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불문하는 히트곡의 황금률이라는 게 있을까?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히트곡 제조법은 있는가

2019-10-05T17:13:06+00:002019.10.09|FEATURE, 컬처|

‘음악 한 번 만들어본 적 없는 당신도 3개월 안에 히트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1980년대 영국에서 이러한 주제로 쓰인 책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30년 전 팝계의 사정과 지금 여기 KPOP의 사정은 얼마나 다르고 또 비슷할까? 시대를 불문하는 히트곡의 황금률이라는 게 있을까?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히트곡이란 어쩔 수 없이 각별한 존재다. 위로와 환희와 열광을 부르는 그 이름은 엔터사의 주가를 들었다 놨다 하고, 21세기 서낭당 같은 지하철역 생일 광고판을 갈아치운다. 히트곡은 기억의 저편에서 되살아나 문득 유튜브에서 열리는 ‘온라인 탑골공원’을 뒤흔들기도 한다. 몸서리치게 싫었던 노래가 히트곡이라는 이유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들려오고, 우리는 여전히 몸서리 치게 싫은 자신과 무의식적으로 흥이 일어나는 자신 사이에서 번민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자문한다. 이 아름다운 주박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어떤 이들은 특정한 제조법이 있다고 믿는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히트곡 제조법>(워크룸 프레스)이라는 책도 그렇다. 1980년대 말 영국에서 몇 번의 히트곡을 낸 2인조 그룹 KLF가 쓴 이 책은 어떤 자본도 음악 지식도 없이 ‘글자대로 따르기만 하면’ UK 싱글 차트 1위 히트곡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가이드북이라고 한다. 이들의 지혜가 30년 세월을 넘어 2019년 한국에서도 히트곡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면, 분명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팝송의 연금술이 존재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펑크 뮤지션들이 ‘상황주의적 야바위’로 요령 좋게 음악 산업의 빈틈을 파고들어 ‘한탕’ 을 해치우려는 것을 비판하고, 진정한 팝송을 만들어내는 황금률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주류 대중의 사랑을 받는 팝송의 미덕, 또는 그 공식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이야기다.

숨겨진 비책답게 <히트곡 제조법>은 ‘날로 먹는 법’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수치심 없이 클리셰를 동원하고 남의 음악을 베껴라’, ‘원히트 원더에는 가창력이 전혀 필요 없다’,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에게 원하는 것을 알려준 뒤 열심히 차나 끓여다 줘라’ 같은 충고들이다. 매혹적이고도 쓸데없다. 한국인은 발라드와 가창력, 그리고 그 진정성에 유난스러울 정도로 가치를 부여한다. 차라리 기구한 인생 사연을 준비하라는 조언을 해준다면 모를까, 날로 먹으라니. 하우스와 힙합이 대대적으로 부상하던 1980년대 말에나 통할 이야기다. 그때는 음악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음악에 도전해보게끔 해주는 샘플링이라는 신기술에 열광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 외에 스튜디오 예약하는 법이나 음악 저작권을 관리하는 법,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법 등이 자세히도 소개되는 데, 역시 지금의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지금에 와서는, 당대 영국은 웃기는 곳이었구나 하는 감상을 남기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30년 동안 대중음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변한 건 음악이라기보다 세상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런 변화는 국적 불문이다. 이를테면 라디오에서 다른 노래들과 함께 틀 때 ‘우리 아이 기죽지 않게’ 쩌렁쩌렁한 사운드를 만들려는 무한경쟁은 음악의 섬세한 맛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돼 업계의 오랜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이런 경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는데, 이는 라디오에서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플랫폼이 바뀐 상황과 관계가 깊다. 수많은 라디오 방송국과 엔지니어들이 입맛대로 소리를 만지던 시대가 저물고, 애플뮤직, 유튜브 등 소수의 대형 플랫폼이 공개한 음향 표준을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행지마다 맛집을 꼼꼼히 검색해서 찾아가기보다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맥도널드에 가서 표준화된 맛을 즐겨도 된다고나 할까.

환경은 우리가 듣는 음악에 생각보다 크게 영향을 미친다. 보다 최근의 이야기를 해보자. 30초를 미리 듣고 음원 구매를 결정하던 시대에는 곡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앞에 배치하게 됐다. 전국 방방곡곡의 공연장보다는 서울에 몰린 방송국에서 매주 모든 음악가를 만나는 게 한국의 감상 환경이다 보니, 단 3분의 무대에 모든 매력과 기력을 복합적으로 쏟아 부은 뒤 탈진하는 KPOP이 탄생했다. TV 음악 방송이 음악 감상 플랫폼이기에, 매번 극적인 반전을 일으키는 KPOP이라는 형식이 완성된 것이다. 감정을 이입하며 공감하는 시대에서 무대 위 아름다운 존재들에 경탄하는 시대로 넘어오면서 ‘남자가 등장하지 않고 자기끼리 즐거운’ 걸그룹 가사도 등장했다. 멤버별 직캠의 시대는 노래 파트를 담당하지 않는 순간에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안무를 낳았다. 한번 좋아하게 되면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KPOP 팬덤은 여러 장의 앨범에 걸쳐 긴 서사를 풀어가는 콘텐츠도 가능케 했다. 시장을 스치는 모든 작은 것들을 위해 시를 쓰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달라지는 것들에는 결국 환경과의 연결 고리가 있다.

바꿔 말하면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1980년대의 KLF는 심오한 자아를 내세우려 하지 말라든가, 밴드에 속해 있다면 당장 나오라든가, 남들과 똑같은 걸 해도 상관이 없다는 조언도 한다. 얼핏 과격한 말 같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냉소가 가리키는 바는 명확하다. 자의식 과잉에 빠지지 말고 시시하고 뻔한, 그러나 좋은 팝송을 만들라는 것이다. 이들의 황금률, 즉 ‘댄스 그루브와 330초 이내, 정형화된 팝송의 구조, 무의미하면서 감각적인 가사’는 지금 시대에도 대체로 유효한 장치다. 히트곡의 이런 요소는 대중음악의 ‘본질’이라 불러도 좋을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층이 특히 열광한다는 점, 한 철 가볍게 즐길 대상이라는 점, 따분한 일상에서 잠시 기분을 환기하며 몸과 마음에 여흥을 제공한다는 점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본질은 시대가 변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또 대중음악이란 대량 생산되어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된다는 점도 시대를 불문하는 본질이다. 그러니 히트곡의 요건이란 적당히 주의를 잡아끌고 가볍게 즐길 수 있을 것,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후렴을 3번쯤 반복할 것, 젊은 층이 어른들과 차별화할 수 있도록 적당히 새로울 것, 그러나 대량 유통하기 곤란할 정도로 기이하지는 않을 것…. 이것만큼은 30년 전 영국 팝과 지금의 KPOP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 덧붙이자면 결국 <히트곡 제조법>에서 히트곡을 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내세우는 건 영업인데, 역시 소셜 마케팅이 음악 시장의 최종 승자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시대에도 통하는 내용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수렴하는 히트곡 제조법의 핵심은 ‘지금’이다. 대중음악이 시대를 타며 달라지는 이유는 ‘지금’에 맞추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실시간 인기 차트가 꼭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그놈의 ‘지금’ 때문에 유행도 바뀌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인기도 출렁거린다. 반면, 시대를 넘어서는 대중음악의 변치 않는 요소 역시 ‘지금’이다. 그때그때의 ‘지금’을 위해 만들어지는 대중음악은 근본적으로 늘 똑같을 수밖에 없다. 그 점을 불평한다면 타당한 불평인데, 다만 그 점이야말로 대중음악의 아름다움이라면 아름다움이다. 근본적으로는 같으며 부수적으로 다른 것. 그런 노래가 어제의 히트곡을 밀어내면서 새롭게 히트하고, 우리를 열광시키거나 몸서리치게 하고는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그 노래로 인해 열광하거나 몸서리칠 때, 우리는 지나간 ‘지금’을 인지한다. 음악을 만드는 이라면 이런 마법을 알고 있기에 더욱 ‘지금’에 매달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사정이 이쯤 된다면, 듣는 입장에서도 ‘지금’의 음악에 귀 기울이는 것을 너무 별스러운 일 취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결국 일종의 제철 과일 같은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