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지코가 설립한 KOZ 레이블의 첫 소속 아티스트 다운 인터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새벽의 노래 (다운)

2020-01-08T01:55:44+00:002020.01.08|FEATURE, 피플|

밤이 물러나고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순간, 다운(Dvwn)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터틀넥 톱과 줄무늬 셔츠, 가죽 보머 재킷, 팬츠는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제품.

새벽을 의미하는 ‘다운’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블랙 독의 이미지를 지우기 힘들었다. 올해 래퍼 지코가 설립한 KOZ 레이블의 첫 소속 아티스트 다운(Dvwn)의 이야기다. R&B 아티스트라는 명찰,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음악을 ‘투척’해온 행보 또한 블랙독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해가 밝은 때는 출몰하지 않고 웅크려 있다가 개와 늑대만이 눈을 밝힌다는 새벽에 깨어나 음울한 R&B를 읊조린다는 서사, 너무나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은 그가 KOZ와 계약하기 이전인 2018년 출시한 EP 앨범 <Panorama>를 들으며 천천히 허물어졌다. 5개 남짓한 트랙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막연히 슬프거나 한없이 침잠하기보다 바닷속을 유영하는 것만 같은, 하강이 아닌 상승의 곡선이었다. 그리고 소년의 그림자가 남아 있지만 고음으로 치닫는 순간 불현듯 폭발하고 마는 목소리로는 줄곧 치유와 구원을 노래한다. 지극히 무해하고 보드라운, 선한 이야기 말이다. “원래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생 때 조지아와 터키를 여행하면서 틈틈이 산문을 썼거든요. 글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260페이지 분량의 산문집이 손에 쥐어지더라고요. 여기서 이야기를 발췌해 어른용 동화 같은 앨범을 만들자 싶었죠.” 다운의 말이다.

2017년 무렵 작업한 <Panorama>는 어린 시절 바다에 빠진 후 겪은 지독한 물 공포증에서 시작되었다. 오래 앓아오던 공포증을 물리친 이야기로 문을 열고(‘현상’), 물에서 유영하는 즐거움을 노래하다가(‘유영’), 재차 공포를 겪던 시절을 회상하고(‘Phobia’), 물에 빠진 순간마다 누군가가 구해주었던 동화 같은 기적에 감사하며(‘Fairy’), 물에서 빠져나와 다시금 물을 바라보는 것(‘See the Sea’)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슬픔을 잔잔히 위로해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물론 저조차 어두워질 때가 있죠. 그럴 때면 거대한 중력이 저를 짓누르는 것만 같아요. 가사가 무거워지면 멜로디만큼은 늘 밝게 쓰려고 하는 편이에요.” 서서히 서사가 시작되어 종내 마침표를 찍게되는 매끄러운 구조는 앨범의 타이틀이 자 전체 풍경을 펼쳐 보이는 사진 기법인 파노라마를 따랐다. 처음 의도한 대로 한 장의 앨범인 동시에 한 편의 동화로 완성한 것이다. 기타, 피아노, 드럼을 중심으로 한 미니멀한 구성임에도 만듦새가 헐렁하지 않다는 것에서는 ‘신인답지 않다’는 감상도 어렴풋이 스친다.

주얼 장식 셔츠와 핀스트라이프 팬츠, 퍼 장식 트루퍼 햇, 허리에 감은 벨트, 슈즈는 모두 프라다. 줄무늬 넥타이는 펜디 제품.

시계를 조금 돌려, 음악에 얽힌 다운의 오래된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한다. 그의 아버지는 오랜 세월 가수를 꿈꿔온 사람이었다. “흑인 음악을 들으며 자랐거든요. 아버지는 대부분 보컬리스트 위주의 음악을 들려주셨는데, 특히 스티비 원더나 루더 밴드로스를 좋아하신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막연히 보컬이나 작곡에 대한 열망을 가졌어요. ‘언젠가 나도 플레이어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은 늘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훌쩍 서울로 향했고, 100만원 남짓한 돈으로 구입한 첫 물건은 마이크와 오디오 인터페이스였다. 20174월 사운드 클라우드를 개설해 직접 작사, 작곡한 음악을 업로드했고 점점 리스너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딱히 불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끼던 시절도 이때였다. 새벽이면 불면증에 시달리곤 했지만 문학과 음악이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채워주었고, 그중에서도 나태준의 시집과 유재하의 가사는 어떤 구원과도 같았다. 당시 심취했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주인공이자 구제 불능의 알코올 중독자 벤 샌더슨(니컬러스 케이지)처럼 술에 만취해 휘갈기듯 가사를 쓰고 녹음한 트랙이 12월 공개한 싱글 <새벽 제세동>의 타이틀곡 ‘마지막’이기도 하다.

가죽 재킷은 보테가 베네타, 선글라스는 젠틀몬스터 제품.

오로지 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자신을 알리던 시절, 좀처럼 정보가 드러나지 않던 다운을 두고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뮤지션인지 궁금해하던 사람 중의 하나가 래퍼 지코였다. <panorama>가 발매되기 직전이었고, 사운드 클라우드를 개설한 지 6개월이 흐른 무렵이었다. “히트곡을 만들고 싶은가, 마스터피스를 만들고 싶은가”를 주제로 나눈 둘만의 사뭇 진지하고 다소 거창하기까지 한 대화가 후자로 결론이 맺어질 즈음 다운은 그렇게 대표인 지코보다 먼저 KOZ에 도장을 찍고 소속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12KOZ에서 던진 첫 출사표 <새벽 제세동>이 발매되었다. 수록곡인 ‘마지막’과 ‘불면증’은 앨범 타이틀이 지시하듯 모두 새벽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새벽을 향한 심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다운에게 새벽이란 24시간으로 이뤄진 하루에서 모든 감정이 최고조로 증폭되는 시간대다. 다시 말해 이별이나 우울 따위의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게 되는 시간들. 새벽에만 작동하는 심장 제세동기 같은 음악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건 자장가가 아니에요. 오히려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는 사람들이 듣고선 더 잠에 들지 못하게 만드는 음악에 가깝죠.”

검정 터틀넥 톱은 캘빈 클라인 진. 팬츠는 디올 맨 제품, 헬멧과 장갑은 에디터 소장품.

디스코그래피의 첫 테이프를 끊었던 <Panorama>부터 다운 그 자체이기도 한 새벽에 기대어 발매한 <새벽 제세동>에 이르기까지, 다운은 시종 잔잔하지만 일순의 파문을 일으키는 음악을 시도해왔다. 여기에 R&B 아래 온갖 세부 장르를 끌어와 곡의 덩치를 화려하게 키우는 대신 어쿠스틱 악기와 목소리를 주축으로 곡을 구성하는 정공법과도 같은 형식이 합쳐지면서 그만의 색깔이 얼추 그려지게 됐다. 좋은 음악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지가 곧 그 뮤지션의 음악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운은 말한다. “전부 제쳐두고 가사와 멜로디 없이 트랙만 있는 상태의 사운드를 들어요. 아무것도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음을 충분히 울린다면 작업을 진행하는 거죠. 좋은 밑그림 위에 채색하는 듯한 느낌으로. 저는 단지 따뜻하고 수수한 서사가 좋아요. 그리고 생각보다 신파에 굉장히 약하고요(웃음). 며칠 전에는 영화 <월-E>를 다시 봤어요. 대사도 한 줄 없이 극이 진행되는데 어느 순간 커다란 정으로 두들겨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티스트마다 반드시 고유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앞으로도 <월-E>에서 느낀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는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