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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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패션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빠른 걸음으로 초록 미래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170여 그루의 나무를 쇼장에 설치한 디올의 2020 S/S 컬렉션. 이 나무들은 쇼가 끝난 뒤 파리 곳곳에 심어졌다.

새로운 컬렉션이 펼쳐진 지난 9월, 패션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화두는 단연 ‘지속 가능한 패션’이었다. 재활용 직물을 이용한 디자인부터 런웨이 위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선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와 약속, 그리고 실천이 펼쳐지는 중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갖는다. 패션이 진정으로 지속 가능할까? 혹시 또 다른 의미의 트렌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이라는 이 모호한 단어에 내포된 의미를 조금 더 세분화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재료가 윤리적으로 공급된’, ‘환경 친화적인’, ‘의식 있는’, ‘에코’ 등등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혼돈스러운는 어휘가 ‘지속 가능한 미래’ 를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타밀 오두에서 여성 직조사들과 협력하여 아름다운 천연 직물을 개발하며 옷을 만드는 런던 디자이너 리처드 말론은 ‘지속 가능한’이란 용어를 ‘정직’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는데, 지금이야말로 이 ‘정직한’ 사치품에 대한 새로운 잣대와 판단, 정의가 필요한 때일지도 모르다.

환경 운동가로서 매 시즌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옷에 담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2020 S/S 시즌 룩북.

지속 가능한 고무 소재로 만든 헌터X스텔라 매카트니 레인부츠.

비건 가죽을 이용한 스텔라 매카트니의 스탠 스미스 운동화.

스텔라 매카트니는 2020 S/S 시즌 자연 친화적 소재의 백을 대거 선보였다.

STELLA McCARTNEY

현대자동차와 자동차 시트 가죽 폐기물로 옷을 만든 뉴욕의 제로 + 마리아 코르네호.

한 해에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섬유는 12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이는 국제 항공편과 해상 운송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이라고 한다. 이미 지난 422일 지구의 날을 기념하며 버버리, 갭, H&M, 리바이스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어링 그룹, 자라가 포함된 인디텍스를 비롯한 여러 기업이 기후 위기를 선언하고 2030년까지 온실 배출량을 30%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번 4대 컬렉션 기간에도 몇몇 럭셔리 브랜드가 환경 보호에 대한 약속을 내놓았다.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가브리엘라 허스트, 런던의 버버리, 밀란의 구찌까지 탄소 중립 쇼를 열었다. 이제 환경 이슈는 트렌드라고 하기에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처럼 보인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럭셔리 브랜드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온 브랜드다. 그녀는 패션에서 ‘지속 가능성’이 덧없는 유행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녀의 행보가 놀라운 건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패션을 실천해오면서 노하우가 엄청나게 쌓였다는 것이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웹사이트에 가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정리되어 있는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니트웨어는 리엔지니어링된 캐시미어를 쓰고, 목재 펄프를 주원료로 하는 레이온을 얻기 위해 숲을 보호하는 데 힘쓰며, 동물의 가죽과 퍼는 사용하지 않고, 모든 제품에 유기농 면을 사용한다. 가방은 무료 수리 서비스를 해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했고, 스테인리스스틸, 알루미늄 대체물을 개발하고, 윤리적인 농장을 엄선해 천연 섬유인 양모를 얻는다. 이뿐일까. 최근에는 거미가 만드는 실크를 개발한 생명공학 회사와 손잡고 누에고치에서만 얻던 실크의 새로운 미래를 찾고 있다. 이렇게나 다양한 방식을 오랫동안 개척해온 그들이 만드는 결과물은 심지어 하나같이 아름답다. 한동안 지속 가능한 패션은 재활용 천으로 만든 누더기로 치부됐지만, 스텔라 매카트니는 지속 가능한 패션이 헌 옷, 환경을 생각하니 조금 안 예뻐도 입는 옷, 무언가의 대체품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나에게 가장 큰 칭찬 중 하나는 바로 사람들이 팔라 벨라 가방(스텔라 매카트니의 시그너처 가방)이나 우리의 인조 가죽 치마, 신발을 구입하고 진짜 가죽인지 아닌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 때다. 나는 그것이 진짜 건강하고, 섹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안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름답고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버려진 플라스틱 소재를 재활용해 만든 프라다의 나일론 백.

버려진 플라스틱 소재를 재활용해 만든 프라다의 나일론 백.

버려진 플라스틱 소재를 재활용해 만든 프라다의 나일론 백.

PRADA

PRADA

지속 가능한 패션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옷의 재료에 대해 고민하는 방식이 있다면, 환경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앞세운 브랜드도 있다. 바로 디올이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도시 속에서 정원을 가꾸는 콜로코 아틀리에와 협업해 170그루의 나무로 런웨이를 장식, 쇼가 끝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파리시가 주최하는 숲 조성 장기 프로젝트의 재료로 활용하는 신선한 계획을 선보였다. 스텔라 매카트니보다 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문제에 다가서는 것 같지는 않지만 환경과 패션이 함께할 수 있음을 믿고, 창작자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한편 밀란에서는 빠르게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프라다의 행보가 이슈였다. 최근 프라다는 업계 최초로 지속 가능성 관련 대출에 서명했는데, 이 생소한 경제 용어는 무언고 하니, 은행에서 5천만 유로를 빌려 5년 동안 갚아간다고 했을 때, 지속 가능한 목표가 달성될 때마다 매년 이자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된 대출 제도라고 한다. 쉽게 말해 지속 가능한 재활용 나일론을 사용하여 제품 생산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 금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지난 5월 샤넬, 버버리, 구찌와 같은 브랜드에 합류하여 모피 컬렉션 사용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과 6월, 프라다의 시그너처 나일론 백을 바다에 떠돌아다니는 플라스틱, 그물, 매립 쓰레기 등으로 만든 ‘에코닐’ 소재로 만든다는 ‘리나일론 프로젝트’를 선포, 2022년까지 모든 나일론 백을 리나일론으로 전환하기로 약속했다. 이런 행보를 보면 사실상 지금 프라다의 핵심 요소는 바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실천으로 보인다. 그 때문일까? 2020 S/S 밀란 컬렉션의 미우치아 프라다는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반영하듯 간결하고 차분하며, 청교도적인 쇼를 선보였다.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함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패션업계와 환경, 소비와 생산의 본질적 모순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미우치아 프라다의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한쪽에서는 지구를 구하고, 소비하지 않고, 소비되지 않기를 원한다. 우리는 더 적게 소비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의 고객, 미디어, 사람들은 새로움을 갈구한다. 진실은 우리 모두가 더 많은 소비를 원하고 새로움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친환경 패션의 미래가 불확실성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새로운 옷을 전혀 생산하지 않는 것만이 친환경이고 기후 친화적인 최선의 방법인 걸까? 트렌드를 창조하고 옷을 파는 것은 환경 보호와 즉시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끊임없이 질문해 봐야 하는 문제다.

빈티지 니트를 드레스로 재창조한 과정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마린 세르.

빈티지 니트를 드레스로 재창조한 과정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마린 세르.

MARINE SERRE

MARINE SERRE

MARINE SERRE

앞서 오래된 명품 브랜드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변화에 동참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자나, 젊은 세대 디자이너들에게 지속 가능성, 환경에 대한 이슈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느껴진다. 대표적인 예로 파리의 주목받는 신예 디자이너 마린 세르는 이번 시즌 쇼의 테마를 오일 유출을 의미하는 ‘블랙타이드’, ‘마레 누아르’라는 단어를 선정, 다소 심오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주제에 걸맞게 쇼 의상의 절반 이상은 바다에서 회수한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재료를 사용했고, 버려진 목욕 타월로 만든 세련된 의상도 선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SNS를 통해 버려진 옷들이 어떻게 힙하게 재탄생되는지 주기적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뉴욕의 신예 디자이너들도 환경에 대한 생각을 어떤 원단으로 옷을 만드느냐 차원에 머물지 않고 훨씬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금 뉴욕에 불고 있는 반체제 자연주의자, 히피를 추종하는 젊은이들의 트렌드와 맞물려 그 파급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그들은 히피가 추구하는 가치 중에서도 ‘자연에의 귀의’에 포커스를 맞춘다. 지금 뉴욕의 힙스터들이 가장 열광하는 문화, 즉 하위문화에서 시작된 히피 문화는 위로 옆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젊은 디자이너들은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고민에 머물지 않고 앞장서서 변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며 고민하는 브랜드, 이윤만을 위해 환경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브랜드, 모르쇠로 일관하는 브랜드. 당신은 앞으로 어떤 옷을 사 입고 싶은가? 무분별한 소비를 멈추고, 어제보다 더 영리한 소비자가 되어야 할 이 시점에서 말이다. 우리는 지금 가장 핫한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답변을 통해 10년, 20년 뒤 그 젊은이들이 기성세대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 맞이할 패션의 초록 미래에 대해 즐겁고 낙관적인 상상을 해봤다.

GABRILELA HEARST

STELLA JEAN

ZERO + MARIA CORNEJO

MARYAM NASSIR ZADEH

ECKHAUS LATTA

자연주의를 추구하던 1970년대 히피들의 모습은 지금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룩과 여러모로 닮았다.

패션 에디터
김신
뉴욕 통신원
윤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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