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디 2019 F/W 시즌 쿠튀르 컬렉션 리포트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로마의 황혼

2019-07-24T14:16:50+00:002019.07.23|FASHION, 뉴스|

펜디 2019 F/W 시즌  쿠튀르 컬렉션 리포트.

해가 낮게 깔리고, 가장 따뜻한 색이 로마를 비추는 시간. 칼 라거펠트의 그림자가 길어졌고, 그를 뒤로한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의 헌사가 시작됐다. 전 세계 프레스가 운집한 팔라티노 언덕에서 열린 펜디 2019 F/W 시즌  쿠튀르 컬렉션은 로마를 사랑했던 칼 라거펠트에 보내는 뜨거운 헌사였다.

컬렉션의 세부는 반복되는 패턴 덕분에 만화경 같은 황홀감과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유겐트 양식에 의한 황수정, 제이드, 로즈 쿼츠, 칼세도니 같은 파스텔 색감이 쓰였는데, 대리석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모자이크 클러치, 퍼와 주얼 장식을 사용한 바게트백, 위빙 기법이 쓰인 투명 샌들과 부츠를 통해 아름다운 톤을 완성했다. 또, 튤에 퍼를 띄우는 인타르시아, 게로나투라 기법에서 펜디의 독보적인 퍼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마는 이 언덕에 세워졌습니다. 로물루스가 이곳에 로마 최초의 돌을 놓았죠.” 펜디 메종 회장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쇼에 앞서 팔라티노 언덕을 돌아보며 로마 최초의 왕과 그 기원을 언급했다. 대지진과 약탈을 겪으며 폐허가 됐음에도 그 아름다운 위용을 잃지 않은, 고대 로마에서 가장 큰 규모였던 ‘비너스와 로마 신전’이 펜디 2019 Fall 시즌 쿠튀르 컬렉션의 무대가 될 참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벨리아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위치한 이 신전은 행운의 여신인 ‘비너스 펠릭스’와 영원의 도시를 신격화한 ‘로마 에트레나’, 두 신에게 바치는 쌍둥이 신전을 건축하며 ‘사랑’과 ‘로마’의 완벽한 대칭을 구현한 신화적인 장소로 웅장한 콜로세움과 마주하고 있었다. 칼 라거펠트는 그 장엄한 전망을 배경으로 한 쇼를 열망했었다(트레비 분수를 배경으로 한 2016 Fall 쿠튀르 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로마니티의 새벽(The Dawn of Romanity)’이라고 명명한 컬렉션의 이름처럼 펜디는 시작과 끝을 알리는 어떤 지점에 와 있다. 로마와 펜디와 칼의 유대, 그리고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계승할 그 정신. 실비아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술로 모피 세계의 저변을 넓히고, 1925년 자신의 조부모 아델과 에두아르도 펜디가 설립한 회사를 세계적 럭셔리 하우스의 반열에 올린 칼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녀가 계승할 유산에는 펜디 공방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한계를 밀어붙이고 창의력을 극대화한 칼의 태도도 포함될 터다.

컬렉션은 라니에로 뇰리의 저서 <마르모레 로마나 (Marmore Romana)>, 즉 ‘로마의 대리석’에서 영감을 얻었다. 고대 모자이크, 오래된 테라코타와 돌, 한때 콜로세움을 장식한 대리석 등 도시의 오랜 층위를 구성해온 이 매개체는 하우스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기하학적인 프린트처럼 보이는 복잡한 인타르시아 기법은 궁전 같은 역사적 건축물을 떠올리게 했고, ‘오푸스 세크틸레(Opus Sectile)’ 상감 기법 같은 회화적 장식은 패턴과 퍼로 통합되어 3차원의 경계를 흐리는 효과를 이끌어냈다. 칼이 펜디 하우스에 몸담은 54년이라는 세월에 헌정하는 54개의 룩은 공방이 선보일 수 있는 기술력의 최고 수준을 담았고, 하우스의 경이로운 업적을 고스란히 드러내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도 다시 보기 힘들 하우스의 역사적이고 장중한 애도였다.

관례상 쇼 다음 날, 컬렉션을 주의 깊게 볼 수 있는 리씨(Re-See)가 열린다. 펜디의 유서 깊은 로마 본사 건물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Palazzo della Civilta Italiana)’에서 열린 리씨에서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쿠튀르 기술력을 갖춘 장인들이 섬세한 시폰에 수를 놓는 시범을 선보였다.

 

벌룬 소매와 부츠컷의 흰색 슈트로 문을 연 오프닝은 1970년대를 연상시켰다. 당시 끌로에와 펜디에서 전성기를 보낸 칼 라거펠트의 감수성과 스웨덴 팝 그룹 아바의 헤어스타일이 더욱 확신을 줬다. 털을 깎아서 데코 패턴을 만든 칼 라거펠트의 시그너처가 곳곳에 쓰였고, 각각 다른 패턴의 사선이 가지런하게 또는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뻗어 나갔다. 많은 코트가 리버서블이었는데, 아주 커다란 펜던트 목걸이를 하고 맥시 코트를 걸친 채 으스대며 걸어가는 모델은 꼭 이탤리언 여배우 실바나 망가노(루치노 비스콘티의 영화 <컨벌세이션 피스>에서 펜디 커스튬 의상을 입은)에 보내는 오마주 같았다. 이탈리아 작곡가 카테리나 바비에리의 라이브 공연이 계속되는 가운데, 호화스럽고 우아하기 그지없는 펜디 하우스의 DNA가 로마 교향곡처럼 펼쳐졌다. 로마 건축의 장엄함과 유러피언 특유의 심미안이 돋보이는 모자이크 세공, 번영과 풍요를 상징하는 밀 이삭과 소박한 풀꽃, 무엇보다 이탈리아 여성 특유의 부르주아적이고 시네마틱한 매력이 풍성 하게 어우러졌다. 테일러링의 압도적인 라인, 여왕의 드레스 같은 드레이프, 접어 넣은 어깨와 그래픽적인 데콜테는 실비아가 칼 라거펠트의 아카이브 스케치에서 직접 고른 것이었다.

“모피도 가벼울 수 있다”는 실비아의 철학에 따라 만들어진 기다란 코트에는 격자무늬와 둥근 창(Oculi)이 반복되어 사용됐고, 실크 무아레와 마블링 패턴의 가자르 소재 펜슬 스커트, 팔라초 팬츠, 블라우스 안에는 반짝이는 란제리나 레이스 브라렛을 받쳐입었다. 깃털 꽃잎, 밀짚으로 장식된 속이 비치는 아주 얇은 비숍 슬리브 드레스는 너무 가벼워서 날아다닐 듯했고, 그렇게나 연약한 소재를 다루는 데 들였을 공이 짐작됐다. 이런 모든 르네상스식 미학은 이탤리언 뷰티 비토리아 세레티와 프레야 베하가 입은 두 벌의 이브닝 가운에서 절정을 이뤘다. 연한 장미색과 회청색 시폰이 엮인 위엄 넘치는 가운은 르네상스 시대 화가를 흥분케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장엄한 감동은 디너로 이어졌다. 은은한 달 아래 콜로세움과 영원의 도시 로마가 빛나고 있었고, 캐서린 제타 존스, 수전 서랜든 같은 전설적인 할리우드 배우를 비롯한 6백 명의 게스트가 야외에서 디너를 즐겼다. 로마의 정수를 폐부 깊이 호흡한 순간이었다. 펜디는 비너스와 로마 신전 보존 및 완공을 목표로 하는 복원 사업에 250만 유로라는 거액을 후원할 것이다. 몇 년 내 신전은 제 모습을 찾을 것이고, 예전의 영광을 지키려는 하우스의 헌신적이고 강력한 의지는 더욱 빛날 것이다. 신비한 과거를 불러일으킨 컬렉션을 발돋움 삼아 현재에 건재하게 뿌리박은 실비아를 수장으로 한 펜디는 영원의 여정을 계속해서 떠날 것임을 다시 한번 확고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