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백 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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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남자들을 자주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스트리트에 대한 폭주가 잠시 멈칫하고 그간 잊고 지냈던 수트에 대한 열망이 계절을 찬란하게 수놓는다. 그러나 고리타분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가장 현재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한 편의 흥미진진한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아 흥분된다. 가령 단추의 여밈을 뒤틀거나, 소재를 겹겹이 쌓거나 하는 식인데 그 중 단연 눈에 돋보이는 건 남자들의 작은 핸드백이다. 핸드백을 든 남자라니, 말만 들어도 경악할 만한 여자들이 눈 앞에 수두룩한데 실제로 직접 보면 제법 말쑥한 형상이라 마음이 요동칠 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베르사체나 루이비통, 에르메스처럼 신사다운 방식, 지적인 사고, 고아한 태도를 지닌 남성상을 지향하는 하이 패션 브랜드에서 작은 핸드백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군더더기 없이 잘 재단된 수트 차림에 아주 아담한 크기의 핸드백을 손에 들렸는데, 클러치를 드는 것처럼 옹졸한 모양새가 아닌 대범하게 확 낚아채 들린 형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자크뮈스나 발렌티노, 서네이, MSGM 등 서로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른 브랜드들에서 목걸이처럼 목에 거는 형태의 가방을 폭발적으로 쏟아낸다. 덕분에 남자(Men)과 지갑(Purse) 두 단어를 섞어 완성된 머스(Murse)라는 이름의 새로운 패션 아이템에 세상에 등장하게 됐다. 아마 내년 가장 불티나게 팔릴 패션 아이템이 아닐까? 한국에서 가장 꼴불견인 남자로 꼽히는 ‘애인의 작은 가방을 들어주는 남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프리랜스 에디터
김선영
사진
GoRun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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