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시작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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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록다운이 실행되던 지난 5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스마트폰 앱으로 언제 어디서든 경험할 수 있는 작품 ‘분더카머’를 공개했다.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장소에 태양, 돌, 무지개, 풀 등 가상의 자연물을 초대하는 그의 ‘분더카머’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더듬도록 재촉하는 기이하고 낯선 체험이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과 대화를 나눴다.

Portrait of Olafur Eliasson. Photo: Runa Maya Mørk Huber / Studio Olafur Eliasson. © 2017 Olafur Eliasson.

‘인간의 영역을 아주 작은 점으로 만드는 예술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A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작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200여 개의 단색 파장 전구로 구현한 인공 태양 ‘날씨 프로젝트’(2003), 북부 아이슬란드의 순록이끼를 벽면에 이식한 ‘이끼 벽’(1994), 중력을 거슬러 상공을 향해 솟구치는 폭포 ‘뒤집힌 폭포’(1998) 등 짐짓 신의 영역으로 보이는 유사 자연을 창조한 후 유유자적 전시장을 빠져나가는 엘리아슨에게선, A의 말처럼 인간의 영역을 납작한 ‘점’으로 만드는 창조주의 모습이 언뜻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엘리아슨은 완벽한 환영을 만들어 관람객을 교란시키거나 감각의 덫에 빠지도록 만드는 일종의 ‘매직 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작품의 기계 장치를 감추지 않고 노출해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작품은 곧 자연인 ‘척하는’ 인공물임을 드러낸다. 엘리아슨이 만들고자 하는 마법은 그렇게 작품을 통해 ‘감각하는 자신을 바라보는(Seeing Yourself Sensing)’ 관람객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쯤에서 엘리아슨이 인터뷰를 통해 숱하게 언급한 문구를 소개해야겠다.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면 세상은 변화한다.’ 엘리아슨은 작품을 ‘보는 행위’를 ‘사회적 경험’이라 가정하고, 경험이야말로 사유와 행동을 매개하는 미디어라 강조한다. 그렇기에 비로소 관람객의 경험으로 완성되는 엘리아슨의 작품은 인간의 영역을 작은 점으로 축소시키는 것이 아닌, 오히려 아주 커다란 점, 선, 나아가 면으로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detail).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detail).

자연을 미술관에 끌어와 새로운 지각적 체험을 선사하는 엘리아슨의 여정은 지난 5월 공개한 작품 ‘분더카머’(2020)로 이어진다. 다만 작품을 경험하는 장소는 미술관이되 ‘손안의 미술관’인 스마트폰 앱이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아트 플랫폼 ‘어큐트 아트’와 손잡고 공개한 ‘분더카머’는 엘리아슨이 증강현실 기술을 최초로 활용한 시도이자, 앱을 통해 관람·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다. 실행은 간단하다. 어큐트 아트 앱에 접속해 태양, 무지개, 돌, 구름 등 원하는 아트워크를 클릭하고 위치를 지정하면 화면 너머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 엘리아슨의 아트워크가 둥실 떠오른다. 앱을 실행하고 있는 지금, 잡지 더미가 쌓인 <더블유> 사무실 한가운데에도 거대한 태양이 지글거리며 타오르고, 태양에서 뻗어 나온 주황빛 광선이 기자들의 머리를 간질이고 있다. 현실과 가상이 비빔밥처럼 뒤섞인, 어쩌면 그 경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엘리아슨의 세계는 일련의 간단한 ‘터치’ 몇 번으로 펼쳐진다. 첫째, 앱을 다운받는다. 둘째, 이를 실행한다. 셋째, 짐짓 의미심장해 보이는 ‘경험 시작하기(Start Experience)’ 메뉴를 클릭한다.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detail).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detail).

Olafur Eliasson, WUNDERKAMMER, 2020 (detail).

지금 서울에 위치한 <더블유> 사무실에는 증강현실로 구현된 코뿔바다오리가 귀여운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 지난 5월 당신이 공개한 작품 ‘분더카머’(2020) 덕분에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중이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당신과 스튜디오 식구들은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나? 식적인 록다운 조치가 내려지기 전부터 스튜디오 직원들과 함께 기존과는 다르게 일하는 방법을 모색하며 지금의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 문화계를 지원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움직여준 독일 당국의 대응에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 덕분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여태 미뤄둔 책을 읽거나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며 일상을 보냈다. 한 달 내내 같은 장소에 머물며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지! 그뿐 아니라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공유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었다. 어큐트 아트와 협업한 ‘분더카머’와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시기였던 것 같다.

‘분더카머’는 과거 유럽의 귀족과 학자들이 진귀한 물건을 모아 진열하던 컬렉션인 ‘분더카머(Wunder kammer)’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들었다. 작품의 출발점이기도 한 이 개념에 주목한 이유가 있었나? ‘호기심의 방’을 의미하는 ‘분더카머’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사물을 엄격한 논리 체계에 따라 라벨링해 분류하기보다, 이들을 한데 모아 사람들로 하여금 단지 경이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었다. 작품 ‘분더카머’는 우리가 당연시해온 자연 요소와 일상적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응시하도록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즉 우리를 둘러싼 일상적 환경에 무언가 이질적이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것, 낯선 것을 더해 기존 환경을 새로이 보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거리 두기 운동이 불고 있는 요즘 시대에 ‘디지털 공간’만큼 모두가 모여 소통하기에 좋은 ‘장소’가 있을까? 요즘 같은 시대야말로 ‘분더카머’와 같은 작품을 펼치기에 적합한 때라고 생각했다.

Olafur Eliasson, Beauty, 1993, Spotlight, water, nozzles, wood, hose, pump,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0. Photo: Kazuo Fukunaga. Courtesy of the artist; neugerriemschneider, Berlin;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 Los Angeles. © 1993 Olafur Eliasson. Courtesy of PKM Gallery, Seoul.

한참 ‘분더카머’를 실행하며 즐기던 도중 문득 가상으로 재현된 태양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그려지기도 했다. 동시에 한국의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천이 언젠가 남긴 “점점 현실의 해상도는 낮아지고, 가상의 해상도는 선명해진다”는 말도 떠올랐는데, 당신도 언젠가는 현실과 가상이 완전히 뒤섞인, 혹은 가상이 현실을 전복하는 세상에 살게 될 거라 믿는 편인가? 그도 아니라면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무용하다고 생각하는가? 지난 수년간 나의 작품은 ‘현실은 상대적이다’라는 개념에 주파수를 맞춘 채 펼쳐졌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외부 세계는 사실 우리의 인식이나 감각을 통해 구축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의 연장선에서 ‘분더카머’도 물질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구분하는 우리의 지각에 슬며시 물음표를 던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현실은 상대적이며 우리의 지각을 통해 구축된 것이라는 사고에 깊숙이 발을 들이면,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을 함께 만들어가는 데 있어 우리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증강 현실 기술에는 오래전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이를 작품 에 알맞게 구현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증강현실은 우리가 인지하는 것, 우리 주변 환경의 구성성 (Constructedness)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리가 의심의 여지 없이 현실이라 여기는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다.

개인적으로 ‘분더카머’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소는 ‘리틀 썬’이다. 2012년 태양열을 집적해 휴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해바라기 모양의 LED 조명인 ‘리틀 썬’은 전기가 부족한 국가의 어린이들에게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장차 어떠한 요소를 작품에 새로이 추가해보고 싶은가? ‘분더카머’에 대한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추후 실제 애플리케이션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할 계획도 있는데, 어떤 요소를 더할지는 아직 비밀로 남겨두고 싶다. ‘리틀 썬’은 나에게도 굉장히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다. 단순히 태양전지 램프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제공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람들에게 태양광 발전과 대체 에너지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만드는 좋은 기회이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에게 빛은 아름다움이나 신성함으로 다가갈 수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 빛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사치품이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리틀 썬’은 조명과 같은 필수품의 접근성과 이를 둘러싼 불평등에 관해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리틀 썬’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대상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 었다. 7월 1일엔 유럽연합국가의 아이들과 협업하는 디지털 프로젝트도 론칭될 예정이다. 디지털상에서 아이들이 지구의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프로젝트인데, 올해 안으로 전 세계 어린이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확장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Olafur Eliasson, Day and night lava, 2018, Concave mirror glass, stainless steel, lava stone, LED, motor, paint (black, white),Wire, 84.5 x 67 x 62cm,
Installation vi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0, Photo: Kazuo Fukunaga, Courtesy of the artist; neugerriemschneider, Berlin;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 Los Angeles, © 2018 Olafur Eliasson.

도쿄 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 <Olafur Eliasson: Sometimes the river is the bridge>가 지난 6월 9일 마침내 개막했다. 그 전시에서는 재생 에너지와 기후 행동에 대한 당신의 오랜 관심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을 다시 디자인하고 미래를 재설계 하는 것의 필요성’을 전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전시명과 어떻게 상응하는지 궁금하다. ‘때로는 강이 곧 다리다’를 의미하는 전시명은 비평가 존 랠스턴 솔(John Ralston Saul)의 언급을 차용해 붙였다. 내게 이 문구는 장애물밖에 보이지 않던 곳에서 해답을 찾는 일에 관한 것으로 다가온다. 관점을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이번 개인전은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동안, 개념 구상에서 실행까지 모든 단계에 걸쳐 탄소 발자국을 감소시키기 위해 나와 스튜디오 식구를 비롯한 관계자 일동이 다 함께 노력한 첫 번째 전시였다. 전시를 위해 비행기보다 기차와 배를 주로 이용해 작품을 운송했고, ‘리틀 썬’과 스튜디오에서 진행해온 대체 소재 연구를 상세히 소개하는 별도의 섹션도 마련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작은 노력만으로 하나의 전시를 개최하기 위해 소요되는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로도 이런 활동만큼은 지속할 계획이다.

수학, 과학, 건축, 공학을 예술 안으로 거침없이 끌어들 이는 당신의 작업은 마치 삼라만상을 예술로 ‘번역’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돌이켰을 때, 언제나 당신으로 하여금 예술로 번역하게 만드는 것들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과학, 기하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나는 항상 예술가의 관점에서 무언가에 접근하려 한다. 테크놀로지나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려는 욕구가 아닌, 하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내 작품의 주된 원동력이다. 돌이켜보면 아이디어는 아주 막연한 개념, 말로 표현되기 이전의 지점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후 나는 아이디어를 언어, 드로잉, 모델링으로 구체화해보면서 이를 작품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찾아간다. 그 중간중간 마주하는 기술적 한계와 가능성은 작업에 변화를 안겨주기도, 작업을 더 풍성하게 만들기도 했다.

Olafur Eliasson, The exploration of the centre of the sun, 2017, Stainless steel, paint (black), colour-effect filter glass (blue, green), LED bulbs, photovoltaic unit, motor ⌀ 202 cm, Installation vi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0, Photo: Kazuo Fukunaga,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Seoul © 2017 Olafur Eliasson. Courtesy of PKM Gallery, Seoul.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에 서 당신은 말한다. “작품에서 예술성을 유지하도록 챙기는 게 내 역할이다. 모든 결정의 원동력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다.” 당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발동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나는 예술이 현대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문화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예술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좀처럼 보장되지 않는 토론, 논쟁, 배움, 협업을 위한 아주 안전한 공동의 장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작업에서 ‘왜’라는 질문은 내가 품고 있는 이러한 확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 같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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