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택 - 여인들의 전쟁'의 이열음 화보&인터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열음의 여름 (이열음)

2020-07-31T23:10:21+00:002020.08.01|FEATURE, 피플|

배우 이열음에게 스물다섯의 여름은 한결 사뿐하게 튀어오르는 계절, 넘치는 사랑으로 전구처럼 주변을 밝히는 시간들이다.

가죽 튜브톱, 진주 목걸이는 디올 제품.

올해 2월까지 TV조선 드라마 <간택 – 여인들의 전쟁>으로 당신을 봐와서인지, 극 중 철없던 반가 규수 ‘조영지’가 당신에게서 아른거리는 것 같다. 첫 사극이었는데 배역마저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인물이었다. 이름난 가문의 여식으로 태어나 금세 웃고 금세 우는 철딱서니 없는 소녀였는데, 궁에 입궐해 왕비로 간택을 받기 위한 소란을 겪은 후 극도로 불안정해지기 시작한다. 촬영 당시 심리적으로 꽤 고생했다. 마지막 촬영을 한 달 앞두곤 독감을 심하게 치를 정도였으니까.

올해 상반기 가장 불쌍했던 드라마 속 캐릭터를 꼽자면 조영지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져주고 싶다. 왕비로 궐에 든 첫날 밤, 왕으로부터 “왕비가 된 첫날 총에 맞았던 여인도 있다. 그보다 더 잔인할까”라며 소박을 맞았으니까. 그런 대사가 있는 촬영이 끝나면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웃음).

같은 여자로서 이해가 되는 캐릭터였나? 너무 이해됐다. 사랑 하는 남자에게 계속해서 거부당하지만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여자였으니까.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흑역사’이지 않나. 영지에게 왕은 첫사랑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보기에 영지는 아주 심하게 흑역사를 생성하고 있었다(웃음). 자신이 상대에게 어떻게 비칠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아이였지. 여우처럼 머리 쓸 줄도 모르고. 애원했다가 못되게도 굴었다가, 매력을 어필할 줄은 모르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아니까, 안타깝기만 했다.

<간택 – 여인들의 전쟁>은 TV조선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갱신한 드라마로 꼽힌다. 이런 성과와는 별개로 작품을 마치고 배우로서 아쉬웠던 점이 있었나? 아무래도 연기였다. 첫 사극이기도 했지만 배역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배역에 확신이 있을 때 나오는 행동과 그렇지 않을 때 주저하며 나오는 행동엔 큰 차이가 있으니까. 감정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배역이다 보니 연기를 하며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극 중 유일하게 이시언 배우와 나만 현대 말투를 구사했는데, ‘사극에서 웬 현대어냐’는 댓글에 크게 휩쓸린 것도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촬영 막판에 독감까지 앓았다. 유산소운동을 한 것처럼 살이 쪽쪽 빠졌을 정도니까. 그런데 배우로서 건강 관리 하나 못하는 나 자신이 진짜 별로로 보였다. 체력도 실력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실감되기도 했고. 훗날 한창 달려야 할 시기에 체력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평소에도 잘 관리하라고, 이번 작품이 가르쳐준 것 같다.

민트색 홀터넥 톱, 주홍색 새틴 스커트는 문선 제품.

오늘은 오랜만에 한복을 벗어 던지고 카메라 앞에 섰다. 화보 촬영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맞다. 촬영한 당시의 내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 작업이니까.

오늘 촬영한 사진에는 스물다섯의 이열음이 담겼겠다. 그게 배우란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한 사람의 생애가 사진, 영화, 드라마라는 기록으로 남으니까. 그런데 손에 잡힐 듯 아주 또렷한 기록과는 별개로 자기 자신을 모른 채 나이가 드는 게 배우라는 생각도 든다. 다양한 배역을 맡아 한동안 그 배역으로 살다 작품에서 빠져나오면 문득 ‘나는 누구지?’란 딜레마 에 빠지게 된다. 배역에서 나를 분리하는 게 어렵다는 의미가 아니라, 배역에서 나오는 순간 이상하게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때의 내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사진 같은 기록을 보면서 비로소 나를 실감하는 것 같다.

스물다섯을 통과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나? 좀 유해진 것 같다. 사랑이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십대 시절까진 굉장히 내향적이고 예민했다. 그래서 십대 시절 찍은 사진을 보면 좀 안쓰럽다. 그때 어떤 감정으로 지냈는지 기억이 나니까. 왜 그렇게까지 예민했나 생각하면, 내가 나를 잘 몰라서였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혼자 치열하게 자기방어를 하느라 남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곤 했다. 이제는 그런 감정들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대학 입시를 마치곤 훌쩍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들었다. 맞다. 나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번은 이런 것도 했다. 스무 살이 돼서 입시를 준비하며 오갔던 길을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걸은 적이 있다. 신사역에서 내려 논현역을 향해 걸었던 길을, 논현역에서 신사역 방향으로 걷는 거다. ‘이 길을 마무리해준다’는 생각으로 힘들었던 기억을 떠나보내는 나만의 의식이었던 것 같다.

한 시절에 대한 인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평소에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날 방문한 곳, 그날 한 행동을 다시 되짚곤 한다. 좋은 정신 상태로 안 좋은 기억들을 제자리로 되돌려놓고 그걸 극복하는 거지. 외동으로 자랐고 어려서부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생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이런 특이한 행동을 하나 싶기도 하고(웃음).

그런 식으로 슬픔에 정면 돌파하다 보면 감정의 섬세한 결까지 알게 되지 않나? 맞다. 그래서 작품에서 아픔이 많은 배역을 만나면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 그래서인지 데뷔 초반까진 굴곡진 서사를 가진 인물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드라 마 <고교처세왕>에서 파이팅 넘치는 여고생 ‘정유아’를 맡고는 솔직히 좀 헤맸던 것 같다.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서방!’이라고 주책을 떠는 식으로 정말 ‘막’ 사는 캐릭터였으니까.

이하나가 연기한 ‘정수영’과는 정반대 캐릭터라 더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당신이 연기한 정유아는 얼타다 손해 보는 일 따윈 절대 없을 것 같은 야무진 구석이 있달까. 극 중 이수혁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다 거절당하니까 “안 사줄 거면 말지 왜 지랄이야!”라며 도리어 성질을 부리질 않나(웃음). 감독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나와 정유아가 비슷한 인간이지 않을까 짐작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오죽하면 고등학생 시절 별명이 얼음 공주였으니까(웃음). 심지어 ‘목소리 한번 듣고 싶다’는 말도 들어봤다. 원체 말수가 적었다. 소속사 식구들은 마우스 피스를 사다 주며 웃는 연습을 하라고도 했다.

자신과는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성격이 변하는 일도 있겠다. 너무 변했지. 원래는 채팅할 때 이모티콘 하나도 안 쓸 정도로 무뚝뚝했는데 엄청나게 밝아졌다. 촬영 막바지엔 스태프들이 내 애교에 힘들어할 지경이었다(웃음).

그런 경험이 쌓여 아까 말했듯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된 건가? 요즘엔 막연히 사람이 좋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 애정이 있다 보니 자주 관찰하게 되고 상대의 좋은 점을 금방금방 알아주려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드라마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을 촬영할 때 특히 많은 걸 느꼈다. 최종회를 2회 앞두고 극 중에서 죽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그때 문득 내가 이 직업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싶더라. 당시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있었는데 각자가 촬영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힘든 와중에 좋은 결과물을 기대하면서 매 순간을 즐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냥 모두가 예뻐 보였다. 여태 나밖에 몰랐지만 갑자기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 체험이었달까.

사실 마지막 촬영이어서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 거 아닐까? 하하! 그것도 맞다. 워낙 몰매를 맞거나 강에 빠지고, 늪에서 구르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육체적으로 고된 드라마기도 했으니까.

주얼 장식 미니드레스, 초커는 미우미우, 지브라 프린트의 레이스업 부츠는 지안비토 로시 제품.

어머니가 KBS 공채 탤런트로 알려진 배우 윤영주다. 어려서 부터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봐왔기에 당신에게 배우란 직업은 워낙 익숙했을 것 같다. 연기를 시작한 것도 순전히 엄마 덕분인 것 같다. 어릴 때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항상 묻곤 했다. ‘넌 저렇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 못하지?’ 엄마 앞에선 드라마 보는데 말 걸지 말라며 짜증을 부렸는데 혼자 방으로 들어가선 거울 앞에서 대사를 읊어보곤 했다(웃음). 아무래도 그 대사를 읊었을 때의 내 표정이 궁금했던 거지.

조기 교육이었네. 그렇지. 시작은 ‘할 수 있어?’라는 엄마의 한마디였다(웃음). 어느 날엔 부모님이 일을 나가서 혼자 집에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난 적이 있다. 그때 거울 앞으로 달려가 내가 울 땐 어떤 표정인지 관찰하기도 하고,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엄마 옷을 가져다 냄새를 맡아보면서 더 크게 울어보기도 했다. 하여튼 어려서부터 특이한 애였던 건 맞다(웃음). 그런데 그 기억들이 지금 연기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아픔을 가진 배역을 만날 땐 어린 시절이 많이 떠오른다.

<간택 – 여인들의 전쟁>의 조영지, <고교처세왕>의 정유아는 사랑이라면 무엇이든 불사하는 순애보 같은 구석이 있는 인물이었다. 실제 당신의 사랑도 그와 비슷한 모습인가? 그런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을 전부 겪어보고 나니 굳이 그렇게까지 사랑에 치열할 필요가 없더라고(웃음). 지금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상대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나도 마음이 안 생긴다. 이제는 사랑을 받으면 받는 만큼 상대에게 표현하고 싶다.

이상형이 소나무처럼 참 한결같다고 들었다. 피부가 검고 듬직한 사람, 맞나? 연애관이 변해도 이상형만큼은 변하지 않는다(웃음). 마르지 않고, 기댈 수 있고, 듬직한 사람. 아, 딱 봤을 때 무서웠는데 웃을 때 자상함이 느껴지는 사람도 좋다. 이것 하나 추가됐다(웃음).

화려한 색감의 시스루 톱은 리유니, 흰색 슬리브리스는 얼바닉30, 팬츠는 문선 제품.

영화, 단막극, 일일 드라마, 미니 시리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왔지만, 배우 이열음을 강하게 각인시킨 작품을 하나 꼽자면 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당신에게도 고민으로 다가갈 것 같다. 맞다. 당연히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나고 싶지만, 그럼에도 아직 연기를 더 알아가고 배우는 게 우선이란 생각이 든다. 과거 어느 정도 성공이 예견되는 기대작과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 중 한 작품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었다. 장르물이라는 위험 부담을 안고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연기가 하고 싶어 배우란 길을 택한 사람이고, 내가 좋아하는 배역이자 그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떤 후회도 없다. 욕심내서 재미있게 촬영했고, 무엇보다 많이 배웠다. 물론 대중의 관심을 받는 작품을 만나면 좋겠다는 배고픔도 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은 지금 연기에 충실하다 보면 훗날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믿는다. 지금은 ‘나부터 잘해야지’란 생각에 더 집중하고 싶다.

이열음을 지탱하는 신념은 무엇인가? ‘나 자신을 사랑하자’. 매 순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이 쌓이면 인생에서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매 순간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으로 신념을 지키려 한다. 그렇게 한 단계씩 나아가다 보면 점점 내 자신을 사랑하고, 더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