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이탈리아 모더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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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인의 좋은 취향,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싶다.”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토즈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낙점된 발테르 키아포니(Walter Chiapponi)가 자신의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이며 꺼낸 말이다. 이탈리아 패션에 대한 긍지로 충만한 그가 젊고 세련된 감각으로 진화시킨 토즈는 이탈리아 모더니티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에 충분하다.

TOD’S 2020 F/W

TOD’S 2020 F/W

TOD’S 2020 F/W

TOD’S 2020 F/W

TOD’S 2020 F/W

전염병 시기가 오기 전 밀라노 패션계는 세대교체가 한창이었다. 보테가 베네타의 대니얼 리, 마르니의 프란체스코 리소, 그리고 토즈의 발테르 키아포니까지. 이탈리아의 가장 큰 패션 그룹인 토즈 그룹의 회장 디에고 델라 발레는 지난 가을 숨겨진 원석인 발테르 키아포니를 토즈 남녀 기성복을 총괄 감독하는 자리에 기용하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키아포니는 이탈리아 패션에 정통한 인상적인 혈통을 갖고 있다. 구찌, 미우미우를 거쳐 최근에는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 대니얼 리와 일하는 등 이탈리아 패션의 큰 축을 함께해왔다는 사실은 럭셔리 산업에 노련한 감각을 갖췄음을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지난 2월 첫선을 보인 그의 여성복은 매우 느긋했고, 직감적이었으며, 여유로웠다. 넉넉한 코듀로이 팬츠, 헐렁한 보이프렌드 재킷, 풍성한 컬러 팔레트와 촉감 좋은 직물을 사용한 실용적이고 고급스러운 아우터 등은 세련되고 몸을 꼭 죄지 않은 채로 우아했다. 키아포니는 이렇게 토즈의 유망한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더블유 코리아는 그런 그에게 서면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Walter Chiapponi

부디 안전하고 건강하길 바란다. 먼저, 토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것을 축하한다.

Walter Chiapponi 고맙다. 토즈 그룹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다. 특히 이탈리아 라이프스타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도전이면서도 자긍심을 갖게 한다.

전염병 시기에 거대 브랜드를 지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듯하다. 패션 업계 사람들 역시 전염병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패션 시스템은 다시 작동할 수 없다고 예측하는데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락다운 시기를 어떻게 보냈나? 첫 데뷔 쇼를 선보인 직후 바로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난 산업의 시스템적인 부분보다 락다운 이후 정상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전보다 더 감성적이고 민감해질 사람들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감성적 변화가 디자이너로서 내 작업물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

락다운 시기가 지난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 현재는 밀라노에 있는 집에서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밀라노에 있는 내 사무실과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안에 있는 레 마르케(Le Marche) 지역에 위치한 토즈 공장을 오가며 일한다. 밀라노에 있을 때는 디자인에 좀 더 집중하여 아이템과 룩에 대해 팀과 논의하고, 공장에 가면 신발의 축소 모형(Maquettes)을 가지고 새로운 기술을 찾아내 형태, 재료, 마감과 색상을 연구하는 작업을 한다. 특히 토즈의 공장에서는 굉장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탈리아 공예 장인들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갖게 되니, 늘 고취되곤 한다. 내가 구현해내고 싶은 것을 장인들에게 설명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내게는 놀라운 공부다. 그들은 언제나 최고의 해결책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팬데믹 상황은 모든 것을 내부 인원과 자원으로 해결하게끔 했다. 여행이 금지된 것은 우리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다. 일하는 방식은 어떤 식으로 변했나? 비록 락다운은 되었지만,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지난 2월 컬렉션을 공개한 직후, 우리는 모든 액세서리와 레디투웨어를 재점검하는 시간을 거쳤고, 작은 디테일을 더하거나 수정하고, 생산 공정의 방향성을 재검토했다. 재택근무 때는 여느 사람들처럼 화상회의와 전화로 소통하며 컬렉션 론칭 준비, 카탈로그 촬영, 모든 비주얼과 광고 캠페인 촬영을 마쳤다.

미우미우, 구찌, 보테가 베네타 등 이탈리아 최고의 하우스에서 여러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일했다. 당신의 커리어만 보아도 이탈리아 패션이 얼마나 당신의 삶에 핵심적인지 알 수 있다. 당신의 어린 시절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나? 밀라노 외곽 4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예술을 공부한 내가 이탈리아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파리에서였는데, 당시 떠오르던 스타 디자이너 베르사체와 디자이너 듀오 도메니코 돌체, 스테파노 가바나의 캣워크를 보고 나면서였다. 나는 운명적으로 알레산드로 델라쿠아 휘하에서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유럽 디자인 연구소로 돌아왔다.

당신이 바라본 토즈 하우스는 어떤 곳인가? 토즈는 우아함, 품질 그리고 장인 정신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이탤리언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브랜드 그 자체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 토즈와 대화하는 과정은 어땠나? 또, 당신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고 나서 처음 한 일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모든 것은 토즈 그룹의 회장 디에고 델라 발레(Diego Della Valle)와의 강렬한 대화로 시작됐다. 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흥미롭고 열정적인 그의 성향에 매료되었으며, 그는 내가 토즈에 대해 갖고 있는 비전을 궁금해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후, 난 먼저 토즈의 유산과 코드를 깊이 탐구했다. 토즈가 지금까지 쌓아온 이탈리아 패션, 문화적으로 풍성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의 위대한 헤리티지를 오롯하게 보여주는 것이 나의 과제다.

데뷔 이후, 줄곧 이탤리언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발테르식의 이탤리언 라이프스타일이 무엇인지 직접 말해준다면? 토즈는 나에게 이탤리언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이며, 토즈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 중 하나는 ‘이탈리아 생산(Made In Italy)’이다. 전통적인 장인 정신, 장인의 노하우 그리고 최상급 품질의 정수 같은 것들 말이다. 난 이를 규칙이나 제한이 아닌 삶의 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다. 이탈리아의 고전적인 여성상에 미묘하고 대담한 터치를 입힘으로써, 이탈리아의 품격과 우아함에 현대적 변주를 더함으로써다.

여성복의 테일러링은 오버사이즈에 남성적인 면도 있지만, 50년대 쿠튀르에서 영감을 얻은 가죽 코르셋 또한 공존한다. 어떤 여성을 상상하며 디자인했나? 토즈의 여성은 자신만의 품격을 유지하고, 품질을 우선시하며, 흔들리지 않는 태연한 태도와 현대적 감성을 즐긴다고 상상했다.

액세서리에서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이 베스트로 꼽는 것은 무엇인가? 가방 중에서는 캐주얼 호보백, T 타임리스 테마의 백,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전개하고 싶은 시그너처 마틀라세 라인을 꼽을 수 있다. 슈즈에서는 토즈의 아이코닉 요소에 여성성을 강조한 스티치 장식의 하이힐과 청키힐이 있고, 로퍼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슈즈 영역은 내 첫 번째 남성복 컬렉션 때보다 넓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한 가지를 꼽기보다는 모든 종류의 슈즈를 하나씩 추천한다. 가장 여성스럽게 디자인된 흰색 소가죽 소재의 펌프스, 메탈 체인이 있는 프레피 모카신, 남성적인 솔이 무거운 하이 부츠와 70년대를 참고해 보다 가볍게 디자인된 스니커즈까지, 하나씩 둘러봐줬으면 좋겠다!

토즈 하우스에서 액세서리는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액세서리에 쓰이는 리뉴얼된 T 로고 외에는 로고가 함축적이거나 미니멀해진 인상을 받았다. 확실히 여성복에서는 액세서리가 컬렉션을 리드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죽을 다루는 데 있어서 토즈의 탁월함과 최상의 재료를 다루는 장인들의 놀라운 솜씨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가장 최신 컬렉션인 2021 리조트 시즌은 컬러가 좀 더 다양해지고, 실용적인 동시에 우아한 옷으로 채워졌다. 당신이 지향하는 패션의 방향은 무엇인가? 이번 스프링 컬렉션에서는 보여주고 싶은 스타일이 있었다. 일상을 영위하는 삶이 바삐 돌아가더라도, 친구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는 70년대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스타일이 그것이다.

2020 F/W 컬렉션에서는 자투리 신발 가죽을 재활용해 패치워크한 코트가 등장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당신의 비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개인적으로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다. 토즈는 제작 공정에서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주는 방식을 늘 고민한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패치워크 코트 한 착장뿐이었지만, 지속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고, 패션도 환경을 둘러싼 가치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여기기에 앞으로 그 비중을 더 늘릴 것이다.

분명 힘든 시기다. 다가오는 밀라노 패션위크 쇼를 구상하면서 느낀 감상을 부분적으로 공개해줄 수 있을까? 분명히, 이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패션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을 거다. 2021 S/S 시즌을 준비하는 지금도 이미 느낄 수 있으니까. 난 좀 더 ‘아틀리에’적인 면모나 장인 기술이 들어간 세부 등 근본적이고 강력한 메시지에 집중할 것이다. 지속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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