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W

소리 없이 강하게 파리 패션위크를 물들이는 듀오 디자이너 브랜드, 코페르니와 콰이단 에디션.

맨 왼쪽 계단에 서 있는 콰이단 에디션의 디자이너, 레아 디클리와 훙라. 모델들이 입은 옷은 2019 F/W 콰이단 에디션.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 제품.

남과 여, 직선과 곡선, 이질적인 소재, 볼륨 플레이. 극단적인 대비와 반대되는 힘의 충돌은 패션 신에서 늘 매혹적인 요소다. 고전적인 레퍼런스를 과장된 프린트와 소재를 더해 반향을 일으키는 브랜드, 콰이단 에디션이 주목받는 이유다. 독특한 소재와 과감한 프린트로 장식을 하더라도 실루엣은 친숙한 디자인을 따르는 식. 테일러링 팬츠, 포멀한 남성용 셔츠, 딱 붙는 니트 원피스, 가죽 코트에는 앞서 설명한 강렬한 코드가 배어 있다.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재학 중에 만난 베트남 출신 미국인 훙라(Hung La)와 프랑스 알자스의 레아 디클리(Lea Dickely) 커플이 2016년에 만든 이 브랜드는 지난해 LVMH 프라이즈 결선에 이름을 올리며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들이 특히 기대한 프랑스 예술가,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와의 협업도 이루어졌다. 도미니크가 부팡 스타일의 곱슬머리로 위장하고 콰이단 에디션 트렌치코트를 입은 상태로 불어와 독어로 노래를 부르고, 모델들은 춤을 춘 프레젠테이션을 잊지 못한 순간으로 꼽는다.

KWAIDAN EDITION 2019 F/W

KWAIDAN EDITION 2019 F/W

KWAIDAN EDITION 2019 F/W

KWAIDAN EDITION 2019 F/W

훙라는 발렌시아가와 셀린에서 가죽과 모피를 다뤘는데, 올드 셀린을 연상케 하는 가죽 플레이나 실루엣은 아마 그때의 영향이 반영된 것이다. 디클리는 알렉산더 매퀸과 릭 오웬스에서 프린트와 텍스타일 자문으로 일했다. 이들의 이력을 보면 지금의 과감한 디자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던 이들은 각자의 직업을 관두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고, 그 결과 콰이단 에디션이 탄생한 것. 이름은 고바야시 마사키(Kobayashi Masaki) 감독의 1965년 컬트작 <괴담(Kwaidam)>에서 따왔다. 괴상한 민담 여러 개를 엮어 만든 이 괴이한 영화가 이들에겐 매우 인상 깊었던 영화로 남았던 것 같다. 이들은 첫 데이트로 <샤이닝>을 볼 정도였으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컬렉션을 구상할 때 영화감독처럼 일종의 스토리보드를 만든다. 보드를 통해 세트나 장소, 기분을 묘사하고 이야기의 시작이라든가 무언가의 전제를 그려나간다. 그렇게 탄생한 이번 겨울 시즌은 첩보 영화를 정주행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개념을 탐구하며, 동독의 정보기관 슈타지 사진 자료를 조사했다. “주로 위장을 하거나 몸을 숨기는 것 위주였어요. 베이지색이 많이 보였고요.” 여성이 익명성을 원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주목받고 싶어 하는 때도 있기 마련. 반대로 십대 시절로 돌아가 개성 있는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포스트 펑크와 파티 문화를 꺼냈다. 이로써 어두운 블레이저와 플라스틱 호피무늬 스커트, 여기에 사이키델릭한 톱을 매칭한 스타일이 완성됐다.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건 아주 중요해요. 이 점이 저희 디자인이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하죠.” 요즘엔 남성복으로 확장하는 계획도 세울 뿐만 아니라 가구, 태피스트리, 향수까지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옷과 물건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사람이 거주할 공간을 창조하는 이야기를 항상 나눕니다. 아주 잠깐이라도요.”

앞줄 왼쪽부터 코페르니의 디자이너, 세바스티앙 메예르와 아르노 베이용, 친구이자 스타일리스트, 헬레나 테예도르(Helena Tejedor). 뒷줄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은 모두 2019 F/W 코페르니 컬렉션.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그의 이름에 착안한 패션 브랜드, 코페르니가 새롭게 부활할 준비를 마쳤다. 코페르니쿠스의 급진적인 사유 방식을 본받겠다는 디자이너 콤비이자 연인(그들의 뜨거운 애정 행각은 각자의 계정에 공개되어 있다)인 세바스티앙 메예르(Sebastien Meyer)와 아르노 베이용(Arnaud Vaillant)이 다시 하우스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지난 2016 S/S 시즌에 쿠레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며 컬렉션을 선보인 이들은 자신의 레이블을 잠시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건 저희 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매 시즌 똑같은 걸 할 수는 없어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위험은 감수해야죠.” 주로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베이용이 말했다. 올가을, 코페르니의 패션 라인을 재정비하며 선보일 컬렉션에 대해 설렘과 흥분이 교차하는 눈치다. 그 시작은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피드를 통해 공개된 영상으로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는 인터랙티브 어드벤처 영상을 업로드하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코페르니 어드벤처(@copernize_your_life)’라는 새 계정도 만들었다. 영상을 보고 Yes or No를 선택함에 따라 영화 <롤라 런> 속 인물처럼 모델 한느 가비 오딜르가 파리를 뛰기도 하고 테디 콴리번이 팔자주름을 가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메이크업 튜토리얼 영상을 볼 수 있다. 코페르니의 크루이자 영화 제작자인 세실 윙클러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번 작업은 코페르니의 생동감 넘치고 포용적인 이미지를 표현한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말한다. “다른 브랜드도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었어요. 실권은 사용자에게 있으니까요.”

COPERNI F/W

COPERNI F/W

이 둘이 코페르니를 론칭한 2013년은 선구적인 방식의 미래 지향적 무드로 평론가와 대중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는 두 시즌 만에 LVMH 결선에 오르며 실력까지 인정받았다.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탄탄대로를 걷던 이들은 돌연 코페르니를 중단하고 쿠레주의 아티스트 디렉터로 등장했다. 간결하고도 건축적인 실루엣, 테크놀로지를 도입한 3D 프린트 톱과 발열 코트 등을 선보였다. 그럼에도 1960년대의 레트로와 미래주의를 접목한 감각으로 명성 높은 프랑스 하우스도 둘에게는 고루했다고 말한다. “쿠레주에서 일하는 건 저희의 꿈이었지만, 정립된 패션 시스템은 생각보다 더 보수적이었어요.”

쿠레주에서의 2년 반 이후 이 둘은 일급 비밀이라고 밝힌 테크놀로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새로운 방식의 소비를 도와줄 디지털 도구를 개발 중에 있다고 귀띔했다. 그렇게 새로운 코페르니는 깔끔한 맞춤 스타일을 유지하되 전해 비해 많이 차분해졌다. 2019 F/W 컬렉션의 트롱프뢰유 기법을 더한 스마트 슈트와 로고 스웨터를 대표적으로 소개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는 동일합니다. 세련되면서도 효율적이며 균형 잡힌 작품을 만들죠.” 브랜드 이름처럼 과학과 기술에서도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는다. 이를테면 아이폰 비행기 모드의 가방은 이들의 베스트셀러기도 하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우리에게는 애플 같은 IT 업계가 훨씬 더 흥미진진해요.” 이들의 넥스트가 패션업계가 아니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듯하다.

패션 에디터
이예진
KARIN NELSO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