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타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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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패션쇼는 소수의 선택된 에디터와 바이어만을 위한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스트리밍이 되고, 디지털로 만천하에 공개되는 시대에 굳이 쇼를 봐야 하는, 또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의 기로에 선 패션쇼의 전통적인 형식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시작은 뉴욕이다.

워킹을 마친 랄프 로렌의 모델들이 랄프스 클럽의 바에 기대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

세계적인 안무가 패리스 고블이 연출한 세비지×펜티 쇼

세계적인 안무가 패리스 고블이 연출한 세비지×펜티 쇼

가을이 한창인 9월의 뉴욕, 한층 짧아진 2020 S/S 시즌 패션위크 스케줄을 소화한 우리는 어떤 변화의 조짐을 예감했다. 그것은 단순히 하루에 두 번 이상 브루클린(맨해튼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을 왕복하는, 가끔은 할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번거로운 일정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간을 줄이고 촘촘해진 뉴욕의 패션위크 스케줄은 분명 디자이너들을 자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침체된 패션위크에 어떻게 활력을 불러올 것인가. 이슈가 이슈를 덮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주목을 끌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새로운 CFDA(Council of Fashion Designer of America) 의장이자, 달라진 스케줄의 배후인 디자이너 톰 포드는 파크 애비뉴 애머리 주변에서 열린 자신의 쇼장을 마가리타 잔 가득한 지하철 승강장으로 변모시켰는데, 이는 새로움에 대한 변혁의 의지를 내비친 메타포처럼 보였다.

항상 관중과 함께 호흡해 온 텔파. 음악과 교차된 아주 멋진 쇼를 선보인다.

항상 관중과 함께 호흡해 온 텔파. 음악과 교차된 아주 멋진 쇼를 선보인다.

CFDA 새 의장으로 발탁된 톰 포드의 피날레.

분명한 것은 뉴욕이 런던, 밀라노, 파리를 따라잡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이다. 패션쇼 경험을 통해 하우스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것은 모두의 숙제가 됐다. 뉴욕은 대화를 주도했다. 흰색이나 검은색 런웨이 위로 모델이 끝까지 걸어갔다 돌아 나오는 전통적인, 어쩌면 지루한 런웨이의 퇴출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문화적 감수성과 다양성을 포용할 것. 파이어 모스(Pyer Moss)의 디자이너 커비 장-레이먼드는 브루클린 플랫부시에 위치한 킹스 극장에 라이브 밴드와 코러스팀(타미 힐피거, 마이클 코어스처럼 이번 패션위크에 유행한)을 배치하고, 일요 예배 형식을 결합한 쇼를 준비한 채 5백 장의 티켓을 대중에게 판매했다. 지난해 CFDA/보그 패션 펀드의 우승자이자 패션위크 신참인 그가 차별화를 꾀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변화를 감지하게 하는 레이더 같았다.

자넬 모네의 공연이 펼쳐진 랄프 로렌의 쇼 ‘랄프스 클럽’.

자넬 모네의 공연이 펼쳐진 랄프 로렌의 쇼 ‘랄프스 클럽’.

가스펠 음악의 성가대를 배경으로 장관을 연출한 파이어 모스.

지난해 50주년을 맞은 주인공이자, 곧 HBO 채널에 다큐멘터리가 공개되는 랄프 로렌은 고풍스러운 은행 건물을 가장 미국적인 디너 클럽으로 변신시켰고, 라이브 공연을 펼친 자넬 모네로 하여금 테이블에 올라 샴페인을 터트리고, 손과 무릎으로 온 쇼장을 누비며 한바탕 쇼를 펼치게 했다.

이 행사들은 인스타그램 속 훌륭한 주목과 반향을 끌어냈다(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강한 버질 아블로의 루이 비통 맨즈 컬렉션처럼). 그리고 다가온 또 하나의 거대한 이벤트. LVMH가 약 5천만 달러 투자를 공표한 리한나의 ‘세비지×펜티(Savage×Fenty) 란제리 컬렉션’이 세계가 주목한 가운데 베일을 벗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독점 중계권 때문에 현장에서 촬영은 통제당했지만,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된 920일 이후, 미고스, DJ 칼리드, 에이셉 퍼그, 할시 등 최정상급 뮤지션들이 소리 높여 공연을 하고, 다양한 인종과 신체 사이즈의 댄서들이 살을 떨며 격렬한 춤을 출 때, 내 몸에 대한 자긍과 긍정에 대한 메시지가 세계에 메아리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이는 패션업계에 충격파를 던진 획기적인 쇼로 빅토리아 시크릿 같은 브랜드가 제시해온 마르고 금발인 미녀에 대한 정의가 끔찍할 정도로 협소했음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뉴욕 패션위크는 수익과 별개로 나태한 패션쇼 일색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간은 길었고, 수준이 고만고만한 쇼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예산 제약이 있는 일부 에디터와 바이어가 뉴욕이란 도시를 건너뛰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뉴욕을 간과하는 동안 그 밑에서 아방가르드한 지하는 차근차근 건설되고 있었다. 뉴욕에서만 볼 수 있는 쿨한 무리들. 에크하우스 라타, 샌디 리앙은 뉴요커인 자신의 친구들을 모델로 세우며 힙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마크 제이콥스의 사랑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신예 토모 코이즈미는 트렌드 젠더 모델로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토모 코이즈미의 쇼는 모델 아리엘 니컬슨이 수십 벌을 갈아입으며 전위적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쇼의 포문을 연 리한나의 군무.

한 편의 뮤지컬처럼 모델들이 단체로 등장한 마크 제이콥스의 쇼.

한 편의 뮤지컬처럼 모델들이 단체로 등장한 마크 제이콥스의 쇼.

바퀘라, CDLM, 섹션8은 연합 쇼로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공동체 의식을 함양했다. 뉴욕의 가장 역동적이고 젊은 디자이너인 텔파(Telfar)의 텔파 클레멘스(Telfar Clemens)는 이번 시즌 파리로 건너가 자신의 깃발을 꽂았다.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쇼를 하거나, 어빙 플라자에서 열광적인 공연을 펼치는 등 그의 쇼는 늘 비범했는데, 음악과 교차된 쇼에 사회적 문제를 꼬집는 비평적인 해설이 수시로 등장하곤 했다. 이번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는 브루클린에서 영화 예고편을 공개하는 파티를 한 후, 파리에선 클레이튼 보메로(Clayton Vomero)가 감독한 단편영화 <The World Isnt Everything>을 배경으로 힙합 공연에 가까운 쇼를 펼쳤다.

혁신과 놀라움에 막대한 예산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 세계 디자이너들은 패션쇼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함으로써 그 과정에 진정한 개성을 주입하고 있다. 전통적인 패션쇼가 나쁘다고 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더 진보적이고 독창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뒤처져 보일 수 있음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뉴욕 패션위크는 마이클 코어스와 마크 제이콥스라는 도시의 가장 큰 두 디자이너의 컬렉션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낙천적이고 긍정적 환희와 같은 메시지에 도달했다. 몰입적 경험, 디지털 세상에 남은 진정한 쇼의 의미. 2020년에는 부디 이런 쇼가 더 많이 나오길 희망한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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