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더블유 8월호 커버 화보 풀 스토리 (The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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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아름다운 대상에 건네는 상투적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배우 전지현에게는 더없이 온당한 말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된 ‘전지현’이라는 고유명사는 알렉산더 맥퀸의 ‘퀸’이 되어 더블유의 뷰파인더 안으로 들어왔다. 눈빛에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우아한 여성으로서 힘을 더한 채.

구조적인 테일러드 재킷, 미니스커트, 하얀색 팬츠 부츠, 실버 클러치와 미러 참이 달린 하네스, 실버 링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제품.

크리스털, 메탈, 시퀸, 비즈 장식의 자수 드레스, 검정 팬츠 부츠는 Alexander McQueen 제품.

전지현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즌 2의 마지막 장면에 단 몇 초간 등장하면서 ‘끝’을 ‘시작’으로 만들어버린 지 석 달이 지났을 때, 알렉산더 맥퀸의 발표가 있었다. 한국 최초의 앰배서더, 전지현. ‘맥퀸의 여성은 독립적이며 강인하고, 당당하며 영향력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브랜드 소개서를 읽는 동안 거기에 묘사된 모든 표현과 맞아떨어지는 하나의 답을 구하자면 자연스레 전지현이었다. 전지현에 대해서라면 과거 한 광고인이 전한 말을 잊을 수 없다. “광고 모델의 업은 쉽게 말하면 보는 이가 그 물건을 가지고 싶을 만큼 아름다워 보이는 일인데, 전지현의 위대함은 자주 그 미덕을 넘어서는 데 있다.” 미덕을 넘어서는 그 힘은 짧은 시간 내에 감정의 깊이를 전달하는 데 독보적으로 탁월한 능력에서 나올 것이다. 게다가 광고를 촬영할 때든 연기를 할 때든 전지현은 몸을 사리지 않는다. 감정과 몸에 관한 그 두 가지 사실이 데뷔 초부터 가능성의 정점을 찍은 그녀가 여전히 스타의 자리를 유지하도록 지탱하고 있다. 그런 사람을, 김은희 작가는 황량한 흙바닥이나 산 같은 곳에 데려다 놓으려 한다. 영화적 육체의 소유자가 액션 비주얼에도 능하다는 걸 아는 이상, 작가라면 익숙한 존재가 만들어낼 낯선 그림을 상상했을 것 같다. 좀비 떼가 있는 사극 속의 전사 전지현. 지리산을 누비는 전지현. 사실 <킹덤> 시즌 3은 ‘공식적으로’ 제작 발표가 난 것도 아니다. 드라마 <지리산>이 방영할 때쯤에는 지독한 바이러스가 세상에서 사라져 있을까? 기대작을 기다리는 동안 <더블유>에 안착한 전지현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빨강 러플 장식 테일러드 이브닝 재킷, 미니스커트, 검은색 팬츠 부츠, 하트 후프 이어링, 하트 링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제품.

구조적인 형태의 실버 이어링은 Alexander McQueen 제품.

알렉산더 맥퀸이 한국 앰배서더를 선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당신이 바로 그 최초의 주인공이다. 알렉산더 맥퀸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전지현 알렉산더 맥퀸은 대비되는 요소가 어우러진 브랜드로 알고 있다. 연약함과 강인함, 전통과 현대, 유연함과 단호함, 어둠과 밝음 같은. 나도 배우로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그런 면과 극과 극의 성격까지 조화롭게 품는 알렉산더 맥퀸의 미학이 잘 매치되는 것 같다. 화보 촬영을 하면서도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다채로움이 이 브랜드의 가 장 큰 매력이라고 느꼈다. 첫 한국 앰배서더가 되어 감사하고 기쁘다.

착장을 바꾸며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금방 다른 눈빛과 표정 을 보여주는 집중력이 놀라웠다. 그렇게 자연스럽고 빠른 모드 전환은 그저 본능적인 감각으로 나오는 건지, 숙련된 경험을 통해 가능한 건지 궁금했다.

촬영은 항상 ‘열심히’ 하고 싶다. 지면 화보든 영상이든, 열심히 하다 보면 진심이 묻어 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런 진심으로 그날의 촬영을 완성하고 싶달까. 그렇게 임하면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바도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7년 전에 당신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도 ‘할 것에만 집중하며, 꾀를 모르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당신은 ‘열심히 해야 그게 다 내 것이 되는 기분’이라고 했는데, 그게 전지현을 말해주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그사이 자리 잡은 특징이 또 있을까? 7년 전에 나를 잘 봐준 것 같아 고맙다. 내 특징이라기보다 그간 나에게 생긴 변화가 뭔지 생각해 보자면… 가족이 더 많이 생겼다는 점과 나보다 가족을 더 생각하게 됐다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킹덤> 시즌 2 마지막에 당신이 단 몇 초 등장하고 끝나서 감질났다(웃음). 촬영 시간도 얼마 안 걸렸나? 아니다, 꽤 오래 걸렸다. 나에겐 처음 하는 <킹덤> 촬영이지만, 그 분량을 통해 작품의 마지막과 새로 시작할 시즌의 인물까지 어느 정도 표현해야 해서 너무 어렵더라. 그래선지 오랜 시간 촬영하면서 시간을 들인 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달까? <킹덤>의 팬이기도 했고 워낙 김은희 작가님의 작품 스타일을 좋아했다. <킹덤>의 매력을 일궈준 멋진 배우들, 제작진과 함께할 수 있어서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 짧은 분량을 위한 긴 촬영 때 생긴 에피소드는 없나? 에피소드라면, 촬영장에서 좀비 분장을 한 배우들을 보고 너무 반가웠다는 것! 같이 사진 찍자고 할 뻔했다(웃음).

김은희 작가가 ‘전지현이 몸을 쓰면서 통통 튀는 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작품’을 같이 해보고 싶었다더라. 김 작가의 드라마인 <지리산>에 주지훈과 함께한다는 소식도 얼마 전 공개됐다. 내년에 방영할 예정이라 아직 알려진 점이 거의 없는데, 어떤 작품인가? 산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산을 떠나야 하지만 차마 떠나지 못하는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연들이 지리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산이라는 곳이 주는 영험하고 특별한 기운을 담아낼 터라 색다른 느낌의 작품이 나올 것 같다.

당신이 등산을 즐기는 건 유명해서, <지리산>이라는 제목을 듣자마자 ‘청계산을 날쌔게 오르는 전지현’이 떠올랐다. 전지현의 체력이라면 지리산 정상까지 얼마나 걸릴 거라고 보나?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최단시간 신기록을 꿈꾼다.

검정 자수 튤 드레스, 검정 팬츠 부츠, 후프 이어링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제품.

면 분할된 테일러드 체크 재킷과 팬츠, 큼직한 원형 선글라스와 스터드 장식 주얼 사첼백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제품.

아침 6~7시면 일어나 매일 칼같이 운동한다는 걸 알았을 때 놀랐다. 여전히 그렇게 사나? 여러 활동 가운데 운동에서 느끼는 쾌감은 뭔가? 우리가 숨 쉬고 사는 게 당연하듯이 나에겐 운동과 숨 쉬는 행위가 같은 선상에 있다(웃음). 사실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너무 무섭기도 했다. 그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이렇게 힘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운동했다. 매주 필라테스 3회, 수업 1시간 전에는 무조건 유산소 운동… 다른 일정은 피해도 운동만은 꼭 하려고 했고, 개인 시간 역시 운동한 이후로 잡았다. 뭐든 죽을 각오로 하지 않으면,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지금의 나는 완벽하진 못해도 여유는 제법 생긴 듯하다.

연기를 위해서 스스로의 움직임이 어떤지 객관적으로 관찰하기도 하나?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몸 쓰기의 특징이 있다거나. 운동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내 몸을 예민하게 잘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몸 쓰는 연기를 할 때는 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바로바로 느낀다. 내가 좀 단순 명쾌한 성격이고, 순간에 잘 몰입하는 편이다. 감독님이나 작가님과 캐릭터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연기할 때 그냥 쉽게 집중하게 된다. 감정이든 몸이든, 어떤 특별함을 자아내려고 생각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느끼면서 해야 그걸 보는 분들 역시 편안하게 보는 것 같다.

<지리산>이 내년 방영이라고 하면 당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지금이 작품 공백기가 가장 긴 축에 속한다. 가장 최근작이 2016 년 말부터 2017년에 걸쳐 방영한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이니까. 그동안의 시간은 어땠나? 예전과는 달리 이젠 연기 외에 외모 걱정도 좀 하게 되고… 어렸을 때는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막연히 연기라는 걸 하고 있는 나를 생각하면 가끔 신기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파악한 감정 그대로를 표현하고, 그걸 캐릭터에 녹여 연기해왔다. 본능이 중요하다 보니 배우로서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도 충실하게 잘 살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예전에 몰랐던 감정을 점점 알게 되는 일이 기대기도 했다, 배우니까. 오랜만에 작품에 임하는 게 걱정되긴 하지만 가슴은 두근거린다. 어쩌면 나도 몰랐던 내 감정들이 현장에서 솟구쳐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그냥 해보려고 한다.

전지현이 영화 <도둑들>, <베를린>, 그리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거치면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구가한 건 부인할 수 없다. 휘몰아친 그 행보 이후 가족과의 시간에 충실하며 일에 있어서는 쉼표를 찍는 시기였다고 이해한다. 그때의 도약 이후 얻은 마음가짐은 뭔가?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하다. 예전에는 생각한 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조바심도 나고, 일이나 생활 자체를 썩 즐기지 못한 편이었다. 이제는 뭐든 주어진 순간순간 열심히 하고, 그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다. 일을 할 때도, 가족과 함께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일상을 보낼 때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가죽 패치워크 코트와 벨트, 검정 첼시 부츠, 구조적인 형태의 실버 링, 메탈 핸들 장식 스토리 숄더백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제품.

하얀색 셔츠 드레스는 Alexander McQueen 제품.

일상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뭘 하면서 어떤 시간을 보낼 때 그런 소중한 행복을 또 느끼나? 요즘은 시간대별로 행복의 성격이 구분되는 편이다. 아침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땀을 흘렸을 때 행복하고, 점심때까지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일에 성공하면 또 행복하다. 오후 시간에는 아이들을 무사히 픽업해서 같이 놀고, 씻기고, 사탕 하나 쥐여줄 때 행복하고… 밤에 잠들기 전에는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마감하는구나’ 싶을 때 행복하고 그렇다.

사람이 전과 다른 환경과 조건에 처하게 되면, 이를테면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는 식으로 변화를 맞으면, 자기도 예상치 못 한 자기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음… 엄청 열심히 운동하면 손목이나 발목에도 땀이 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웃음).

배우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해주는 건 좋은 감독과 작가의 몫이 크다. 배우의 오라가 셀수록 누군가 그 일을 용감하게 해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내 잠재력을 누가 좀 더 끌어내줬으면’ 싶은 마음이 아직도 있을까? 맞다, 그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본인의 생각이 확고한 스타일의 감독님과 작가님이 좋다. 나는 누군가를 잘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늘 똑같은 나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배우로서 가장 두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은희 작가님에게 기대가 크고, 그분을 만나게 되어 행복하다.

기하학 패턴의 오간자 드레스, 검정 팬츠 부츠, 실버 하트 목걸이와 후프 링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제품.

격자 무늬 니트 드레스, 빨강 팬츠 부츠, 검은색 벨트와 메탈 핸들 장식 톨 스토리 백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제품.

고등학생 때 데뷔해서 인생 절반 이상을 스타의 이름으로 보냈다. 일과 사람에 대해 현재 남아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뭔가? ‘실수하지 말자’.

연예계에 막 데뷔하던 무렵의 전지현에게 하고픈 말이 있나? ‘다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운동으로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단련하면서, 그리고 긴 커리어 동안 갖가지 아름다움을 취해보면서 당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과 성숙함에도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내면을 키우고 채우는 방법에 관해선 어떤 답을 얻었나? 먼저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려고 해야겠지. 그래야 내가 과연 뭘 할 때 좋고 싫은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또 살면서 쓸데없는 행동과 만남 등에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그러면 삶의 질도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나라는 주체가 뚜렷해질 것이다. 그 결과 내 자신이 가장 소중해질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가치 있지 않을까? 헛되게 보내지 않는 일상 속에서 가장 나다운 나를 찾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상태가 되면, 뭐 하나를 해도 그게 ‘진짜’라는 감정을 느낄 것이다. 바로 그런 걸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고 상황과 처지가 변한다 해도 잃고 싶지 않은 감정은 뭔가?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는 마음. 사람들을 만나 보면 종종 ‘당신은 틀리고 내가 맞다’ 식의 말을 하는 이가 있다. 나는 그러기보다 많이 듣고, 받아들이는 쪽이고 싶다. 더불어 나이가 들고 내가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지면서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려고 한다. 그래야 더 만족할 수 있는 일, 더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도 감사하다. 알렉산더 맥퀸의 앰배서더가 되고, 오랜 만에 멋진 화보를 찍었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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