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우리의 사적인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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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예술 거장 19인과의 대화, 윤혜정의 인터뷰집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이 출간됐다.

20년간 패션 매거진 <보그>, <하퍼스 바자>에서 에디터를 거쳐 현재 국제갤러리 이사로 재직 중인 윤혜정의 인터뷰집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을유문화사)이 세상에 나왔다. 프랭크 게리, 류이치 사카모토, 아니 에르노, 틸다 스윈턴 등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예술 거장 19인의 삶과 철학을 자신만의 언어로 섬세하게 담아낸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번번이 찾아오는 번민과 갈증을 해소해주는 대상은 그녀가 인터뷰로 만난 ‘예술가들’이었다. 윤혜정에게 예술가들은 “가끔은 뼈아프고, 가끔은 환희에 가까우며, 대부분은 놀라운 각성의 순간을 선사한” 이들이자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고, 누구도 일러주지 않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이다. 윤혜정은 책에서 그녀의 삶에 문을 두드렸던 ‘사적인’ 예술가들을 소환한다. 태생적으로 주관적 해석이 따를 수밖에 없는 예술을 단지 작품으로 납작하게 박제시키지 않고, 생명력을 더해 이를 곱씹고 기억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이 지시하듯 이곳에 소개된 예술가은 그녀의, 우리 모두의 사적인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책에선 그야말로 우리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술가가 대거 등장한다. 삶과 존재를 끝없이 질문하는 개념미술가 김수자는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답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통시적 질문자로 남고 싶습니다.” 40여 년 동안 독일 브라운사에 몸담으며 20세기 ‘굿 디자인’의 원형을 만든 거장 디터 람스는 과연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말한다. “훌륭한 디자인은 훌륭한 영국 집사와 같아요. 필요할 때에는 조용하고 효과적으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눈에 띄지 않게 모습을 감춘다는 점에서요. 어디서든 편안한 집처럼 느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좋은 디자인입니다.” 이 밖에 “산다는 건 온통 의문이자 미스터리인데, 사랑하는 것은 그런 현재를 가장 격렬하게 사는 방법이겠죠”라고 전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대답에선 그녀가 왜 그토록 사랑의 순간을 포착한 소설을 우리에게 펼쳐 보여왔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실한 관찰자로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에 가 닿고자 했던 그녀의 여정이 총 532장에 단단히 실렸다. 매끄럽게 매만진 문장들은 술술 읽히는 리듬을 만들지만, 그 안에 담긴 빛나는 통찰과 뜨거운 메시지 덕인지 왠지 자꾸만 속도를 늦추어 아끼며 읽고 싶단 생각이 든다. 국내에서 보기 어려웠던 작품 및 인물 사진 100여 점은 책을 읽는 중간중간 즐거운 쉼표로 다가온다. 창조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현대 거장들의 웅숭깊은 내면세계와 특유의 통찰력이 빛나는 언어가 한데 만난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은 우리를 예술의 길로 안내해줄 상냥한 길라잡이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장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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