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니 세계 최고의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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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사이영상 가즈아.

요즘 야구판이 뜨겁다. ‘LA다저스의 좌완 류현진이 과연 ‘사이영상’을 수상할까?’ ‘사이영상(Cy Young Award)’이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매년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22년 동안 활약한 투수 사이 영을 기념하여 1956년부터 시작되었다. 얼마 전까지 류현진이 유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며칠 전 경기 부진으로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평가도 분분하다. 그러던 중 8월 27일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com에서 실시한 사이영상 모의 투표가 눈길을 끈다. 소속 기자 37명 중 1위 표 22장을 얻어 1위를 차지한 것. 5차례 실시된 모의 투표에서는 네 번째로 1위를 차지했다. 경쟁 구도도 바뀌었다. 원래는 류현진 vs. 맥스 슈어저(워싱턴)의 구도였는데 슈어저가 부상을 당하면서 류현진이 단독 선두로 올라선 것. 그 뒤를 지난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제이콥 디그 롬(뉴욕 메츠)이 뒤쫒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핫한 투수 류현진, 그에 대해서 알아보자.

전설의 시작

류현진은 창영 초등학교 3학년에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인천의 현대 유니콘스의 어린이 회원이었는데 그들의 경기를 보며 꿈을 키웠다고. 현진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이미 그때부터 6학년 형들을 제치며 신동이라 불렸다. 그렇게 야구 명문고 동산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전국의 3대 에이스

동산고 류현진은 1학년 때부터 날아다녔다. 제1회 미추홀기에서 팀이 결승에 올라가는데 크게 기여했고 타격도 좋아 4번 타자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다. 결국 수술을 받았고 3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공을 잡을 수 있었다. 수술이 잘 된 탓인지 폼이 올라왔고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8강전 성남고 전에서 무려 1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기도 했다. 이미 전국의 3대 투수로 손꼽히던 시절이었다.

미친 프로 데뷔

팔꿈치 부상을 염려한 SK, 롯데가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자 이를 놓칠세라 한화가 그를 붙잡았다. 2006년, 류현진은 데뷔와 동시에 폭발적인 투구를 선보이는데 그해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MVP를 수상,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 먹는다. 2007년, 2008년에도 활약은 여전했고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하여 캐나다전 완봉승, 결승 쿠바전에서 활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다.

괴물의 위엄

201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골든글러브 올스타 선정 등 활약이 계속되며 메이저 진출에 관한 이야기가 스멀스멀 돌기 시작한다. 결국 2012년, LA 다저스가 류현진에게 접촉.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넘어가는 최초의 투수가 된다. 당시 계약 비용, 6년에 3600만 달러. 약 400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첫 시즌은 적응하느라 힘들 것’이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14승을 하며 정상급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2013년 우리나라를 빛낸 최고의 스포츠 선수 1위에 오른다.

2019년 8월의 류현진

올 시즌 24경기, 12승 4패,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에만 152⅔이닝을 기록. 데뷔 시즌이었던 2013년 192이닝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남은 시즌을 잘 마무리한다면 동양인 최초 사이영상 수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류현진의 TMI

키는 190cm. 살과 근육이 많아 더 커 보인다. 어렸을 때에는 적당히 건장한 체구였는데 2007년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체중이 불면서 기록은 점점 좋아졌다. 원래는 오른손잡이였으나 아버지가 처음 사준 글러브가 왼손잡이용이고 왼손으로 야구를 하는 거라 생각했던 그는 좌완이 되었다. 지금은 양손잡이다. 메이저 리그에서도 쉽게 적응할 정도로 외향적이고 장난이 많다. 2009년 한 인터뷰에서 한 번에 가장 많이 먹었던 것으로 ‘삼겹살 5인분에 밥 한 공기’라고 대답했다. 류현진이 사는 아파트에는 NBA 농구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도 살고 있다고 한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박한빛누리
사진
Instagram @hyunjinryu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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