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 (우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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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그저 알을 깨고 나오는 게 아니라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그 후에는 자기다운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날아가는 일이 남았다. 우원재는 자신만의 고요한 분투 중에 첫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것이다. 이제 우원재의 치열한 삶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건 오직 우원재 자신과 그의 음악뿐이다. 

하얀색 셔츠는 프라다 제품. 비니는 본인 소장품.

촬영하는 동안 틀어놓을 음악을 당신이 준비해 왔다. 그에 화답하며 우원재다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우리도 볼륨을 한껏 키웠다.

우원재 디제이가 된 것처럼 나름 음악 배치도 신경 썼다(웃음).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 일하는 현장이니까, 너무 처지거나 한 분위기에 매몰되면 안 될 것 같아서.

요즘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우원재와 AOMG의 재계약 여부가 화제다. 당신이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직후 AOMG에 들어갔으니까 이제 한 3년 됐나? 재계약, 할 거다. 지금은 여러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 논의 중이다.

어떤 말들이 있어도 <쇼미더머니>를 결국 본 이유는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을 발견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우원재는 이 신에 어떤 래퍼들이 존재하는지 웬만큼 아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충격이었으니까. 8월 18일 첫 정규 앨범 <Black Out>을 냈다. 2년 전 EP <AF> 작업 이후 어떤 경험치가 쌓였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 혼자 음악 작업하고 혼자 듣고 하는 건 얼마든지 재밌고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직업이 되면, 내 음악을 음원 사이트를 통해 발표하는 일부터 하나하나가 다 일의 영역이다. 나는 아무래도 그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힘들었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법에 어긋난다거나 생각처럼 간단치 않은 일이 참 많았다.

재킷과 니트 톱, 셔츠, 넥타이는 모두 프라다 제품.

코드 쿤스트가 당신을 두고 ‘<쇼미더머니>가 잉태한 사나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는데, 잉태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배출이나 출산이라고 하면 우원재 스스로 보다 <쇼미더머니>가 중요한 일 다 한 것 같잖아. 하하. 그 형은 아무 생각 없이 말했을걸?

그 ‘아무 생각 없음’에도 당신의 능동성을 알아본 코드 쿤스트의 무의식이 반영됐다고 믿는다. AOMG라는 포근한 요람에서 우원재가 출산한 음악 얘기나 해보자. 앨범 제목인 <Black Out>의 의미는 뭔가? 큰 뜻이나 치밀한 계산 같은 것 없이 만들었다. 내가 기억력이 참 안 좋다. 그래서 기록하듯이 그날그날의 느낌을 음악에 담는다. 각각의 노래가 그 노래를 쓸 당시의 내 모습과 같다. 그렇다 보니 노래를 쭉 모아놓으면 당시의 내 모습이 어느 정도 되살아나는데, 그게 선명하다기보다는 꿈에서 보듯 연상되는 기분이라 ‘블랙 아웃’이 라고 정했다.

자신이 한 말과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감정이 어떠했다는 사실만큼은 좀 기억나나? 모두 꿈 같다. 내가 한 게 아니라 남이 한 듯한 느낌이랄까? ‘내가 그때 그랬단 말이야?’ 하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다시 만나도 처음 만나는 사람인 줄 알 때도 자주 있고.

잊혔다는 건 그만큼 당신에게 크게 중요치 않은 것이기 때문일까?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또 최근에야 비로소 깨달은 건데, 사실 나는 내 생각만 하기에도 바쁘고 벅찬 사람이었다. 내 안이 감정이나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달까. 하지만 과부하 상태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컴퓨터가 과부하되면 고장 나잖아.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같이 있어도 늘 혼잣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밖으로 꺼내놓는 말과 행동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았던 것 같다.

우원재는 가사와 서사만으로도 충격을 안겨준 래퍼 아닌가. 자신에 대해 잘 알아서 꺼내놓는 말이 대부분일 줄 알았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안 게 아니었던 셈인가? 그렇다. 나 자신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뭔가를 ‘안다’라고 하는 일 자체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안다’는 그 확신이 또 원동력이 되겠지. 

셔츠와 팬츠, 부츠는 모두 지방시 제품. 비니 모자는 본인 소장품.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큰 고민은 뭐였나? 가사 문제였다. 가사 역시 매일 매 순간 느끼는 걸 풀어 쓴다. 어떤 상황을 설정해놓고 시나리오 쓰듯이 쥐어 짜내는 것에는 흥미를 못 느껴서. 

그럼 시간이 지나 완성된 곡을 녹음하다가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자꾸 눈에 띄지 않나? 그래서 나는 가사를 완성하면 바로 녹음하는 편이다. 가사를 썼을 때와 얼추 비슷한 감정이 들 때 하거나. 문제는 사람 생각이 아무래도 바뀌곤 하니까 시간이 지나서 보면 내가 쓴 가사가 이상한 것 같고, 그 내용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판단도 들면서 자꾸 갈등과 충돌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가사 쓰는 일 자체가 힘들어졌다. 버린 트랙도 많다. 어느 순간 뭔가를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어느 시점의 내가 진심이었다면 그때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게 나니까. 

매달 원고 마감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내적 갈등과 쓰고 버리는 일의 반복적 괴로움을 이해한다. 글이나 일기를 모아 책 내볼 생각은 안 해봤나? 글 쓰는 걸 좋아 하고 나도 내 일기가 좋긴 한데, 그렇다고 책을 내고 싶진 않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뭘 끝까지 잘 읽지도 못한다. 

특별히 아끼는 책이 있나? 몇 달 전에 읽은 소설 <데미안>. 서두만 여러 차례 봤다. 서두가 너무 좋아서 뒤 내용은 궁금하지도 않을 정도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온전하고 완전한 자신을 찾기 위해 기존의 세계를 깨뜨려 간다는 여정이 당신과 어울린다. 창작을 할 때는 ‘무엇’과 ‘어떻게’의 문제가 있는데 당신은 어느 쪽에 관심이 클까? 글로 치자면 소재와 주제가 ‘무엇’에 해당하겠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 하느냐’가 그 사람의 필체와 스타일이겠다. ‘무엇’에 대해서라면 나는 매일 그것에 꽂혀 사는 사람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늘 생각한다. 종교는 없지만 어릴 때부터 불교적인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종교 역시 철학이고, 신 혹은 누군가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점을 교과서처럼 만든 게 종교라고 두루뭉술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참고하되 나만의 기준을 많이 되새기는 편이다. 다만 고민을 더 많이 하는 쪽은 ‘어떻게’에 관한 문제다. 나의 생각과 기준, 그 여러 가지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결국에는 메시지를 유치하지 않게 전하고 싶다는 고민이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큰가? 즐기는 콘텐츠가 있나? 수학과 과학을 좋아한다. 그 학문들이 궁극적으로 풀고 싶어하는 문제가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것과 다 연결 된다고 들었다. 인간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왔고, 세상이 어떤 원리로 이뤄져 있고 등등. 

수학 전공자들에게선 ‘수학은 정답이 있어서 좋다’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 나도 그랬다. 수학과 과학에는 결론이 내려져 있는 화두가 많다. 이건 위험한 발언일 수 있지만, 나는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명제들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궁극에 있는 진리를 찾기 위해 그 모든 학계의 논의가 있는 걸 테고, 아직 진리를 찾지 못했다면 모든 게 한순간에 바뀔 가능성도 있겠지. 

천동설과 지동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보니 당신과 그레이, 로꼬는 홍익대 공대 출신 3인방이다. 토목 공학과는 적성에 맞았나? 안 맞았다. 되게 재미없었다 (웃음). 하지만 공대 말고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 때는 당연히 대학 잘 가야 하는 줄 알았고, 대학 나오면 취업해야 하는 줄 알았다. 물론 토목공학 관련 회사에 취직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가족은 당신이 뮤지션이라는 직업을 갖고 알려진 사람이 되니 기뻐하던가? 날마다 다른데, 다들 별로 안 좋아할 때가 더 많았다(웃음). 엄마는 늘 나 때문에 걱정했다. 일하고 있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사람은 왜 죽어?’라고 하면서 엉엉 울기도 하는 일을 중학생 때까지 했으니까. 학교에서는 ‘애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고 선생님한테 맞은 적도 있다. 내가 선생님을 놀리는 줄 알았던 거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생각을 많이 안 하며 살기를 바랐다. 

창작하는 일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생각이 꼬리를 물고 파고드는 일이 많으니까 우려하신 건가? 그렇다. 아무 생각 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그런데 이제는 좀 포기하신 것 같다(웃음). 요즘은 또 나와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좋아하신다. 

엄마가 해주신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뭔가? ‘눈을 감으면 없는 일이 되더라. 눈 뜨고 봤기 때문에 있는 일이 된 거다.’ 지금도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긴 하다. 감정을 분리해서 보라는 말도 자주 하신다. 기쁘다거나 슬프다는 그 감정은 소중하지만, 감정이란 어떻게 보면 인간의 한계를 뜻한다. 우울하고 슬프다고 해서 잘못된 게 아니라 그저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일 뿐 이라고, 분리하라는 이야기다. 

우원재 그대로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그나마 있다면, 세상이 타당하다고 정해 놓은 기준에서 좀 자유로워졌을 때다. 예를 들어 라디오헤드의 음악이라고 하면 수준 높고, 괜히 그런 걸 좋아해야 할 것 같은 잣대가 있잖나. 하지만 내가 들었을 때 라디오헤드보다 들국화가 좋으면, 나한테는 들국화의 음악이 더 높은 수준인 거다. 적어도 음악에서만큼은 세상에 통용되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멋진 것과 덜 멋진 것 같은 잣대에서 전보다 훨씬 자유롭다. 

어깨가 큰 재킷은 릭 오웬스, 길게 늘어뜨린 후드 머플러는 라프 시몬스, 팬츠는 린더, 신발은 오시리스 제품.

<쇼미더머니>에 출연할 때는 지원 동기에 ‘유명해지고 싶어서’라고 썼다. 유명해지니 좋나? 좋은 것도 아주 많고, 감수해야 할 것도 아주 많다. 확실한 건 유명세라는 것과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면 유명해지는 일이 그저 힘들기만 할 것이다. 

아티스트로서 잃고 싶지 않은 태도는 뭔가?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왜? 내가 아는 래퍼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나는 특별해’라고 말하던데. 모든 개개인이 다 다르고 특별하다. 그러니 나에게 특별함이 있어도 그걸 굳이 내세울 일은 아니다. 누군가 ‘이런 건 나만 가지고 있어’라고 하면서 멋진 걸 내놓으면, 그 멋진 ‘다름’을 괜히 인정하기가 싫어지는 게 사람 심리 같고. 나는 특별하다고 여기면서 작업을 하면 작업이 얼마나 진심 어린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결국에는 특별해질 수 있는 길이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Fever’에 이런 가사가 있다. ‘착한 사람이 행복하길 빌어 못된 사람은 안 못되길 빌어.’ 권선징악을 믿나? 믿는다. 하지만 착하거나 착하지 않다는 개념은 상황이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그 상황은 내 의지로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상황이 없어지는 상황’이란 게 가능할까?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말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쓴 가사다. 

돈 많이 벌고 싶다는 바람은 얼마나 있나? 지금까지 많이 벌었다고 생각한다. 더 벌고 싶다. 지금 당장의 마음으로는 더 유명해지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이 내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 

어떤 욕망이든 우원재의 욕망은 지지하고 싶다. 와, 그거 되게 큰 말이다. 고맙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패션 에디터
김민지
포토그래퍼
윤송이
스타일리스트
손야비
헤어 메이크업
장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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