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신진 작가 토머스 바저가 생각하는 서울은?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수수함과 순수함 사이

2019-09-18T01:07:49+00:002019.09.18|FEATURE, 컬처|

개인전 Sugar Dish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작가 토머스 바저 인터뷰.

뉴욕에서 활동 중인 신진 작가 토머스 바저(Thomas Barger)가 815일까지 서플라이 서울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제 갓 20대를 지나고 있는 이 젊은이는 대도시의 화려함보다 자신의 작고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는 작업에 몰두한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일찌감치 발견한 이들은 그의 작품 앞에서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따뜻한 정서를 꺼내 보는지도 모른다. 구멍 난 티셔츠, 캐주얼한 반바지 차림으로 뉴욕에 진입한 젊은 작가는 자신의 소박한 어릴 적 경험이 진정한 명품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다.

두 번째 개인전을 한국에서 열게 됐다. 아시아에 처음 방문한 소감이 어떤가? 내가 몸담은 살롱 94 디자인 갤러리 소속인 이광호 작가가 서플라이 서울에서의 전시 개최를 제안했다. 뉴욕이 아닌 새로운 환경에서 작품을 소개한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강남, 종로, 을지로 등을 돌아다녔다. 같은 도시인데도 결이 다른 다양한 분위기를 품은 것이 흥미롭다.

전시 타이틀인 <Sugar Dish>의 의미가 궁금하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사탕통이 있었다. 가끔씩 쥐여주시던 사탕이 달콤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는데, 나의 소박한 추억을 하나씩 꺼내 표현한 것을 보여주는 전시라는 뜻이다. 일종의 ‘Rural Luxury’다.

Rural Luxury(시골의 호화로움)’라는 모순된 키워드 가 예술이 되는 것인가? 나는 일리노이주의 목장 집안 출신이다. 22세까지 조용하기 그지없는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다 뉴욕으로 왔다.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이곳이 거대한 ‘럭셔리함’으로 가득 찬 도시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시골에서 느낀 고급스러움은 할머니의 사탕통이 전부였는데,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니 사실은 수수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짜 럭셔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골 정서를 솔직하게 표현하자 관객들이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을 보고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느꼈다.

헬멧이나 바구니, 낚시 도구같이 흔한 일상용품을 소재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저렴하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내 손을 거쳐 명품으로 재탄생한다는 의미가 있다. 예술이야말로 진짜 사치품이니까. 나무 바구니나 종이 펄프에 골드와 실버 컬러 스프레이를 뿌린 것도, 금이나 은이 아니지만 언뜻 그런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과연 무엇이 진짜일까요?”라고 장난스레 의문을 던지는 셈이다.

버려진 종이 펄프와 목재 등을 재활용하는 건 일종의 업사이클링으로도 보인다. 거창하게 친환경적인 이념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웃음). 건축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생계를 위해 애완견 산책시켜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뉴욕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버려진 이케아 가구나 폐지 등이 눈에 띄었고, 그런 것들을 구해다 재료로 썼다. 비싸지 않고 흔한 소재일수록 나의 본바탕인 시골 정서를 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나같이 두꺼운 볼륨감, 일정한 간격의 구멍, 불규칙한 장식물이 달린 작품 형태가 인상적이다. 이것 또한 상반된 두 문화가 한데 섞인 결과물이다. 고향이 시골이다 보니 집안 분위기 또한 엄격한 편이었는데, 뉴욕에 오자 완전히 개방적인 도시 문화를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점차 내 안에서 극과 극이 융합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유동적이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정렬되는 느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유머러스한 일상이 작품에도 녹아든 듯하다. 사실 나는 SNS에 보이는 것만큼 외향적이지도 않고, 표현을 잘하는 성격도 아니다. 웃는 모습은 여장한 남자인 ‘드래그퀸’처럼 어느 정도 슬픔을 가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희로애락이 있다. 특히 아련하게 남아 있는 어렸을 적 할머니 그리고 엄마와의 추억을 작업물 하나하나에 담아내려고 한다.

글로시에와 탬버린즈 매장, DJ예지의 <One More> 뮤직비디오에도 당신의 가구가 놓여 있다. 자신들의 공간에 왜 어울린다고 생각했을지 나도 궁금하다. DJ 예지의 뮤직비디오에는 친구의 소개로 내 작품이 들어가게 됐는데, 평소 그녀의 개성 있고 흡인력 강한 음악을 좋아해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내일이 기대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가구 디자인을 공부하지도 않았던 내가 어떤 작업물을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가구 중에서도 작고 단순한 형태를 지닌 의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꾸준한 활동으로 더 큰 규모의 작품과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싶다.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객들에게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