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아우라가 깨지는 시대, 어떤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나?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전시의 아우라가 깨졌다

2020-05-04T14:51:57+00:002020.05.04|FEATURE, 컬처|

오프라인 전시장이 문을 닫은 사이, ‘언택트 뮤지엄’이라 할 수 있는 온라인 전시 관람이 대세로 떠올랐다. 20세기 초 발터 벤야민이 작품의 아우라를 말했다면, 지금은 전시의 아우라를 새롭게 정의할 때다. 아우라가 깨지는 시대, 어떤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나?

아트 바젤이 론칭한 ‘온라인 뷰잉룸’ 캡처 화면들. 검색 카테고리는 갤러리, 작가, 그리고 가격 내지 연도별로 구성되었고, 깔끔하고 단순한 레이아웃이어서 서핑하기 간편했다. 노란색 곰 같은 형태는 국제갤러리에서 출품한 김홍석의 Bearlike Construction’(2017),  두 인물이 마주 보고 있는 사진은 리아 루마 갤러리에서 출품한 울라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Aaaaaa’(19782010).

COVID19 사태의 여파가 산업과 생활 전반에 미치고 있다. 영향받지 않은 분야가 없고, 거기에는 미술계도 있다. 미술계는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의 집중적인 관리 대상으로 어려움을 맞았다. 미술관, 갤러리, 아트페어 등은 불특정 다수를 한 공간에 모으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전시는 물론 관련 시설 운영과 시장 시스템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없던 일이다.

가장 먼저 행사 취소를 알린 것은 3월 열린 아트 바젤 홍콩 이다. 아트 바젤 측은 지난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 최대의 미술 장터가 맞은 상황을 알렸다. ‘참가자들의 안전과 출품작 수송 등에 근본적인 난관을 맞닥뜨렸다.’ 이어서 같은 명문 페어로 일컬어지는 뉴욕과 런던 프리즈도 일정을 취소하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 히트에서 열리는 페어인 TEFAF는 행사를 강행했다가 3 7일 개막 직후 확진자가 나와 조기 폐막했다. 가장 큰 규모의 페어인 바젤의 아트 바젤은 6월 행사를 9월로 연기 하겠다고 알린 상태다. 행사를 미루거나 취소한 것은 페어 뿐이 아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런던 테이트 모던 등이 무기한 휴관을 선언했다. 미국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MoMA, 로스앤젤레스 LACMA와 게티 등을 폐쇄했다. 위기를 맞은 이탈리아에서는 바티칸, 우피치 등을 비롯해 전역의 미술관 문을 닫았다. 이러한 가운데 우피치의 시니어 디렉터인 에이케 슈미트(Eike Schmidt)의 발언 은 인상 깊이 남는다. “미술관은 문을 닫지만, 미술과 문화는 멈추지 않습니다.”

실제로 미술 작품 전시, 감상, 거래는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당장 국제 미술 시장에서는 온라인 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다. 아트 바젤 홍콩은 원래 행사를 개최하려 했던 날짜와 비슷한 시기인 320일부터 25일까지 ‘온라인 뷰잉룸’을 제공했다. 출품작을 아트 바젤 공식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서비스였다. 오픈 날에는 접속자가 몰려 25분간 시스템이 멈췄을 정도로 큰 관심과 화제를 모았다. 100만 달러 이상의 작품이 잇따라 팔려 기대 이상의 성과도 거뒀다. 화면 속 작품 이미지만 보고 선뜻 거액을 지불하는 일에 갤러리 측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대안의 성과를 숫자로 확인한 미술계는 온라인 체제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3월 중순 개막한 제22회 시드니 비엔날레는 역사상 최초로 디지털 비엔날레를 진행했다. 형편에 맞춰 VR과 팟캐스트 등을 통해 작품을 소개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갤러리와 미술관도 전시를 VR 영상으로 제작하는 것에 발 벗고 나서는 모양새다. 전 세계의 전시 소식을 알리는 온라인 가이드 ‘GalleriesNow’만 방문해 봐도 알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업데이트’라는 진한 글씨가 기존의 카테고리 사이에 강조되어 자리 잡았다. 이 카테고리에서는 현재 열리는 VR 전시 목록과 전시를 링크 연결 방식으로 볼 수 있다.

2011년에 생긴 ‘구글 아트 앤 컬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보관된 명작을 감상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마우스를 화면에 갖다 대고 확대하면 고전 회화의 크랙까지 눈에 보일 정도. 이제는 미술뿐 아니라 여행, 웰빙 등 더욱 다양한 주제의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구글 아트 앤 컬처 캡처 화면들.

 

사실 가상현실 형식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일이나 전시를 관람하는 행위는 등장한 지 오래됐다. 2011년에 생긴 ‘구글 아트 앤 컬처’ 프로젝트가 그 시초일 것이다. 아트 앤 컬처는 세계 유수 미술관들과 협력해 소장 작품을 고해상 화질로 선보인다. 여기서는 실사를 이용한 지도 서비스인 ‘스트리트 뷰’ 기능을 이용할 때처럼, 미술관 내부를 생생하고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궁금한 작품에 관한 자료와 이야기 등을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이다(가상미술관 서비스로 시작하여 지금은 여러 여행지의 특정 장소 사진을 360도 뷰로 제공하거나, 컬러 팔레트에서 특정 색을 클릭하면 그 계열의 런웨이 의상만 쭉 보여주는 것 등등 다채로운 기능이 있다). 현재 한국어를 포함해 20여 개의 언어로 정보를 제공한다.

2017년부터는 물리적 전시를 디지털로 재현하는 것을 뛰어넘는 매체도 등장했다. 최근 카우스(Kaws)의 대표작인 ‘COMPANION’을 AR(증강현실)로 선보여 호응을 이끈 디지털 전시 플랫폼 ‘Acute Art’가 대표적이다. 카우스뿐 아니라 마리아 아브라모비치, 올라퍼 엘리야슨 등 세계적 작가들과도 협업한 이곳은 VR, AR, MR(혼합현실) 등의 기술을 통해 전시 자체를 가상으로 만들어낸다. 지난해 구정아 작가도 Acute Art와 협업해 런던 프리즈 조각 공원에서 증강현실로만 볼 수 있는 조각을 선보여 큰 관심을 받았다. 앱을 다운받아 실행하면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얼음이 떠 있었다.

3월 중순, 카우스와 어큐트 아트가 협업해 AR과 가상 데이터가 혼합된 전시 <Expanded Holiday>를 발표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유럽, 미국 등의 특정 장소에서 어큐트 아트 앱을 실행하고 비추면 카우스의 대표작 ‘컴패니언’이 눈앞에 나타나는 식. AR이 새롭거나 낯선 기술은 아니지만, 이 전시는 고퀄리티로 구현된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이렇게 재현을 뛰어넘어 전시 자체를 제시하는 플랫폼까지 생겨난 상황인데, 우리는 그것에 무심하거나 거부 반응을 보여왔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여겨서, 혹은 그저 낯설어 생각의 범주에 들여놓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동안 디지털 전시를 외면한 보다 명확한 이유는 작품 감상이란 알고 보면 ‘시각 경험을 뛰어넘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먼 길을 떠나 작품을 눈앞에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동, 그 감동을 가라앉히고 작품과 나 사이에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느끼는 긴장, 그 긴장 속에서 탄생하는 어떤 분위기와 생의 깨달음. 데이비드 호크니는 이에 대해 ‘카메라는 기하학적으로 대상을 보지만, 인간은 기하학적인 동시에 심리적으로 세상을 본다’라고 정리한 바 있다.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도 ‘영상의 시대에 왜 펜인가’를 논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영상으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영상보다 선명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전시가 재평가받고 있는 부분은 명확하다. 가장 큰 장점은 시공간의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관람자와 기획자 모두의 측면에서 그렇다. 뉴욕 한복판에서 열리는 전시를 새벽 1시, 침대에 누워서 보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기획자에게 운송 및 설치에 대한 걱정과 비용을 덜어낼 수 있는 장점은 큰 변화다. 신진 작가의 경우 전시장 섭외 같은 걱정이 없으니 본인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를 손쉽게 마련할 수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한 큐레이터가 인스타그램에 론칭한 ‘#ArtistinQuarantine’에 참여하는 작가 수가 빠르 게 늘고 있다. 온라인 전시는 전에 없던 주목을 받고 있고,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그 흐름이 대세에 휩쓸려 목적 없이 길을 떠나지 않도록 이제는 생각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의 성격과 가능성을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술계의 움직임을 보며 떠오른 글은 철학가이자 평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1936년 발표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다. 이 책은 기계로 그린 그림, 사진이 탄생하고 100여 년이 지난 뒤 세상에 나왔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예술 작품의 생산, 가치, 수용 방식에 일어난 변화를 탁월하게 분석한 저서여서 기술과 예술을 함께 말할 때 자주 언급된다. 벤야민은 ‘아우라’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우라는 ‘유일하고도 아주 먼 것이 가까운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일회적 현상’이 다. 즉, 유일한 존재를 드물게 마주했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외감과 신비로움을 말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앞에서 사람들이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며 ‘어쩌다’ 우리 앞에 나타난다. ‘찾아가서 본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지만.

그러나 사진이라는 것이 등장하며 ‘단 하나’라는 예술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량 복제가 가능해진 세상에서도 원본의 아우라는 흉내 내지 못할 일이고, 구체화할 수 없는 대상인 내면은 결코 똑같이 만들 수 없는 것이지만, 놀랍게도 기술 발전에 따라 이미지 복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진이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영화라는 장르가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영화는 태생적으로 기술 복제 를 전제하는 형식의 예술이다. 이제, 진품성이 명백하게 해체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변화를 벤야민은 ‘아우라 의 몰락’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몰락’이라는 단어가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 중요하다. 벤야민은 과거가 무너지는 순간보다 이후 새롭게 생성되는 것들에 더 집중했다. 예술이 복수로 존재하면 대중은 전보다 예술 작품을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이 사실에서 비전을 봤고, 대중이 진보적으로 변할 것이라 믿었다. 보다 많은 사람이 드문 경험에 막연히 감탄하던 일에서 벗어나 비평가에 버금가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작품의 아우라가 깨지는 시대에 살았다면, 우리는 전시의 아우라가 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화이트 큐브 특유의 고귀한 분위기는 전시장이 디지털 공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대신 벤야민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보다 많은 관람자가 전시를 감상할 기회가 생겼다. 지난해 아트 바젤 홍콩의 방문객은 약 8만 명이었으나 올해 온라인 방문객은 25만 명에 달했다. 팬데믹의 등장 이후 미술계가 기술 복제의 또 다른 절정을 맞이한 셈이다.

물론 온라인 시스템은 미술계의 근본적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여전히 영화는 대중문화의 영역, 미술은 순수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 무너질 법도 했던 경계를 지켜낸 것은 인간의 본성과 연관이 있다. 인간은 어쩌면 그 탄생부터 신을 섬기듯 무언가 를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25천여 년 전 만들어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조차 출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바람의 결과다. 사진에 에디션 번호를 부여해 작품이라는 아우라를 재형성하는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가상의 특성을 지닌 디지털 공간이 활성화할수록, 컬렉터들은 회화, 조각처럼 물성이 있는 작품 소장에 더욱 치중할 것이다. 나만 알고 싶고 독점하고 싶은 마음에서, 손에 잡히는 작품의 소중함을 진지하게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살덩어리에서부터 시작하듯 작품의 진정성은 물성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미술계는 거대 시장의 작품 발굴과 미술관, 비엔날레가 탄생시키는 담론이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문화 생태계다. 소장 선호의 보수화는 결국 생태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온라인 시스템은 대중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능력을 갖추도록 도우면 된다. 관심을 유도해 전시장 방문을 독려하거나 정보 공유로 전시와 작품의 이해를 깊게 하도록 돕고, 나아가 전에 없던 전시 아카이브 구축 매체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장비 성능에 따라 제작비 수백만원을 소요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D 전시 도면보다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아 미래 연구의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시스템을 조력의 역할로 단언하지는 못하겠다. 오지 않을 것 같던 2020년 원더 키디의 세상에 어느덧 내가 살고 있다. 기술 발전은 어느 순간 또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현재에 도래할 것이다.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인간의 기질이 우리를 2020년에 데려다 놓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