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적 선지자'와 다름없던 백남준이 남긴 것에 대하여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낙관적 선지자

2020-01-01T20:57:14+00:002020.01.04|FEATURE, 컬처|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대규모 회고전 <NAM JUNE PAIK>이  2월 초까지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다. 비관의 미디어 테크놀로지 시대에 ‘낙관적 선지자’와 다름없던 백남준이 남긴 것에 대하여.

매스 미디어와 신기술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일찍이 미래에 다가올 인터넷 시대를 예고한 ‘낙관적 선지자’ 백남준.

백남준(1932~2006)은 한동안 내게 거대하고 케케묵은 공룡 화석이었다. 어릴 때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이 하나같이 브라운관 TV를 쌓아 올린 ‘비디오 조각(Video Sculpture)’들이었던 탓이다. 그 규모와 현란함은 압도적이었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비디오아트의 아버지’의 작품이라니 마땅히 경외감을 느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각 TV 모니터에서 번뜩이는 이미지들은 좀 진부해 보였고, 그 전체 모습은 고색창연한 탑이나 기념 조형물 같았다. 그것이 맥락 없이 백남준의 후기 작품만 보면서 갖게 된 크나큰 오해였음을, 그의 더 이른 시기 작품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현대미술의 주요 거점인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29일까지 열리는 백남준 회고전은 특히 의미 깊게 다가온다. 그의 화려한 1980년대 비디오 조각들은 많이 나오지 않고, 그 이전의 다양한 작품이 상세한 아카이브와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숙경 박사를 비롯한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들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큐레이터들이 공동 기획한 이 전시는 연대순이 아니라 주제별로 나뉜 12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를 따라가며 점차 그려지는 백남준의 모습은 20세기에 21세기 미디어 풍경을 예견한 날카로운 선지자이자, 인간과 IT의 긍정적인 결합을 믿은 유쾌한 낙관주의자의 모습이다.

‘Internet Dream’ 앞에 선 관람객.

먼저, 백남준이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한 빌라를 통째로 빌려서 연 개인전 <Exposition of Music Electronic Television>을 부분적으로 재현한 제3전시실을 보자. 당시 백남준은 기이하게 변형시킨 피아노와 다른 악기들을 이 방 저 방에 설치해놓고 관람객들이 돌아다니며 그것들을 연주해 각자 새로운 음악을 만들도록 했다. 아니, 새로운 음악뿐만 아니라 새로운 오감의 체험을 만들도록 했다. 어떤 피아노 키는 방 조명과 연결돼 불을 켰다 껐다 하고, 어떤 키는 사이렌에, 어떤 키는 히터에 연결돼 있었으니까. 백남준은 그렇게 그의 스승 존 케이지의 불확정성과 우연의 음악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지금 디지털 시대에 활성화된 쌍방향 소통과 생산자이자 소비자를 뜻하는 프로슈머(Prosumer)의 개념을 이미 그 시절에 아날로그로 구현했다. 1963년 개인전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TV를 조작한 작품들이다. 이들에서 알 수 있듯이 백남준은 TV가 전달하는 내용보다 그 매체적 특성 – 이미지가 계속 빠르게 변하고 파편적이고 불안정하며 편재적인 특성 – 이 우리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매체 철학자 마셜 매클루언이 1964년 “미디어가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말이다.

이들 작품 중 ‘TV를 위한 禪(Zen for TV)’(1963)은 특히 강렬하다. 세로로 세운 브라운관 TV 모니터는 검은 ‘먹통’ 상태인데 한 줄기 빛의 선이 수직으로 그 암흑을 가른다. 마치 TV가 어지러운 화면을 멈추고 지관명상을 하다가 색즉시공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인 것처럼! 사실 이 작품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TV 한 대가 전시장으로 옮겨지던 중 망가져서 한 줄기 광선만 보이게 되자 백남준이 세로로 세우고 ‘TV를 위한 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개념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유명한 변기 작품 ‘샘’에 대해 말한 것처럼 “평범한 생활용품을 가져와 새로운 이름과 관점 아래 그것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놓음으로써 사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창조”한 것이다.

뒤샹은 백남준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1974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뒤샹은 비디오 빼고 모든 걸 했어요. 들어갈 문을 크게 만들고 나갈 문은 아주 작게 만든 거죠.” 뒤샹이 예술의 지평을 거대하게 넓혀준 한편, 이제 미술가들이 무엇을 해도 새롭기 힘들게 만든 점을 토로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백남준은 새로운 비디오 매체로 실험을 계속하면서, 뒤샹의 독창적인 후예이자, 매체 철학을 논문 대신 작품으로 보여주는 오디오비주얼 인문학자로서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실험의 흥미로운 결과물 중에 제4전시실에 있는 ‘닉슨(Nixon)’이 있다. 훗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퇴하는 미국 대통령 닉슨의 TV 화면 모습이 마그네틱 코일이라는 심플한 장치에 의해 유머러스하게 뒤틀린다. 심각하게 연설하는 닉슨이 마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출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인에 대한 조롱일 수도 있고, 정치가 결국 쇼가 되는 현실에 대한 풍자일 수도 있고, 무빙 이미지의 변형에 대한 미적 실험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제1전시실을 빛낸 ‘TV Buddha’. 불상이 CCTV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1전시실에 있는 ‘TV 부처(TV Buddha)’(1974)는 선지자로서의 백남준의 면모를 특히 잘 보여준다. 불상이 들여다보는 자신의 이미지는 거울이 아닌 CCTV에 실시간으로 비치는 모습이다. 불상은 미디어의 주인공이 된 자신을 나르시시즘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마치 21세기에 소셜미디어로 라이브를 하는 우리처럼? 하지만 CCTV는 감시와 사생활 노출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불상은 그것을 개탄하면서도 피하지 않고 그 앞에 앉아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찾고 올리는 관심사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고 거대 IT 기업들의 데이터로 수집돼 팔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소셜미디어를 멈추지 못하듯. 아니면 그는 부처이기에 이 모든 것을 명상하고 통찰하고 있는 것일까?

제2전시실을 밝힌 ‘TV Garden’. 풀숲에 꽃처럼 TV 모니터들이 섞여 있다.

2전시실에 있는 ‘TV 정원(TV Garden)’(197477)도 이에 못지않게 예언적이다. 풀숲에 꽃처럼 TV 모니터들이 놓여 있고, 그들은 세계 각지의 예술과 대중문화를 무작위로 섞은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1973) 이미지를 끊임없이 띄운다. 백남준은 이미 1964년에 이렇게 말했다. “내 실험적 TV가 언제나 재미있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자연이 그렇듯이 말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건, 아름답게 변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싫든 좋든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자연과 섞여 자연처럼 우리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테이트 모던에서 백남준 전시 연계 토크를 진행한 영국 미술가 자크 블라스는 “과연 백남준은 선지자(Visionary)로 불릴 만한 아티스트였습니다. 이제는 선지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아티스트가 아니고 거대 IT 기업 CEO들인 시대가 됐지만요”라고 했다. 그는 그런 기업들의 사옥들 – 마치 에덴 동산 같은 드넓은 정원에 둘러싸인 최첨단 건물들 – 또한 놀랍도록 백남준의 ‘TV 정원’을 닮았다고 지적했다. 그 사옥들은 모두 테크노 유토피아의 꿈을 반영하고, 백남준의 작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블라스를 비롯한 백남준의 21세기 후배 미술가들은 그들에게서 정보 독점과 상품화로 인한 디스토피아의 그림자를 본다.

한편, 백남준은 ‘스튜디오에서 고독하게 작업하는 천재 미술가’의 신화에 매달리지 않았고, 다가오는 통섭과 협업과 집단 창작의 시대에 선제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제4전시실에 나와 있는 ‘로봇 K456’(1964)은 걷고 먹고 싸고(!) 음악을 들려주는 ‘최초의 비인간 행위예술가’인데, 일본 공학자 아베 슈야와의 협업 작품이다. 또한, 백남준의 오랜 벗인 미국 현대 무용가 머스 커닝햄, 미국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 독일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와의 협업이 각각 제5, 제9, 제10 전시실에 집중적으로 나와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재해석한 작품 ‘Sistine Chapel’.

이렇게 일본, 독일, 미국을 넘나드는 인맥과 우정은 백남준의 종횡무진 활동 궤적과 다중 국적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는 진정한 세계 시민이었고, 또한 새로운 정보 미디어 기술을 통해 국경을 뛰어넘어 모두가 그런 세계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www)이 생기기 한참 전인 1974년에 이미 정보가 실시간으로 교환되고 공유되는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제7전시실에는 그런 백남준의 꿈과 믿음을 담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1984) 등의 실시간 위성중계 방송 프로젝트가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으로 가득 찬 이들 방송을 지금 보고 있으면 천진난만하게 느껴질 정도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세상은 결코 하나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글로벌리즘의 환상이 깨지고, 신국가주의와 신고립주의, 각종 편 가르기와 혐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맹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거대 IT 기업들이 제공하는 ‘편리한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더더욱 편향된 정보의 에코 체임버 속에 갇히고 있다. 그리고 그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 기업들의 손에 들어간 우리의 세세한 개인 정보는 상품이 되어 맞춤형 광고를 하려는 기업들에게 되팔리고 있다.

음악적 요소를 작품에 접목했던 ‘TV Cello’.

바로 이 점을 미국 <뉴욕 타임스>의 제이슨 파라고, 영국 <가디언>의 조너선 존스 같은 평론가들, 그리고 백남준 연계 토크에 나온 자크 블라스까지 지적했다. 그러나 블라스는 백남준이 테크놀로지에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뇨, 그 당시 백남준은 그럴 만했습니다. 1990년대 인터넷 시대가 열렸을 때도 사람들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죠. 물론 저는 백남준보다 훨씬 덜 낙관적이지만, (지금의 잣대로) 당시 그의 낙관성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테이트 전시장 한쪽에 적혀 있는, 그가 젊은 예술가들에게 한 1992년 발언은, 우리의 울적하고 심드렁한 마음에 불꽃과 전율을 일으킨다. “나는 미술사에 아직도 새로운 것을 시도할 기회와 틈새가 많다고 장담할 수 있다.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을 간과하고 이미 모든 시도가 이루어졌고, 더는 새로운 돌파구가 없다고 불평하지만 말이다. 세계의 역사는 말한다. 우리는 게임에 이기는 게 아니라 게임의 룰을 바꾼다고.” 미술사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IT와 정치 경제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 위대한 낙관적 선지자의 말에서 영감과 용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