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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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낸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으며 괜히 기분이 어수선하고 마음이 우울하다. 하지만 이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패션은 기발한 상상력을 신묘한 방식으로 풀어내며 그래도 우리 곁에 놀라운 즐거움이 있다는 걸 전한다.

그 경이로운 즐거움은 마르니에서 시작한다. 정통적인 이탈리아의 하우스에 기괴한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는 프란체스코 리소는 이번 쇼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의 머리가 사라졌다!’는 망측한 발언을 남겼다. 그의 머리가 도대체 어떻게 됐는가?라는 의문을 되뇌며 마르니의 쇼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던 중, 그의 사라진 머리는 다름 아닌 마르니 쇼에 오른 ‘밤비’라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 사진 속에 있는 밤비 인형을 무대 위로 올린 것이다. 프란체스코 리소의 머리(?)를 훔쳐간 밤비는 휘청거리다 넘어지기도 하며 패션 특유의 격양된 긴장을 단숨에 사라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BALENCIAGA

GUCCI

GUCCI

스텔라 맥카트니 같은 태생적으로 우아한 패션 하우스들도 마찬가지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여러 동물의 얼굴을 한 탈을 모델들에게 씌워 무대에 등장시키며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에 대해 재치 있는 방식으로 강조했다. 발렌시아가나 구찌 또한 마찬가지다. 헬로 키티나 미키 마우스 등 텔레비전 속으로만 보던 만화 캐릭터들을 그들의 우수한 가죽 가방이나 수려한 울 재킷 위에 올렸다. 마치 패션은 어렵지 않다는 듯 말하는 듯 보인다. 이를 보며 패션은 현실을 가장 직관적으로 관통하는 문명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시국이 어려워질수록 유머는 되려 깊어지니 말이다.

프리랜스 에디터
김선영
사진
Instagram @asliceofbambi @pier59studios @stellamccartney @gucci 출처 W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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