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부터 설치 미술가까지, 예술가들의 작업실 탐방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슬기로운 작업실 생활

2020-02-03T16:14:46+00:002020.02.04|FEATURE, 컬처|

작업실이야말로 동화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고래 뱃속과 닮았다. 상상이 증식하고, 판타지가 실현될 것만 같은 경계적 장소. 작업실을 통해 한 사람의 사유로 빚어진 세계를 맛보는 슬기로운 작업실 일지가 여기 있다.

배재민 │ 화가 │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

이슬람사원 뒤편, 아슬아슬한 비탈에 둥지를 튼 배재민의 작업실은 음지식물을 연상시켰다. 반지하의 작업실에는 정오 즈음 손바닥만큼의 햇빛이 떨어졌고, 광기 어린 눈동자를 그려낸 캔버스 옆으로 관수가 필요해 보이는 관엽식물이 버티고 있었다. 유년 시절 가족과 함께 찾은 사찰에서 사천왕상을 목도하며 영문 모를 커다란 공포에 사로잡힌 배재민은 이후 불교미술을 차용한 독특한 회화 작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초창기 오방색을 사용해 부처를 형상화하는 등 불교미술의 직접적인 자장 안에 있는 회화를 선보였지만, 2017년 갑작스러운 화재 사고를 겪으며 세계관이 송두리째 뒤바뀌고 작품은 점차 추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별안간 일어난 화재였어요. 입원 첫날 시한부 판정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마약성 환각제로 통증을 가까스로 추슬렀는데, 당시 불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환각이 나타났어요. ‘왜 이러한 형상을 보게 된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지금도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어요.” 이후 화재의 기억과 싸우거나 건배하는 시절을 보내며 사고 1주기를 맞았다. 도망치듯 떠난 강릉 바다에서 ‘Horizon’ 연작의 단초를 얻었는데, 해안선을 향해 다가오다 포말이 부서지며 이내 사라지는 파도를 보며 티베트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없지만 있는 것’, 즉 공성(空性)의 지혜를 떠올렸다. 서양화와 달리 캔버스 역할을 하는 그림판을 직접 만드는 ‘배접’ 과정이 필요한 불교미술은 작가의 우스갯소리를 빌려 “불심이 필요할 정도”로 고되다. 한지를 여러 겹 포개 풀을 바르고 삼베나 광목을 올리는 배접은 숙련공 2명이 달려들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일반 캔버스와 달리 채색 과정에서 재료가 삼베에 흡수되기 때문에 색을 여러 번 올리며 화학 반응을 살펴야 하며, 불교미술을 ‘선의 예술’이라고 일컫는 만큼 손가락 근육을 긴장시켜 선을 긋는다. 아침 9시에 기상해 매일같이 꾸준히 운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업실 근처 허명욱 옻칠가가 운영하는 카페 ‘한남작업실’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치우고 작업실로 돌아와 운동을 마치면 그날의 작업을 구상하는 편이죠.” 밤낮 청소해도 도무지 멀끔해지지 않는 작업실이지만 어느덧 배재민에게 이곳은 작업실 이상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맛깔손 │ 그래픽 디자이너 │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

청화아파트가 멀리 내다보이는 통창 너머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원래는 녹지였어요. 작년 12월 이곳으로 이사 올 무렵에도 공사 탓에 바깥 풍경이 꽤나 분주했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을 관찰하는데 묘하게 차분해져요. 창을 멀뚱히 바라보는 일이 어느덧 일과가 되었네요.” 맛깔손 곁에는 윈스턴 처칠을 닮아 ‘처칠’이라 이름 지은 고양이가 목을 축이고 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고양이 처칠은 맛깔손과 함께 녹사평대로의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국내 그래픽 디자인 신에서 맛깔손만큼 눈에 띄게 활동하는 여성 디자이너는 드물 거다. 18일 문화역서울284에서 개막한 전시 <호텔사회>에서 맛깔손이 디자인한 라운지 바인 ‘바 언더워터’는 개막과 동시에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했다. 사람들은 수영장 물결을 형상화한 푸른빛 카펫에 앉아 오렌지 과즙을 듬뿍 넣은 칵테일을 홀짝이며 맛깔손표 바를 즐겼다. 우연히도 인터뷰 당일 영화감독 봉준호의 골든 글로브 수상 소식이 전해졌는데, 영화 <기생충>의 각본집을 디자인한 맛깔손은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증쇄 작업에 돌입해요. 각본을 책으로 만드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지만, 영화가 개봉하기 수개월 전부터 미리 각본을 읽고 작업하는 과정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야근의 든든한 동반자임에 틀림없는 카키색 소파, 스튜디오 씨오엠이 디자인한 곧고 날렵한 책장, 팝 컬러로 물든 아놀드 써커스 스툴을 제치고 작업실에서 가장 상전처럼 모시는 가구는 허먼 밀러의 오피스 체어다. “유일하게 ‘플렉스’ 한 가구예요(웃음). 사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는 컴퓨터와 책상, 의자만 있어도 충분하거든요.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모니터를 노려보는 작업인 만큼 크게 마음먹고 장만했어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작업실이 갖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한동안 작업실에 한이 맺혀 있었어요. 디자인 에이전시를 다니다 독립 스튜디오를 설립하겠다며 야무지게 나올 당시만 하더라도 금세 작업실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점차 패션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그래픽 디자인 신에서 홀로 작업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죠. 2년 가까이 집을 작업실로 삼았을 때는 일어나자마자 잠옷 차림으로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활의 균형이 금세 무너졌어요. 올해는 더도 말고 건강하게 작업하고 싶어요.”

 

최고은 │ 설치 미술가 │ 서울 용산구 원효로

원효대교 남단, 거미줄처럼 이어진 좁다란 골목길에 최고은의 작업실이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연식이 지긋한 소파에 앉으며 시작됐는데, 시선을 돌리면 키 작은 냉장고와 앙상하게 분해된 실외기, 보석의 반열에서 탈락한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미니멀리즘 고물상. 그의 작업실에 대한 첫인상이다. 에어컨, 냉장고 등 지극히 일상적인 백색가전을 해체해 재조합하는 최고은의 설치 작업은 2015년 무렵 시작됐다. 부엌에 우두커니 선 냉장고는 어느 날 문득 최고은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당대 유행하는 입맛에 따라 만들어진 냉장고는 조악할지언정 어딘가 친근하고 나아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거대 도시에서 생활하는 이라면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종속성과 수동성이 철저히 시대의 요구에 따라 생산된 냉장고에서 발견되자 묘한 유대와 공감이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최고은에게 포착된 냉장고는 별안간 세로로 잘린 채 바닥에 눕히거나 공중에 매달린 채 전시장을 누볐다. 일상의 한 조각을 차지하던 사물을 화이트 큐브로 옮기고, 세로로 서있던 형체를 바닥에 납작하게 눕혀 냉장고에 내재된 종속성을 전복시키는 시도가 최고은식 작업의 골조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동안은 경기도 외곽의 고물상을 수소문해 가전을 수집하고, 직장인이 퇴근할 무렵 작업실로 돌아와 사소한 흠집이나 오물을 세척한 후 전기톱으로 외형을 다듬는 과정이 작가에게는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물론 간혹 볕이 지나치게 좋은 날에는 해부한 가전이 비석처럼 놓인 앞뜰에서 와인을 홀짝이며 시간을 보낸다. 고물상과 오래된 공업사가 즐비한 원효로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대개는 장차 작품으로 거듭날 미완의 프로토타입, 시간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낡은 가전들에 파묻혀 하루가 저문다. 최고은은 작업실을 어린 시절 예쁘게 잘린 유리나 알록달록한 과자 상자를 수집해 보관하던 서랍이라고 부른다. “예쁘다고 생각하거나 예쁘지 않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물건을 작업실에 가져와요. 오랜 시간에 걸쳐 가만히 지켜보는 거죠. 정확히 어떤 이유로 끌리는지, 이렇게 소환된 사물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사유의 공간과 다름없어요.”

 

양승진 │ 가구 미술가 │ 서울 성동구 성수대로

양승진은 특이한 가구를 만든다. 풍선으로 만든 ‘블로잉 시리즈’. 풍선을 불고 그 위에 에폭시를 여러 겹 칠한다. 그런 다음 말린다. 이 단순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8번 정도 반복하다 보면 성인 남성이 깔고 앉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단단해진다. 에폭시를 입힌 풍선의 질감이 마치 유리 같아 펜던트 조명으로 쓰기도 하고 여러 개를 겹쳐 소파를 만들기도 한다. 그의 작업실은 뚝섬역 4번 출구에서 200m 남짓 떨어진 골목길의 빌라촌 지하에 있다. 작업실을 구할 때 가장 고려한 것은 크기. 30평 정도의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가끔 풍선이 터질 때면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났고 향이 강한 에폭시와 물감을 쓰려면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어야 했다. 창고로 쓰이던 이 지하실이 딱 적당했는데 여러 가지 보수가 필요했다. 먼저 바닥을 회색으로 칠했다.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가성비 최강이라는 LED 조명을 천장에 H자 형태로 설치하고 난 뒤에야 지금의 작업실 모습이 되었다.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회색 바닥과 밝은 조명은 제 작업물을 더 돋보이게 해주거든요.” 에폭시를 양생하려면 늘 24°C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24시간 내내 온풍기가 돌아가고 여름에는 에어컨이 그 몫을 대신한다. 지하에서 혼자 작업하다 보니 라디오나 음악이 필수다. 세월의 흔적과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쓴 제네바 스피커는 이곳에서 가장 고가의 제품 중 하나. 중고 거래로 60만원에 구입했다. 그의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 과음으로 몸을 못 가눌 정도가 아니면 늦어도 정오 전에는 나와 작업을 시작한다. 저녁 6시 라디오 에서 <박소현의 러브게임>이 흘러나오기 전에 퇴근하는 걸 목표로 하는데 혹시 나태해질까 그가 정한 철칙이다. 보통 출퇴근은 자전거로 한다. 가끔 서울숲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며 광합성을 즐긴 뒤 작업실에 오기도 한다. 3년이 지나도록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서울숲이 있고 주변에 친구가 많아서다. 100m 남짓 떨어진 곳에는 디자이너 김충재의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이 인접해 안면을 텄고 술 한잔하며 친해졌다. 둘 다 거나하게 취해 노래방에서 소리 지르는 걸 좋아해 자연스럽게 단짝이 됐다. 언젠가는 파주나 남양주에 있는 큰 창고에서 작업해보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다른 건 몰라도 근처에 노래방은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구현모 │ 시각예술가 │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조각, 설치, 영상, 드로잉 등의 방법으로 돌, 목재, 금속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펼치는 구현모는 종종 ‘공간의 마술사’라 불린다. 실재와 허구, 원리와 현상 등 표면상 이분법적으로 보이는 두 개념의 경계를 흩트리는 그의 작업은 꿈결에서 본 해상도 낮은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2011 년 오랜 독일 유학 생활 끝에 한국에 돌아온 작가는 아내가 머물던 성수동에 작업실의 둥지를 틀었다. 작업실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사소한 집기까지 취향과 본연의 쓰임에 맞게 설계해 만들어내는 그는 과거 오래된 가정집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개조해 작업이 용이한 탁 트인 구조를 만들었다. 높낮이가 제각 각인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거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볕이 들 수 있도록 오래된 창문을 통유리로 교체하는 식으로. 거의 집을 새로 짓는 대규모 공사였다. H빔 철제 기둥을 잘라서 작업실 동선에 맞는 테이블을 만들고, 자주 잃어버리는 드로잉용 필기구에 쇠를 부착해 언제든 사용하기 편하도록 벽에 붙일 수 있게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작품을 구상하며 휘갈긴 드로잉이나 마케트(작품의 준비 모형)는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일상 집기와 어우러지며 기묘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작업실은 ‘도시 한복판, 번화가 한가운데 폐쇄된 숲속 같은 공간’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실은 이 말에 오차 없이 어울린다.

 

우한나 │ 설치 미술가 │ 서울 성북구 성북로

우한나는 주로 천을 자르고 붙여 작품을 만든다. 본인을 ‘공간을 해석하는 작가’라고 소개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전시 공간의 분위기를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천, 물감, 캔버스, 공 산품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사용한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작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진행한 세 번째 개인전 <Moulage Mélancolique>를 통해서는 폭발하는 듯한 카니발적 색감의 오브제를 활용해 독특한 조형 언어를 제시했다. 한 건물을 통째로 빌려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각 방마다 작품을 전시한 개인전은 금세 ‘힙한 전시’로 입소문이 났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자리한 작업실은 도성길과 낙산공원이 가까워 산책하기 좋다. 취미이자 영감을 얻기 위해 하루 1시간씩 걷는다는 그녀는 성북천을 따라 집에서 작업실까지 걷는 길을 정말 좋아한다. 지금 작업실은 수십 개의 매물 중 가장 넓었고 타일 공사가 되어 있어서 마음이 기울었다. 조금 습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누수도 없었고 그나마 화장실이 깨끗한 편이라는 사실에 위안 삼으며 계약 도장을 찍었다. 가족에게 선물 받은 싱거미싱은 벌써 10년째 큰 고장 없이 제 몫을 해내는 주요 작업 도구다. 바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릴 때 집중이 잘 된다는 이유로 책상을 보통 높이보다 높게 제작했고, 소파는 작업실 한가운데 무대처럼 배치했다. 소파에 앉아 딴짓을 많이 하는데, 쉬는 동안에도 작업을 보며 계속 영감을 얻겠다는 이유에서다.

 

신건우 │ 조각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통일로

경기 고양시, 평일 오후의 아파트형 공장은 분주했다. 화물을 적재한 지게차가 연신 오가고 금속이 부딪는 마찰음이 배경음처럼 깔린 이곳은 파놉티콘과 같은 원형 구조를 띤다. 신건우의 작업실은 스크린, 음향, 실리콘, 가스 경보기 따위를 다루는 80여 개의 입주사를 지나쳐야만 등장했는데, 출입문에는 그럴싸한 명패 대신 부재 시 연락을 달라는 사무적인 안내문이 반겼다. 불현듯 다른 세계에 불시착했다는 얼떨떨함이 찾아온 것은 작업실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높이 7m에 달하는 거대한 사각 큐브에는 흙으로 빚은 여인 조각이 손님을 맞이하듯 드러누워 있고, 비행기에 습격을 당한 남성 형상의 부조와 미완의 회화 작품 따위가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널뛰기하듯 조각, 부조, 평면을 오가며 신화에서 차용한 내러티브를 작품에 녹이는 신건우의 작업에는 ‘초현실적이다’라는 감상이 따라다닌다. 다종의 매체를 오가는 유연함과 기묘한 상상력으로 구현된 초현실적 세계관으로 미뤄보았을 때 신건우는 강박적이기보다 자유로운 사람에 가까울 것이라 짐작했고, 그런 신건우의 작업실은 그의 작업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두 명의 조수와 합을 맞춰 작업을 이어가지만 작업의 순서에는 대중이 없다. 대형 조각을 캐스팅하다 어느 순간 따분해지면 캔버스가 놓인 이젤로 자리를 옮겨 그림을 그리는 식. 작가의 ‘시그너처’로 통하는 재료인 알루미늄도 어떠한 제약 없이 마음대로 가용할 수 있기 때문에 택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고양시는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사방이 논밭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배고픈 작가들이 모여들었고 비닐하우스 안에 작업실을 지어 사용했죠. 이후 도시 정비의 일환으로 아파트 단지와 작가를 위한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선 셈인데 이러한 서사도 재미있게 다가와요.” 그가 말하는 소위 비닐하우스를 가장한 작업실은 그의 작업실에도 존재한다.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한겨울을 대비해 작업실 한구석에 마련한 혹한기용 임시 공간이 그것. 나무로 엉성하게 뼈대를 만들고 전체를 비닐 천막으로 뒤덮어 작업실 안의 작업실을 완성했다. 시리듯 추운 겨울의 어느 새벽, 비닐을 걷고 작업실로 들어가 캔버스며 조각에 내밀한 판타지를 부리는 신건우를 상상해본다.

 

나난 │ 화가 │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그림을 통해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작가 나난입니다.” 나난 작가는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자신을 소개했다. 나 작가는 국내 최초의 윈도 페인터, 대표작 ‘롱롱 플라워’로 대중에게 친숙한 작가다. 한섬, 파머시, 아이오페, 아리따움 등과 협업했고 최근에는 한국 도자식기 ‘광주요’에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경리단길에 오래 살았다. 이태원 곳곳에 지워진 페인트에 그림을 그린 ‘나난 가드닝’ 프로젝트, 이태원에 사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태원 주민일기>를 출간할 정도로 애정이 깊다. 덕분에 ‘자랑스러운 용산구민상’까지 받았다. 경리단길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보고 겪었고, 한때는 이 골목이 왁자지껄할 정도로 친구도 많았다. 몇 년 사이 경리단길의 임대료가 말도 안 되게 올랐다. 하나둘 떠나고 지금은 장윤주 등 몇 명만 근처에 살고 있다. 나 작가의 작업실은 경리단길 대로변에서 한 블록 뒤에 있다. ‘이런 그림 같은 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새하얀 3층짜리 건물. 1층은 작업실, 2층은 미팅룸, 부엌, 화장실이 있고 3층은 그녀가 잠을 자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거주 공간과 작업실을 분리해야 한다지만 그녀는 집에서 쉬면서 편하게 작업하는 스타일. 아침 일찍 일어나 햇살을 맞으며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와인을 즐기며 밤 11시에는 3층으로 올라가 잠자리에 든다. 몇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루틴이다. 그녀는 최근 책상을 바꿨다. 특별 주문 제작했는데 서랍을 열 필요 없이 손으로 모든 물건을 꺼낼 수 있다. 보통 작가들은 물감 때문에 흰색 상판을 기피한다. 나 작가는 그림을 올려놨을 때 직관적으로 볼 수 있고 발상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과감한 결정을 했다. 가구 밑에는 바퀴를 달아 큰 작업을 할 때 이동이 용이하도록 했다. “제가 생각하는 작업실의 모습은 작업 공간이지만 가정집 같지는 않았으면 했어요.” 누가 봐도 그런 공간을 나 작가만의 감성을 녹여 잘 꾸몄다. 낮 시간 내내 햇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들어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