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오트 쿠튀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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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인터뷰.

섬세한 튤과 깃털 등을 활용해 마리아 그라치아 특유의 메시지를 담은 가볍고 우아한 쿠튀르 룩을 완성했다. 모든 룩과 액세서리는 2019 F/W 시즌 디올 오트 쿠튀르(Dior Haute Couture) 컬렉션.

청명한 파리의 여름날, 2019 F/W 오트 쿠튀르 쇼가 펼쳐진 30 몽테뉴 애비뉴의 디올 메종. 이곳에서 마리아보다는 ‘마리아 그라치아’로 불리길 좋아하는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Maria Grazia Chiuri)를 만났다.  쇼 직후의 들뜬 기분을 안은 채, 속사포처럼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는 그녀의 당당한 언어가 그 공간에 가득 메아리쳤다. 이탤리언 특유의 쾌활함과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신중함이 유연하게 교차한 순간, 씩씩하고 열정적이며 굳센 그녀의 모습에서 ‘기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디올 하우스의 역사를 쓰는 첫 여성 수장으로서 스스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가고 싶다는 그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오늘날의 오트 쿠튀르를 향한 도전과 용기, 꿈의 대화록이 여기 있다.

만나서 매우 반갑다. 이번 오트 쿠튀르 쇼는 아름다운 동시에 많은 메시지를 안겨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쿠튀르 쇼만의 판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쿠튀르의 좋은 점은 나의 꿈을 실현 하면서 동시에 쿠튀르적 요소를 컨템퍼러리하게 풀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디올 아카이브의 오리지널 쿠튀르 작품은 너무나 아름다운 구조미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에서는 불편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아름다운 구조들을 좀 더 가볍게 활용하려고 한다. 재단, 건축적 구조, 그리고 고급스러운 소재를 모두 유지하면서도 과거와 많이 달라진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웨어러블한 옷을 만들고 싶다.

쿠튀르 준비로 더없이 분주한 아틀리에의 풍경이 궁금하다. 이 기간에 당신만의 리프레시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아틀리에 장인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협업하는지도 알고 싶다. 내가 이 시기에 ‘쿨’ 하게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웃음). 나는 쇼 작업 중에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가장 중요한 사안은 아틀리에에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작업 초반부에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에 사로잡혀 신경도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일에 집중해 초반의 며칠이 지나고 일이 진전되어가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쿠튀르가 팀 전체의 작업이란 점이고, 따라서 각 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척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이 작업을 통해 모두의 역량을 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이 방대한 팀을 신뢰하고 멋지게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모델 루스 벨이 입은 첫 번째 룩과 30 몽테뉴 건물을 재현한 마지막 룩은 서로 연계성을 지니며 이 컬렉션의 메시지를 함축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 우선 첫 번째 화이트 드레스에 새긴 ‘Are clothes modern?’이라는 메시지는 1947년 뉴욕에서 열린 중요한 전시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 뉴욕에 모마(MOMA)를 열면서 건축가 버나드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는 패션 의상과 액세서리를 분석하며 이들이 디자인 요소인지 아닌지, 또 이 새로운 뮤지엄에 패션을 포함할 것인지 아닌지 고민했다. 그는 패션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었고, 디자인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지만 패션은 계속 바뀐다는 이유로 패션을 모마에 포함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 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복식의상과를 만들었다. 47년 그 당시에 품은 그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쿠튀르에서는 그야말로 변치 않는 불멸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고 이미 만들고 있다. 루도프스키는 “패션은 의상이 몸의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다”라며, 의상의 불편함을 비판했고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언제나 변형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이야기다. 그가 비판하던 패션은 지금 시대의 것이 아니다. 지금은 놀라운 테크놀로지 덕에 우리는 너무나도 편한 코르셋이나 더없이 가벼운 페티코트도 만들 수 있다. 볼륨이 크다고 무거울 필요가 없다.

이 흥미로운 오프닝과 피날레 룩을 통해 당신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나는 특히 사람들에게 패션을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인류 유산의 한 부분을 나타낸다는 점을 꼭 전하고 싶었다. 현재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옷을 그저 심미안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사람의 몸과 옷의 기능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점 말이다. 그리고 패션이 디자인의 한 분야임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은 과거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예전의 코르셋은 건강에 좋지 않고 불편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은 사람의 몸과 옷의 기능성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봉긋한 스커트 실루엣과 어우러진, 튤을 겹겹이 연출해 우아함을 더한 룩. 모든 룩과 액세서리는 2019 F/W 시즌 디올 오트 쿠튀르(Dior Haute Couture) 컬렉션.

이번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펼쳐진 파리 몽테뉴가의 디올 메종 공간을 특별하게 구성한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여성 아티스트 페니 슬링거(Penny Slinger)와의 협업 과정이 궁금하다. 유서 깊은 몽테뉴가에 위치한 디올 하우스의 리뉴얼 전, 이곳에서 작업할 수 있는 이 마지막 기회에 그녀와의 협업은 굉장히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1977년에 그녀의 작품 하나를 본 적이 있는데, 그녀가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사진으로 찍어 그 집에 거주한 적 있는 모든 여성을 기념하는 초현실적 요소가 들어간 콜라주 작품이었다. 나는 페미니스트이자 초현실주의 작가인 그녀를 통해 디올 메종 안에 역사적으로 존재한 모든 여성을 기념하고 싶었다. 뮤즈뿐만 아니라 재봉사, 클라이언트까지 모두! 디올과 관련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여성들 말이다.

이번 쿠튀르 쇼를 통해 ‘검은색’에 집중했다. 블랙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블랙’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가진 색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세대를 ‘블랙 제네레이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나이 또래의 디자이너들은 다들 블랙과 그런 관계를 맺고 있을 거다. 나의 모국인 이탈리아에도 블랙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그와 동시에 디올에게 블랙은 우아함의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실루엣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색이기도 하고. 특히 지난 시즌이나 이번 시즌 나는 쿠튀르 쇼에서 옷 하나하나를 스페셜하게 보여주는 프로젝트도 같이 진행했다. 클라이언트로 하여금 실루엣을 더 잘 볼 수 있고, 그녀가 그 옷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 피부 톤, 그리고 그녀의 성격에 맞게 모든 쿠튀르 의상을 제작할 수 있는 브랜드가 디올이다. 오늘날의 여성은 더욱 퍼스널한 것을 원한다. 그것이 쿠튀르다. 쿠튀르는 당신만을 위해 특별하게 옷을 제작하는 시스템이다.

새로운 쿠튀르 쇼에 담긴 ‘디올 우먼’의 자화상은 무엇인가? 사실 디올 우먼이라는 하나의 상은 없다. 왜냐하면 쿠튀르란 각 피스마다 특별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디올 디자이너란 건축가이며, 쿠튀르 의상은 여성의 몸이 살아갈 수 있는 제1의 베이스를 만드는 것과 같다. 쿠튀르는 개별 여성이 자신의 의상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해준다. 우리는 그녀의 몸에 어울리는 최상의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쿠튀르 쇼의 디올 우먼이란 어느 한 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프레타포르테라고 불리는 기성복을 디자인할 때면 ‘디올 우먼’의 애티튜드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자신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아는 여성 말이다. 과거에는 디자이너가 디올 우먼이 누구라고 방향을 제시했지만, 나의 접근 방식은 굉장히 다르다. 우리는 이 ‘디올 코드’를 만들어가야 하지만 어느 여성이 이 코드를 그녀의 스타일에 접목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디올의 아이코닉한 바 재킷을 좀 더 편안한 실루엣으로 고안하고, 가벼운 튤 소재 스커트를 더하며 기능적인 쿠튀르의 가치를 되새긴 룩. 모든 룩과 액세서리는 2019 F/W 시즌 디올 오트 쿠튀르 (Dior Haute Couture) 컬렉션.

이 치열한 패션계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일하는 커리어우먼이자 워킹맘인 당신이 존경스럽다(순간 인터뷰 장소에 마리아 그라치아의 딸, 라켈레 레지니가 등장했다.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디자이너에게 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고맙다(웃음). 내 딸은 22세이고 아들 니콜로 레지니는 25세다. 일과 가정,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지만 딸이 많이 도와준다. 나는 전형적인 이탤리언 엄마고 내 딸이 다 자랐을 때 그녀에게 나와 함께 일하자고 했다. 나를 도와달라고. 이탈리아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집에서 저녁 시간에 요리할 때 “나 좀 도와줘” 하고 요청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아들은 사라지고 안 보인다(웃음). 그러나 라켈레는 나를 도와준다. 니콜로는 티비나 케이블 등 전자제품 다루는 것을 주로 도와준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도와주는 게 흔한 일이다. 내가 그렇게 자라왔으므로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왔다. 가족끼리는 서로 돕는 것이라고.

당신의 이전 인터뷰에서도 딸에게 영감을 받아서 디올의 젊은 고객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 쿠튀르 쇼에서도 라켈레가 영감이 되었나?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많은 것에 대한 열정을 나눈다. 나는 집에서 자주 나의 일과 나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다. 남편이 다른 주제의 이야기도 나누자고 간청할 정도다. 나는 라켈레와의 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녀가 나와 다른 세대를 보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내 일을 더 잘 이해하고 더욱 잘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대화다. 어떨 때는 이 똑똑한 아가씨의 생각을 듣고 어떨 때는 나의 견해로 대답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전형적인 지중해인이다.

요즘 각광받는 밀레니얼 세대이자 ‘넥스트 제너레이션’인 딸과 소통하는 방식은? 나는 라켈레가 내 컬렉션을 셀렉하여 그녀만의 룩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파티를 앞두면 라켈레와 딸 친구들이 내 드레스룸을 덮쳐 옷과 액세서리를 고르고 조합하여 아주 근사한 새로운 룩을 만든다. 보는 것 자체로 신나는 일이다. 다른 세대의 패션이란 어떤 것인지 구경할 수 있다. 대체로 그녀들의 연출에 동의하지만 아주 가끔 반대 의견을 내보는데 내 말을 절대 듣지 않더라. 어젯밤에도 유쾌한 소동이 있었는데, 가족 모두가 파리의 아파트에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라켈레가 초미니 점프슈트를 입고 나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남편이 “너무 짧은데! 도대체 어디 가는 거니?”라고 했고, 나는 다른 방에서 라켈레에게 “아빠 말 듣지 마렴, 나도 네 나이였으면 너무 입고 싶다 얘!”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남편이 이러는 거다. “그라치아! 우리 딸이 바지를 안 입고 나가려고 해! 이게 다 당신이 패션 일을 해서 그런 거 아냐! 가정 교육이 잘못되었어!”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고, 딸을 응원했다.

이번 쇼의 시작을 알린 첫 번째 룩. 기능적인 디자인으로서의 패션, 즉 쿠튀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시사하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모든 룩과 액세서리는 2019 F/W 시즌 디올 오트 쿠튀르 (Dior Haute Couture) 컬렉션.

다시 오트 쿠튀르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장인들과 협업하는 이 정교하고도 기술적인 작업에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장인 정신이다. 장인의 손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는 마네킹에 드라페 방식으로 옷을 짓는다. 이는 패턴 없이 옷을 시작하는 것으로 굉장히 다른 접근 방식이다. 이 또한 자유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해왔는지에 대한 참조 없이 자유롭게 창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 본으로부터가 아닌 무로부터 시작한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스케치 한 장을 가지고 만들어내야 한다. 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중요하고,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 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디올 하우스에 ‘오트 쿠튀르’가 상징하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현재 댈러스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Dior: From Paris to the World>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이 공간에선 디올 하우스의 수많은 아카이브 드레스가 소개된다. 이 드레스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디올의 쿠튀르 정신과 특징에 대해 설명해달라.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점은 디올은 언제나 쿠튀르 메종이었다는 사실이다. 패션 브랜드는 각자 고유의 역사와 DNA가 있다. 디올은 유서 깊은 쿠튀르 메종이다. 이 전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무슈 디올이 한결같이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바로 쿠튀르 정신이고 메종으로서 이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이는 디올을 설립한 무슈 디올뿐만이 아니고, 그의 뒤를 이어 진두지휘한 무슈 생로랑과 보한, 페레, 갈리아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중요하게 여긴 점이다. 내가 말하는 쿠튀르 메종과 그 정신이란 장인 정신이 깃든 인간의 손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멋진 쿠튀르 아틀리에를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는 정말 특별한 드레스들을 만든다.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드레스 말이다. 디올의 아트 디렉터로서 내가 할 일은 이 DNA를 유지하고 이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이다. 물론 나는 모든 고객이 쿠튀르 피스를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쿠튀르 컬렉션의 가치를 프레타포르테와 액세서리 컬렉션으로 풀어낼 수 있다. 이거야말로 쿠튀르 정신과 장인 정신을 이해하고 작업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디올 데뷔 쇼부터 여성의 자유와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당신을 존경한다. 앞으로 패션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가? 그 부분에 대해 우선 디올의 지원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나는 여성 아티스트나 포토그래퍼가 나와 작업함으로써 서로를 지지할 수 있도록 한다. 오늘날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데 주저하며, 그런 모습을 페미닌하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할 자격이 있으며, 이것은 괜찮을 뿐 아니라 더욱 권장되어야 한다.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우리의 목소리에 제한을 가하는 그 모든 힘에 저항하자.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예의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거나,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면 여성스럽지 않다고 하는 그 오랜 힘 말이다. 여성성이란 대단히 복합적인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가지면 직업과 가정 둘 다 성공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직업에 치중하다 보면 스스로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여성끼리 소통하여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디올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디올은 다소 정형화된 이미지의 여성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성은 하나가 아닌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직업적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패션을 통해 페미니즘을 조금 더 부드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이를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다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같은 기회를 달라는 것뿐이다. 나에게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이 학업이나 직업을 갖는 것,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것에 동등한 기회를 얻길 바란다. 남자들은 페미니스트를 화가 난 여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화가 나 있지 않다. 나는 그저 미래 세대를 걱정할 뿐이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여자와 남자가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보수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내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도 전통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남자다. 페미니스트의 진정한 접근성은 인류를 위하는 보편성에 있고, 물론 패션을 통해 그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

아쉽지만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현재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서 선보이는 디올 전시 타이틀은 ‘Christian Dior-Designer of Dreams’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타이틀로 기억되기를 원하나? 글쎄, 여성의 디자이너,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장난이다(웃음). 나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한편 굉장히 실리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꿈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땐 실리적이지 않다는 뉘앙스가 담긴다. 그런데 무슈 디올은 꿈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사실 굉장히 실리적인 사람이었다. 10년 만에 이토록 거대한 패션 제국을 만들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는 ‘꿈을 꾸며 꿈을 이루는 사람(Dreaming Realist)’ 정도로 불리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내 힘으로 나의 꿈을 이루고 싶다. 누가 해주길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름다우면서 편안한, 동시에 매일매일 ‘쿨’할 수 있는 패션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내게 이브닝드레스나 데님 팬츠는 같은 선상에 있다. 박물관에서 내 옷을 전시한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지만 아직 아니다. 그저 나의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패션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김영준
모델
배윤영
헤어
Mike Desir @ B-Agency
메이크업
Lili Choi @ Calliste Agency
프로듀서
이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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