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최하늘의 전시 ‘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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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의 조각 조각가 최하늘은 전시 <샴>을 통해 한국 근현대 조각의 선구적 작가 김종영을 소환한다.

FOR INTEGRAL BODY SUTURE, 2020. SILICON COATED METAL, NYLON STRING, 90X45X150cm.

THE OTHER PART OF HIS SIAMESE 2 HERMAPHRODITE, 2020, MIXED MEDIA, 70X70X178Ccm.

THE OTHER PART OF HIS SIAMESE 1 LAYER & FLAT, 2020, CONTACT PAPER ON METAL BOX, 50X50X150cm.

2018년 산수문화에서의 개인전 <카페 콘탁트호프> 이후 두 번째 개인전이다. 그사이 여러 곳에서 단체전을 치렀지? 맞다. 첫 번째 개인전 이후로도 여전히 ‘조각’이라 하는 것에 고민하고 있다. 또 이 사회에서 조각가로 살아가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는 달리 풀자면 ‘퀴어’라고 하는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를 조각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말한다. 최근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새 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에는 다섯 작품을 출품했다. 지금까지 한국 선거 역사상 단 한 번도 당선된 사례가 없는 트랜스젠더, 미혼모, 게이, 난민, 외국인 노동자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 ‘한국몽’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전시에서 퀴어와 관련한 다양한 접근을 고민하고 표현하는 중이다. 당분간 이와 같은 행보는 계속될 것 같다.

지난 521P21에서 개막한 전시의 타이틀은 <샴>이다. 처음 듣고선 몸의 일부가 붙어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인 ‘샴쌍둥이’가 바로 떠올랐다. 영어 단어 ‘Siamese’에서 가져왔다. 우리나라에서 ‘샴’이라고 통용되는 ‘Siamese’에서의 ‘Siam’은 기록에 남은 최초의 태국 샴쌍둥이의 이름이었다고 전해진다. ‘Siamese’는 이와 같은 뜻 외에 다양한 뜻을 품고 있는데, 이번 전시는 ‘Y자로 디자인된’이라는 뜻에 집중해 꾸려봤다.

이번 전시에선 조각가 김종영의 작품을 과감하게 변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을 앞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김종영의 조각이라 생각되지만, 뒷면을 살피면 발칙한 장치가 설치되어 맥락이 일순 뒤틀려버린다. 이번 전시에 김종영을 숱하게 소환한 이유는 뭔가? 한국 근현대 조각을 말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조각가가 김종영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1982년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다양한 조각을 만들며 한국 조각계를 이끌었는데, 동시대에는 그에 대한 논의가 거의 고정되어 새로운 발견이랄 게 거의 없다. 저명한 조각가에 대한 검증이 끝난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를 연구하면서 한편으로 그가 격동의 대한민국을 살면서 어떻게 그토록 사회와 거리를 두고 추상 조각만을 만들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조각을 일종의 백지로 두고, 이에 샴쌍둥이를 덧씌우는 작업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김종영의 일생과 조각이 당신이 말하려는 퀴어 아트와 어떠한 교집합을 그리는가? 한편 덧씌우기의 방법론으로 새로이 제시한 ‘커버링’은 무엇인가? 퀴어 아트가 한국 사회에서 위반과 탈주를 기반으로 가시화 전략을 펼친 것은 너무 위대한 성과다. 이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절대 아니지만, 반면 나는 조금 더 미래 시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제 더는 사람들이 퀴어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와 같은 맥락에서 퀴어 아트 역시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런 고민에서 ‘커버링’이라는 개념을 방법론으로 가져왔다. 퀴어가 마치 이성애자인 척하는 방식을 커버링이라고 하는데, 나는 김종영의 조각이 마치 커버링을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김종영은 으레 ‘한국적 미를 탐구하는 선비’라 추켜세워져 왔는데, 하지만 나의 철저히 주관적인 의심에 의하면 김종영은 자신이 무언가를 조각하기 위해 ‘한국적’이라고 하는 큰 테두리만 설정했을 뿐, 내용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직접 에세이에 남긴 것처럼 그는 “르네상스 이후의 모든 예술가들과 같이 무엇을 그리느냐 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그리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조각을 앞뒤로 가르고 커버링하는 모습과 원래의 정체성을 노출하는 이미지를 병치시켜봤다.

여러 레이어가 겹겹이 쌓인 당신의 ‘커버링’ 방법에서 ‘한국적’이란 감상이 스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단 나는 김종영이라고 하는 이미 논의가 종결된 조각가를 소환해서 변용하는 것이 일종의 한국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적인 것의 뿌리에 대해 오해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이 동시대에서 ‘혼종’이라는 방식에 주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이와 같은 맥락에서 김종영과 퀴어를 혼합하는 것이 어쩌면 한국적인 전략이라고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또 이와 유사하게 근래의 케이팝도 맥락을 같이하는데, 나는 케이팝이 성장하는 과정, 즉 서구의 음악을 혼합해 재맥락화하는 과정이 매우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 가운데 내부에 무선 스피커가 내장되어 케이팝이 시종 흐르는 전시도 있다.

당신의 작가 노트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조각가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냐고.’ 한편 당신은 이러한 질문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늘 고민하는 지점이다. 나는 조각가로서 형태의 억압에 시달리는데, 이에 대한 답변은 내가 풀어가야 할 숙제겠지. 그리고 과거의 방식과 다르게 올해부터는 감각에 기반하는 작업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전까지는 철저한 준비와 연습에 기반한 작업을 진행했다면 올해부터는 내 감각을 근거로 한 즉흥적인 조각을 제작할 예정이다. 완전히 익숙하지 않아서 난항이 예상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늘 당신에게 궁금했던 게 하나 있다. 눈썹 위의 문신은 어떤 뜻을 갖나? 문신을 새긴 지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촌스럽게도 내가 한때 사랑한 소설가의 책에서 따왔다. 윌리엄 버로스의 <퀴어>에서 말이다. 물론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웃음). 요즘엔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엄청 읽고 있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장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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