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예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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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소비는 인간이 환경에 베푸는 선행, 혹은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다. 사람과 생태계는 한 몸이기에, 나와 환경 모두에 이로운 화장품을 구매하는 건 배수의 진을 치고 사수해야 할 생존의 문제다.

시의적절한 주제를 동시대적 톤으로 다루는 것이 직업인지라 지구의 달 4월 과 환경의 달 6월에는 으레 환경과 화장품 문제를 기획에 올린다. 매출의 1% 를 환경 단체에 기부하는 꼬달리, 알프스 청정 지역을 사들이는 클라랑스, 녹차 재생지로 패키지를 제작하는 이니스프리, 플라스틱 마이크로 비즈나 실리콘 오일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 브랜드들을 소개하고, 재활용 용기를 가려내는 법과 올바른 분리 배출법을 조사하는 것도 우리의 업무다. 때가 되면 으레 해야 하는 일에 진심이 담기기 시작한 건 13년 전, 환경의 역습으로 인한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후부터다.

에코 라이프는 초록이 아니라 빨강

화려한 백스테이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뉴욕 컬렉션 마지막 날. 00:40 서울 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지인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케스트라 펀드레이저인 그녀의 맨해튼 집은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 피난처와 같았고, 안심되는 공기를 만나자 내내 날이 서 있던 신경이 차분해졌다. 따뜻한 식탁에서 회포를 푸는 동안 종종 창이 덜컹거리며 거인이 부는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린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완벽히 평화로웠다. ‘바람이 많이 부는구나’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바깥 날씨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건 콜택시를 불렀을 때였다. “공항으로 떠난 차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데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통제되어 아예 진입조차 할 수 없다”는 답이 었다. TV를 틀고서야 상황 파악이 됐다. 토네이도였다. 철도를 포함한 모든 대중 교통이 운행을 멈췄고, 바람은 잦아들었으나 간판 등 손상된 구조물이 떨어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택시를 잡으려면 직접 거리로 나가야 했다. 불과 몇 시간 전 나를 안도의 세계로 인도했던 현관문을 나서자 고담 시티를 연상 시키는 광경이 펼쳐졌다. 개미 한 마리 없는 텅 빈 거리에 크고 작은 나뭇가지가 빠른 속도로 구르고 있고, 깨지고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들과 홍보 배너들이 일정치 않은 방향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코르티솔 쏠리는 장면에 할 말을 잃었고 좀 전의 안락함이 먼 꿈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우회도로를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인도인 드라이버를 만나 200달러를 약속하고 차에 올랐다. 30~40분이면 도착할 JFK 국제공항을 2시간 반 넘게 기어가면서 라디오가 전하는 도로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기상이변’, ‘대기변화’, ‘환경’과 같은 단어가 반복됐고, 천신만고 끝에 공항으로 이어진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즈음 “한두 차선 통제가 풀렸으나 도로 위로 쓰러진 큰 나무들을 치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며 현재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느리게 달리는 차창 너머로 또 한 번의 비현실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거대한 나무에 깔려 납작해진 SUV 차체 옆,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듯 볼이 붉은 한 여성의 얼굴 위로 흰 천이 덮이는 모습이었다. 인간이 환경에 끼친 영향이 붉은 사이렌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목도한 이후 나에게 에코 라이프는 초록이 아니라 반드시 멈춰야 하는 빨강으로 각인됐다. ‘지속 가능한’ 삶과 소비란 ‘그렇게 살아보세요’보다는 ‘그렇게 살면 안 돼요’가 더 어울리는 문제임을 깨닫게 된 거다.

매년 전 세계 저명한 학자와 환경운동가, 그리고 정치가들이 온건한 그린과 강건한 레드를 오가며 경고를 거듭해왔고, 2020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파리기후변화협약까지 발의됐지만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심각해진 것도 같다. 2019년 한 해 일어난 기상이변만 간략하게 나열해봐도 이건 내가 알던 지구가 아니다. 이탈리아에는 사과 크기의 우박이 떨어졌고 호주에는 가뭄이 들었으며, 미국 곳곳에서 토네이도가 몰아쳤다. 추위에 떠는 인도와 눈보라치 는 그리스, 그리고 너무나 따뜻해진 러시아까지! 하지만 현실은 “펭수는 과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같은 헤드라인이 아니면 저탄소 생활 방식에 대한 작은 환기도 쉽지 않다.

화장품은 예쁜 쓰레기?

8천원짜리 립스틱도 럭셔리예요. 없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요.” 지인 A는 화장품을 1도 몰라도 뷰티 CEO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외주 기획&대행 업체를 운영한다. 그는 가끔 이런 자조적 회의를 털어놓곤 한다. “의뢰받는 제품과 브랜드 중 없어도 될 것도 많아요. 똑같은 제품인데 로고가 다른 것이 차별점이고 200원 더 싼 것이 경쟁력이랄까?” 그리고 화장품은 사회적 욕망의 문제고 그에 따른 해석이니 마음만 고쳐먹으면 안 써도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화장품을 추천하는 뷰티 에디터와 화장품을 만드는 기획자가 마주 앉아 그것의 존재 이유를 골몰하는 것이 괴이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 과정은 서스테이너블 뷰티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

서울로 무사 귀환한 뒤 나는 한동안 피가 초록색이 될 때까지 환경 관련 책을 읽었다. 테이크아웃 음식을 대비해 언제나 빈 도시락과 손수건을 휴대하고, 걷기 위해 힐에서 내려오는 등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리스트를 만들어 노력했다. 문제는 나의 직업이었다. 지구에 1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삶의 기록, <노 임팩트 맨>을 보면 화장품부터 깡그리 모아 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화면에 비친 뷰티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화학 물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아무리 친환경적인 보상을 지불하는 브랜드를 지지한다고 해도 이미 존재 자체가 반환경적이라면 병 주고 약 주는 모순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신념과 생계가 충돌하자 혼란이 몰려왔다. 직업의 정당성을 찾은 것은 몇 년 후, 향장심리학을 접하면서다.

‘화장 테라피’에 관한 연구를 읽어보면 ‘가벼운 초기 치매 노인들이 메이크업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나서 기저귀를 뗐다’든지 ‘안면 신경마비 때문에 비대칭이 심해진 환자에게 균형을 맞추는 메이크업을 알려주면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등의 사례가 등장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김새나 성격 등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스스로 인지하며, 이러한 자아상을 바꾸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메이크업이라는 해석도 등장한다. 동시에 뇌과학자들은 화장 전후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피부를 정성스레 쓸어주고 아로마 향을 맡는 것이 실제 호르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 그 효과를 입증해놓았다. 흔들리는 멘탈의 시대, 화장품이 심리적인 테라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나의 직업적 자존감을 높였고, 화장품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있음을 납득시켜줬다. 이제 내가 쓰고 권할 가치가 있는 제품을 가려낼 차례다.

지속 가능한 뷰티의 조건

‘서스테이너블’이란 ‘환경 파괴 없이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뜻하고, 뷰티 업계에서는 오가닉, 비건, 크루얼티 프리, 클린, 그린, 케미컬 프리 등의 용어로 수식 되곤 한다. 그저 ‘순한’ 화장품, 자연 유래 블라블라 화장품들과의 차이? 진짜 지속 가능한 뷰티는 단지 내 피부에 안전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분이 흡수되어 몸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고 제품을 기획하고 제조, 폐기하는 전 과정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

이상적인 모습을 시뮬레이션해볼까?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한 로컬 유기농 원료 포뮬러를 풍력발전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해 제조한 뒤, 재사용 혹은 재활용 가능 패키지에 담는다. 효능과 효과, 전 성분은 모두 용기에 적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겉포장은 생략한다(물론 국내법상 한국 브랜드는 단상자 제작이 필수긴 하다). 아직 끝이 아니다. 앞선 과정에 관련된 사람들 역시 쾌적한 환경에서 근로기준을 준수하며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제품이 유통되는 과정은 투명하고 도덕적인 경영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판매 금액의 일부가 환경에 환원되며 서스테이너블이 완성된다. 현재 클린 뷰티를 표방하는 브랜드들이 완벽히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지 묻는다면 답이 어렵다. 그럴듯해 보여도 뚜껑을 열어 보면 트렌드에 편승한 그야말로 ‘컨셉’인 경우도 있고 아직 배워가는 단계인 토들러라 완벽히 조건을 구비하지 못한 케이스도 많다. 물론 진심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며 완전히 다른 맥락의 타협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러쉬는 약 2년 전부터 글리터 성분을 모두 합성으로 바꿨다. 천연 반짝이를 만들려면 동굴을 깊게 파 운모를 채굴해야 하는데 그 굴이 좁아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노동 착취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내추럴 성분은 아니지만 바다로 흘러가도 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것이 천연 재료보다 ‘지속 가능한’ 선택일 수 있다.

조금 비싼 지속 가능성

서스테이너블은 거스를 수 없는 전 세계적 흐름이다. 작년 말과 올해 초 열린 각종 화장품 박람회마다 신선한 아이디어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각양각색의 리필 용기, 콩에서 추출한 100% 플라스틱 패키지 ‘리사이클레이트’, 태평양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에서 채취한 스피루리나로 만든 무스, 해초 비닐 팩 등 신박한 아이템들이 선보였고, 종이 패키지만 사용해도 되는 고체 바 형태의 화장품이 상승세다. 물이 들어왔으니 이제 노만 저으면 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내 시장에서 서스테이너블 뷰티가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다. 사장님들이 뭘 몰라서,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다. 소비자에게 가치의 가격을 납득시키는 데까지 노력과 기간이 필요하다.

함께 일했던 이너뷰티 브랜드 B는 서스테이너블 브랜드를 지향한다. 대표 제품인 건식 파우더는 건강식 좀 먹어본 기획자가 유기농, 코셔마크 등을 획득한 천연 원료만 때려 넣어 만드느라 원가가 비싸졌다. 파우더가 담길 팩과 단상자 역시 재활용되는 것을 선택했더니 단가가 올라갔고 이 가격을 납득시킬 만한 브랜딩이 필요해 디자인 차별화를 시도했더니 소비자가를 좀 더 올려야 했다. 건기식 파우더 한 포가 3천원을 넘지 않는 시장에 (손해를 감수하고도) 4천 원 넘는 파우더를 출시하는 건 결단이었다. 박리다매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유통을 확장해야 다매가 가능한데 원가가 지나치게 높게 설계된 제품은 수수료 떼고 할인을 감당 하고 나면 답이 없다. 고민 끝에 B는 느리게 가기를 선택했다. 자사 몰에 발이 묶여 공격적인 확장은 어려워도 서스테이너블한 제품들이 대개 그러하듯 재구매 고객이 늘어나면서 현재 조금씩 성장 중이다.

브랜드에게 서스테이너블 라인의 출시 혹은 시대의 흐름을 따른 정체성 변화를 제안하면, 돌아오는 답은 거의 비슷하다. “밀레니얼과 Z세대가 브랜드 본질과 가치 소비를 중시한다는 트렌드 보고서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이 지갑을 열 때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건 여전히 가격이에요.” C사의 대표는 언제나 ‘지속 가능함’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지금 당장 변신하기엔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스테이너블을 향한 노력에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진짜 지속 가능한 화장품을 만들자고 들면 쓰지 못하는 용기, 내지 못하는 컬러 등 제약이 많다. 대표적인 서스테이너블 패키지, 유리 역시 부피와 무게 때문에 운반 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생분해도 쉽고 가벼우며 튼튼한 패키지를 새로 개발하려면 누군가는 보상을 기약할 수 없는 연구에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원료도 마찬가지. 양을 많이 넣어야 효과가 나타나는 천연 색소와 천연 향의 단가를 듣고 나면 대부분의 BM들은 고민에 빠진다. 관건은 확신이다. 우리 브랜드를 사는 소비자가 ‘화해 앱’에서 성분만 걸러 구매하는 사람들인지, ‘찐’ 지속 가능성을 구분하려 노력하는 유형인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콘셉트를 좋아하는 힙스터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혹시 마지막 케이스라면 그들이 사랑하는 건 스타일리시한 서스테이너블인지라 성분보다 비주얼과 굳즈에 투자를 더 해야 할 수도 있다.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용전공 유선희 외래 교수는 지속 가능한 뷰티 시장에 변화를 가져오는 건 결국 소비자가 될 거라고 말한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잖아요.” 좋은 것, 가치 있는 것에 제값을 치르려는 소비자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하드 캐리’할 수는 없다는 거다.

가치 소비는 단순한 선행이나 보여주기식의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다. 당신이 지난 두 달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에 지불한 돈만 모아 더해도 몸에 닿는 착한 화장품에 제값을 매겨줄 수 있다. 스킵 케어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두세 개의 가치 있는 스킨케어 제품만 구입하고, 메이크업 제품은 끝까지 남김없이 쓰는 습관을 들이길 권한다.

내가 소비한 것이 곧 나

서스테이너블의 대전제는 나와 생태계를 물아일체로 이해하는 것. 유기농 원료를 사용하는 제품을 추천하는 건 당장 몸에 좋은 성분이 반가운 것도 있지만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는 농법을 지지함으로써 얻는 나비 효과가 내 입으로 들어올 음식에까지 미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친환경 에너지로 화장품 공장을 돌리고자 하는 건 더는 미세먼지 속 수용성 중금속이 비와 함께 토양에 스며들어 식물의 뿌리를 통해 내 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빨리, 독성 없이, 완벽히 분해되는 패키지를 구매하려는 노력은 그것을 먹은 생물 들이 내 식탁에 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이 미시적 행동이 모여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는 거대하고 다양한 ‘이변’을 잠재우고 뜨거운 지구의 온도를 낮춰줄 것을 기대한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백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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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Moovmoov Modern 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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