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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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한 삶. 컴포터리안에 대하여.

집에만 있지 말고 나와서 사람들도 만나고 해.”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1년. 사람들만 만나면 융단폭격이 쏟아졌다. 일도 집, 밥도 집, 잠도 집에서 자는 내가 꽤나 안쓰럽긴 했나 보다. 그 이후로 집 밖을 조금 나오긴 했지만… 집돌이, 집순이가 뭐 어때서? 시대가 변했다. 시끌시끌했던 SNS도 점점 열기가 식는 분위기다. 계정을 없애거나 앱 자체를 지운 사람도 종종 보인다. 맛집에 가면 카메라부터 들이밀던 사람도 줄었다. 사진은 무슨, 이젠 귀찮다며 젓가락부터 집어 든다. 이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보다 ‘내가 편한’, ‘내가 먼저’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숫자가 말해준다. 최근 광고 회사 HS애드에서 조사한 통계에도 ‘격식 차림보다’ 편한 차림’이 언급되는 게 3.3배로 높고 ‘하이힐’보다는 ‘트레이닝복’을 더 많이 선호하는 추세다. 간편 가정식이라는 뜻의 ‘HMR(Home Meal Replacement)’ 판매량은 2012년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HS애드는 이들을 ‘컴포터리안’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Comfortable+ian’의 합성어다. 이들의 성향은 단순하다. 편한 패션과 먹기 좋은 음식을 선호하고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며 적당히 편하고 즐길 수 있는 삶을 추구한다. “인간관계에도 디톡스가 필요해”라는 말이 나온 지 어언 2년. <온전히 나답게>, <조금씩 거리를 둔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등의 에세이가 몇 년째 베스트셀러인 것도 이해가 간다. 컴포터리안,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외로워도 괜찮아

컨포터리안, 그들은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시 복지 재단의 ‘2018년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1인 가구의 외로움 평균값은 2.44점(4점 만점)으로 전체 외로움 평균인 2.33점 보다 외로움 강도가 높았다.

혼밥은 문화다

관악구 고시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혼밥이 사회적 문제다’라고 답한 비율(약 10%)에 비해 ‘문화’라고 답한 비율(약 80%)이 훨씬 높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한국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 시장은 지난해 4조 원대 규모까지 커졌다. HMR은 오뚜기 3분카레 같은 식품을 말하는데, 2018년 국내에서 출시된 HMR 신제품은 무려 1200개가 넘는다. 배달 앱 누적 이용자 수는 2500만 명을 넘었다. 이를 통한 음식 거래는 약 7조 원에 달한다.

귀찮으면 편도

편의점 대표 메뉴도 바뀌었다. 2016년 편의점 매출 부동의 1위였던 컵라면을 제치고 도시락이 1위를 차지했다. 이른바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2018년 기준 3500억원 규모로 매년 30%씩 성장해 5년만에 4.5배나 커졌다.

가구도 편한 게 최고

통계청에 따르면 나홀로족의 홈퍼니싱 인테리어 시장은 2008년 7조 원 규모에서 2016년 12조 원으로 크게 늘었다. 2022년에는 18조 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옥션에서 가장 많이 판매율이 증가한 1인용 가구, 인테리어 용품은 1인용 안락의자다. 무려 9배 가까이(797%) 급증했다.

여행도 자유롭게

최근 여행 시장의 트렌드도 변하는 중. 패키지 대신 자유여행, 여행지에서 한 달 살기, 목요일 저녁 출발~월요일 아침에 도착하는 3박 5일 여행, 혼자 여행하는 혼행족이 늘어나는 중이다. 실제로 2017 제주특별자치도 방문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내국인 관광객 중 12.6%가 혼자 제주도를 방문했다고. 이제 여행은 관광이 아닌 체험이 대세다. 먹고 보는 눈요기 관광에서 스포츠, 액티비티, 봉사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걸 추구한다.

술의 트렌드는 와인

술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만 원대 와인 소비가 늘면서 전체 주류 중 와인 점유율은 23.3%, 수입맥주는 22.8%, 국산 맥주는 42.7%를 차지한다. 와인이 ‘4캔에 만 원’을 앞세운 수입 맥주보다 많이 팔리고 있다.

여전히 에세이

몇 년째 불고 있는 에세이 열풍. ‘예스24’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출간 종수는 1220종으로 지난해 1102종보다 118종이 증가했다. 작년까지는 일반인들의 고민, 일상, 회사생활 등을 다룬 책들이 인기였고 올해는 소설가와 시인이 쓴 에세이가 인기가 많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의 리커버 에세이는 2주간의 판매량이 직전 같은 기간 대비 17.3~96.7%까지 올랐다.

편한 게 최고

패션도 편한 게 대세. 넉넉한 사이즈의 오버핏제품이나 라운지 웨어, 에슬레저룩이 인기다. 라운지웨어란 편하게 입는 평상복, 즉 품이 넉넉하며 헐렁하게 입는 편한 옷을 이야기한다. 언더웨어 역시 몸을 구속하지 않는 제품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M, L, XL가 전부였던 사이즈도 세분화되어 5개정도의 선택지가 있다. 신발 역시 발볼에 따라 맞는 신발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박한빛누리
사진
Photo by Anthony Tran, Becca Tapert, Tina Daw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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