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옆에 또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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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건네고 치유를 말하는 무수한 책은 잠시 제쳐두어도 좋다. 책 읽는 즐거움은 행간의 세계를 탐험하고, 마비된 지각을 깨우고, 불명료한 것을 뚜렷하게 가다듬는 데서 온다. 지적인 유희를 안기는 신간 아홉 권을 꼽았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푸른숲

하루키처럼 개인의 취향이 곧잘 언급되는 작가가 아니라면, 더구나 그 작가가 격변하는 사회상을 그리는 데 매진하는 작가라면, 그의 문화적 배경이나 취향, 그것을 대하는 태도 등은 소설 뒤편에 수수께끼로 남는 법이다. 이 책은 〈허삼관 매혈기〉, 〈형제〉 등으로 중국 현대사를 신랄하게 그린 위화가 독서와 음악 감상에 관해 쓴 에세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왜 좋아하는지 나열한 단순한 감상문은 아니다. 같은 창작자의 눈으로 바라본 작품의 탁월한 면모, 그것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 다른 창작자의 인생과 심리를 추적하는 글에 가깝다.

특히 위화가 자주 쓰는 단어는 ‘서술’이다. 그는 ‘서술’이 문학과 음악을 관통하는 개념이라고 여긴다. 이를테면 위화는 메시앙과 멘델스존, 베토벤과 브람스가 음악을 구성하고 흐름을 짜는 스타일에서 글의 서술에 대한 영감을 얻는 작가다. 음악에 ‘화성’이 있는 것처럼, 글에서도 ‘대구를 이루는 문장과 단락’으로 언어의 화성을 시도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만으로는 쉽게 알 수 없는 작가의 관점이어서 흥미롭다. 중학생이던 1970년대에 갑자기 작곡과 악보에 매료되어 수학 방정식을 악보화해봤다거나 CD 수백 장을 모은 일화는 위화의 팬이라면 재밌어 할 정보다. 위화가 자신의 독서사에서 잊을 수 없는 소설로 꼽는 두 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흰 코끼리 같은 언덕>과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다. 각 작가의 서술 스타일이 한 작품에 응축된 대표작이기 때문이라고.

<작은 세계 미니어처> 사이먼 가필드 지음, 안그라픽스

‘꺄악, 미니어처!’ 하면서 책을 펼쳤다간 당황할 수 있다. 제목에 붙은 부제가 이 책의 주제다. ‘축소된 세계가 어떻게 우리 삶을 비추는가.’ 인문학자는 ‘미니어처’라는 키워드 하나로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적 사건과 인간의 본성을 엮는다.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를 쓴 저널리스트 사이먼 가필드의 신간이다. 첫 챕터는 에펠탑 이야기로 시작한다. 1889년 당시, 297미터 높이의 거대한 탑은 그 위에 올라 아래를 보면 세상 사람들이 개미가 돼버리는 진기한 경험을 선사했다. 건축가 에펠은 이 놀라운 경험을 한 사람들이 집에 가는 길에도 그 경험을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기념품이 에펠탑 미니어처다. ‘어떤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며 때로는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잘 반영하는 것.’ 사이먼 가필드가 말하는 미니어처의 의의다.

언뜻 비약 같지만, 거대한 박물관에 입장하기 전에 건물 축소 모형을 가만히 들여다본 경험을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축소판은 내 공간 인지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축소된 세계와 함께라면, 대상의 부분을 조금씩 검토하며 전체를 천천히 이해하기보다 전체를 통째로 보고 단번에 이해하기 쉽다. 통제하기 힘든 세계에 웬만큼 질서가 잡히는 것이다. 조립 모형을 컬렉션하는 경우는 어떤가? 취미로 미니어처를 모으면 방 안에 처박혀서도 한 세상을 취하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 이야기의 끝에는 작가의 당부가 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더 넓고 높게 한번 내려다보라는 것, 본질을 살펴보기 위해서 시선을 바꿔보라는 것. 귀여운 미니어처가 좋아서 집어 들었다가 반전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김봉현의 글쓰기 랩> 김봉현 지음, 엑스북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만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누구나 SNS에 단 몇 줄짜리 글이라도 쓸 수 있다. 문제는 세상에(인터넷에) 글을 못 쓰는 인간이 많다는 것이다. 명문이나 글다운 글은 전문가에게 바랄 일이고, 그저 ‘말이 통하는’, ‘이해 가능한’ 글이 귀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 멋진 글을 남기고자 한껏 분위기를 잡았다가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모국어를 가지고 남이 알아듣기 힘들게 글을 쓰는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로 타임 리프를 감행해야 회생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든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구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쳐도 좋다. 힙합 칼럼니스트 김봉현의 열여섯 번째 책이자 그가 처음으로 낸 글쓰기 책이다.

이 책이 희한한 점은 초급자와 상급자 모두에게 먹힐 가이드라는 사실이다. 글의 종류에 따라 잘 쓰기 위한 포인트를 짚어주는 챕터, 실제 그가 칼럼을 쓰던 과정을 상세히 풀면서 글쓰기에 접근하는 법을 알려주는 챕터 등등 15년 차 칼럼니스트의 산 경험에서 나온 예시가 상당히 풍부하다. 공감보다 영감을 부르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그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새로운 관점, 새로운 정보, 새로울 것 없는 소재와 주제라면 깊이와 디테일로 승부를 볼 것.’ 영감을 일으키는 좋은 글을 위해 그가 꼽은 이 세 가지는 매달 원고를 쓰고 사는 사람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힙합 음악에서 래퍼가 ‘내 랩이 교과서야’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글쓰기 레슨을 쉽고 친절하게, 무엇보다 재밌게 해주는 단 하나의 교과서를 꼽자면 요즘엔 이 책이다.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한민 지음, 위즈덤하우스

‘행복’은 서점가를 떠나지 않는 키워드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인 ‘욜로’와 ‘소확행’도 ‘행복’의 자장 안에 있다. 사실 행복한 삶의 비기를 알려준다는 책을 통해 행복을 쟁취하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우스운가? 차라리 맛집이나 쇼핑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일 텐데.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행복 담론에 대한 어느 문화심리학자의 피드백이다. 행복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고, 행복한 삶으로 향하는 토대를 마련해주려는 태도가 책 전반에 깔려 있다. 이 역시 행복이 키워드인 수많은 책 중 하나지만, 노하우를 알려준다기보다 이정표를 제시하는 쪽이다. 우선 저자는 요즘 보편적으로 알려진 개념들에 반기를 든다. 불확실한 행복은 포기하라는 맥락으로 잘 쓰이는 ‘소확행’은 결국 ‘애쓰지 말고 대충 살아라’의 메시지밖에 주지 못하며, 목적과 목표를 정하는 것이야말로 현재를 즐겁게 만든다는 식이다. 진정한 행복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비교하더라도 그 결과에 영향받지 않는 데서 온다. 또 행복이 워낙 긍정적 정서로 정의되어 있지만, 뭔가에 불만을 갖고 투덜대는 행위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고 동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다. 한국이 ‘헬조선’이 되기까지, 휘몰아치는 현대사에서 세대를 거치며 전해진 초조함과 경쟁심이 우울과 불안에 빠지기 쉬운 사회를 만들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지음, 김영사

유죄와 무죄 사이에는 수백 장에 이르는 한 사건의 기록물이 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뉴스는 거기서 맥락을 생략하고 남긴 요점 단 몇 줄이다. 사건 사고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 법과 일반 상식의 괴리를 느끼며 분노하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한 판사가 자신이 맡은 사건들에 대해 써 내려간 긴 주석이다. 이성과 법 정신의 상징인 법복을 입은 채로는 말할 수 없었던 개인의 번민과 고백이 가득하다.

판결문이란 모든 감상을 배제하고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만을 가지고 엄정하게 작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판사가 그나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대목이 ‘양형 이유’ 부분이라고 한다. 울산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부장판사인 박주영은 여러 사건을 소개하면서, 각 판결문의 내용 중 ‘양형을 내린 이유’ 부분도 곁들였다. 위독한 시어머니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된 일명 ‘패륜 며느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일, 성전환자에게 일어난 강간과 부부 강간을 인정한 사상 첫 판결에 관한 뒷이야기 등, 메마른 판결문의 형식 뒤에 있었던 한 판사의 ‘마음의 소리’를 읽으며 인간의 존엄 같은 걸 느낀다. 박주영 판사는 말한다.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데 급급해 기록물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사람도, 정의도, 인권도, 고통도, 양심도, 세월도, 기록과 함께 형식적으로 넘기기 쉽다고. 하지만 판사 한 사람의 결정은 수많은 우주를 비극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고. 법과 도덕 문제로 시국이 뒤숭숭한 요즘, 세상의 원망과 고통, 절망과 눈물, 몰염치와 정의가 한데 모이는 법정을 상상해본다.

<색을 불러낸 사람들> 문은배 지음, 안그라픽스

화가와 미술인은 물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뉴턴도, 괴테도 이야기한 주제가 있다. 바로 ‘색’이다. 색채학 전문가이자 미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색에 대해 저 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야깃거리를 불러온다. 전문가를 위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색이라는 게 대체 뭔지 알기 위해 실험과 연구를 거듭한 유명한 학자들의 일화와 우리가 현재 인식하는 색들이 정립된 과정 등등이 한 챕터마다 길지 않은 분량으로 흐른다. 이데아를 주창한 플라톤이 ‘인간의 의식’을 맹신한 나머지, 물체가 색을 지닌 게 아니라 인간의 안광이 물체를 더듬어 색을 느끼는 거라고 주장했다는 대목에서는 놀라서 눈이 번쩍 뜨인다. 공기의 색까지 표현하려 애쓴 모네가 가장 아름다운 공기 색이라고 정의한 건 보라색. 르네상스 시대에는 파랑 물감이 황금보다도 비쌌기 때문에 그 시대 회화에 표현된 하늘은 하나같이 칙칙하다. 박학다식을 추구하는 독서 스타일의 소유자에게 권한다.

<공간의 종류들> 조르주 페렉 지음, 문학동네

‘자유로운 공간, 닫힌 공간, 녹색 공간, 위태로운 공간, 발견된 공간, 순결한 공간, 꿈의 공간, 부서진 공간, 정리된 공간, 아침의 공간, 문학적 공간.’ ‘페이지(흰 종이에 활자를 채워나가기 위한 공간), 침대, 방, 아파트, 건물, 거리, 구역, 도시, 시골, 나라, 세계.’ ‘질문하기와 생각하기, 분류하기와 기록하기, 기억하기와 상상하기.’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암호 같은 세 덩어리로 마치면 좋겠다. 조르주 페렉은 소설과 시, 미술 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 글쓰기를 한 프랑스 작가다. 이 책은 그가 1974년 생전에 출간한 유일한 에세이다. 좀 엉뚱한 내용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섬세한 시선 역시 보인다. 무엇보다 조르주 페렉이야말로 ‘덕후’ 기질 충만한 작가라는 점도 새삼 드러난다. 다양하게 정의 내린 공간, 작은 공간에서 거대한 공간으로 사유의 꼬리를 이어가는 방식, 그리고 그것들을 분류하며 각각에 대해 질문하고 상상하는 것. 한 대상을 깊게 파고들면서도 넓게 펼치는 ‘본좌’의 단련법이 여기 있다.

<취미로 직업을 삼다> 김욱 지음, 책읽는고양이

김욱은 1930년생이다. 번역가이자 작가다. 수년 전에는 <폭주노년>이라는 책을 냈다. 그 책이 ‘철없이 사는 노년의 에피소드’를 다뤘다면, 이번 책은 자신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현재 신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생존분투기다. 꼰대 어른이 청춘에게 들려주는 ‘내가 말이야…’ 식의 훈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일제 강점기, 전쟁, IMF 체제와 파산을 겪으며 ‘이 세상에는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숱하게 배웠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회적 입장과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으니, 바로 ‘개인으로서의 운명’이다.

젊은 날 30년간 기자 생활을 한 그는 육십이 훌쩍 넘은 나이가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사람과 세상이 충돌하는 자리의 목격자가 되고 싶어 기자가 됐지만, 정작 자기 안의 충돌과 폭발에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고 자각한 것이다. 그 이후 도서관을 오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중 번역을 하기 시작했고, 70대 들어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노년에 이룬 그 기적은 자기가 스스로의 운명을 뒤돌아봤기에, 그림자처럼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뒤따라와준 운명 덕분에 가능했다고 그는 말한다. 주변에서 노인이 나댄다고 바라볼 때마다 ‘좋아, 세상에서 가장 못된 늙은 놈이 돼보자’ 마음먹으면서 힘을 냈다는 말은 그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혼자 계속 고민해봐야 소용없으니, 그럴 바에야 결단을 내리라고 충고도 한다. 일단 저질러놓고 ‘이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는 게 생산적이라고. 이렇게 ‘스웨그’ 있는 노년이 또 있을까? 책의 서문은 할리우드 히어로물의 내레이션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나는 더 이상 그냥 노인이 아니다. 신노인이다. 세상에 없던 노인이다.’

<음악의 사물들> 신예슬 지음, 워크룸 프레스

음악은 ‘비물질 예술’이다. 미술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도 있지만, 음악은 소리나 연주의 형태로 존재한다. 음악이라고 할 때 그저 ‘소리’를 떠올리는 것, 여기까지가 보통 사람의 인식이다. 음악 비평가 신예슬은 서양 음악을 공부하며 음악의 근본적인 속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형체도 촉감도 없는 그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음악이라는 건 손에 잡히지 않는데, 음악을 기록한 사물은 그 형체가 있었다. 악보, 음반, 음향 기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 자체가 음악은 아니지만, 그것 없이는 음악도 없다. 저자는 추상적 개념인 음악 대신 구체적 사물들에서 출발해 음악의 외연을 확장해간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서양 음악의 발전사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20세기 초에 음반의 표면을 조각해 음악을 만들자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다는 점. 그런 일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면, 음반은 음악의 기록물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좀 더 주체적인 위치로 올라섰을지도 모른다(시간이 흘러 표면을 조각하지는 않아도 표면을 긁어 소리를 내는 턴테이블리즘이 등장했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음악은 고전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서양 음악이다. 악보 따위 없이 신시사이저로 갖가지 소리를 채집해 디지털 싱글을 만드는 요즘 작곡가들은 개개의 소리에서 촉감도 충분히 느끼고 있지 않을까?

피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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