가버렸다. 내가 준비한 대로만 잘한다면 앞으로 조금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계획을 한 스텝도 실현해보지 못하고 끝나버린 거니까.

 

그렇게 아픈 기억으로 만든 앨범이라면 시간이 흐른 지금 들어도 여전히 짠한 기분이 들겠다.

전혀. 너무 사랑스럽다. 그 앨범 자체가. 내 가치관의 90% 이상을 담은 앨범이라. 앨범이 마치 내 명함 같다는 느낌이 있다.

 

최근 만난 한 노년의 도예가가 한 말이 있다. 젊은 시절 2년 남짓 다녀온 유학 생활에 지금까지도 큰 빚을 지고 있다고, 그 시간들에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길어와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것 같다고. 당신에게도 유럽에서의 두 달이라는 시간이 특별할 것 같다.

주변에서 이런 말을 진짜 많이 듣는다. 유럽 다녀온 뒤로 사람이 많이 변했다고. 훨씬 차분해졌는데, 어떨 땐 완전히 미친 것 같다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잘 노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다. 지금은 길을 걷다가도 아름답다, 황홀하다 느끼면 갑자기 미친 듯이 뛴다. 내가 봐도 그 두 달이 인생에서 가장 큰 무언가가 일어난 때였던 것 같다.

패딩은 파르코즘 스튜디오,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 슈즈는 크록스 x 저스틴 비버, 체인 목걸이는 존 로렌스 설리반 by 웍스아웃 제품.

<삶, 숨, 쉼>의 ‘Hallstatt’란 곡을 통해선 1990년대 한국 포크를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인 장필순과 호흡을 맞췄다.

원래는 장필순 선배님을 전혀 몰랐다. 장필순이란 뮤지션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그분이 어떤 시대에 어떤 노래를 불렀고 얼마나 멋진 분인지 몰랐다. 그러다 밀릭이라는 동료 뮤지션이 장필순 선배님과 함께 작업한 트랙을 들어봤는데 정말이지 ‘미쳤다’ 싶었다. 밀릭과 장필순 선배님에 대해 계속 얘기하다 제주도에 갔는데 마침 콘서트를 개최하셔서 그때 처음 뵀다. 그런데 정말 너무 멋있는 거다. ‘저분이랑 언젠가 작업하고 만다’ 마음을 먹고 이후 유럽 할슈타트를 여행했는데 도시가 제주도랑 너무 비슷한 거다. 거기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썼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까 나도 모르게 장필순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썼구나, 느껴졌다. 이건 무조건 선배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만 되면 여한이 없겠다, 생각하면서 부탁을 드렸는데 너무 흔쾌히 피처링해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동경하던 누군가에게 처음 연락할 때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부터 시작해 엄청 고민하게 되지 않나.

아니지. 바로 밀릭 찬스!(웃음) 밀릭에게 연락처를 묻고 음악과 함께 할슈타트에서 쓴 글을 보내드렸다. 그런데 선배님으로부터 온 회신의 첫 문장이 진짜 멋있었다. ‘이런 후배님이 저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과 작업하면서 음악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 것 같다. 사실 선배님이 맡은 파트가 몇 소절 되지 않고 돌림노래처럼 똑같은 가사가 반복해서 흐르는데도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뜻과 각 소절은 왜 썼는지 물으셨다. 당신한테 말해주면 좀 더 집중해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때 생각했다. 내가 저 나이가 됐을 때도 저렇게 열정을 가지고 음악 할 수 있을까?

 

장필순뿐 아니라 또래 뮤지션들과 돈독한 친분을 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년부턴가 당신의 SNS에 유독 크러쉬와 함께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음악적으로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누는 친구가 크러쉬일 거다. 내가 보기에 크러쉬는 음악적으로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하는 친구라, 아무래도 그런 친구와 자주 대화하다 보면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크러쉬가 대단한 건, 음악을 정말 많이 듣는다. 나 같은 경우 음악을 미친 듯이 들은 날엔 밥 먹으러 식당에 가서 음악만 흘러도 지겨워서 미칠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크러쉬는 어떻게 음악을 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게 지겨울 수 있냐는 입장이다. 그 친구는 술에 취해도 음악 얘기밖에 안 한다. 집에서 간단히 와인을 기울이면서도 계속해서 LP를 갈아 끼우고. 원래는 매일 같이 축구를 하던 사이였는데 코로나19 이후론 그러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다. 아, 물론 영상 통화로 자주 만나고 있긴 하다(웃음).

 

다가오는 2월 새로운 싱글 앨범이 나온다 들었다.

작년에 너무 많은 곡을 써놨다. 지금 어떤 곡을 들려드려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다. 아마 1월이 끝나갈 무렵 내 기분에 따라 한 곡이 정해지지 않을까 싶다.

 

삶의 모토가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라 들었다. 올해도 이것만큼은 변치 않을까?

올해는 좀 더 욕심을 내볼까 한다. 작년까지 분명 많은 걸 해왔고 그런 만큼 수면 위로 떠오를 기회가 올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시기에 굳이 잘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참, 작년엔 많이 일했지만 많이 벌진 못 했다(웃음). 그러니 올해는 모토대로 적게 하나, 둘 잘해서 많이 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