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의 용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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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의 리드미컬한 색채와 패턴, 반항적이고 창조적인 기묘한 인물들. 모로코 출신 작가 하산 하자스의 강렬하고도 유쾌한 사진 세계가 펼쳐진다.

블레이즈(BLAIZE), 2013_1434, 람다 프린트, 흰색 유광 스프레이 도색된 포플러 나무 액자, 94 X 133.4 X 6.3 CM.JPG

체 러브레이스(CHE LOVELACE), 2012_1433, 람다 프린트, 흰색 유광 스프레이 도색된 포플러 나무 액자, 101.6 X 140.5 X 10.3 CM.JPG 2.

9월 27일까지 바라캇 컨템퍼러리에서 당신의 개인전 <A Taste of Things to Come>이 개최된다. 삼청동 어귀에 자리해 점잖은 분위기가 감돌던 갤러리가 당신의 작품들로 이토록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게 변신할 줄 누가 알았을까! 전 세계적인 펜데믹으로 당신의 첫 국내 개인전에 방문하지 못해 아쉬움이 클 것 같다. 전시 소감과 최근 락다운 상황에서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산 하자스 갤러리와는 지난 2년 가까이 전시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그 시간이 굉장히 먼 시간처럼 느껴진다. 개인전을 열기로 한 올해 락다운 상황이 벌어져 당혹스러운 차였는데, 갤러리에서 전시를 그대로 열겠다는 용감한 소식을 전해와 굉장히 놀랐다. 어려운 시기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시를 준비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전시 타이틀이 <A Taste of Things to Come>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레 당신의 작품을 감상하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어렴풋이 더듬어본 듯 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과 나누고자 했던 이야기가 있는가? 관객으로부터 종종 내 작품이 얼마나 낙천적이고, 기쁨으로 가득한지 듣곤 한다. 이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건설적인 관점을 가지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요소를 공유하고자 열중한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사진 작업에는 사진을 촬영하는 나뿐만 아니라 촬영되는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한다. 작업에서 협업을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들이 그저 사진 속에서 ‘예쁨’ 이상의 것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신의 대표적 사진 연작이자 오랜 세월 마라케시, 런던, 파리, 두바이 등을 오가며 만난 사람을 촬영해 기록한 ‘My Rockstars’다. 작품의 시작점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성냥갑, 통조림 캔 같은 소비 상품으로 사진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을 통해 나누고자 한 이야기가 있는가? ‘My Rockstars’는 나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친구, 지인을 촬영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그들 대부분은 런던에서 자신만의 문화적 여정을 만들어가는 예술가이자 창작가다. 그들의 사진을 찍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시간’을 기록해왔다는 점을 깨달았다. 친구 크리스 스프링(Chris Spring)이 내 전시 도록에 실릴 글을 쓰며 이야기했듯, 이 연작의 키워드가 ‘나의(My)’인 이유는 그 인물들이 내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관객들 또한 그들을 좋아하고, 관객이 ‘그들의’ 록스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고 싶다. 또 내 프레임에 있는 오브제들은 사진과 연관이 있는데, 주로 인물의 고향이나 직업에 대한 단서를 담고 있다. 브라질 출신의 카포에라 무술가에게는 브라질 피망 통조림 캔을, 가수에게는 ‘디바(Diva)’라 적힌 캔을 사용하는 식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온 ‘Kesh Angeles’와 ‘Dakka Marrakchia’에선 특히 여성이 작업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 패턴이 새겨진 히잡을 두르고 모터바이크에 앉은 아랍 여성을 포착한 ‘L.V.Bikin’이 대표적이다. 두 연작에는 여성에 대한 서방의 편견을 깨려는 시도가 담겼다고 읽히는데, 맞는가? 맞다. 내 주변의 여성들은 언제나 강인했으며,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를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고, 통상 전통 의상으로 제안되지 않는 패션을 통해 이를 나타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출생지인 모로코 마라케시와 1973년 이주해 생활한 런던은 당신에게 서로 다른 예술적 관점을 제시했을 것 같다. 지역, 문화, 종교가 판이한 두 지역은 당신의 작품 세계에 각기 어떠한 영향을 끼치나? 나 자신이 두 지역의 결과이듯, 작품 또한 이 두 곳의 결실이지 않을까? 나는 마라케시 사람인 동시에 런던 사람이며, 그게 곧 내 자산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런던에서는 색들이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들은 반면 모로 코인은 색들을 서로 섞고, 내게는 그게 굉장히 활기차고 행복해 보였다. 이런 관점의 차이를 알기 때문에 내가 서구적인 규칙을 깨보는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스타, 타투이스트, 패션 디자이너, 힙합 댄서, 무술인 등 당신의 사진에 포착된 인물들은 주로 대담한 자세를 취한 채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이처럼 당신의 카메라로 소환된 국적, 인종, 성별, 직업 불문의 피사체들이 공유하는 특정한 ‘결’이 있을까? 무의식적으로 사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디아스포라’라는 것을 천천히 깨닫게 됐다. 의식적으로는 그들의 열정을 따르고자 하는 추진력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듯하다. 어떤 투쟁이나 장애물, 벽이 찾아 온다 해도 그들의 열정을 막지는 못할 거다. 나는 이러한 회복력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이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화려한 색채, 패턴, 디자인으로 인해 당신의 작업은 종종 팝아트 범주 안에서 읽히곤 한다. 나아가 당신을 ‘마라케시의 앤디 워홀’이라고 일컫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수식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가? 글쎄,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이름표를 붙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수식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내가 해온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이 질문을 받았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BLM 운동을 보면서, 내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예술가가 서구의 기준에 의해 정의될 필요가 있는가? 비서구권 예술가가 서구권 예술가와 비교될 필요가 있는가? 나는 미술 사가 서양의 학문에 가깝기에 그곳의 역사에 적용될 뿐, 나를 포함한 다른 지역의 예술가에게는 관련이 없다고 느낀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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