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이자 예술가 윤 리가 펼쳐낸 요물로 가득한 지구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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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요물 건축가이자 예술가 윤 리가 펼쳐낸 ‘요물’로 가득한 지구의 여정.

보라색 파이프 체어는 안진영, 벽에 걸린 작품은 윤 리의 ‘패럴렐 유니버스 (Parallel Universe)’.

블랙 스툴은 티엘(Tiel), 블루 체어는 안진영 작가 작품.

2층 전시장 풍경.

정체불명의 동물 털로 뒤덮인 불길한 기운의 가면, 온화한 미소를 띤 플라스틱 불상, 19세기 말 아르누보 양식을 고스란히 구현한 듯한 크리스털 식기, 그리고 그 옆으로 백남준, 서도호, 권오상의 현대미술품까지. 415일 개막해 오는 628일까 지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진행되는 윤 리의 개인전이자 소장품전 <Gaia Artifice 지구의 요물 2020>에 펼쳐진 풍경이다. 한때 반듯한 화이트 큐브처럼 보이던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말 그대로 ‘지구의 요물’로 탈바꿈시킨 주역은 하버드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이후 뉴욕, 베를린, 멕시코, 이집트 등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지역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시에, 사진과 페인팅, 조형, 설치 등 광범위한 작업 활동을 병행한 작가 윤 리다. 자신을 ‘트래블러’라 자처하는 윤 리는 세계 각지를 종횡하며 절대적 미(美)를 좇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 내부의 에너지를 일깨우는 신원 미상의 물건들을 수집했다. “저의 정체성은 트래블러에 있는 것 같아요. 건축 프로젝트를 위해 세계 여러 도시를 찾았지만, 정착되는 기분이 들면 늘 어딘가로 훌쩍 떠나곤 했죠. 25년 동안 세계를 돌며 모은 ‘오합지졸’의 물건들을 이번 전시에 소개하려고요. 끊임없이 물건을 수집하는 성정은 어쩌면 제가 가진 ‘죄’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맥시멀리스트로 사는 삶이 지겹지 않냐고, 요즘엔 미니멀리즘으로 선로를 틀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언제나 미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않았어요. 여기 소개하는 물건들은 오로지 제 주관적인 ‘에너지 온도’를 기준으로 고른 것들이에요. LA 스튜디오에서 컨테이너를 가득 채워 이곳으로 배송한 물건을 마치 벼룩시장처럼 늘어놓고 이틀 만에 전시에 소개할 물건을 추려냈죠. ‘바운더리’가 없기에 한눈에 정의할 수 없는 물건들이에요. 그런데 그 자체가 무척 재미있지 않나요?” 윤 리는 말한다. 어떤 ‘억압’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세계관을 여실히 드러내는 회화 연작 ‘패럴렐 유니버스(Parallel Universe)’(2013)도 이번 전시장을 빛낸다. “술을 즐기지 않고 어떠한 여흥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을 미국에선 ‘스트레이트 에지(Straight Edge)’라고 불러요. 반면 ‘패럴렐 유니버스’는 프레임부터 직사각이 아닌 마름모꼴로 이뤄져 있죠. 지금 이 세상에서는 내가 건축가로 살고 있지만, 또 다른 유니버스에서는 제가 미장이일 수도, 아트 퍼포먼서일 수 도 있는 거예요. 수평 세계에 있는 이로서 자유로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투영한 작품이에요.” 한때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의 수행법 ‘탄트라’에 심취했다는 그는 2층 전시장에서 비정기적인 소모임을 가질 예정이라 말한다. “오페라 발성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뇌성이 뚫려 소위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을 ‘오페라가즘’이라 불러요. 이를 통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죠. 또 꽃꽂이 모임도 꾸려볼 예정이에요. 꽃은 생이 짧고 건축은 영원하지만, 어떠한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측면에서 제게 둘은 동일하게 느껴져요.”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장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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