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찐', 화가 빌리 알 벵스턴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캘리포니안 드리밍

2019-12-29T22:13:02+00:002019.12.28|FEATURE, 컬처|

LA 출신의 떠오르는 작가인 조나스 우드와 알렉스 이스라엘이 우상으로 삼는 자, 색을 사용할 줄 아는 재능과 자신만만한 지성에 해학적 냉소까지 장착한 자. 이 구역의 ‘찐’, 화가 빌리 알 벵스턴 (Billy Al Bengston)이 예술에 대해 한 말씀 한다.

소호와 브루클린을 품은 뉴욕이 세계 컨템퍼러리 아트의 중심지로 수십 년간 왕좌를 지킬 때, LA와 예술의 관계를 이어준 분야는 미술보다 영화였다. LA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천성까지 뒤바꿔줄 듯 화창한 날씨, 미국 서부로 범위를 넓히자면 직접 달려본 적은 없어도 많은 영화 속에서 곧잘 목격한 황량한 길의 이미지다. 그런 LA가 미술계와 긴밀해지고 있다. 해마다 뉴욕과 런던에서 열리는 ‘프리즈 아트 페어’가 20192LA에 괜히 첫 상륙했을까? 하우저&워스 갤러리와 MOCA 뮤지엄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갤러리가 모여 있는 이스트 다운타운 지역, 주립미술관 LACMA, 모리스&폴 마르시아노 아트 파운데이션,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 등이 자리한 미드타운 지역, 가고시안 갤러리, 더 게티, UTA 아티스트 스페이스 등 예술을 부려놓은 공간이 즐비한 웨스트 지역 등 미국의 새로운 예술 구역으로 떠오른 LA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인지 복작거림에 질린 탓인지, 뉴욕을 떠나 LA로 이주하는 작가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소식이다.

1934년생인 화가 빌리 알 벵스턴(Billy Al Bengston)은 LA에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이 구역의 놀 줄 아는 청춘’으로 통했다. 서핑이라는 낯선 놀이가 LA에 채 싹을 틔우기도 전인 1950년대부터 서핑을 즐겼고, 파티장에 가는 길에 차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레이서였다. 베니스 비치 인근, 집과 작업실과 수장고를 겸한 그의 공간은 한때 LA 지역 예술가들의 사교의 장이었다. 그와 소싯적부터 절친인 인물 중에는 LA 출신 팝 아티스트 에드 루샤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있다. 문화적 기반이 빈약하던 시절, 흥미롭고 수상한 일을 도모하기 위해 몰려다니는 한 무리의 이미지가 왜 선명하게 상상되는 걸까?

백합 문양이 망토를 휘날리며 날아가는 드라큘라 백작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드라큘라’ 연작 중 ‘Torquemada Draculas’.

할리우드 중심에 위치한 ‘베리어스 스몰 파이어 갤러리(VSF)’ 대표는 빌리가 래리 벨, 켄 프라이스 같은 위대한 아티스트들을 포함한 ‘피니시 페티시(매끈한 표면 연출이 특징인 1960년대 LA 미술 경향)’의 기수라고 소개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산업 분야에서 쓰이는 새로운 기법과 기술을 작업에 도입하기 위해 관심 갖는 아티스트들이 급증했어요. 요즘 LA에서 만들어지는 컨템퍼러리 아트 작업 중에서 ‘이 지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만한 스타일’을 이해하려면 빌리의 역사를 알아야 해요.” 빌리 알 벵스턴은 금속이나 캔버스에 광택감 있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를 시도하면서, 평범한 물감으로 빛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든다. 그 빛과 색감과 밝음은 ‘캘리포니안 쿨 키즈 스타일’을 원한 에디 슬리먼의 프러포즈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생로랑 2016 S/S 컬렉션의 재킷과 드레스에 빌리 알 벵스턴의 문양이 내려앉았다.

이제 분명 새로운 화두가 될 LA의 아트 신에 접근하기 위해 빌리만 한 관문이 있을까? 뉴욕과 달리 태평양권을 아우르는 문화적 특징과 미감을 녹일 수 있는 LA 스타일을 조명하려면 그 말고 누구를 만나야 할까? 단지 조금 고약하고, 냉소적이고, 길게 말하지 않는 그의 언행만 받아들이면 된다. 그게 바로 빌리 알 벵스턴식 해학이며 촌철살인이다.

빌리의 것이 아닌 에드 루샤의 작품으로, VSF 서울 개관전 ‘빌리 알 벵스턴&에드 루샤’에서 전시됐다. 60년 지기니까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2019년 이른 봄, 당신은 서울에 온 적이 있다. LA에서 서울에 지점을 개관한 베리어스 스몰 파이어 갤러리의 오픈 전 <빌리 알 벵스턴&에드 루샤>를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

Billy Al Bengston 나는 따뜻한 곳에서 살던 사람이라 서울이 너무 추워서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세한 이야기는 노코멘트하겠다. 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호놀룰루로 돌아갔지. 알로하.

평생 LA와 하와이 두 곳을 오가며 살았다. 당신에게 LA는 어떤 곳이며, 하와이는 어떤 곳인가? 두 곳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달러와 센트. 파운드와 펜스. 어쨌든 비슷한 버전의 언어인 영어를 사용하지. 어디가 됐든 모자만 걸면 모든 곳이 내 집이다.

80대인 지금도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해두고 작업하는가? 하루 일과가 주로 어떻게 되나? 하루가 시작된다. 눈을 뜬다.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바로 작업하러 간다. 이 얼마나 완벽한 삶인가? 젊을 적에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그림을 그렸는지, 그런 걸 기억해낼 시간이 이젠 없다. 그저 눈을 뜨면 작업하러 간다. 이만하면 됐지.

당신의 몇몇 작품을 보니 1960년대 한국에서 활발히 등장하기 시작한 단색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Dansaekhwa’라는 추상미술 운동에 대해 들어봤나? 들어봤다. 근데 그게 뭐? 내가 관심 있는 운동은 장 운동밖에 없는데.

단색화의 핵심 중 하나는 그림에 표현된 형상이 아니라 작가가 그리면서 몸을 쓰고 움직이는 과정에 있다. 당신도 ‘그리는 행위’를 할 때 어떤 제스처를 만든다거나 기술을 이용하나? 쉿. 그건 내 영업 비밀이다. 물론 그림 그릴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 한 가지 말해주자면, 나는 항상 붓놀림의 특성을 고민한다.

달이 있는 풍경을 추상화한 여러 작품 중 하나인 ‘Finland.’

그림도 그렇고, 당신의 공간 곳곳에는 가구며 소품까지 컬러풀한 것이 많다. 혹시 흑백은 별로 안 좋아하나? 흑백은 그저 흑백이다. 그건 색이 아니야. 물론 흑백 자체는 괜찮은 것들이지. 하지만 난 그것들을 색이라 부르진 않는다고.

그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 조합은 뭔가? 작업을 할 때든, 일상에서 색을 취할 때든. 시간, 장소, 경우에 따라 다르다. 시간, 온도, 빛, 그리고 의식은 색상을 조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요구 사항이다.

주로 유화 작업을 하지만 수채화를 그릴 때도 있다. 어떤 평론가는 당신의 수채화 작업이 가장 좋다고 한다. 아크릴 물감과 수채화 물감의 물성은 어떻게 다른가? 아크릴은 물은 넣은 미디엄이고, 수채화 물감에는 아라비아 검(아라비아산 고무) 이외의 다른 접착제가 들어가지 않는다. 아크릴은 계속 덮어쓸 수 있는 물감이고, 씻어내려면 조심스럽게 물로 씻어내야 한다. 수채화 물감은 그렇게 사용할 수가 없지. 수채화 물감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플렉시글라스나 유리가 필요하다. 이런 각각의 특성을 작업할 때 늘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품이 훌륭하지 않으면, 두 재료 모두 훌륭하다고 할 수가 없다.

알루미늄 패널에 그림을 그리는 건 당신의 대표 스타일 중 하나다. 어떤 이유로 알루미늄 패널에 그림을 그리게 됐나? 알루미늄은 첫째, 잘 변하지 않고 일관성 있는 재료다. 둘째, 유용하다. 셋째, 안정적이다. 마지막으로, 작업을 하기 위한 준비만 잘 갖춰진다면 내가 원하는 바를 감당할 수 있는 재료다. 누구도 나만큼 알루미늄의 이런 장점을 활용하지 못했지.

집 안 곳곳에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소품이 많다. 여행을 다닐 때도 그것들을 많이 가지고 다니면서 ‘트래블링 아트’라 칭한다고 들었다.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곁에 두고 사는 건 어떤 영향을 주나? 영향까지는 모르겠고, 예술 작품을 보는 건 항상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나 어느 장소에 있어도 좋아 보일 소품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지. 특별히 좋아하는 몇몇이 있는데… 켄 프라이스, 피터 볼커스, 밥 그레이엄, 크레이그 카우프만 등이 창조하는 것들을 두고 어떻다고 정의하긴 힘들다. 그리고 존 알툰 같은 천재를 잊을 수는 없다.

양말 색 하나에서도 보이는 빌리의 취향.

살면서 많이 받아봤을 질문이다. ‘현대미술의 중심지’ 하면 뉴욕인데, 작가로서 뉴욕으로 진출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거긴 별로야.

세상의 좋은 그림은 거의 다 잘 팔린다고 보나? 명작은 명작답게 ‘미술 시장’에서도 먹히나? 좋은 그림이란 없다. 예술 아니면 쓰레기가 존재할 뿐이다. 돈, 시장, 박물관 같은 건 예술과 관련이 없어. 취향만 있을 뿐이지. 누가 상관이나 하겠나?

생각나는 말이 있는데… 프랜시스 베이컨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작품이 탄생하고 50년이 지나기 전에는 그것이 걸작인지 알 수 없다.” 이 말에 동의하나? 헛소리다.

그럼 예술에 관한 빌리 알 벵스턴식 한마디를 남겨보자. 후대 사람들이 프랜시스 베이컨보다 당신의 말을 인용할지도 모른다. ‘이해와 용기가 있는 세상, 그리고 훌륭한 비전.’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예술가는 누군가? 생사 여부와 분야 상관없이. 어려운 질문이군. 세상에 ‘가장 훌륭한’ 예술가는 없고, ‘그냥 예술가’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예술이 아니라면 그건 다 허튼소리지. 알로하.

당신이 예술가라서가 아니라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이라 묻고 싶은 질문이다. 인생에서 후회하는 일이 있나? 혹은 ‘그때는 내가 조금 어리석었다’고 인정하는 일. 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내 인생이 변하는 것은 없다.

당신이 예술가로서 도달하기 위해 평생 노력한 경지는 뭔가? 스테디 바이 저크(Steady by Jerks : 바이크 용어로, 스티어링 휠이 똑바로 갈 수 있게 하는 당김을 뜻함).

알루미늄 패널 작업 ‘Haunted Gold’. 빌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셰브런 문양 주변으로 빛이 번지는 듯한 채색이 인상적이다.

당신은 미국의 서퍼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서핑 문화가 예술가인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서핑과 미술에 닮은 점이 있다거나. 그 둘은 안 닮았고, 젊을 적에 내가 받은 영향이랄 것도 없었다. 다만 서핑을 한 그 많은 힘든 시간을 통해 나를 끌어당겼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리고 서핑이란 건 문화가 아니다. 그건 라이프스타일과 신체적 노력을 뜻한다. 뭐 그런 정의를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만.

지금의 당신이 젊은 시절의 당신에게 조언해준다면 뭐라고 하겠나? ‘직업을 가져라.’

젊은 예술가들에게 해주고픈 조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한 말을 인용하자면 ‘너에게 필요한 건 오직 무쇠 같고, 바위처럼 단단하며, 염려 없는 거짓 탐지기다.’ 그리고 나 빌리 알 벵스턴은 거기에 이 단어들을 덧붙이겠다. ‘좋은 비전과 진실.’

참, 에디 슬리먼이 생로랑에서 처음 컬렉션을 치를 때 당신에게 쇼 초대장 디자인을 부탁했는데, 거절했다고? 이유가 뭐였나? 나랑 맞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