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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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금혼식’을 치르듯 브랜드의 50주년을 기념해 특별한 캡슐 컬렉션을 선보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 일흔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소년 같은 무한대의 호기심을 지닌 그에게 지난 시간은 옛 추억이 아닌 바로 오늘을위 한 영감의 보물 창고다. 반세기의 열정이 녹아 있는 아카이브에서 탄생한 컬렉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멋진 아이디어에 대해 그와 나눈 진실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젊은 날, 노팅엄의 바이어드 레인 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폴 스미스.

브랜드 론칭 50주년을 맞이한 영국의 아이코닉한 디자이너 폴 스미스.

폴 스미스의 50주년을 마음 깊이 축하한다. 1970년에 시작해 반세기를 지나온 당신의 패션과 삶을 되돌아보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

Paul Smith 난 지난 50년간 폴 스미스 팀이 일군 성취에 대해 정말 만족한다. 처음 내 이름을 딴 브랜드를 시작할 때 상상조차 하지 못한 성공을 거뒀으니까. 런던 노팅엄에 있는 3평 남짓한 매장에서 시작해 50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 73개국에 약 2000개 매장을 운영하게 되었으니 정말 놀라운 성장이 아닌가.

10월 14일 공개될 50주년 기념 캡슐 컬렉션이 무척 기대된다. 미리 이미지를 통해 살펴본 컬렉션에서 애플, 스파게티, 플로럴 로즈 등 아카이브 프린트를 재해석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프린트를 특별히 선택한 이유가 있나? 50주년 기념 캡슐 컬렉션을 구상하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다룬 프린트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꼽아보았다.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의류에 ‘포토그래픽 프린트’를 활용한 선구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 프린트를 공개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많은 디자이너들이 나를 찾아와 그들이 처음으로 산 포토 프린트 셔츠가 폴 스미스 제품이었다고 얘기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1990 S/S 폴 스미스 맨즈 컬렉션에 등장한 포토그래픽 프린트 룩.

1990년 S/S 맨즈 컬렉션에서 선보인 싱그러운 그린 애플 프린트의 제품이 인상적인데, 이 사과 프린트를 처음 고안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이 프린트는 내가 ‘적을수록 좋다’라는 미니멀리즘의 개념과 단순함,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컸을 때 탄생했다. 그 당시 오토 바그너라는 오스트리아 건축가가 지은 유명한 우체국 건물을 보게 되었다. 유리와 스틸로만 지은 건물인데 그 간결함에 매료되었다. 또 바우하우스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미학에 빠져 있을 때라 그 영향의 조합이 애플 프린트라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1980년대 맨즈 웨어에서 처음 선보인 ‘포토그래픽 프린트’가 매우 유명하다. 폴 스미스 캠페인 대부분을 직접 촬영하기도 하는 당신의 사진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깃든 결과물인 것 같다. 사진에 열정을 갖게 된 계기는 초보 사진작가였던 나의 아버지 덕분이다. 13세 때 처음으로 카메라를 선물로 받아 시골로 자전거 여행을 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코모에서 천에 사진을 넣을 수 있는 공장을 찾았다. 80년대 폴 스미스 컬렉션의 프린트를 만들 때 이곳을 늘 이용했다.

아카이브의 포토그래픽 프린트에서 영감을 얻은 2020 F/W 시즌의 50주년 캡슐 컬렉션 제품.

아카이브의 포토그래픽 프린트에서 영감을 얻은 2020 F/W 시즌의 50주년 캡슐 컬렉션 제품.

아카이브의 포토그래픽 프린트에서 영감을 얻은 2020 F/W 시즌의 50주년 캡슐 컬렉션 제품.

위트 있고 경쾌하며, 때로 초현실적인 프린트는 폴 스미스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폴 스미스 특유의 ‘프린트’를 통해 당신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너무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넣지 않는 것! 나는 대단히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내 디자인에도 반영되도록 애쓴다. 옷에 위트와 재미를 담아내고, 그 옷을 입는 이도 명랑하고 즐거워질 수 있기를 늘 희망한다.

이번 캡슐 컬렉션에서는 1970년에 고안되어 약 3년간 사용된 오리지널 로고를 만날 수 있어 흥분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폴 스미스 핸드라이팅 로고 이전의 ‘첫 번째 폴 스미스 로고’ 디자인에 얽힌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나? 폴 스미스의 첫 로고는 매장에서 사용하던 금전통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마켓에서 산 검은색 아르데코 양식의 담배 상자였는데 매장에 현금을 넣어두는 용도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구매했다. 이 상자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어 실크스크린 프린트로 만들었고, 같은 디자인으로 프린트 라벨도 제작했다. 좀 투박했지만 당시 자수로 만든 로고 라벨로 필요한 수량을 충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프린트 라벨이라면 가능했고, 우연히 노팅엄의 바이어드 레인 매장 맞은편에 위치한 인쇄소에서 시험해본 후 마음에 들어서 바로 사용하게 되었다.

당신의 첫 동화책인 <무스와 브라운 씨- 반짝반짝 아이디어 여행>이 한국에도 출간되었다. ‘무스와 브라운 씨는 분주한 작업실에 딱 어울리는 이들이에요.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거든요! 정신없는 작업실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는 보물 창고인 셈이에요’라는 문구를 읽었을 때, 당신의 그 유명한 스튜디오가 떠올랐다. 요즘에도 여전히 당신의 공간에서 영감을 얻으며, 뭔가 새로운 것을 기획 중인가? 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찾는다. 무엇보다 나는 의외의 것과 의외의 조합을 좋아한다. 내 사무실은 몇 년 동안 모아온 호기심 가득한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보내준 신기하고 멋진 것들로 가득하다. 실은 알 수 없는 익명의 팬이 하나 있는데, 그는 어떠한 포장도 하지 않은 채 엄청나게 많은 우표를 붙여 선물을 보내와 나를 늘 놀라게 한다. 한번은 깃털에 우표가 붙어 있는 푹신푹신한 장난감 닭을 선물 받기도 했다.

당신의 철학인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은 이번 캡슐 컬렉션에도 잘 드러난다. 앞으로도 당신의 이러한 철학은 변함이 없나? 브랜드는 나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폴 스미스가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기에 가능하다. 호기심은 나의 패션 철학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항상 다채로운 컬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이른바 ‘위트 있는 클래식’으로 앞으로도 이 철학은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다.

50주년을 맞이해 ‘폴 스미스 재단’을 설립한다. 패션 디자이너를 비롯해 패션 기업가를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당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조언을 주는 장이 될 것이라고 들었다. 이러한 당신의 결단과 비전, 그 선한 영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폴 스미스 재단을 통해 앞으로 어떠한 일을 진행할 계획인가? 우리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많은 것을 배우는데, 나는 특히 성장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싶다. 지금의 패션 산업은 점점 더 진입하기 어렵고, 젊은이에게 너무 큰 비용과 도전을 요구한다. 그래서 다음 세대가 높은 장벽에 좌절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고 영감을 주는 선배이자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다. 이를 위해 50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배운 것을 토대로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채널에 다양한 소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당신은 코로나로 인한 록다운 기간에 더블유 코리아에 친근한 안부 영상을 보내왔다. 여전히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 코로나 블루를 겪는 이들에게 폴 스미스 특유의 위트와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달라. 그 영상은 코로나 19로 인한 폐쇄 기간 동안 런던 스튜디오에 있을 때 찍은 것이다. 스튜디오 건물에는 보통 150명 이상이 북적대며 일하지만 약 넉 달 동안 이 건물에는 나뿐이었다. 낯선 상황이었지만 천천히 책을 읽으며 영감을 찾는 것도 즐거웠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재평가하고 깊이 사유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받아들였다. 이처럼 긍정적인 태도를 기르고 정신을 단련하는 것이 오늘날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에 수영을 하러 간다. 수영이 끝난 후 오전 7시에 출근해 남들 보다 좀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좋은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아닐까.

패션 에디터
박연경
사진
COURTESY OF PAUL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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