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름 축제가 망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슈퍼스타 내한에 부쳐

2019-09-02T21:40:38+00:002019.09.03|FEATURE, 컬처|

톰 요크가 한국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 무대를 만드는 데만 수억이 깨지는 U2는 드디어 12월 내한을 앞두고 있다. 내한 공연 시장은 확실히 커졌다. 그런데 국내 팝 음악 시장도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많던 여름의 대형 뮤직 페스티벌은 왜 홀연히 사라졌나? 앞뒤가 맞지 않는 이 상황을, 업계의 오랜 기획자가 차근차근 구조적으로 살펴봤다.

한국에 본격적인 록 페스티벌이 출현한 지 몇 년 안 되었을 때, 온라인 게시판과 댓글창에는 우리의 축제 라인업이 이웃 나라 일본에 비해 부실하다는 비판의 글이 많았다. 그건 물론 전에 없던 현상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누구누구는 일본에 자주 가는데 왜 한국에는 안 오냐? 한국이 싫은가?”라는 식의 글은 90년대 PC 통신 때부터 존재했다. 이렇게 늘 같은 패턴의 불평을 쓰는 것이 지루했던 걸까.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Thom Yorke)가 어린 시절 한국인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한국을 싫어한다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나돌기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가 한국에 오지 않는 이유를 어떻게든 알고 싶었던 팬들은 이런 소문을 널리 전파했고,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얘기를 ‘팩트’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을 싫어한다는 톰 요크가 있는 라디오헤드는 2012년 한국을 다녀갔다. 소문의 주인공 톰 요크는 얼마 전 서울에서 단독 공연까지 열었다. 이들이, 혹은 그가 갑자기 한국을 좋아하게 된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사이 한국의 음악 시장이, 공연 시장이 급성장한 덕일까? 아니면 많은 매체나 팬들이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처럼 ‘세계 최고’에 가까운 한국 관객 특유의 열광적인 반응이 입소문을 타고 이들에게 전파된 걸까? 방한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던 U2도 오는 12월 첫 내한 공연을 한다. 확실히 내한 공연의 양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는데, 한편으로 이제 ‘한국의 여름 음악 축제는 망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매년 여름 무렵 <음악산업백서>를 발간한다. 국내 음악 산업에 관련된 통계가 게재되는 거의 유일한 자료집이다(보통 발간 연도를 기점으로 그보다 2년 전 통계 자료가 나와 있으므로 최근 나온 음악산업백서의 자료는 2017년도 기준이다). 여기에 소개된 국내 음악 공연 시장의 성장 속도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20071,988억원이었던 시장이 20179,441억원의 시장으로 커졌다고 한다. 음악 공연의 성장은 서울과 수도권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인기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전국 투어로 연계해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고, 수도권에서 성공한 축제가 지방에 진출하거나 지자체에서 수도권의 성공적 공연을 벤치마킹한 사례도 있다. 이렇게 공연 시장이 성장하는 동안 음악을 소비하는 패턴은 완전히 변했다. 10여 년 전에는 ‘다운로드’가 음악 산업의 화두였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듯 이제는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다. 공연 시장은 이 현상의 반대급부로 존재해왔다. 사람들은 언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굳이 저장하거나 구매하는 대신, 반복될 수 없는 음악적 순간, 즉 공연을 본 경험을 구매하고 저장하고 있다. 공연장에서 사진을 찍거나, 공연장에서 기념품을 사는 행위 등이 ‘저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국내 음악 시장(모든 음악 관련 사업 매출을 더한 시장 규모)은 더욱 커졌다. 20072조원에 미치지 못하던 규모는 2017년 기준 5조 이상으로 확대됐다. BTS처럼 국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들의 등장과 활약(20093천만 달러에 그쳤던 음악 수출액은 2017년 기준 5억 달러 이상의 규모로 증가했다)이 이 성장세에 큰 역할을 했지만, 스트리밍을 서비스하거나 음원을 유통하는 온라인 업체들과 공연 사업 주체들의 가파른 매출 상승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이상이다. 이것만 보자면,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이 음악을 듣고, 더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 가는 셈이다.

누구든 스마트폰을 통해 보다 자주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이 더 많은 종류의 음악을 듣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관련 통계가 없기 때문에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한계는 있지만, 음원 시장이나 공연 시장에서 ‘순위권’ 안과 밖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음원 시장에서 끊임없이 사재기 의혹이 불거지는 것도, 차트 성적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좋은 자리에 음원을 홍보하기 위해 기획사와 유통사가 전력을 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전보다 더 많이 듣게 된 음악’은 결국 ‘차트 내 음악’이고, ‘더 많은 사람이 가는 공연’도 대부분 ‘유명 음악가의 공연’이다. 국내 음원 차트 상위권 100위를 들여다보면 이 곡들이 대부분 국내 음악가의 곡이라는 사실도 쉽게 알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 혹은 그 외 특수한 요인에 의해 히트한 극소수 외국곡을 제외하면 이 차트는 언제나 한국 가요의 독무대였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처럼 예외적인 영화 사운드트랙의 히트가 이어지지 않는 이상 국내에 진출해 있는 해외 직배사들이 해외 음악 부문에서 성장을 기대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 됐다. 해외 음악 라이선스를 통해 이름을 알린 독립 회사들은 이제 대부분 사라졌거나 다른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다. 음원 · 음반 판매 차트만 보면 이전에 비해 한국인이 해외 음악을 더 많이 듣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란 확실히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해외 음악가의 내한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면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분명 이유가 있다.

아시아 음악 시장에서 압도적인 존재였던 일본의 사정부터 따져보자. 2018년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자료를 보면 일본은 여전히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시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음악 시장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70년대 베이비붐 세대나 80년대 버블경제 시대 세대와 달리 현재의 일본 음악 시장을 주도하는 새로운 세대는 해외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화하지 않는다. 다채로운 해외 음악을 구매하던 세대는 이제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들었고, 음악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시장 규모를 지탱하는 것은 아이돌 산업과 전통적 인기 장르, 인기 가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음악가들이 새 음반 발표와 함께 일본에 가서 열성적으로 방송 홍보를 하거나 순회공연을 하는 일은 이제 점점 보기 드물다.

“이제 오사카 공연도 쉽지 않아요.” 아시아 도시들을 오가며 공연과 관련된 일을 하는 야하타 코키 씨는 해외 음악가들이 일본에서 공연을 할 때 도쿄 외 도시에서 흥행에 실패하는 일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한다. 일본 내 음반 시장이 축소되면서, 즉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는 가지 않아도 일본에 가서 프로모션 활동을 하는 음악가들이 많았던 이유이자 원동력이 약해지면서, 서구 음악가에게 ‘아시아 시장 = 일본 시장’이라는 공식은 점점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 시장이 힘을 조금씩 잃어가는 동안 아시아 각국에서는 새로운 페스티벌들이 생겼고, 해외 음악가를 섭외하는 새로운 프로모터(기획사)가 대거 생겨났다. 까다로운 심의 절차로 악명 높은 중국에도 서구 음악가를 섭외하고 홍보하는 기획사가 문을 열었다. 한국과 중화권, 혹은 동남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투어 시장이 생겨났고, 아시아 시장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공연 에이전트도 등장했다. 이 ‘새로운 시장’은 음반 시장이 가파르게 하향세에 접어들고 음원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든 2010년 전후의 세계 음악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부터 내한 공연이 크게 증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내 음악 시장에서는 성공한 축제들이 등장했다. 이를테면 해외 음악가를 내세우지 않고 성공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초기의 난관을 극복하고 이 무렵 본격적으로 성공 가도에 돌입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등. 이런 성공 사례들이 생겨나자 ‘자본’과 ‘브랜드’를 가진 이들이 공연 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이 공연에 투자하거나 마케팅 · 홍보비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전에는 높은 리스크나 자금력의 한계 때문에 기획사들이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슈퍼스타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하는 일도 생겼다. 한국의 여름 페스티벌, 여름 록 페스티벌이 한때 대여섯 개까지 늘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투자자들과 브랜드들이 있었다.

그러나 시장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페스티벌이 난립하자 각 페스티벌의 적자 규모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고, 결국 투자하거나 후원했던 기업들이 대거 떠나버렸다. 그렇게 ‘여름 축제가 망했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올해 공연 직전에 취소된 ‘지산 록 페스티벌’이나 헤드 라이너 공연 취소와 매끄럽지 못한 진행으로 구설수에 오른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모두 주최사들이 페스티벌을 해본 경험이나 자본력이 풍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사를 준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축적한 경험과 자본으로 성장해간 사례도 있지만, 국내 음악가들이 출연하는 페스티벌이 포화 상태에 접어든 지금, 신생 페스티벌이 기획력만으로 성공의 길에 접어들 확률은 이전보다 매우 낮아졌다. 반면 대형 공연과 대자본이 바탕이 된 페스티벌을 경험한 사람들의 눈높이는 무척 높아졌을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해외 음악가들이 출연하는 페스티벌에 대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고, 그 기대치를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는 거액을 베팅해야만 한다. 불행히도 그런 베팅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업계에서 대부분 떠난 것 같다. 한 예를 들면 ‘압도적 라인업’으로’ 보다 쾌적하고 즐거운 관람 환경을 제공’했다고 자평했던 현대카드의 ‘시티브레이크’는 단 2회만 개최되고 사라졌다. 자본과 노하우가 있었던 이들에게도 ‘성공적인 페스티벌’이란 너무 어려운 숙제였던 셈이다. 이제 포스터 상단에 해외 음악가의 이름과 함께 기업 브랜드가 새겨지는 축제는 5tadium 같은 몇몇 EDM 계열 페스티벌뿐이다. 소위 ‘되는 페스티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기업의 로고가 전면에 등장하는 페스티벌, 후원사 로고가 많은 축제를 찾으면 된다. 자본은 언제나 안전한 것을 빠르게 찾아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국내에서 해외 음악 시장이 커지지 않았는데도 내한 공연이 많아진 이유를, 이전에 오지 않던 슈퍼스타들이 한국에 찾아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시장이 급변하는 동안 아시아라는 신흥 시장이 부각됐고, 성공적인 대형 공연을 통해 브랜딩이나 투자에 성공하는 자본가들이 생겨났다. 그 과정을 통해 공연 산업 종사자가 늘어났고, 공연 기획을 하고자 하는 이도 더 많아졌다.

문제는 관객이다. 기존에 공연장을 자주 가던 사람들이 지출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는 일이고, 공연장에 자주 갈 수 있는 금전적 여유와 문화적 관심, ‘저녁이 있는 삶’을 두루두루 갖춘 음악 팬은 결코 많지 않으니까, 그들은 선택해야 한다. 얼마 전, 기획한 한 인디 밴드의 내한 공연을 예매한 관객 한 명이 공연을 취소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죄송합니다. 공연을 볼 수 있는 예산이 많지 않은데 U2 공연을 예매하려다 보니 이 팀의 공연을 볼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겠네요.” 공연을 직접 준비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고민과 고뇌가 담긴 메시지나 게시물을 종종 발견한다. 한국에서는 U2의 공연을 보는 팬들과 켄드릭 라마 공연을 보는 팬들, 그리고 인디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가는 팬들 중 상당수가 겹친다. 평소 인디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가는 이라면 켄드릭 라마 공연도, U2 공연도 보러 갈 의향이 있는 관객이라는 뜻이다. 서구의 음악 산업 종사자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지만, 국내에서 공연을 기획해온 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것이 틀리지 않은 얘기임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내한 공연이 여러 개 열리면 적정 관객을 동원하는 공연은 늘 극소수에 불과했다. 공연 횟수가 많아져서 공연 산업의 규모는 커졌지만, 개별 기획사나 공연의 수익성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 통계를 봐도 음악 공연 기획업체들의 평균 매출이 2016 135천만원에서 2017년에는 126천만원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이 기간 동안 전체 음악 공연 산업 매출은 17% 이상 증가했다). 가끔 미디어에는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내한 음악가를 감동시키고, 그 영향으로 내한하는 음악가가 늘어났다는 식의 보도가 나온다. 그런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도 않고, 실제로 관객들의 반응이 그다음에 열리는 공연 성사 여부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란 미미하다. 한국 관객을 뿌듯하게 만드는 그 기사들 이면에는 결코 단순할 수 없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요인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존재하고 있다.

어쨌든 라디오헤드와 폴 매카트니도 다녀갔고, U2도 온 다(U2는 좀 더 일찍 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이 공연할 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인 고척돔이 생기지 않았다면 U2의 서울 공연은 이번에도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분명히 우리의 공연 시장은 커졌다. 그러나 시장의 건강 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 키는 컸지만 영양이 부족한 상태, 그래서 잠깐의 비와 바람에 휘청거린 어떤 야외 페스티벌의 무대와 같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간 아시아 기획자들이 서구의 음악가를 매개로 협업을 시작하면서 이들 사이의 직접적 교류도 대폭 확대됐는데, 예컨대 이 지역 내에서 새로운 음악가를 발굴하고 교류하면서 작고 재미있는 축제를 만들어가는 것도 건강 상태 개선을 위한 하나의 처방이 될 것이다. 정치 외교 상황 때문에 한동안 일본과의 교류가 위축되겠지만, 최근 국내 공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아시아 음악가가 제법 많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서구의 음악 시장 주체들이 아시아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려고 했듯이, 우리도 새로운 발견을 위해 눈을 돌려야 할 시기인지도 모른다.

음반 시장이 멸망할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많았으나 바이닐 레코드가 이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처럼, 정체를 거듭하는 국내 팝 음악 시장이나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내한 공연 시장도 의외의 동력원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비관하거나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