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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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얼마나 건강한가? 내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운 우리들이 바이러스 시대를 살아내는 법.

얼마 전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보다 한참을 웃었다. 송화(전미도)와 준완(정경호), 익준(조정석) 셋이 모여 밥을 먹다, 송화가 준완이 전에 안 먹던 파김치를 먹는 것을 보고 놀란다. “나이 드니까 확실히 입맛도 변해. 그것도 서서히가 아니라 하루아침에 뚝, 갑자기 변해.” 준완은 파김치가 갑자기 맛있어졌고, 익준은 콩국수가 당기고, 송화는 별안간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겼다. 급기야 익준은 아들과 공원에서 꽃 사진만 6천 장을 찍었다고 고백한다(내 경우엔 여전히 콩국수는 별로 안 당기지만 평양냉면이 갑자기 계시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아마 20대는 이 부분에서 웃지 않겠지만 80년대생 이상은 나처럼 이 장면에서 깔깔대고 웃었을 것이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이 변한다. 수다의 주제조차 바뀐다. 친구들과 만나면 ‘질병 토크’를 하다 시간이 다 간다. ‘잘 지냈어?’ 하면 어김없이 바쁜데, 바빠서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픈 것이 대부분의 근황이다. 나이 먹으면서 몸의 여러 곳이 제 기능을 못하고 고장나는 것이 노화의 순리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젊은 축에 속하는 30 대 중후반의 여성들이 감기 몸살과 비염, 장염은 기본이고 소화불량, 대상포진, 갑상선 질환, 알레르기, 이명, 심지어 각종 암까지 이 병에서 저 병으로 끊임없이 옮겨가며 자신만의 질병 역사를 쓰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렇게 다들 아픈 걸까?

정말, 건강이 최우선입니까?

“살다 살다 저런 건 또 처음 보네.” 현충원 능수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할 즈음, 관계자들이 커다란 철문을 걸어 잠그고 현수막 다는 것을 보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개화 시기에 현충원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약 오르고 안타깝게, 하필이면 올봄엔 비도 미세먼지도 없어서 ‘꽃구경 가기 딱 좋은’ 날씨일까. 원래 봄 날씨는 차려입고 나서면 비바람 몰아치고, 꽃구경 가면 꽃잎이 우중충하게 떨어지고, 예상보다 늘 정확하게 추워서 벌벌 떨다 오고 그런 거 아니었나? 벚꽃 필 때 부터 문 닫는 건 30년 넘게 살면서 처음 봤다 하자 엄마가 말한다. “나도 60년 넘게 살면서 이런 건 처음 본다.” 현충원에 외롭게 핀 벚꽃부터 텅 빈 바티칸 광장까지, 세계가 이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생한 실감도 처음,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이상한 말도 처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낯선 것은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코로나 예방 수칙>의 ‘아프면 쉬세요’라는 문장이었다. 가족에게,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에게,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지겹게 듣고 해온 말인데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화자가 세계와 나라, 회사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이 그냥 하는 말 이 아니라 정말 그래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프면 쉬기를, 세계와 나라와 회사가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 전 지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

“여기 애들은 감기 걸리면 일주일씩 회사에 안 나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니까. 나와서 콜록대면 왜 나와서 저러나 이상하게 생각해.” 한 10년쯤 전 에 체코에 사는 친구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이제 독일에 사는 그 친구는 ‘긴급재난문자’로 주변 확진자 알림이 뜨는 우리의 시스템이 최첨단이라며 충격을 받고 있다). ‘아프면 (일단) 참는다’가 디폴트 값으로 내재된, 뼛속까지 한국인인 내가 듣기에는 한국과 체코의 거리만큼이나 먼 얘기였다. (코로나 이후에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기침 나고 열 나면 쉬는 것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는 세상을 낯설게 느끼면서야 나는 그간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것을 끊임 없이 유예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몸은 건강한가? 바이러스에 대항할 면역력이 있는가? 나와 가족들, 질병 토크가 끊이지 않던 내 지인들은 과연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다 같이 건강하지 않으면 온 세상이 정지되는데 우리는 왜 아프면 쉬지 않고, 건강을 그토록 하찮게 취급했을까? 언제나 ‘건강이 최우선’이라고 말해왔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우리가 건강을 언제나 ‘차선’으로 밀어두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바이러스 시대의 면역력

감염병이 널리 확산됐을 때 개인은 생활 반경을 축소해 바이러스 노출 위험을 줄이고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로 개인 위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더라도 병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 증상이 심하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는 개인의 유전적인 배경과 기저 질환, 나이, 평소의 건강 상태 등에 의해 좌우된다. 그 모든 것의 총합으로 도출되는 것이 바로 ‘면역력’.

노벨상 수상자 피터 메더워의 표현대로, ‘단백질로 감싼 나쁜 소식’인 바이러스는 도처에 널려 있다. 빌 브라이슨의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에 따르면 세균보다 훨씬 작고, 너무 미세해서 일반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바이러스는 지구상에 수십만 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바이러스 학자 도로시 H.크로퍼드는 해양 바이러스만 죽 늘어 세워도 1000만 광년 거리까지 뻗을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바이러스는 매우 오래(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수억 년 동안 이어져왔다)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모든 바이러스가 우리의 적은 아니다. 현재까지 포유동물에 감염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것은 586종에 불과하며, 그중 263종만이 사람을 감염시킨다. 문제는 스페인 독감부터 사스, 메르스, 코로나19까지, 지금까지 밝혀진 바이러스 중 몇몇 종류가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인체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수의 바이러스 학자 최강석은 저서 <바이러스 쇼크>에서 바이러스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몸속으로 무혈 입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숙주는 마치 도성의 성곽 출입문 경비대처럼, 신체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외부 침입자를 걸러낸다.” 눈, 구강, 코 등 몸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에는 라이소자임(Lysozyme)이라는 강력한 살균 성분이 들어 있어 바이러스가 이 출입구를 통해 들어오면 바이러스 껍데기인 단백질을 파괴시킨다. 정상적인 사람이 결막염, 충치염 등에 쉽게 걸리지 않는 이유다. 경비대는 도처에 퍼져 있다. 호흡기 기도에서는 섬모가 비로 마당을 쓸어내듯 병원균을 기도 밖으로 밀어내고, 음식물과 함께 식도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장의 연동 운동으로 밀어내 대변으로 배출시킨다. 빌 브라이슨은 면역계가 우리 몸 곳곳에 퍼져 있고, 이 복잡다단한 면역 시스템에 대해 알려면 ‘아주 많은 것들, 엄청나게 많은 것들’ 을 알아야 하지만 결국 면역계는 단 한 가지 일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몸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찾아내고 필요하다면 죽이는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우리 몸속에는 무해 하거나 더 나아가 이로운 것도 있는데, 그런 것들까지 찾아서 죽인다 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면서 에너지와 자원의 낭비가 될 것이다. 따라서 면역계는 공항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짐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수상쩍어 보이는 것들만을 찍어서 검사하는 보안 요원과 조금 비슷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보안 요원의 근무 환경을 나쁘게 만들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WE클리닉 조애경 원장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몸을 무리하게 혹사시키거나 반대로 별다른 활동 없이 집에서 너무 편하게만 지내는 것도 면역력 저하를 불러옵니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습관, 유해 환경에 잦은 노출 등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어떤 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되죠.”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건강해지는 법

인체의 복잡한 면역 시스템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그러나 다행히 면역계가 자신의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많이 알려져 있다. 더 클리닉의 김명신 원장은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법을 하나로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건강한 활동과 운동, 과도한 스트레스 방지와 휴식, 균형 잡힌 식사, 적절한 비타민과 유산균, 항산화제 섭취, 금연과 금주 등은 면역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면역력이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게 아니라 습관과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만 개선될 수 있다는 거죠”라고 말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이자 세계보건기구 (WHO)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윤철은 저서 <팬데믹>을 통해 야채, 콩, 견과류, 통곡물 등을 자주 먹고 요구르트와 같이 장내 미생물 환경을 개선하는 음식, 그리고 오메가 3와 같이 염증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는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 손상된 장의 회복력을 높이는 글루타민 같은 영양소 등을 적절히 섭취하는 것이 면역 기능을 개선해준다고 설명한다. 운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수많은 연구를 통하여 신체 활동의 이점은 잘 알려져 있다. “신체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경우 심혈관 질환이나 고혈압, 당뇨병, 유방암과 대장암 등의 위험이 낮아지고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치매를 지연시킨다. 구체적으로 매일 20분 이상 신체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김명신 원장은 운동을 주 340분 이상 하는 것이 좋으며, 주요 장기로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도록 하는 유산소 운동과 성장 인자 등을 생성해 면역 체계를 강화해주는 무산소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면역계는 스트레스에 취약합니다. 따라서 정신 건강을 위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죠. 명상을 하거나 좋은 차를 마시면서 하루에 5분이라도 나만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시간을 갖고, 10번 이상 웃음이 나올 만한 일을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마치 수능 1등에게 듣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와 같은 뻔한 답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건강해지는 데에는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은 없다. 자정이 훌쩍 넘어 잠드는 것, 담배를 피우고 음주를 즐기는 것, 불규칙한 식습관, 인스턴트 위주의 식사,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 등 우리 몸의 밸런스를 망가뜨리는 습관부터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은 ‘하루아침에 뚝, 갑자기’ 변할지라도 몸은 그렇게 변하지 않는다. 좋아지는 것도 나빠지는 것도 시간이 쌓여서 그렇게 된다. 우리가 방종 하거나 게을러서 못 할 때도 있지만, 문제는 우리가 건강한 생활 습관을 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에도 도저히 그럴 만한 여유와 에너지가 없다는 데 있다. 애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에게 퇴근 후 저녁 한 끼라도 건강한 식재료로 요리를 해 먹는 게 가능할까? 혼자 사는 직장인이 야근 후 퇴근해서 채소와 잡곡밥을 먹을 가능성은? 운동을 하려면 안 그래도 부족한 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피트니스센터로 향해야 하는 걸까? 결국 우리의 건강은 우리에게 달려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팬데믹>에서 홍윤철 교수는 건강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인체 내부 시스템과 외부의 환경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팬데믹의 시대가 5년에 한 번씩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우리의 내부 시스템과 외부 의 환경 모두 정비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언제나 당장 해야하는 일 때문에 뒤로 밀리곤 했던 나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다시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 물론 아프기 전에 쉰다면 더 좋고.

뷰티 에디터
이현정
사진
©FLORIAN SOMMET /TRUNK ARCHIVE /SNAPPER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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