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행 책을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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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여행을 향한 마음만으로 대동단결할 수 있다. 그 마음에 처방전이 필요하다, 특별하고 유효한 것으로. 

1_<아이슬란드, 얼음 땅에서의 일상 기록> 

(마이케이 스튜디오) 김명연, 이형종 지음 

‘일단, 대충, 떠나 아이슬란드 한 바퀴 돌았습니다’라고 포문을 여는 부부는 팬데믹이라는 것이 세상에 닥치기 직전 로드 트립에 올랐다. 이들은 1년에 한번씩 이런 길에 나서고, 아이슬란드는 세 번째 목적지였다. 두 권이 한 세트다. 하나는 1번 도로를 따라 섬을 일주하며 매일 시간대별로 일지를 기록한 책. 또 하나는 사진집이다. 오로라 하나 감상하고픈 마음으로 아이슬란드에 갔으나 허탕 친 이들의 소회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들은 그냥 잠옷 바람으로 호텔 발코니에서 오로라를 목격한다. 한겨울의 촉감과 색감이 살아 있는 사진집을 보면 기분이 정화된다.

2_<A Mouchamps 아 무샹>

(hnh) 김모아, 허남훈 지음 

배우이자 글을 쓰는 김모아, 사진과 영상을 찍는 허남훈은 ‘여행하듯 살고, 살듯이 여행하고’ 싶었다. ‘여행하는 삶’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데서 여행과 삶 어느 한쪽에 방점을 찍고 싶지 않은 태도가 엿보인다. 이들은 ‘커플의 소리’라는 프로젝트 그룹명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삶 속에서 얻은 영감을 책, 영상, 음악 등으로 기록한다. 이번엔 프랑스 시골 마을 무샹에서 45일의 봄을 살았다. 도시의 리듬과는 다른, 하지만 그리 생소하지도 않은 일상이 편안하게 흘러간다. 빵집 주인이 휴가에서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얼른 맛보는 바게트, 풀 냄새와 새의 지저귐이 함께하는 산책 같은 거. 힐링 포인트는 ‘시골’이다.

3_<40일간의 남미 일주>

(해냄) 최민석 지음 

소설가가 쓴 여행기라면 당연히 여느 여행 책과 다른 걸 기대하게 된다. 저 혼자 즐기는 혼잣말 같은 여행담은 필요 없다. 우리의 멱살을 잡고 그곳으로 끌고 가 흠뻑 취하게 해주는 게 그의 의무일 것이다. 최민석은 의무를 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구구절절’ 기록하며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담을 발휘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의무를 다하게 된다. 그는 <론리 플래닛>에 3년간 여행 칼럼을 연재했고, 베를린 체류기를 낸 적도 있다. 멕시코에서 시작해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6개국을 담은 여행 일지는 멀고 먼 남미 사람들의 생활의 감각까지 되새기게 해준다. 첫 문장은 이렇다. ‘7월의 멕시코가 의외로 춥다.’

4_<인투 더 그린>

(스패너 스튜디오) 최현주 지음 

여행지의 풍경을 그림으로 본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의 기억으로 떠올리는 게 아닌, 타인의 눈과 손을 통해 표현된 그 풍경은 자칫 아무런 울림도 정보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넘기면 초록의 싱그러운 생명력이 사진과 다른 느낌으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저자는 작년 늦여름 6주간을 태국 치앙마이에 머물며 도시, 사원, 동물, 재즈바의 연주자 등을 그렸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그림을 그릴 때 체화하게 되는 정서적 경험, 그 순간을 둘러싼 기억도 고스란히 그림에 담겼다. 200여 점의 드로잉 사이사이엔 감상적인 수사 없이 진솔하게 상황을 묘사해서 더 좋은 짧은 글이 있다. 비 오는 사원이나 길바닥에 앉아 드로잉 중이던 저자에게 여행자들이 흥미를 갖고 다가왔다는 대목에선 그림이라는 매개체가 일으킨 마술적 순간마저 상상된다.

5_<디어 리스본 – 서점 구경>

(스몰컬렉션) 스몰컬 렉션 지음 

여행을 할 때마다 문구, 책, 빈티지 소품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에겐 그런 아이템이 있는 곳만 찾아다니는 여정이 곧 여행이다. 저자는 32페이지의 아담한 사이즈인 이 독립 출판물에 리스본의 서점들과 포르투의 몇몇 서점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앞모습만 보면 노트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뒷면은 두툼한 편지 봉투처럼 생겼다. 빈티지 라벨이 가득한 고서점, 1732년에 문을 열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곳, 옛 스테인드글라스 공장터를 쓰는 서점 등등에서 건져 올린 책, 엽서, 영수증 같은 작은 것들의 이미지와 짧은 감상이 흐른다. 아기자기하고 다정하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장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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