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인터뷰 3 킴 고든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화상 인터뷰 3 킴 고든

2020-08-28T22:58:24+00:002020.08.26|FEATURE, 피플|
반항의 이유

만나지 않고도 만날 길이,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소통할 길이 있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저명한 아티스트에게 만남을 청해온 <더블유>는 이제 그들을 온라인으로 불러들였다. 직접 대면해 화보를 촬영하고 인터뷰하던 물리적 제약과 강박에서 벗어나, 화상에서의 만남을 지면에 고스란히 살려낸 인터뷰 기획은 지면 매체가 감히 시도하지 못한 인터뷰 퍼포먼스다. <더블유>의 실험이자 색다른 기획에 LA, 파리, 암스테르담, 도쿄에 있는 다섯 명의 해외 아티스트가 응했다.

젊음, 저항, 비관습은 마치 예술가 킴 고든( Kim Gordon)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처럼 다가온다. 전설적 록 밴드 소닉 유스의 멤버, 앤디 워홀 뮤지엄과 아일랜드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치른 미술가, 패션 브랜 드‘엑스걸’의 디자이너, 구스 반 산트의 영화 <라스트 데이즈> 속 배우, 자서전 <걸 인 어 밴드>를 쓴 작가.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설명하는 수사다. 올해 9월 개막하는 ‘ 2020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하는 킴 고든을 화상으로 만났다.

킴 고든을 지시하는 숱한 표현 가운데 그녀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어 나타냈다고 여겨지는 문장이 있다. ‘시대는 바뀌고 있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킴 고든은 1981년 결성한 얼터너티브 록 밴드 ‘소닉 유스’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당대 소닉 유스가 들려준 음악은 펑크나 메탈 등으로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노이즈 테러’에 가까운 음악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당시 이들이 ‘기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한 실험적 음악은 이후 1990년대 그런지 록 무브먼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밴드가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이후 킴 고든은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에 머물지 않고 미술가, 배우, 에세이스트, 디자이너로 변신하며 전방위로 활동 범위를 넓혀간다. 특히 그녀는 미술이란 테두리 안에서 독창적 작품을 선보였는데 회화, 조각, 비디오, 퍼포먼스 등 장르의 변화와 확장을 실험하며 각 매체가 가진 위계질서를 해체하는 것은 그녀의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일례로 캔버스를 구기거나 뒤집고 내던지는 행위 자체를 회화로 인식하거나, 소셜미디어의 게시물을 캔버스로 옮겨 작품화하는 식으로. 올해 9월 부산에서 개막하는 ‘2020 부산비엔날레’의 참여 작가진에도 이름을 올린 그녀는 총 7분 길이의 영상과 음악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2020 부산비엔날레는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작품 ‘전람회의 그림’(1874)의 접근법을 빌려 기획됐다.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도시 ‘부산’을 주제로 완성된 소설 10편, 시 5편이 참여 작가들에게 전달되었고, 작가들은 이에 응답해 문학을 시각예술 혹은 음악으로 번역한 작품을 선보인다. 킴 고든은 소설가 이상우의 단편 소설 ‘배와 버스가 지나가고’를 실마리로 부산과 LA를 파편적으로 나란히 보여주는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올해로 킴 고든의 나이 68세. 동시대는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한 세상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주 손쉽게 스스로를 포장하고 전시하며,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쿨’함은 아주 간편하게 민주화되었다. 하지만 킴 고든은 시대가 어떠했든 그러한 ‘가짜’ 쿨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항상 ‘리얼’로서 존재해온 인물이다. ‘보헤미안 트리 하우스’라는 우스갯소리로 본인의 LA 집을 소개하는 킴 고든은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저 ‘훼방 놓고 망치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서울은 연이은 장마로 오늘도 비가 내리는데, 그곳의 날씨는 아주 화창해 보이네요.

Kim Gordon 맞아요. 아주 전형적인 LA 날씨의 하루예요. 화씨 77도에 태양이 밝게 비추는 날이랄까요? 서울과 달리 여긴 그간 날씨가 아주 좋았어요. 지난주엔 고온 경보가 뜨기도 했고요.

이곳은 오전 7시예요. 당신과의 인터뷰 덕분에 아주 이른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안 그래도 막 일어나 침대에서 나온 것처럼 상기돼 보인다고 생각했어요(웃음).

하하. 지금 LA는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는 시즌을 통과하고 있다고도 들었어요. 맞아요. 곳곳에서 큰 산불이 발생했는데 상황이 꽤 심각해요. 며칠 전 사막에 다녀왔는데 돌아 오는 길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봤어요. 그게 그렇게 큰불로 번질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요. 사람들은 이맘때 부는 산타 아나(Santa Ana) 강풍 때문에 산불이 잦다고 추정해요. 그런데 사실 전 이 바람을 꽤 좋아해요. 사람을 홀린다고 하나요, 제겐 마법처럼 느껴지는 바람이에요.

오늘 입은 의상이 아주 멋져요. 요가 팬츠에 슬리퍼 차림인데, 약간 모드(Mod) 느낌이 나지 않나요?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초기부터 즐겨 입는 패션이에요. 그리고 목에 두른 바이커 스카프는 올리면 마스크로 변하죠.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으로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지난 6개월간 딸을 만나지 못했는데, 드디어 오늘 뉴욕에서 이곳으로 도착했어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딸과 함께 오래된 파머스 마켓 에 들러 잠깐 허기를 채웠죠. 격리 기간이 길어지니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기도 해요. 며칠 전 사막에 다녀온 것도 그래서죠. 그래도 저는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집이 있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으로선 수입이 없는 상태지만요. 간헐적으로 일이 있지만, 말하자면 실직 상태죠. 투어도 전부 취소됐어요.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몇 달을 불안해하다가 세 번 정도 연주를 했어요. 집에도 음악 장비가 있지만 이상하게 여기선 연주를 하지 않게 돼요. 왜 건드리지 않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 세계인 모두가 예외 없이 팬데믹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죠. 당신은 이 상황이 우리에게 가져올 변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경제 상황이 엄청나게 후퇴하겠죠. 얼마나 나빠질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요. 글쎄요, 다들 트럼프가 언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지 기다리고 있지 않나요?(웃음) 지금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 단계인 ‘연옥’과도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경제 구조가 재구성되는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봐요. 다음 대통령으로 조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대공황 시기에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을 펼친 것처럼 인프라스트럭처 사업으로 고용을 창출할 거라고 생각해요. 조 바이든이 지금 이 순간이 자기 한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리길 바랄 뿐이에요. 물론 그가 내세우는 정책도 엄청나게 뛰어나진 않지만요( 웃음). 그저 지금과 같은 격동의 시기가 경제적으로는 아주 긍정적인 어떤 변화를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올해 11월에 치러질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아주 흥미롭게 다가와요. 우리에게 힙합 뮤지션으로 너무나 익숙 한 카니예 웨스트도 대선에 출마하며 나섰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카니예를 나르시시스트라고 보는 입장이에요. 그의 출마를 진지하게 바라볼 수 없는 게, 일단 그가 트럼프 지지자이기 때문이에요. 트럼프 역시 나르시시스트고요. 이런 것 아닐까요? ‘안녕. 난 나르시시스트야. 너도 나르시시스트구나. 우리 친구 할까?’(웃음)

최근 당신은 인스타그램 프로필에서 하나의 홈페이지를 소개했어요. 바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의 공식 홈페이지였죠. 그를 향한 지지를 통해 당신이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좀 주저하기도 했어요. 유명인이 뭔가를 지지하며 나설 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일이 허다하니까요. 물론 수전 서랜든처럼 오랫동안 정치적 의사를 밝혀온 사람도 있지만요. 버니 샌더스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기득권 층에서도 항상 ‘버니 브로스’(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젊은 남성 유권자층)를 들먹였기 때문이에요. 그게 정말 불편했어요. 다른 후보들은 꽤나 공격적이고 비겁했다고 생각해요. 버니 샌더스도 좀 더 못되게 굴었어야 하는데(웃음). 어쨌든 제가 한 일은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버니 샌더스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것뿐이에요.

당신이 여성이었단 사실이 굉장히 중요했군요. 개인적으로 당신은 아주 일찍이 페미니스트의 길을 걷지 않았나 생각해요. 과거 당신이 소닉 유스로 활동하던 시절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면, 당신에게는 당대 ‘라이엇 걸’과는 다른 종류의 차가움이 있었음을 감지하게 돼요. 여성의 힘에 대해 꾸준히 힘주어 말해온 이유가 있나요? 사실 페미니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어요. 그저 관습적인 게 싫었을 뿐이에요. 제 타고난 천성 탓에 끊임없이 남성적 권위에 의문을 던지고, 뭐가 됐든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은 의심부터 하고 보거든요. 소위 기업 중심주의, 기업화된 록 음악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저 제가 할 일이라 여겨 한 것이 페미니즘으로 읽힌 것 같아요. 훼방 놓고 망치려고 했던 것들 말이에요(웃음). 19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시위에 나가는 게 익숙했어요. 히피가 되기엔 너무 어렸지만요. 또 제 시절엔 록 콘서트에 가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었어요. 록은 반항하는 것, 용감하게 자유를 표출하는 걸 다뤘죠. 이런 것들은 지금의 제게 분명히 큰 영향을 끼쳤다 고 생각해요.

다양한 자세로 수음하는 여성을 형상화한 조각 연작 ‘The Bonfire’. THE BONFIRE 11, 2018, GLAZED CERAMIC, 6 X 12 X 5 1/2 INCHES, KG 406.

여태 여성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미술 작업을 펼쳐오기도 했잖아요. 다양한 자세로 수음하는 여성을 형상화한 조각 연작 ‘The Bonfire’가 대표적이죠. 해당 연작에서 가장 눈 에 띄었던 건 여성 조각이 높다란 칵테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맥락이었어요. 여성이 항상 수동적으로만 재현된 예술의 역사를 꼬집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칵테일 테이블로 형상화한 구조물을 작품을 놓는 좌대로 사용했는 데, 흥미롭게도 이런 좌대 위에 놓인 조각 작품은 주변 환 경과 완전히 분리되어 보였죠. 동시에 이런 식의 배치는 여 성의 형상이 광고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쓰이는 방식이기 도 해요. 말하자면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에게 공격적인 태 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맞서는 거라고 할 수 있 어요. ‘여기 어쩌면 칵테일 테이블일지 모르는 좌대 위에 발가벗은 여인들이 누워 있고, 당신은 아마 칵테일을 마시 거나 수다를 떨고 있을 수도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던지 는…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코로나19를 경유해 미국 대선, 페미니즘까지 순식간에 이야기 나누게 됐네요(웃음). 사실 코로나19로 인해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탄탄하지 못한 젊은 예술가들이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해요. 동시대 풀 죽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뉴욕과 LA의 아트 신은 상당히 상업적이에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작품을 구매하려는 돈이 미술계에 돌지 않아서 어떤 면에서는 자유로워진 것 같기도 해요. 클라이언트에게 팔리는 작품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작품을 위한 작품을 할 기회가 생긴 셈이니까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이거예 요. 이번 일을 기회 삼아서 ‘이런 건 또 못해볼 게 뭐야?’ 혹은 ‘더 잃을 게 뭐가 있어’라는 태도로 임해보라는 것.

올해 9월 개막하는 ‘2020 부산비엔날레’ 포스터. 킴 고든도 참여 작가진에 이름을 올렸다.

다가올 9월 개막하는 ‘2020 부산비엔날레’에 당신이 참여한다고 들었어요. 이번 비엔날레는 야콥 파브리시우스 예술감독의 총지휘 아래 이뤄지죠. 개인적으로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기획자예요. 이번 비엔날레에 어떻게 참여하 게 됐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요. 야콥 파브리시우스가 스위스 말뫼 미술관에서 예술 감독으로 일하던 때 <Sensational Fix>라는 전시가 유럽 순회 중이었어요. 제 가 몸담은 밴드 소닉 유스에 영향을 줬거나 함께 작업한 아 티스트들을 소개하고, 개별 멤버의 작업과 포스터를 보여 주는 전시였어요. 전시에 소개된 아티스트들을 통해서 1980년대의 역사를 짚는 전시였는데, 전시 도록이 정말 끝내줬어요. 소닉 유스를 다룬 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책이 라고 할 수 있어요. 네덜란드 큐레이터 롤란트 흐루넨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 전시가 스웨던 말뫼까지 순회했 고, 거기서 야콥 파브리시우스를 처음 만났어요. 그때의 인 연으로 이번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됐죠.

이번 전시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궁금해요. 부산비엔 날레 측에 문의했는데 철저히 비밀에 부치더라고요. 그쪽 도 제가 무엇을 선보일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에요(웃음). 영상을 하나 만들었고, 곡도 하나 작업했어요. 자연계의 음 을 합성해서 만든 구체 음악(Concrete Music) 스타일인 데, 영상에서 일종의 사운드트랙처럼 활용할 예정이에요. 총 7분 길이의 영상인데, 아이폰으로 제가 직접 촬영한 것 과 인터넷에 ‘부산’을 검색해서 관광객들이 촬영한 장면을 섞어보는 시도를 했죠.

당신의 작품은 소설가 이상우의 단편 소설 ‘배와 버스가 지나가고’와 함께 전시된다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당신과 이상우의 만남이 무척 기대돼요. 이상우는 소설이란 장르 안에서 파격적인 실험을 이어가고, 소설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작품에 등장하는 ‘내장사실주의’를 패러디해 ‘후장사실 주의’란 동인지를 결성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여왔거든요. 오, 이상우 작가가 볼라뇨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모든 걸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네요….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은 여러 편의 소설 중 하나를 골라 그에 응답해야 했는데, 이상우의 소설은 유독 그 안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소설이 보여주는 ‘정신’이 정말 좋았어요. ‘배와 버스가 지나가고’는 제게 공상과학 소설처럼 느껴져요. 소설에선 티엔과 하라라는 두 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두 서사가 혼재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어 서 마지막까지 어떤 서사가 어떤 인물을 담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요. 심지어 난데없이 미래에서 온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당신의 또 다른 작업도 이야기해볼까요? 최근 당신의 작업을 살피면서 디지털화가 초래한 오늘날의 시대상을 강조해 이야기한다고 느꼈어요. 작년 발매한 솔로 앨범 <No Home Record>의 수록곡 ‘Air Bnb’에선 에어비앤비로 전시되고 브랜딩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작년 뉴욕의 303 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The Bonfire>에선 감시 시스템과 소셜미디어에 저당 잡힌 오늘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꼬집어 말하잖아요. 최근 이러한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무엇을 계기로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집을 살펴보게 됐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가 흥미롭게 본 건 예술 작품으로 집을 천편일률적으로 꾸며놓는 방식이었어요. 또 ‘희망과 꿈’이나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같은 명구가 쓰인 액자나 공예품도 자주 보였죠. 에어비앤비가 내세우는 건 독특하고 하나밖에 없는 경험인데, 온갖 클리셰가 공간을 장악하고 있더군요. 지극히 내밀하고 친밀한 집에서의 경험이 상업적으로 착취당하고 광고로 전환되고 있었죠. <The Bonfire> 전시도 이의 연장선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전시에선 해변가에 피운 모닥불 주위로 옹기종기 모인 한 무리의 사진이 소개됐어요. 지극히 평범한 어느 날의 풍경이지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물들의 얼굴 언저리에 사각 프레임이 씌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얼굴 인식 기술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감시하고 있음을 암시하죠. 매년 한 해의 시작을 모닥불을 피우며 지내는 연례행사 때문에 전시 아이디어를 얻긴 했지만, 트럼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인 일 때문에 아이디어가 더욱 풍성해진 것도 있어요. 몇 해 전 멕시코와 영국에서 트럼프를 본뜬 대형 인형을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있기도 했잖아요?(웃음)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당신의 근사한 집을 조금 살펴 볼 수 있었어요. 좀 우스운 질문이지만,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어 당신의 집을 광고한다면 어떤 문구로 홍보할 것 같아요? ‘보헤미안 트리 하우스’는 어떨까요?(웃음) 집 밖으로 이렇게 멋진 나무가 보이고, 작품도 엄청 많이 걸려 있잖아요! 아마 누군가 이렇게 집을 설명해놓은 걸 읽은 것 같아요. 그런데 잠시만, 정말로 그렇게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웃음).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하하. 그렇게 한다면 제가 첫 손님으로 방문했음 좋겠네요. 평소 당신은 소셜미디어를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더군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거나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표하곤 하죠.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찍어서 올리거나, 제 생각을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한 것 같아요. 종종 ‘예술처럼 보이는 것’을 포스팅하기도 하고요. 최근 사막에서 찍은 것을 게시하기도 했어요. 물이 흘러내리는 장면을 담은 디지털 영상이 카지노 외벽에서 재생되고 있었는데, 그쪽으로 향해 가면서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 포스팅했어요. 화면 가까이 가서 픽셀이 하나하나 보여 추상적으로 비칠 때까지 촬영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요. 아직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런 걸 봤어요. 커피숍 근처 정원에 청바지가 한 벌 떡하니 매달려 있는 장면. 이를테면 이런 것들을 올려요. 미스터리가 서려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것들 말이에요.

음악가, 예술가, 배우, 에세이스트 등 당신의 활동 영역은 거의 전방위예요. 여러 옷 가운데 가장 본인에게 익숙하 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하자마자 1980LA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아트 커리어를 쌓았어요. 항상 미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소닉 유스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 바람이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음악은 정규 교육을 통해 배운 적이 없어요. 어떻게 하는 지 몰랐기 때문에 음악을 할 때 더 자유로웠고, 어떤 면에서 더 쉬웠죠. 언제나 나는 미술가라는 자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제약 같은 건 없었어요. 돌이키면, 2003년 무렵까진 미술가로서의 활동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1980년대 초반까지 미술을 했지만 밴드를 시작한 이후로는 둘 사이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거든요. 다만 1980년 진행한 ‘Design Office with Kim Gordon’이란 작업은 개인적으로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에 찾아가 그들을 변화시키는 뭔가를 하는 작업이었어요.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사람들을 반영하는 작업을 만들어냈어요. 이런 걸 보면 에어비앤비에 대한 관심이 사실은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사람들이 사는 공간 내부를 들여 다보는 것 말이에요. 사실은 아버지가 사회학자셨어요. 덕분에 사회학적인 관심을 유지하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집’은 늘 당신 작업의 중심에 있던 듯해요. 작년 발매한 솔로 앨범의 제목 역시 집이란 단어를 사용 해 <No Home Record>란 이름이 붙여졌잖아요. 이는 영화감독 샹탈 아커만의 유작 <노 홈 무비>에서 차용했다고 들었어요. 한국계 미국인 작가 트리샤 로우가 쓴 책 <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읽다가 아커만의 작업을 처음 접하게 됐어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고향에 대해, 미국에서 느끼는 이탈감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리고 아커만의 영화 두 편이 언급되는데 <노 홈 무비>와 다른 한 편은 <잔느 딜망>이죠. <잔느 딜망>에선 집안일에 서툰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마지막에 그녀가 성매수 남성을 집으로 들이는 걸 보여줘요.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성격, 여성에게 주어진 관습적 역할을 잘 폭로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아커만의 <노 홈 무비>라는 제목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를 따와 앨범명을 지었죠. 물론 ‘노’라 는 제목을 붙이면 판매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지만요(웃음).

40년에 이르는 긴 뉴욕 생활을 종료하고 몇 년 전 돌연 고향인 LA로 돌아왔잖아요. LA는 당신에게 집처럼 느 껴지는 도시인가요? LA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뉴욕에서 30~40년을 살았어요. 어떨 때는 LA가 제게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장소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집이란 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해요. 집이란 가족이 있는 곳 을 말할 테지만, 지금 제 딸은 동부 쪽에 살고 있고요. 예 전엔 LA가 정말 싫었어요. 너무 매끈해 보이고, 할리우드 가 있고, 돈에만 신경 쓰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2008 년 경제 위기가 일어났을 즈음에 LA에 돌아와서 목격한 것은 이곳 특유의 예스러운 느낌이었어요. 낡아서 갈색으로 바랜 풀 같다는 인상이 들기도 했고요. 인간적인 모습 을 지녔달까요? 그에 비하면 뉴욕은, 모든 돈이 그곳에 몰려 있으니까요(웃음). 할리우드 머니는 월스트리트 머니에 비할 바가 안 돼요. 그리고 지금은 LA에서 어렸을 때 살 던 쪽과는 다른 동네에 살고 있어요. 어릴 적에는 LA 동 부의 언덕 지대에 살았어요. 좀 더 활기차고, 교외 느낌은 없는 곳이었어요. 십대 시절 거기서 싫었던 건 평평한 도 로에 똑같이 생긴 집이 늘어선 모습이었어요. 어딘가 중산 층스럽고 지겨운 모습 말이에요.

저에게 당신은 언제나 자신만의 오리지낼리티를 가진 인물로 다가와요. 시대가 어떻게 변화하든 항상 ‘리얼’로서 존재하는 인물로 말이죠. 시대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만의 오리지낼리티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 까요? 글쎄요. 답은 ‘저도 몰라요’예요(웃음). 다만 뭔가를 만들어내려면 앞뒤 재지 않고 시도해야만 할 때가 있어요. 요즘은 ‘오리지널’이니 ‘고유한’ 같은 단어들이 의미를 잃은 것 같기도 해요. 너무 지나치게 사용되고 있달까요.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걸 계속해서 연결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보이죠. 아름다움의 미학은 ‘넘어선 것’이어야 해요. 최근 BBCHBO가 공동으로 제작한 <I May Destroy You>라는 드라마를 봤어요. 주연 배우 미케일라 코얼이 각본과 감독을 동시에 맡았죠. 코얼은 정말 독특하고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에요. 너무 강렬하고 가혹해서 심지어 드라마를 보는 중에 좀 싫 어하게 될 정도예요. 당신도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할게요. 사람들은 마치 어떤 것처럼 보이는 뭔가를 만 드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 같아요. ‘미술 작품 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든다든가 ‘ 음악처럼 들리는’ 음악을 만드는 거죠. 그거야말로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오히려 이상한 걸 만들 어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이상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뭔가가 너무 좋아 보이거나 예쁘기만 하면 그걸 통해 어떤 효과를 끌어내는 건 쉽지 않아요. 너무 일차원 적이니까요. 분명 다른 측면이 필요하죠. 이상한 걸 만든다는 건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서 고정된 패턴을 깨는 일을 말해요. 전에는 해보지 않은 걸 새롭게 시도하는 것을 말하죠.

동시대에 그 이상한 것을 만들고 있는 창작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카디 비. 정말 펑크적이에요. 그녀가 쓰는 가사도 그렇고, 태도도 그렇고. 정말 멋져요. 내게 영감을 주는 존재예요.

마지막으로 좀 웃기는 질문을 해볼게요. 사람들은 당신에 게 유독 어떤 수사를 붙이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시대의 아이콘’이라느니 ‘젊음의 상징’이라느니. 당신에게 붙인 수사 중에서 코웃음이 났을 정도로 황당했던 수사는 무엇이 있을까요? 언젠가 ‘그런지 음악의 할머니’란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끔찍했어요(웃음). 손자, 손녀가 있지도 않았는데! 한번은 이런 적이 있어요. 이름은 밝힐 순 없지만, 제가 좋아한 잘생긴 배우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출연한 영화 상영회에 참석했다가 디너 파티까지 갔어요. 제 손을 잡더니 ‘오오, 킴 고든, 록의 여왕이여’라고 했나?(웃음) 정 말 웃기지도 않았죠. 어쨌든, 잘 보이려는 멘트로는 나쁘지 않았어요. 솔직히 기분이 좀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하지만 제 스스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일은 절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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