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세컨 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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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에게 귀중한 것이던 어떤 물건이 서울로 왔다.

밀레니얼 세대가 지나고 Z 세대가 모든 걸 쥐고 펴는 시절 속에 살게 됐다.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의 기질은 극명하게 다르고, 그 명백한 차이는 하이 패션의 최전선에 있는 수 많은 브랜드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급진적 유행에 쉽게 마음이 요동치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그간 콧대 높던 명품 브랜드로 하여금 스웨트 셔츠에 그들의 로고를 공장식으로 찍어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희소성에 목매는 Z 세대는 그런 것들을 오히려 무례하고 천박한 것으로 여겨 버린다. 그들이 관심사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그들에겐 1991년에 출시된 헬무트 랭의 슬리브리스 니트 톱 하나가 오프 화이트와 나이키의 신상 협업 에디션보다 더욱 값진 것으로 다가온다. 이런 흐름은 유럽과 미국을 지나 서울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간 서울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세컨 핸즈’ 스토어가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현실이 그를 여실하게 증명하다. 그 중에서도 유별난 시선과 남다른 취향을 거친 탁월한 선택이 돋보이는 가게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들은 ‘세컨 핸즈’를 찾기 위해 해외에서 혈안으로 다니는 일을 줄게 만든다.

Cemeterypark cemeterypark.kr

을지로에 위치한 세메터리 파크는 그들이 자리 잡은 동네의 습성과 매우 유사하다. 날 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패션 아이템들이 그들 속에 가득하다. 주로 일본과 유럽, 미국 등의 여러 도시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들을 사고 들인다. 대체적으로 제한은 없다. 좀처럼 성의 구별을 가리기 힘든 아이템들이 많아 흥미롭고, 대체로 실용적인 것들이 많아 무엇인가를 사고 들이는 일에 후회가 없게 만든다.

Bruant bruant.kr

브루앙은 세컨 핸즈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가게 중 하나다. 누군가 입다 버린 ‘빈티지’가 아닌, ‘값어치가 있는 어떤 중고 물품’을 일컫는 세컨 핸즈의 진실된 의미를 말이다. 그들은 프라다나 로에베, 셀린느, 샤넬 등 한 때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했을 것이 분명한 하이 패션 브랜드들의 올드 컬렉션만 취급한다. 일본에 거주하는 덕분에 셀렉션이 독보적이다. 그래서 오직 온라인에서만 구매 가능하다.

RCRC istagram.com/rcrc.kr

패션 에디터인 부인과 패션 사진가인 남편이 관리하고 운용하는 세컨 핸즈 스토어라면 그 어떤 의구심도 생겨나지 않을 테다. 수식어 그대로 옷이라는 것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어야 외우고 뱉을 법한 브랜드들이 그들 속에 즐비하다. 블레스나 토가, 파코 라반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스스로를 ‘컬렉팅 서비스’라 일컫는다. 유행이 대중적으로 퍼지고, 덕분에 쉽게 지루해져 버리기는 요즘 패션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흥분과 자극으로 다가올 테다.

Vintage Space instagram.com/vtg_space(비공개 계정이라 팔로우가 필요하다)

숭인동에 위치한 빈티지 스페이스는 서울 패션에서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소문난 곳이다. 그곳엔 ‘올드 클래식’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온갖 진귀한 아이템이 숨어있다. 지천에 널린 것이 그런 것인데 불구하고 빈티지 스페이스가 남달라 보이는 건 그들의 고집스런 취향 때문일 테다. 그들은 과거의 것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패션에 대해 누구보다 잽싸게 파악하고 그들만의 시선으로 해석한다. 그것이 예민하기로 소문난 패션계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는 이유이자 그들만의 가치일 테다.

프리랜스 에디터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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