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Time'으로 돌아온 로꼬 X 더블유 화보 인터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시간을 달려서 (로꼬)

2020-10-24T01:00:23+00:002020.10.28|FEATURE, 피플|

뮤지션 로꼬는 전역 후 발매하는 첫 EP 앨범 <Some Time>에서 시리게 지나가버린, 혹은 소소한 행복과 함께 찾아올 앞으로의 시간을 말한다.

코트와 슈즈는 지방시, 트랙 톱과 팬츠, 글러브는 모두 산산 제품.

전역 후 첫 인터뷰라 들었다. 9월 전역하고 한 달 남짓 됐다. 지금 그 누구보다 홀가분할 것 같다.

로꼬 마냥 설레진 않다. 공연도 뛰고 여행도 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 전역하고 밤낮으로 일만 했다. 추석 당일에도 본가에 2시간 정도 들렀다 다시 스튜디오에 가서 곡 작업을 했고. 군대에서 너무 일이 하고싶었던 탓인지 지금 같은 정신없는 상태가 싫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군대에서 일을 하질 못해 몸이 근질근질했다고 얘기하는 뮤지션이 꽤 많던데. 정말, 나도 그랬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가사를 끼적이기도 하고 며칠 휴가 나오면 곧장 녹음실 행이었다. 생각해보면, 사흘 이상 일을 놓고 있으면 불안해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리다 입대하면 일시 정지와도 같은 시간이 찾아와 좋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

입대 직전 출연한 라디오 방송에서 머지않아 다가올 훈련소에서의 첫날밤을 상상하며 아찔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실제 첫날밤은 어땠나? 정확히 기억한다. 입대 당일 <Hello>라는 앨범을 발매했으니까. 오후 6시가 되자마자 각종 음원 사이트에 앨범이 공개됐는데, 휴대폰이 없어서 반응이 좋은지 어떤지 속으로 무척 궁금했다. 그러다 소대장님이 차트 순위나 피드백을 알려줘 첫날밤이지만 좀 홀가분하게 잠든 기억이 있다.

셔츠와 베스트, 팬츠, 타이는 모두 프라다, 레더 재킷은 태우, 슈즈는 펜디, 링은 불레또 제품.

전역 당일 SNS에 거수경례하는 사진을 업로드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힘들 줄만 알았는데 얻어온 게 많은 것 같습니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나? 사실 예전부터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정신 없이 지내다 보니 추진하지 못한 게 많았다. 그런 것들이 부대에서 생활할 때 하나하나 떠올랐다. 어떻게 배워볼까 궁리하다 ‘면회실로 선생님을 초대하면 되겠다’ 싶어서 춤 선생님을 초빙하기도 했다. 올해 2월부턴 평소 눈여겨보던 댄서에게 SNS 메시지를 보내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면회실에 아무도 없을 때를 잘 노려야 했다 (웃음). 그렇게 보컬 강습도 받고, 취사병들에게 물어 요리에 취미를 붙여보기도 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멈춰 있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멈춰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무엇일까? 입대 후 초반 10개월은 교통 근무를 하고 나머지 복무 기간엔 매점을 운영하며 정산 업무를 맡았다. 하루 종일 숫자와 씨름하며 기계처럼 일만 하다 보니 마음 한쪽으로 조금씩 두려움이 쌓이지 않았나 싶다. 감도 잃을 것 같고, 혼자 뒤처질 것만 같고, 이러다 아저씨가 되나 싶고. 그래서 간간이 복무 중 공연 요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한다고 나섰다. 공연할 때만큼은 엄청난 에너지를 받고 스트레스가 일순간에 풀린다.

베스트와 셔츠, 터틀넥, 슈즈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패딩과 팬츠는 우영미, 글러브는 산산 제품.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0월 14일 전역 후 첫 앨범인 <Some Time>이 발매된다. 트랙 리스트를 보다 흥미로운 제목의 곡을 발견했는데, 그게 ‘면회실’이다. 동료 뮤지션 중에서 누가 가장 자주 면회실을 찾아왔나? 하이어뮤직의 프로듀서 우기가 가장 자주 왔다. 치킨이며 초밥이며 바리바리 싸 들고서(웃음).

‘면회실’ 가사를 보면 복무 중 틈틈이 가사를 쓴 것 같던데. 이번 앨범에 수록하는 네 곡 모두 부대에서 썼다. ‘오늘 불침번은 특히 길었어’라는 가사에도 나오지만 불침번인 날 유독 가사가 잘 써졌다. 새벽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벌레 떼를 벗 삼아(웃음).

이전과 다른 환경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스타일의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솔직해 말해 이전에 작업한 음악과 비교해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다. 그런데 복무하던 ‘그때’였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맛이란 것도 있을 테고, 그 날것의 상태를 최대한 빨리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수정도 많았을 거다. 지금 보면 가사가 좀 투박하고 딱딱하게 떨어진다는 감이 있지만 그걸 전부 살리고 싶었다.

셔츠와 팬츠, 코트, 슈즈는 모두 구찌, 네크리스는 불레또 제품.

앨범을 준비하며 유독 자주 곱씹은 단어가 있었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실 2018년에도 ‘시간이 들겠지’라는 곡을 내기도 했는데, 돌이키면 감정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시간이 답이야’, ‘언젠가 끝나겠지’라는 생각으로 슬픔을 저만치 밀어내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군대에 있을 땐 누구나 그렇듯 유독 느리게 흐르는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지 않나. 동시에 시간에 대한 체감은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것도 느끼면서, 마음에 따라 상대적인 속도로 흐르는 시간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앨범의 처음을 여는 곡 ‘귀가’에선 시간이 굉장히 느리게 흐른다는 걸 말하는데 마지막 곡인 ‘이제서야’에 이르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이제서야’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지. 지금 아무리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더라도,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개인적으로 ‘이제서야’에서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 ‘일단 오늘은 처음 마셔본 소이 라테가 고소해서 기분이 좋아.’ 문장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 ‘말랑말랑’한 기분이 든다고 할까. 평소 우유를 마시면 늘 속이 불편해서 라테의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데도 피했다. 그러다 전역할 무렵 처음으로 소화가 잘된다는 소이 라테를 마셔봤는데, 너무 행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엄청 소소한 행복이 생긴 거지. 결국엔 소이 라테,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앨범 초반 곡들엔 다소 우울한 무드가 깔려 있지만 마지막 곡에서만큼은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을 말하니까.

어쩌면 여태 당신의 음악 가운데 이번 앨범이 가장 밝음의 맞은편에 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이번 앨범이 좋다고 꼬집어 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을 거라는 짐작도 들고. 가을 타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거다 (웃음).

재킷과 니트는 드리스 반 노튼 by 분더샵, 팬츠는 아워레가시 by 비이커 제품.

어디선가 당신이 음악을 시작한 계기를 읽고선 좀 의외라고 느낀 적이 있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고자 음악을 시작한 것, 맞는가? 고등학생 때 랩 하는 사람들이 하고싶은 말을 시원하게 내지르는 게 그렇게 멋져 보였다. 나랑은 다른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동경했던 것 같다. 친구가 ‘같이 공연해볼래?’라고 툭 내뱉은 말에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얼떨결에 무대에 섰는데 이상하게 그 첫날 나도 왠지 평소 동경해온 사람들처럼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대학에 가서 힙합 동아리 회장을 맡고 거기서 그레이 형을 만났다. 그때까진 순전히 음악이 취미였는데 그레이 형이 음악을 업으로 삼자고 꼬셔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 길에 들어선 셈이다(웃음).

막상 그렇게 시작했을 땐 불안하진 않았나? 불안했지. 어머니도 반대하시고. 한창 불안했을 때 나간 게 <쇼미더머니> 시즌 1이다. 내가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전혀 몰랐고 주변에 음악 하는 사람도 없어서 믹스 테이프를 내더라도 피드백을 들려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이대로 음악을 해도 괜찮은 건가’ 의심하면서 출연했다. 원래 탈락하면 그길로 군대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우승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굉장히 빠르게 왔다.

가사를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과정일 텐데,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당시 내성적인 당신에게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언제부터 가사를 쓰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좀 익숙해진 것 같나? AOMG에 합류해 앨범 내면서부터다. 이전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음악적 고민보다 훨씬 앞섰는데, AOMG와 계약하고 6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더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다. 당장 먹고 입는 게 해결되니까 온전히 음악 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거지. 그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이키면 인생의 곡선이 엎치락뒤치락하지 않고 아주 고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늘 일정한 속도로 걷는 것 같달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아주 힘들 때 가사를 쓰고나면 마음이 풀린다고 할까, 오래 고민한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니가 모르게’를 작업했을 때도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시린 마음으로 가사를 썼는데 이상하게 가사를 완성하고 나니 저릿저릿했던 감정이 깨끗이 사라졌다.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트랙 점퍼는 태우, 티셔츠는 1017 알릭스 9SM by 아데쿠베, 레더 팬츠는 지방시, 슈즈는 후멍, 네크리스는 모두 불레또 제품.

당신의 가사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면 ‘괜찮다’다. 가사에서 누군가에게 지금 잘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다독이는 인사를 유독 자주 건네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주변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친구가 많아서일 거다. 그런데 나는 친구들이 항상 웃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힘든 순간 어떻게 하면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는지를 무엇보다 내가 굉장히 잘 안다. 그걸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주변을 다독이던 당신은 이번 앨범에서 ‘이제서야 어른이 된 것 같아’라고 말하지 않나. 이제서야, 그렇게 느낀 이유가 있나? 사실 삶은 어른이 됐다가 다시 아이가 되고, 그러다 어른이 되는 것의 반복인 것 같다. 다만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느껴진 일이 시간이 지나 실은 별것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마다 어른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건강. 요즘엔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식을 의식적으로 챙겨 먹으려고 한다. 예전엔 라면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게 다반사였다. 건강이 최우선 가치가 되고 나니까 일이나 결과에 대한 욕심을 좀 덜어놓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요즘 아주 나중, 시간이 많이 흐른 후의 내 모습을 자주 상상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상상이 드나?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걸 눈치 보지 않고 하고, 무언가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고, 소소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

소이 라테와도 같은 거네. 맞다. 정말 소소한 행복, 그거 하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