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네 스튜디오의 창의적 유토피아로의 초대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집들이

2019-12-28T21:43:04+00:002019.12.30|FASHION, 뉴스|

스톡홀름의 Floragatan 13.  아크네 스튜디오의 창의적 유토피아로의 초대.

1996100장의 데님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아크네 스튜디오. 오늘날 패션뿐 아니라 문화 예술의 발전을 견인하는 최전선의 프런티어로 성장한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20년 만에 새 사옥을 마련하고 그들만의 유토피아에 세계 곳곳의 프레스 150여 명을 초청했다. 주소는 플로라가탄 13. 체코 건축가 얀 보찬이 1972년대에 지은 스톡홀름의 구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관 건물이다. “사옥 이전을 위해 새로운 장소를 찾으면서, 저는 패션 디자인의 과정을 그려보았습니다. 새로운 장소는 미래적인 기운이 넘치는 실험적인 공간으로서 패션의 동맥이 힘차게 흐르길 바랐습니다. 드디어 이 공간이 완성되었고, 우리가 함께 이루어낸 공간이라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손은 새로운 본사가 하나의 패션 스쿨 같은 분위기로 보이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그의 든든한 예술가 친구들이 출동해 힘을 보탰는데, 이 건물을 둘러보며 그들의 손길이 닿은 곳을 발견하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총 10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핵심 구간은 6층의 회의실, 0층의 도서관, K2층의 식당, 3층의 아틀리에다. 먼저 건물의 얼굴, 로비에는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맥스 램의 손길이 묻어 있다. 그는 신사옥 프로젝트를 위해 맞춤 가구와 특별한 장식 요소의 작품을 완성했는데, 건물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돌덩이가 바로 그것. 이는 바이킹을 예찬하며 돌로 조각한 의자로, 들어서는 순간 아크네 스튜디오가 가진 아티스틱한 DNA를 한눈에 드러낸다. 그뿐이 아니다. 도서관에 자리한 금속 테이블, 회의실에 둔 나무 라운드 테이블과 강렬한 패턴의 러그 역시 모두 그의 손길 아래 탄생했다. 한편 예술가 대니얼 실버는 수년에 걸쳐 모은 아크네 스튜디오의 남은 원단으로 건물 곳곳의 공간을 위한 추상적 콜라주 시리즈를 만들었고, 브랜드의 오랜 협력자인 프랑스 예술가 브누아 랄로즈는 이 건물의 모든 조명을 맡았다. 그가 선택한 분홍 조명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브루탈리즘 건축물 안에서 온화한 대조를 이루며 부드러움을 주는 중요한 요소. 로비를 지나 보이는 1층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은 직무나 직책에 관계없이 누구나 와서 책을 빌리고 영감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헬무트 랭의 조각과 아티스틱한 조명, 따뜻한 벽난로가 어우러진 이 공간은 개인적으로, 회사원으로서 가장 부러웠던 곳이다. 여기에서는 누구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회의실, 아틀리에, 식당까지, 건물을 둘러보니, 이곳은 다양한 부서의 직원들이 서로 자유롭게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음을 새삼 느낀다. 자유로운 만남과 소통은 곧 창의적인 발상으로 이어질 것. 조니 요한손이 그린 큰 그림은 아크네 스튜디오가 펼쳐갈 유무형의 발전적 미래에 굳건한 기준이 될 것이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CEO 마티아스 매그누손과 크리에이티 디렉터 조니 요한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손과 나눈 이야기

20여 년 만에 당신만의 디자인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아직 완성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지만, 20년은 매우 긴 시간이어서 영원처럼 느껴진다. 나는 늘 내가 특별한 작업을 해낼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나 혼자 이뤄낸 일은 아니다. 이 브랜드를 만드는 데 수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아직 끝이 보이진 않지만, 일단은 자랑스러울 만한 역사를 가지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우린 특별한 것을 만들어냈다.

이 공간에 세계 곳곳의 프레스와 인플루언서를 초대했다. 이곳은 일종의 창의력 학교인데, 완성과 미완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여러분을 초대했다. 그리고 이번 파티는 나와 협업한 사람들, 친구들과 파트너들을 위한 파티다.

당신이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 지금의 눈부신 성장과 이런 근사한 건물을 상상했나?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더 원한다. 혹시 밴드 ‘오아시스’를 아는가? 전에 ‘오아시스’ 인터뷰를 봤는데 당시 그들은 큰 성공을 거둔 상태였다. 그래서 리드싱어에게 “지금 행복한가?”, “지금 매우 잘되고 있다”라고 물으니 이렇게 소리치는 거다. “난 더 원한다! 난 더 원한다!” 그런데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어쨌든 난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욕망은 컸다. 우리는 도전을 즐긴다. 어렵긴 하지만 흥미롭고, 늘 고무되며 용기가 넘친다.

이 공간을 꾸미기 위해 수많은 아티스트와 협업했다. 그 친구들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가? 꾸미는 일은 매우 쉬웠는데 일단 패션 학교 같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하길 원했다. 가구 디자인은 맥스 램(Max Lamb)이 맡았다. 대니얼 실버(Daniel Silver)는 주로 교회 성화를 그리는 아티스트인데 여러 차례 협업도 했고 많은 얘기를 나눈 작가다. 그는 자투리 직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조명 디자인은 브누아 랄로즈(Benoit Lalloz)가 맡았다. 색과 텍스처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조명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조명은 전부 그 혼자 담당했다. 이들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옛 체코 대사관 건물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공간은 어디인가? 도서관. 이 도서관의 책은 대부분 내가 완독한 것들이다. 창의적인 사람끼리 대화할 때 특징이, 말과 그림을 써서 설명해도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가 완벽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팀으로 일할 때 가장 힘든 점이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연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을 보면 내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 생각 안에서 연결된다. 한 그룹 내에서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지점이 매우 흥미롭다. 도서관은 이곳의 심장 같은 곳이다. 내 두뇌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다른 종류로 아크네 스튜디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일까? 갤러리. 더 순수하게 예술품만 전시한 갤러리를 생각해봤다.

갤러리를 만든다면, 꼭 전시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가? 많이 있는데, 현재 푹 빠진 작가가 있다. ‘스티븐 셰어(Stephen Shere)’라는 캐나다 화가의 작품. 그는 뉴욕의 ‘롬(Gallery Rome) 갤러리’에 소속되어 있다.

스칸디나비아 또는 스웨덴 스타일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무엇일까? 당신의 언어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정의한다면? 내 생각에 스칸디나비아 스타일과 스웨덴 스타일은 별개다. 그러니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나에게 물으면 매우 애매하게 답할 수밖에 없다. 반면 스웨덴 스타일은 조금 더 쉽게 답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매우 기능적이고,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어 자연 색을 많이 쓰고, 매우 진지하다. 그리고 약간 순수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난 세대가 다르고, 음악 백그라운드를 지니고 있어서 조금 더 대범한 편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아크네 스튜디오는 대중적이며 획기적이다. 우리는 조금 더 특별하다. 오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아마 역사와 지리적 환경 문제일 거다. 역사와 기능, 자연적인 것 등. 둘러보면 롱우드 같은 나무가 많지 않은가? 지루하다는 오해도 있고 미니멀하다는 오해도 있다. 나는 패션에서 미니멀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매우 희한한 표현이다. 패션에서 미니멀은 그냥 지루하다는 뜻이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성공은 기능적이면서, 자연적인 스웨덴 스타일을 그대로 계승해서인가? 아니면 그에 반대되는 특징을 가졌기 때문인가? 우린 반대되는 특징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하나는 우리가 현지에 뿌리를 내린 브랜드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의 임무는 매우 흥미롭다. 우리는 단순한 현지 브랜드만은 아니다. 정통 스웨덴 음식만 고집하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더 실험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첫날부터 그랬듯이 늘 세계를 보고 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정신이다. 현재엔 매우 당연한 사고방식이지만 1996년에는 흔치 않았던 일이다.

아크네는 자체 잡지 <아크네 페이퍼>를 만들 만큼 프린트 미디어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프린트 미디어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지금, 당신의 마음을 끄는 플랫폼은 무엇인가? 인스타그램.

협업자를 찾을 때 인스타그램을 써본 적이 있나? 지난 캠페인에서 무수비 가방(Musubi bag)을 활용했는데, 그때 델핀 핀리(Delfin Finley)와 협업했다. 그는 LA 출신 아티스트이고, 우린 그를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다. 우리는 종종 재능 있는 신진 아티스트를 인스타그램에서 찾는다. 뉴욕에서는 미친 듯한 댄서를, LA에서는 아티스트를, 그리고 중국에선 모델을.

다시 아크네 페이퍼를 만들 계획은 없나? 매우 오랜 시간 진행한 거였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매체였다. 그러나 어떤 관계들은 끝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불화가 있어 끝난 게 아닌 애정으로 끝이 났다. 우리가 서로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어야 할 순간이 왔을 뿐이다. 토마스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고, 아크네 페이퍼를 만드는 데 매우 핵심적이었다. 하지만 늘 똑같은 이야기만 계속한다면 결국은 헤어져야만 한다. 계속 위로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 도달하게 되고, 그럼 선택은 두 가지다. 내려가거나 멈추거나. 난 멈추기를 선택했다. 매우 아름다웠고 깊은 애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두고 봐야 한다. 일단 나는 그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당신이 이렇게 되기까지 큰 영향을 끼친 사람 3명만 말해줄 수 있는가? 어렸을 때 밴드 활동을 한 것이 가장 크다. 지금 하고 있는 것 중 많은 것을 그때 배웠다. 그룹으로 어떻게 일하는지, 여러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타협하는 법 등을 말이다. 13세 때부터 밴드에 있으면서 배운 것이 지금 내 직업에서 중요하게 적용되고 있다. 둘째는 어머니인데, 어머니께서는 그림을 그리셨다. 창조적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주셨다. 자신을 표현하는 법도. 그리고 아버지는 드럼과 기타를 연주하셨다. 음악에 대한 감각을 깨워주신 분이다. 이 감각은 내가 뭔가를 만들어낼 때 매우 중요하게 쓰인다.

이번 파티도 음악을 매우 신중하게 골랐을 것 같다. 이번 파티의 핵심은 내가 전에 협업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분야에서 뭔가를 해보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선택한 사람들이자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대단히 창의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 분야를 정복한 사람들이다. 아까 아크네 페이퍼를 물어봤는데, 토마스 페르손(Thomas Persson)이 고른 음악도 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아크네 페이퍼를 보여준 거다.

한국에서는 새 집을 지은 뒤 고사라는 의식을 치른다. 스웨덴에도 그런 의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없다. 하지만 아마 바이킹들은 있을 거다. 현재는 불행히도 의식이 남아 있지 않다. 하나 남아 있는 걸 찾자면, 하지 축제가 아닐까? 그날엔 꽃을 두르고 봉을 돌며 춤춘다.

무슨 의미인가? 번창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