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찾아가야 할 서울의 포스터 숍 3곳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벽이 허전해서

2019-09-25T21:29:02+00:002019.09.26|FEATURE, 컬처|

무섭게 몸집을 키우고 있는 빈티지 포스터 시장. ‘벽이 허전해서’라는 기분 좋은 핑계로 더 늦기 전에 찾아가야 할 서울의 포스터 숍 3곳을 찾았다.

와일드덕 Wildduck

“이걸 구하려고 기차 타고 1시간을 달렸잖아요.” 이런 말을 던진 이는 서빙고동에 위치한 ‘와일드덕’ 홍원기 대표. 그가 자랑스럽게 꺼내든 ‘이것’은 올해 6월 루이지애나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오스트리아 예술가 비르기트 위르겐센(Birgit Jürgenssen)의 개인전 포스터다. ‘여기 맞아?’라는 의문이 튀어나올 정도로 외진 골목에 자리한 와일드덕은 출입문을 열자마자 ‘유레카’를 외치게 되는 장소다. 홍원기 대표가 24개국, 70개 도시를 돌며 수집한 포스터가 무질서하게 쌓인 이곳은 ‘비주얼 폭격’이란 수사 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친구들이라면 시쳇말로 눈이 돌아가죠.” 그의 말을 들으며 사방을 둘러보면 1983년 일본 시티팝의 거장 야마시타 다쓰로가 발행한 앨범 포스터, 2011년 스위스 취리히 소재의 출판사 니브스(Nieves)에서 제작한 독일 사진가 스테판 막스(Stefan Max)의 오리지널 포스터 ‘사해(The Dead Sea)’ 등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신변잡기’적 컬렉션은 전적으로 홍원기 대표의 취향에서 비롯됐다. 베를린에 위치한 ‘세계 문화의 집(HKW)’에서 발행하는 전시 포스터는 최근 들어 그가 가장 주목하는 작업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이 자행한 대량 학살, 러시아의 통신 케이블 도청 사건 등 사회 정치적 화두를 감각적으로 시각화한 HKW의 포스터 대다수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카페 포제 Cafe Poze

1950~60년대를 풍미한 미드센트리 모던(MidCentury Modern) 디자인을 좋아하는 이라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곳. 지난해 겨울 성수동에서 문을 연 ‘카페 포제’는 지금 인스타그래머들 사이에서 가장 뜨겁게 소환되고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군침 돌게 하는 디저트와 ‘펠트’에서 원두를 납품받아 추출한 커피에도 눈길이 가지만 미트센트리 모던 가구와 조명, 오디오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무엘 스몰즈’에서 공수한 몸값 높은 빈티지 포스터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디깅’하는 재미가 톡톡하다.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아 한창 인기몰이 중인 바우하우스의 기념비적 포스터부터 류석주 대표가 편애하는 스위스 건축가 막스 빌(Max Bill),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Yves Klein)의 오리지널 포스터까지 폭넓게 다룬다.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시초라 불리는 바우하우스 포스터를 대거 다루지만 발 디딜 틈 없이 제품을 디스플레이하는 방식은 지극히 맥시멀리즘에 가깝다. 뉴욕 벼룩시장에서 공수한 작가 미상의 사이키델릭한 포스터 곁에 바우하우스 정신을 온몸으로 휘감은 테크노루멘의 책상 조명이 다소곳이 자리한 이질적인 풍경이 납득되는 독특한 공간이다.

스피크이지 썸띵 Speakeasy Something

미국에 금주령이 떨어진 1920년대, 단속을 피해 간판 없이 장사하던 술집을 ‘스피크이지(Speakeasy) 바’라고 불렀다. 주류를 밀매하는 장소인지라 사람들은 이곳으로 향하기 전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말해(Speak Easy)’라고 읊조렸고 이러한 습성에서 재미난 이름이 유래했다. 홍제동에 자리한 ‘스피크이지 썸띵’도 술꾼들이 아지트를 지키기 위해 함구했듯 ‘나만 알고 싶은’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포스터 숍이다. 천막으로 은밀하게 가린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1972년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리소그래프 방식으로 인쇄해 단 400장만 남긴 아트 포스터, 크리스토(Christo)의 친필 사인이 새겨진 ‘마스타바(The Mastaba)’ 포스터 등이 펼쳐진다. 회화를 전공한 이리아 대표가 운영하는 덕에 당장 옥션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빈티지 아트 포스터가 벽면 가득 걸려 있다. 일견 아방가르드한 취향이 묻어나는 컬렉션에 대해 묻자 “페인팅이 주는 울림이 있는 작품, 그리고 장차 소장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포스터만 모았을 뿐”이라는 명쾌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녀는 한국의 재능 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인큐베이터 내지 에이전시로도 이곳을 운영할 계획이다. 현재 그녀가 ‘점’ 찍어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 머무는 젊은 작가 서도희, 홍해은, 김지용의 판화도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