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맛, 이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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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신영은 드라마 tvN <사랑의 불시착>으로 어느 날 갑자기 강렬하게 등장했다.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히는 tvN 드라마 <낮과 밤>에서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 특수팀으로 분할 준비도 갖췄다. 올해의 시작과 끝을 본인만의 색으로 꽉 채울 젊은 얼굴 이신영을 만났다.

재킷과 팬츠는 모두 발렌시아가, 이너로 입은 터틀 넥 니트 톱은 에르메네질도 제냐, 운동화는 나이키 제품.

웹드라마 <한입만>, <좀 예민해도 괜찮아 시즌 2>를 거쳐,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북한 병사 박광범 역으로 대중의 품에 느닷없이 안착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이신영을 궁금해할 때, 기분이 어땠나? 롤러코스터를 탈 때도 신남과 어지럼이 공존하지 않나?

이신영 <사랑의 불시착>이 끝나자마자 다음 날 바로 KBS2 드라마 <계약우정> 촬영에 들어갔다. 인기를 누릴 새 없이 정신없이 굴러갔다. 앞만 보면서 달리다 보니, 놓친 것이 많다. 특히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좀 섭섭하지 않았을까 싶어, 좀 미안하다.

친구들에게 무엇이 미안한가? 사인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바로 지방에 내려가서 촬영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아직도 내 직업을 연예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떨떨하고 어색하다.

시작부터 잭팟을 터트렸으니 그럴 만하다. <사랑의 불시착>은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를 도배했다. 글로벌 인기에 탑승한 소감은 어떤가? 그 소식도 최근에 들었다.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많다고.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작품이 사랑을 받은 거지, 내가 잘된 건 아니니까.

처음 인사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두어 번 한 걸 기억하나? 들뜨지 않도록 마인드컨트롤을 하려고 노력하는 걸까? 특별히 노력하는 건 아니다. 평소 부모님에게 그런 소신을 물려받은 것 같다(웃음).

당신과 인터뷰를 진행한 모 기자가 ‘이신영처럼 잘 큰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자랐다. 없는데 있는 척하지 말고,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말라는 말씀을 항상 해주셨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면 있는 그대로의 날 좋아해줄 거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신가? 내 아들을 믿지만 잘 해낼 수 있을까, 초조해하신다.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걱정하면서 작품을 서너 번씩 보신다. 시청자 입장에서 꼼꼼하게 모니터링해주시지만 잔소리처럼 들리진 않는다. 매번 전작보다 연기가 좋아졌다는 당근을 많이 주시는 편이다.

버건디 색상의 가죽 재킷, 셔츠, 팬츠는 모두 벨루티 제품.

<사랑의 불시착> 이후 KBS 드라마 4부작 <계약우정>에서 공중파 첫 주연 타이틀을 차지했다. 대왕 당근을 받아도 되는 사건이지. 자신의 이름이 맨 앞에 등장할 때의 기분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좋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주연은 작품의 기둥을 잡는 사람인데 내가 흔들리면 다 흔들리니까. 배워야 하는 입장에서 얻은 주연의 무게는 역시 무거웠지만,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전작부터 이어진 몸의 긴장도 고스란히 안고 갔다. 다행히 교복을 입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다 보니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지나간 학창 시절이 떠오르면서, ‘아, 나도 이때 이랬지’란 생각도 들고. 예쁘게 남은 작품이었다.

주목받는 배우 김소혜, 신승호와 더불어 유영은 감독의 섬세한 시각으로 해석된 작품은 푸릇푸릇한 청춘기로 완성됐다. 고향이 대구지만, 경상도 바다 마을이라는 설정의 사투리도 미묘하게 달랐을 것 같다. 연기를 시작할 땐 발성과 발음에서 ‘쪼’라고 불리는 불필요한 특징을 없애는 연습을 했을 텐데, 북한 병사에 이어 경상도 소년을 연달아 입히는 건 어렵지 않았나? 북한 억양을 쓰다가, 고향의 말을 하니까 아주 술술 나왔다! 대본이 표준어로 되어 있었고, 감독님과 작가님이 서울분이셨다. 입에 맞게 편하게 변환하라 하셔서 사투리로 교정하는 작업을 동향인 회사 부장님과 직접 했다. 이를테면 ‘다’로 끝나는 북한 병사의 억양이 입에 붙어 떨어지질 않길래, 일부러 경상도 사투리를 더 심하게 했다. 친구들의 도움도 컸다.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을 만큼 평범하다고 해서 별명이 ‘닌자’인 박찬홍 역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신영이 매점에 나타나면 홍해 가르듯 인파가 갈라지거나, 복도에 ‘신영 선배’ 떴다며 수군거리는 만화 같은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을까 짐짓 궁금했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이 감당되지 않는 그런 부류 있지 않나. 아쉽게도 남고라 그럴 일이 없었다. 매점에서 햄버거를 사면 10분 안에 해치워야 하는 생존 싸움을 할 뿐이었지. 게다가 주변 여고도 300m나 떨어져 있어서 서로 마주칠 일이 드물었다.

그럼 중학생 때는? 그때도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 다녔다. 전교 1등처럼 보이게 하는 뱅뱅이 안경 말이다. 그걸 쓰면 눈이 작아져서 잘생겼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전형적인 평범한 남자 학생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찬홍’스러웠다.

만화처럼 안경을 벗었더니, 샤리링 꽃미남이 되었다는 설정의 현실 버전이었나 보다. 고향에선 ‘그 애가 그 애야?’란 어리둥절만 남았겠다. 고등학생 때 렌즈를 끼기 시작했지만, 학교 다닐 땐 여전히 뱅뱅이 안경을 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웃음).

이신영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서 SNS를 들여다보았는데, 게시물의 간격이 뜸하더라. 그나마 SNS를 시작한 시기도 웹드라마 데뷔와 맞물린다. 디지털 문명에 특화된 1998년생 젠지 세대지만, 정작 본인은 그쪽 세상과 먼 것 같은데? 예전에 페이스북이 유행했을 때도, 한참 뒤에 들어가서 ‘눈팅’ 정도만 하는 정도였다. 온라인에 무언가를 남기는 것보다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게 더 좋았다. 원체 성향이 그렇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친구들도 디지털 문물에 밝은 애들이 아니다.

쉬는 시간, 빈둥거릴 땐 주로 무얼 하나? 일과 관련된 건 제외하고. 그 친구들과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을 하거나, 회사 부장님이 귀찮아할 만큼 만나자고 졸라서 카페에서 작품 이야기를 하고, 운동하는 정도. 그게 다다.

요즘은 게임을 할 시간이 없어서 아쉽겠다. 사람이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일지 모른다. 게임을 즐길 시간은 충분히 확보하고 산다(웃음).

가장 최근에 인상 깊었던 사건을 고른다면? 초록색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을 검색해보곤 한다. 세세하게 보진 않고, 내 이름이 나온 것만으로 만족하는 타입이다(웃음).

방금 스태프가 건네준 페트병은 무엇인가? 아, 얼굴 부기가 잘 빠진다고 추천받은 뒤로 물에 녹차와 레몬을 탄 마법의 물을 자주 마신다. 사진은 한 번 찍으면 평생 남으니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려고 한다.

소처럼 일하는 스케줄과 비례해 통장에 잔고가 쌓였겠다. 최근 경험한 가장 뿌듯했던 소비는 무엇인가?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바쁘게 일하긴 하지만 신인이라, 좋은 배우가 되는 길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하는 중이다. 이런 점에서 나와 회사의 방향이 같다. 아! 최근에 재방송료가 들어와서, 가족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했다. 아빠와 형, 내겐 디지털 워치를, 엄마께는 주얼리를 선물했다. 돈 아깝게 이런 것까지 챙기냐고 하셨지만, 기뻐하셔서 나 또한 뜻깊고 즐거웠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그런 행복을 맛보기 위함이지. 통장에 총알이 쌓이면 본인을 위해 지르고 싶은 것이 있나?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구하는 것이 목표다! 지방에서 올라온 촌놈의 로망이다. 이왕이면 반짝반짝한 한강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큰 창이 있었으면 좋겠다. 성공한 도시 남자처럼 말이다. 다음 목표는 차를 끌고 맥도날드 DT에 가서 빅맥 라지 세트를 사 먹는 거다! 어차피 운전이 서툴러 외관을 긁을 테니까 중고차로 시작하고 싶다. 집이 먼저니까 아마도 먼 훗날의 일이 될 것 같다(웃음).

하하. 성공한 도시 남자의 느낌이 물씬 난다! 한강을 바라보면서 한 손에는 와인과 대본을 들어야 그림이 살겠다. 이왕이 면 와인보다 위스키가 좋겠다(웃음). 그런데 한번 마셔보고는 안 할 것 같다.

슬릭한 검정 니트 톱은 우영미, 팬츠는 지방시, 운동화는 나이키, 줄넘기는 슈프림 제품.

이제까지 들었던 칭찬 중에, 기억 저편에 강하게 남는 것이 있다면? 특별히 미술을 배운 적은 없었는데, 일본으로 미술 유 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부모님께 전화하신 선생님이 계셨다. 드로잉 묘사를 잘하고, 생각과 표현이 창의적이라고. 근데 그게 초등학교 1학년 때다. 디테일에 집중하는 타입이라 드로잉은 정말 잘하는데 색칠하면 망치곤 해서 미술이 내 길이 아니란 걸 일찍 깨우쳤다(웃음).

학창 시절 모델을 꿈꾸다 배우를 도전하게 된 계기로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밝힌 적 있다. 뱅뱅이 안경을 낀 평범남이 어떻게 모델의 세계에 입문할 생각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옷을 워낙 좋아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엄마가 사준 옷을 입지 않고, 엄마와 함께 옷 가게에 가서 직접 골라야 직성이 풀렸다. 때가 잘 타는 새 하얀 퍼가 붙은 패딩을 입고 싶어 한 일곱살 시절이 떠오를 정 도다. 엄마 말씀으로는 고집불통이라 키우기 힘들었다고 하는 데, 난 내 취향에 맞는 예쁜 옷이 마냥 좋았다.

모델에서 배우로 방향을 틀게 된 과정은 순조로웠나? 중학교 3학년 때 키가 180cm였다. 좋아하는 옷을 마음껏 입는 피팅 모델이 하고 싶어서 모델 에이전시를 찾아가 워킹을 죽기 살기로 배웠는데, 키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작은 키로 모델이 되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감정 표현이 중요할 것 같아 연기를 배우게 됐고 그러다 웹드라마까지 이어졌다. 모델을 할 땐, 한 번도 긴장해본 적이 없었는데 연기를 하자 긴장이 훅 올라왔다. 그 점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내가 해석한 캐릭터를 표현했을 때,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 스스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자 점점 더 흥미가 생겼다. 하나씩 깨우치는 과정이 너무나 재미있다.

배우로서 이신영이 가진 무기를 고른다면, 무엇을 들이밀겠나? 근자감! 난 잘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말로 드러낼 수 없을 만큼 목표를 크게 설정하면, 설령 그 목표가 깨진다 한들 깨진 조각조차 크지 않을까? 작은 조각도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 믿는다.

요즘 남궁민, 설현과 함께 새로운 드라마 <낮과 밤> 촬영 중이라고 들었다.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살포시 흘려주면 좋겠다. 경찰 특수팀의 일원으로 남궁민 선배님과 함께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간다. 김정현 감독님 말씀처럼 매력적인 친구 가 되길 나도 기대하는 중이다. 11월 즈음 방송을 탈 것 같다. 굉장히 빈틈없이 사는 요즘, 너무나 행복하다. 지금처럼 호기심 있게 사는 사람. 누군가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으로 열심히 살 테니까,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최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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