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경은 '지금 현재를 지탱하는 불안한 아름다움'을 말해왔다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불안한 아름다움

2020-02-04T18:36:42+00:002020.01.03|FEATURE, 컬처|

강서경은 ‘지금 현재를 지탱하는 불안한 아름다움’을 말해왔다. 균형과 불안은 그에게 작업을 시작하는 실타래의 첫 올이자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 된다.

‘사각 생각 삼각’ 전시장에 선 강서경 작가.

“생전에 할머니는 패션, 음악, 문학을 순수하게 사랑하던 분이셨어요. 병상에 누워 계시던 마지막 순간에도 고운 원피스를 차려입고 해사한 빛깔의 립스틱을 바르며 인사를 건네던 분이었죠.”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굽은 등을 목도하며 시작한 설치 연작 ‘그랜드마더 타워’는 2011년부터 시작된 강서경의 가장 오랜 연작이다. 원형 조형물을 탑처럼 높다랗게 쌓아 올리고, 꼭대기로 갈수록 몸체가 기우뚱 기울어지는 이 비틀비틀한 작품은 2019년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현장을 빛냈다. 내밀하고도 오래된 기억을 하나의 작품으로 불러오기 위해 작가는 가장 먼저 버려진 접시 건조대를 수거해 앙상한 뼈대를 색색의 고운 실로 정성스레 감는 고된 노동을 치렀다. 작업실 한쪽 구석에서 묵묵히 실을 감는 작가를 상상해보면 그건 차라리 성스러운 의식에 가까웠을 것이다. 실 감기를 반복하며 버려진 접시 건조대의 잊힌 시간을 위로했을 터이고, 동시에 노쇠한 할머니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스스로 치유와 위안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파가 벽에 몸을 지탱해 간신히 일어서려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랜드마더 타워’는 위태롭고 불안한 균형을 유지한다. 개개의 조형물을 수직으로 쌓는 과정에서 어떤 접착제도 사용하지 않은 채 오로지 실의 마찰과 틈새에 덧댄 부드러운 가죽과 천이 서로가 쓰러지지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금방 툭 무너질지언정 최소한의 힘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은 얼핏 불안해 보이지만 아등바등 서로를 붙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상상되면서 울컥 무언가가 차오를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리고 작품에서 엿보이는 불안한 아름다움은 강서경이 오래 힘주어 말해온 단어들이다. “저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현재의 상태가 보다 아름답게 지탱되고 유지되길 바라요. 그리고 제가 이를 지탱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싶어요.” 삶에서 균열을 발견하는 순간 예술가가 취하는 태도는 둘 중 하나일 거다. 정면 승부하듯 균열을 온몸으로 직시해 균열 그 자체를 펼쳐 보이거나, 그 속을 비집어 불안정할지언정 좁다란 희망을 찾아 위로하거나. 강서경은 어쩌면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불안한 균형에 주파수를 맞추며 작업을 이어온 강서경은 2015년 시청각(폐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발 과 달>을 조금은 특별하게 기억한다. 조선 시대 세종이 창안한 유량악보인 <정간보(井間譜)>에서 착안해 ‘정(井)’을 포함한 여러 설치 작품을 느릿하게 쌓아가는 두 남녀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 ‘검은아래 색달’을 선보인 전시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모두가 불안한 삶을 극복하며 살아가잖아요. 작가이기 이전에 한 개인인 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지금을 보다 안전하게 숙성시키면서 살 수 있는 상태에 대한 고민이 <발 과 달> 전시의 시작이었어요.” 전시의 모티프이자 대중이 소리의 형태를 자유롭게 기록하기 위해 고안된 <정간보>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사각형 격자로 이루어진 악보다. 당시 사람들은 격자 1칸을 1박으로 쳐 소리의 길이를 식별했으며 격자 안에 소리의 높낮이를 기입했다. 캔버스가 사라진 사각의 빈 프레임 형상을 띤 ‘정’ 연작은 이러한 <정간보>에서 착안한 작품이자 이후 작가의 작업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기본 조형 단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26분 길이의 비디오 작업 ‘검은아래 색달’에서는 두 남녀가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정’을 옮기며 서로 스쳐 가고 때로 만나는 퍼포먼스를 이어간다. “’검은아래 색달’을 살피면 인물들이 ‘정’을 굉장히 가볍게 들어 천천히 움직여요. 한 사람이 짊어진 무게를 가볍고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던 작품이죠.” 이후 작가는 ‘정’을 고스란히 바닥으로 내려 비로소 한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안전한 땅이자 가로 61cm, 세로 81cm 크기의 사각 플랫폼인 ‘검은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작업을 확장했다. ‘검은자리’는 한 개인이 딛고 설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자, 개인이 움직임의 범위를 넓혀감에 따라 무한히 확장하는 기본 그리드인 셈이다. “‘검은자리’를 만들고 저한테도 아주 작은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 괜찮아. 할 수 있어’라며 비로소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되었죠.”

국내에서의 반가운 행보이자 201910월 오픈해 20203월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강서경은 작가로서 오랫동안 붙잡고 고민한 단어들을 조합해 <사각 생각 삼각>이라는 전시명을 고안했다. 다소 추상적인 전시 제목은 이렇게 풀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에서 시작해 작가가 오래 천착해온 텅 빈 ‘사각’에 저마다의 ‘생각’을 담아 3개의 꼭짓점이 안전하게 만나는 ‘삼각’이라는 균형의 무대에서 서로가 소통하며 이야기하는 것. 전시는 미술관 지하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시작된다. 포석정을 콘셉트로 만든 구불구불한 길이 관객을 맞고, 이곳을 산책하듯 거닐면 ‘정’, ‘자리’, ‘둥근 무게’ 등의 연작이 반긴다. 다종의 작품이 전시장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한 자리에 서서 감상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에서 말하는 진경(眞景)이란 참된 풍경을 의미해요. 관념산수화와 달리 실제로 몸을 움직여 걷고 직접 본 자연을 그리는 것을 진경이라고 표현했죠. 전시장 곳곳에 ‘이곳에 앉아서 작품을 보세요’ 같은 지시문을 적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예요. 내가 옮기는 걸음걸이에 따라 그 풍경이 시시각각 변할 테고, 이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작품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