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인터뷰 4 도쿠진 요시오카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화상 인터뷰 4 도쿠진 요시오카

2020-08-28T23:04:35+00:002020.08.27|FEATURE, 피플|
감각의 제국

만나지 않고도 만날 길이,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소통할 길이 있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저명한 아티스트에게 만남을 청해온 <더블유>는 이제 그들을 온라인으로 불러들였다. 직접 대면해 화보를 촬영하고 인터뷰하던 물리적 제약과 강박에서 벗어나, 화상에서의 만남을 지면에 고스란히 살려낸 인터뷰 기획은 지면 매체가 감히 시도하지 못한 인터뷰 퍼포먼스다. <더블유>의 실험이자 색다른 기획에 LA, 파리, 암스테르담, 도쿄에 있는 다섯 명의 해외 아티스트가 응했다.

오랫동안 물질을 이용해 비물질적인 황홀함을 연출해온 이름, 도쿠진 요시오카(Tokujin Yoshioka). 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최근 시기를 통과하며 그는 ‘디자인’의 보다 근본적인 역할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디자인과 아트의 경계’ 운운하는 해묵은 주제의 담론에서, 논란의 여지 없이 깔끔한 답안을 하나 꼽자면 도쿠진 요시오카를 말하겠다. 그는 눈에 보이는 훌륭한 조형미를 기본으로 갖추면서 직관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고요한 진폭을 일으키는 무언가를 창조한다. ‘레인보우 처치(Rainbow Church)’라는 대표 설치작에서 빛과 성스러움과 관객만 남겨진 듯한 세상을 연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그렇게 장소를 옮겨다니며 빛의 연금술을 부리고 사라진다. 가는 곳마다 마술을 부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떠나는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이 일본의 젠 스타일을 입고, 모던한 감각을 탑재한다면 도쿠진 요시오카가 될 것이다. 그는 커리어 초기에 이세이 미야케 스튜디오에서 공간 디자인을 담당하고, 20세기 일본 산업 디자인을 대표하는 가구 디자이너 시로 쿠라마타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패션과 리빙 오브제라는 물질에 둘러싸여 디자인한 경험은 비물질적이고 환상적인 미술을 추구하는 그에게 현실 감각을 심어줬을 듯하다. 그가 도쿄 올림픽 성화를 디자인한 것을 핑계 삼아 도쿄에 있는 스튜디오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가 연기된 나라의 대표 미술가가 올림픽을 입에 올리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그 주제에 관한 대화는 피하자고 정중히 부탁했고, 성화가 아니어도 나눌 이야기는 충분히 많았다.

도쿠진 요시오카.

안녕하세요, 한국의 <더블유> 매거진입니다. 화상 연결 상태가 원활하지 않아서 뭔가 잘못된 건가 싶어 좀 전에 전화를 드렸어요. 제 목소리 잘 들리나요?

Tokujin Yoshioka 네, 괜찮습니다. 안녕하세요, 도쿠진 요시오카입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아서 마음이 급해요(웃음). 바로 질문 들어가도 될까요? 최근 도쿄의 복합쇼핑몰 긴자 식스에 대규모 설치 작업을 하셨죠. ‘프리즈매틱 클라우드 (Prismatic Cloud)’라는 그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어요? 긴자 식스에 400제곱미터 정도의 아주 넓은 공간이 있어요. 거기서 매년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이 설치되거나 전시가 열립니다. 구사마 야오이나 다니엘 뷔랑 같은 작가들의 전시가 열렸죠. 2020년에는 제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작품명은 ‘프리즘으로 만든 구름’ 정도의 뜻이겠네요. 상업 시설 내부에 구름이 떠 있는 형상이에요. 최종적으로 ‘프리즘 로드(Prism Rod)’라는 투명한 플라스틱 수지를 서로 교차시켜서 만들었어요. 1만 개 정도의 막대를 겹치고 쌓고 교차해서 공중에 띄운 거죠. 작품의 전체 길이가 10미터인데, 무엇보다 그 규모의 작품을 공중에 띄우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저도 지금 그 공간 사진을 보고 있어요. 작품을 천장에 매다는 설치 작업이네요. 하기야 구름은 하늘에 떠 있어야죠. 언뜻 보면 수많은 막대를 대충 겹쳐놓은 것 같겠지만, 다이내믹한 조경을 자아내기 위해 100가지 정도의 프로그래밍으로 시뮬레이션을 거친 결과입니다. 긴자 식스가 상업 공간이기 때문에 그런 성격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웅장한 자연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었어요. 빛을 집적해서, 거대한 빛의 구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작업입니다.

가늘고 긴 막대들이 얼음이나 눈의 결정 같기도 해요. 하기야 당신은 투명 빨대를 이용해 토네이도를 만들고, 깃털로 휘날리는 눈송이를, 합성 수지로 얼음덩어리를 형상화한 적이 있잖아요. 어릴 적 자연에서 보낸 기억 중 여전히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나요? 특별하게 기억하는 원풍경은 없지만… 숲속을 걷다가 고개를 들면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비쳐드는 게 보이는 순간이 있죠. 뭐랄까, 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이로움 같은 것에 굉장한 매력을 느껴요. 자연에 관해서라면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듯한 에너지를 느낀 순간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유년 시절을 도시와 시골 중 어디에서 보내셨어요? 시골에서 보냈어요.

역시 어릴 적 환경의 작용이 있었겠네요. 어떤 풍경이었는지 조금 묘사해줄 수 있을까요? 도쿠진 요시오카의 작업에서 ‘자연’은 핵심 키워드잖아요. 하하, 시골이라고 해서 막 산속 깊은 곳은 아니었고요. 주변에 강이 있었어요. 뭐랄까,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잘 펼쳐진 환경이었습니다. ‘어떤 경험을 했기 때문에 특정 작품이 나왔다’고 말하긴 어렵 지만, 지금까지 다양하게 체험한 자연적 요소가 제 작품에 투영됐을 겁니다. 예를 들면 어릴 때 수해를 경험한 적도 있거든요. 당시에는 무서운 순간이었지만 여러 기억과 감정이 섞이면서 작품에 녹아들 수 있겠죠.

어떤 예술 작품을 보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거나 울컥한 적 있으세요? 언젠가 애니시 커푸어에 대해 언급하신 기억이 납니다. 음, 눈물을 흘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웃음) 예술을 볼 때 스케일의 크기가 얼마만큼인지를 느끼려고 하는 면은 있어요. 작품 자체의 크기 말고요, 작품이 자아내는 스케일의 크기.

현대미술 중에서도 설치 작업이란 공간의 제약과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특히 당신처럼 빈 공간에서 뭔가를 형상화하는 식의 설치는 일시적인 건축 디자인 작업과 닮았어요. 작업 과정 중 어떤 부분에서 가장 성취감을 느끼세요? 다양한 자연 속에서도 자연의 구조나 원리에서 힌트를 얻어 작업한 적이 많아요. 어떤 공간을 표현하고 싶다는 그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형상화하죠. 그게 실현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과연 실현될 것인지 등등을 생각 해야 하고요. 시작 단계에서 제안에서도 ‘이게 정말 가능 할까’ 싶을 때가 있는데, 차츰 실현해갈 때 가장 떨립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작품 제작에 리스크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게 재미있어요.

작가 자신도 ‘이게 가능할까’ 싶은 일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일손이 필요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핵심은 뭘까요? 매번 작업할 때 우선 생각하는 점은 제가 경험했거나 추구하는 이미지와 ‘감각’의 문제예요. 저는 구체적인 조형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이런 걸 체험하고 싶다, 사람들이 느끼게 하고 싶다’는 마음의 떨림을 이미지화합니다. 생각을 구체화하는 부분이 아주 중요한 과정인데, 여러 아이디어를 통해 실현할 방법을 찾아가요. 그 과정은 아주 작고 세세한 부분부터 시작돼요. 예를 들어 이번 긴자 식스의 ‘프리즈매틱 클라우드’의 경우도 작은 부분과 부분이 모여 거대한 조형 구조를 만드는 일이니 수학적 계산, 건축적 장치 등을 하나씩 이해하고 해결해야 했어요.

도쿠진 요시오카의 역작은 ‘레인보우 처치(Rainbow Church)’일 겁니다. 2010년 서울의 비욘드 뮤지엄에서 열린 당신의 유일한 한국 개인전 <스펙트럼> 때도 막 완성된 그 작품을 선보였죠. 높이 9미터, 500개의 크리스털 프리즘을 통해 압도적이고 찬란한 빛이 투과되는 작품이에요. 그 ‘빛’에 담아내려고 한 마음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빛을 소재로 한 작업을 많이 했어요. 빛은 물질적이라기보다 추상적이고, 인간의 감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빛을 어떻게 표현할지, 빛을 이용해 지금까지 없었던 창작물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늘 생각해요. 요즘 같은 세계 정세라면 빛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집에도 빛의 설계를 이용한 공간이 있나요? 하하, 전혀 없어요. ‘레인보우 처치’를 작업할 때는 그 공간에서 살긴 했지요(웃음).

작업하면서 당신을 가장 놀라게 한 소재가 있나요? 혹은 애초 생각보다 가능성이 더 커 보여서 오래 탐구한 소재가 있다거나. 아, 유리가 그래요. 저는 유리를 자주 사용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빛’을 얻기 위해 유리를 쓰는 거죠. 보다 투명한 것, 보다 빛을 잘 뿜어낼 수 있는 소재를 좋아하거든요.

‘글라스 티 하우스(Glass Tea HouseKOUAN)’ 이야길 안 할 수가 없네요. 예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작년에는 도쿄에 있는 국립아트센터에도 설치했죠? 직접 보고 싶은데 과연 언제쯤 일본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네요, 국립아트센터에 설치한 ‘글라스 티 하우스’는 내년까지 계속 전시될 예정이긴 합니다만….

유리로 만든 찻집 건축물입니다. 일본식 찻집이나 다실을 종종 봤지만 유리로 된 다실은 처음 봤어요. ‘글라스 티 하우스’ 역시 빛을 통해 일본 전통 다실을 표현해본 작업입니다. 다실 전체를 유리로 만들었어요. 빛의 공간 안에서 건축한다는 이미지로 설계했고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일본의 전통 다실에는 보통 다다미나 꽃꽂이 같은 요소가 있어요. 그런데 ‘글라스 티 하우스’에서는 그런 요소를 전부 빛으로 대체했습니다. 실제 꽃장식(Ikebana)은 없지만 다실 윗부분에 있는 큰 프리즘으로 햇빛이 투과되면서 꽃 모양의 빛이 표현되는 식이에요.

와, 빛으로 꽃도 만들 수 있나요? 금속과 가죽으로도 꽃을 형상화한 적이 있으시죠. 당신이 디자인한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중 대표작이 ‘블러썸 스툴’이에요.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 패턴을 디자인에 접목했어요. 모노그램을 꽃 형태로 바꿔서, 꽃봉오리에서 꽃이 피어나는 순간을 구조적으로 표현했지요.

‘블러썸 스툴(Blossom Stool)’은 제가 지난해 직접 본 모든 의자 중 가장 비싼 작품이에요(웃음). 그 의자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시간을 초월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작업할 때 ‘유행’을 별로 고려하지 않아요. 물론 ‘시간’은 늘 언제나 의식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항상 통용될 수 있는, 그 가치가 변함없는 작품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루이 비통 같은 곳과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그들의 역사예요. 루이 비통의 역사와 제가 추구하는 미래 사이에 대조되는 면 같은 걸 의식하다 보면 뭔가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2019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선보인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전시 전경. ‘블러썸 스툴’이 보인다.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의 ‘역사’, ‘시간’, ‘유행’. 시간의 개념에 관한 서로 다른 단위가 한 번에 같이 언급되는 게 흥미롭네요. 보편성이 있는 디자인을 위해서 역으로 트렌드를 인지할 필요는 없나요? 알아야 피해 갈 수 있잖아요. 저는 트렌드보다 시대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간이 느끼고 사고하는 것은 그 시대의 자장 안에서죠. 지금 시대를 느끼는 것으로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창조해갈 수도 있을 거예요.

지금 시대의 중요한 특징은 ‘기술’과 ‘변화’ 아닐까요? 요즘 처럼 기술 발전이 빠르고 변화가 잦은 걸 반기는 편이세요? 역사 속에서 봤을 때, 보편적인 것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수작업이 지닌 가치 같은 것. 손으로 뭔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일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더욱 가치를 가지게 될 것 같아요. 저는 다양한 기술이 발전한 시대 자체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다만 기술과 다른 무엇이 만나 지금까지와는 180도 다른 혁신적인 제조, 생산 과정, 공예 등등이 탄생하는 일에는 끌려요. 지금까지 있던 것의 연장선에 있지 않은, 아주 새로운 또 다른 것 말이에요.

공예라고 하면 여전히 수작업과 장인 정신이 떠올라요. 작업의 형태만 놓고 보면 당신이 대규모 설치 작업을 할 때는 우선 전체적인 디자인과 구조가 중요하겠지만, 오브제 노마드처럼 장인 정신이 필요한 작업을 할 때는 오브제 하나하나의 형태를 우수하게 구현하는 데 집중하겠죠. 브랜드와 함께하는 모든 프로젝트에서는 상대의 철학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 철학을 이해한 후 나라면 그 속에서 뭘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생각해요. 루이 비통의 경우 저에게 특별히 뭘 주문하는 것 없이 ‘카르트 블랑슈’라고 지칭하는 전권을 주었어요. 그래서 자유롭게 디자인하죠. 제 나름의 필터를 통해 우리 사이의 공통적인 정신과 새로운 것을 찾아, 거기서 더 공예적으로 확장해가는 식으로요.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분야가 멈추거나 계획을 변동해야 했습니다. 이런 시기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다양한 부분이 리셋되는 시기 아닐까요? 그간 당연하다고 여기고 누려온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주는 것 같아요. 구매 방식이 크게 바뀌어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기도 하고 오히려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한 가지, 제가 흥미롭게 본 뉴스가 있어요.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는 락다운 시기가 지속된 결과 어느 지역에서 야생동물이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어요.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현상이에요.

많은 분야에 걸쳐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도쿠진 요시오카 스튜디오의 미래에도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겠죠? 글쎄요(웃음). 앞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일은 여러 팀과 팀 단위로 일하는 게 특징인데,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고 온라인상으로만 소통하면서 작품을 만들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반면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과 보다 간단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세계가 확장되는 계기가 될 터라 재미있어요. 지금 우리가 온라인으로 만나고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런 시대에는 과연 무엇이 필요하고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역으로 만들면 안 되는 건 뭔지를 계속 생각해보게 될 듯합니다.

디자인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이 세상에 안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역할은 뭘까요? 자주 느끼는 게 있는데요. 훌륭한 디자인이란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욱 ‘디자인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디자인이 어떻게 하면 인간을 위해 존재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너무나 많은 물건이 있지 않나요? 이미 충분한데 또 무엇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까, 그게 인간에게 과연 옳은가 싶은 거죠. 뭘 만든다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공감합니다. 세상에 이미 충분한 사물이 존재하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무언가를 창출하는 일이 따르는데, 창출할 대상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어느 순간 죄책감이 들기도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물건을 소유해서 행복해지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창출된 새로운 무언가를 보면서 우리가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 새로이 창조된 무언가가 우리에게 어떤 시간을 안겨줄 수 있는가를 질문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형태가 없는 디자인’도 충분히 존재할 만 하다고 판단합니다. 디자인인데 형태가 없다는 게 과연 무엇일지는 여러 부분에서 모색할 수 있다고 봐요. 이런 생각을 요즘 자주 합니다.

멋지네요. ‘구체적인 형태의 디자인이 아니라 형태 없는 디자인’은 도쿠진 요시오카가 추구하는 정신적이고 감각적인 것, 체험으로서의 미술 감상과도 통합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많이 해주나요? 중요한 건 ‘무엇’을 만들어내느냐거든요. 의미 있는 그 무엇요. 그걸 항상 고찰해야 합니다. 디자이너여서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그 결과와 답을 찾는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겁니다. 프로젝트를 한다면, 어떤 의뢰가 들어오고 나서야 생각하는 게 아니고 자신이 늘 고찰해두고 있던 바가 비로소 자연스럽게 프로젝트화되어야 하는 거죠.

그 특별한 ‘무엇’을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디자이너의 과제겠지요.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생각이 바뀌는 부분은 없나요? ‘생각이 바뀐 것 같지만 사실은 바뀌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축은 바뀌지 않지요. 일단 저는 창조 과정에서 제가 두근거리고 신나는 느낌이 들어야 해요. 그 과정을 즐깁니다. 그리고 이만큼 경력을 쌓았는데도 ‘과연 이게 실현 가능할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도전하는 일이 필요한가 싶기도 한데, 도전 정신은 여전히 필요하겠죠. 커리어가 길어질수록 경험치가 높아지고 지식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어떤 가능성이 줄어드는 점도 있을 지 모르겠네요.

뭣 모르고 덤빌 때 일이 성사되는 경우도 있는데, 아는 게 많으면 시도 자체를 접는 일도 많아진다는 말씀이죠(웃음). ‘타협’과 ‘고집’ 중 도쿠진 요시오카에게 더 어울리는 말은 뭐예요? ‘고집’일 겁니다. 그게 제 직업이 됐죠(웃음).

가까운 미래에 발표할 작업이 있나요? 지하철 긴자역에서 공공미술 설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이미 만들어둔 상태고 발표만 남았는데, 10월쯤 공개돼요. 2년 동안 만들었어요.

어디선가 잡음이 섞여 들어오네요. 음성이 끊기기 시작했어요. 혹시 지금 직원이 인터뷰 빨리 끝내라고 방해 전파를 쏘는 걸까요? 하하하,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뜬금없지만 도쿠진 요시오카 스튜디오는 야근을 얼마나 하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한국의 잡지사는 야근도 잦고 업무 강도가 센데 그곳은 어떤 분위기인가요? 디자인과 건축 일은 일반 사무직과 분위기가 다르긴 하죠…. 요즘은 또 다른 느낌인데, 아무래도 스튜디오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긴 합니다. 이 시기를 통과하는 전 세계 많은 곳들이 그럴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부탁합니다. 요즘과 같은 어려운 상황은 한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 규모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때일수록 세계가 하나 되어서 헤쳐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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