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FW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 리포트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보테가가 쏘아 올린 미래

2020-03-26T10:31:10+00:002020.03.24|FASHION, 뉴스|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고 있는 대니얼 리(Daniel Lee)의 세 번째 쇼. 그가 탐색한 패션의 ‘가까운 미래’가 생동감 넘치게 펼쳐졌다.

사람들은 처음 맞닥뜨린 ‘변화’를 경계하고 의심한다. 솔직히 나 역시 그러했다. 패션계의 인명 사전을 돌이켜봤을 때, 넘치는 열정으로 변화를 시도하려다가 패션계의 회전문을 통과한지 단 몇 시즌 만에 사라진 디자이너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니얼은 달랐다. 그를 향해 열광의 박수를 보내는 이들 중 몇몇이 그가 이번엔 잘했지만 다음엔 과연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며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는 사이, 그는 어느새 패션계의 판도를 좌우하고 있다. 또한 세 번의 쇼를 치르며 브랜드의 고유성을 트위스트하는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시대의 반향을 일으켜 미래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요소는 무엇인지 가장 현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디자이너가 바로 그다.

이번 2020 F/W 밀라노 패션위크에서는 그가 이끄는 변화의 흐름에 동참한 수많은 쇼를 감지할 수 있었다. 복잡함 대신 단순함으로, 스트리트 대신 클래식으로, 과잉의 아름다움 대신 절제된 대범함과 쿨함으로! 그중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되는 디자이너들은 그처럼 유서 깊은 하우스를 ‘변화’시킬 묘안으로 ‘미니멀, 쿨, 클래식’을 외쳤다. 비록 그것이 과거의 유산에서 온 오리지널을 재해석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과연 패션 산업에 있어서 ‘시그너처’란 무얼까. 나다운 것, 강렬한 개성이 있는 것, 그리고 대중에게 고유의 매력으로 반응을 얻고 인정받는 것. 나아가 무언가를 보았을 때 연상 작용을 일으킬 정도로 강렬하게 각인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궁극의 경지가 아닐까.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단기간에 자신의 ‘오리지낼리티’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2019년은 대니얼 리의 해였다.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감투 아래,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큰 변화 없이 하우스의 명맥을 이어온 보테가 베네타 하우스뿐 아니라 전 세계 패션계에 ‘빅뱅’을 일으켰다. 일례로 지난 연말, 영국패션협회에서 주최하는 ‘2019 패션 어워즈’에서 올해의 브랜드 상을 보테가 베네타가 거머쥔 데 이어 올해의 디자이너상,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상(아마도 카세트 백과 패딩 슈즈의 공이 클 듯), 올해의 영국 여성복 디자이너상(브리티시인 그에게 주어진)까지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렇듯 불과 1년 반 만에 서른다섯 살의 젊은 디자이너는 자신의 취향과 철학을 공고히 한 채, 동시대 여성들을 매혹시켰다. 누구나 보면 척하고 알 수 있는 자신만의 시그너처를 확고히 했을 뿐 아니라 ‘뉴 모더니즘(New Modernism)’, 다시 말해 스트리트 패션에 지친 모던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절제된 쿨함을 천명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대의 미니멀리즘을 새롭게 정의한 용기는 그의 세 번째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지난 222일, 밀라노에 위치한 팔라초 델 기아초(Palazzo del Ghiaccio) 에서 열린 보테가 베네타의 2020 F/W 시즌 컬렉션 현장. 새하얀 캔버스 같은 공간에 이탈리아 팔라디안 건축 양식이 연상되는 이미지를 프로젝션으로 연출한 쇼장이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보테가 베네타 하우스의 역사가 시작된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웅장한 대저택을 연상시키는 공간은 마치 과거와 현재의 연결 고리를 되새기는 듯했다. 오늘날 하우스의 유산을 바탕으로 보테가 베네타의 대니얼 리가 펼쳐가고 있는 익숙한 듯 낯선 새로운 미래를 연상시키면서. 쇼장을 둘러보는 사이에 떠들썩해진 프런트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는 친근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닌 수많은 프레스들이 기다리던 한류 스타 송혜교. 그녀가 보테가 쇼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그린 것은 쇼장에 참석할 그녀의 룩이었다. 보테가의 새로운 시즌 컬렉션 중 그녀는 과연 어떤 룩을 선택할까. 언뜻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그녀의 스타일에 대니얼 특유의 쿨한 미니멀리즘을 색다르게 대입해보았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풀린 순간, 그 모던한 한 수는 다름 아닌 ‘백’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송혜교가 보테가 베네타 2020년 스프링 컬렉션의 군더더기 없는 검정 테일러드 재킷에 아이코닉한 굵은 체인이 돋보이는 백을 매치한 모습이란. 대니얼의 시그너처 백 중 하나인 ‘체인 파우치’는 그녀의 고혹적인 모습에 동시대적 쿨한 무드를 부여했다. 이윽고 바이올리니스트 카이 카이트와 첼리스트 패트릭 벨라가의 모던 클래식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며 쇼가 시작되었다.

이번 시즌, 대니얼 리가 보테가 베네타 쇼를 통해 동시대 여성과 공유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그의 세 번째 컬렉션 역시 자기다운 것을 다시금 되새기고, 매 시즌 신선한 트위스트를 더해가는 대니얼 특유의 기지와 명민함이 잘 배어 있었다. 쇼 노트를 통해 ‘생동감과 활력의 분출에 대한 궁극적인 진화’라고 언급한 이 번 쇼에서 눈에 띈 것은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는 컬러 팔레트. 깊이 있는 블랙과 초콜릿이 스칼렛, 롤리팝, 키위, 버터 등의 색감과 만나 한층 풍부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F/W 시즌의 트렌드라고 할 만한 프린지 장식은 한층 룩에 활력을 더했고, 대니얼이 데뷔 쇼부터 시도한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모던하게 재해석한 룩도 눈길을 끌었다. 한편 실루엣은 몸에 붙는 듯하면서도 친밀하고도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려냈으며, 스타킹과 밴디지의 부드러운 톤은 인체의 곡선미를 우아하게 강조했다. 또 남녀 통합 컬렉션 형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남녀 모델의 페어 룩이 미러링처럼 펼쳐지는 광경도 흥미로웠다. 1960~70년대 밀리터리 점퍼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코닉한 시어링 재킷과 워크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편안한 실루엣의 룩들이 그 예였다. 궁극적으로 이번 컬렉션은 색과 형태, 프린지 장식으로 활기를 더한 ‘새로운 우아함(New Elegance)’ 을 선언하는 현장이었다.

백과 슈즈 컬렉션은 간결하고도 투박한 멋을 지닌 채, 룩과 닮은 매력적인 컬러 팔레트로 무장했다. 선글라스 케이스처럼 백을 여닫을 수 있는 독창적인 맥시 백, 직사각형의 클러치를 뒤틀어놓은 형태가 흥미로운 클러치와 여기에 프린지 장식을 더한 백, 숄더 스트랩에 하우스의 아이코닉 한 매듭(Knot)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한 백, 금빛 메탈 장식의 숄더 스트랩으로 마치 주얼리를 착용한 듯한 효과를 안겨주는 크로스보디 백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베스트셀러 백을 중심으로 앞으로 고공행진을 할 새 시즌의 백들이 퍼레이드를 펼쳤다. 나아가 시그너처 스퀘어 토와 웨스턴 힐이 특징인 부츠들 사이에서 요즘 화두인 지속 가능한 발전에 부합하는 고무 소재로 제작된 컬러풀한 부츠의 등장도 눈길을 끌었다.

보테가 베네타 쇼 노트의 문구는 대니얼의 비전과 이상을 더욱 강조했다. “2020 F/W 컬렉션은 고유의 관점을 유지한 채 꿈에 몰두한다. 컬렉션의 모든 피스가 시적 감각, 자신감, 그리고 순수한 자기 표현을 담아낸다. 여전히 눈길을 사로잡는 인트레치아토는 전통과 혁신 사이의 긴장감을 선사하며 모던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가 쇼를 통해 선보인 대담하고 동시 대적인 콘텐츠의 원형이 SNS와 매거진 지면에 공개한 브랜드 광고 캠페인으로, 그리고 스트리트 신의 패션 피플들이 든 대니얼의 시그너처 보테가 백으로, 결국 대중에 의해 끊임없이 콘텐츠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그가 쏘아 올린 공은 홈런을 예고한다. 시대적 흐름의 맥을 짚어 내는 명민함은 아무에게서나 발견되지 않는다. 변화를 감행할 수 있는 용기와 나다움을 내세울 수 있는 배짱 등 모든 것이 수줍게 피날레 인사를 건네는 이 젊은 신성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이렇듯 2020년의 패션계 역시 그의 움직임을 한껏 주목하고 있다. 그러니 그의 영향을 받은 패션은 하계가 어떠한 동시대적 교감을 우리에게 내어줄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