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드라마 '보좌관 -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으로 돌아운 배우 이정재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The Challenger (이정재)

2019-06-21T12:56:14+00:002019.06.22|FEATURE, 피플|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배우 이정재.

배우 이정재는 한 번도 같은 길을 걸은 적 없다. 변화와 진화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확장해온 그가 오랜만에 정치 드라마 <보좌관 –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로 돌아왔다.

실크 셔츠, 자카드 팬츠는 Dolce & Gabbana 제품.

오늘 컨디션은 좀 어떤가? 좋지 않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웃음). 촬영을 시작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살이 좀 빠졌다. 벨트를 두 칸 줄였는데도 바지가 헐렁해서 반 칸 더 줄였다.

요즘 촬영 중인 JTBC 금토 드라마 <보좌관 –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로 10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이번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공개된다. 요즘은 영화와 드라마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나. 본인에게 간편한 디바이스를 이용해서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시대가 변해가고 있는데 아직도 영화만 고집해야 하나, 그런 의문도 들었다. 한때 나 역시 드라마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고. 뭐랄까, 여기도 원래 내 집이었어, 그런 마음(웃음)?

평균 시청률 50%를 기록하며 ‘모래시계 = 귀가시계’였던 시절이 있었다. 다 옛날이야기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겠지.

드라마는 배우가 결말을 알지 못한 채로 시작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전 제작 시스템 안에서도 ‘쪽대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당연히 결말을 모두 다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입체적으로 연기할 수 있고 인물의 내면도 깊이 있게 조각해갈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 시스템 안에서 그렇게 될 수 없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본이 늦게 나오는 편은 아니어서 고민할 수 있는 여유는 충분하다. 처음 대본을 받아 읽고 나서 고민을 많이 안 했다. 그래서 진행이 빨리 됐다. 대본이 재미있으면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작품은 그동안 드라마 소재로 드물었던 정치판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좀 있는 편인가? 정치보다는 오히려 문화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정치에 대해 관심도가 높진 않았다. 드라마를 하면서 뉴스나 잡지를 찾아보고 리서치를 많이 했다. 실제 보좌관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 정치 하신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보통 신념을 갖지 않고서는 이 일을 해낼 수 없는 자기만의 철학이 명확하게 있더라. 낮에 차 한잔 마시면서 그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배우가 인터뷰어가 된 셈인데, 주로 어떤 것을 물어보는지 궁금하다. 사건 사고 같은 이슈는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는 질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출퇴근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냐, 쉴 때 무엇을 하냐, 집은 몇 평인가, 휴가는 가나, 부모님은 한 달에 몇 번 정도 뵈냐, 그런 생활 밀착형 질문을 주로 한다.

최근 SNS에 이런 말이 떠돌더라. ‘이정재 얼굴 보좌관,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정치 판타지를 보는 기분이 든다. 비현실적인 캐스팅이다(웃음). 찾아보면 나를 닮은 보좌관도 어딘가에 있을 거다.

보좌관 장태준은 야망을 향해 질주하는 인물이다. 뛰어난 직관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장태준의 최종 목표는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것이다. 이 친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뚜렷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완전 돌직구 캐릭터. 그러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들키지 않기 위해 본색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전에 내가 연기한 인물들은 주로 미워할 수 없는 악인, 혹은 백 프로 응원하지 못하는 선인이었다. 인간이 가진 이중적인 면을 대사나 행동을 통해 아주 미묘한 뉘앙스로 살짝 비틀어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이정재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직업군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최근작 영화 <사바하>에서는 목사를 연기했는데, 이번에도 보좌관이라는 낯선 직업이 매력적인 요인이었나?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직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차기작 제안이 들어오면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물어본다. 나 여기서 뭐 하는 사람이냐고. 그걸 먼저 확인하게 된다.

검은색 이브닝 슈트는 Dolce & Gabbana 제품.

패션의 디테일한 요소 또한 캐릭터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늘 그런 부분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장태준의 타이트한 타이도 그런 부분 중 하나일까? 장태준이 평소에도 긴장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매 순간 타이를 매고 있는 설정을 생각했다. 스타일을 담당하는 분과 상의해서 양복을 아래위 맞춰서 한 벌로 입는 것은 피하자고 했다. 실제 보좌관들은 평소에는 편안한 스타일로 다니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장소에서만 옷을 갖춰 입더라.

신민아, 정진영, 김갑수 등 개성 있는 연기파 배우들과의 호흡,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너무 좋아서 탈일 정도다. 극의 재미는 어떤 인간들끼리 부딪쳐서 그 반응이 얼마만큼 배가되어 폭발력을 보여주는지에 달려 있다. 배우 대 배우가 연기하는 순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보다 에너지가 확 뿜어져 나올 때 재미 이상의 어떤 희열을 얻 다. 요즘 그런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현장에서 곽정환 감독님이 말하길 본인도 옛날에는 멋진 풍광 한 컷을 찍으려고 하루 종일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려보기도 하고, 말 50마리가 달리는 장면도 찍어보고 그랬지만 요즘은 그저 배우의 얼굴, 김갑수의 큰 얼굴, 이정재의 큰 얼굴, 신민아의 큰 얼굴이 제일 좋다고(웃음).

이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캐릭터에 대한 깊고 다양한 생각을 산뜻하게 응축해서 깔끔하게 표현하는 게 좋은 연기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연기에 대한 지론은 끊임없이 변화하나?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 고민한다. 어떻게 연기해야 하지? 이게 좋은가 저게 좋을까. 연기를 나름 오래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연기 자체가 정형화된달까. 그것을 제일 기피한다. 세상이 계속 바뀌고 있지 않나. 그 속도를 늘 맞춰 가기란 쉽지 않지만 변화하려고 노력한다. 언제까지 잘 변모해 갈지는 모르겠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때가 올 테니까. 연기를 할수록 경험치는 많이 쌓이지만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 같다. 표현은 정말 처음 느껴보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늘 가볍고 새롭게. 배우마다 연기에 대한 지론은 다르겠지만 나는 뭔가 불안정해 보이더라도 오히려 그게 더 나은 것 같다. 뭐랄까, 약간 신인이 연기하는 것 같은 불안정함이 아주 매끄러운 것보다는 차라리 나은 것 같다.

올해로 27년째 배우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걸 왜 세고 그러십니까(웃음). 리마인드해 주셔서 감사하다. 요즘 체력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가 그거였나 보다.

사실 이정재 배우는 한 번도 같은 길을 걸은 적 없다. 주연과 조연의 경계 없이 계속해서 다양한 색깔을 입으면서 롱런하는 배우의 존재감 자체가 귀하지 않은가. 오래 연기 생활을 해오면서 롤모델로 삼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안성기 선배님. 작품 필모그래피를 보면 정말로 다채롭고, 또 거기에서 연기한 캐릭터를 보면 어떻게 저런 역까지 소화해내셨을까 싶을 정도다. 그리고 거의 무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생활. 다른 여러 가지 것을 오로지 연기에만 집중시키는 면도 대단하다. 그러면서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누굴 만나더라도 항상 웃는 얼굴로 맞아주신다. 닮고 싶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을 다룬 영화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인공으로 캐스팅 됐다는 할리우드 뉴스를 본 적 있다. 디카프리오와 이정재 배우의 공통점이라면 두 사람 모두 아트에 관심과 애정이 높다는 점이 아닐까. 언젠가 영화화해도 될 정도로 드라마틱한 서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가 있나? 화가 이중섭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불운한 시대를 살았다. 일제 강점기가 막 끝났는데 바로 6.25가 터지고 종전 후부터는 극한적인 가난을 겪어야만 했던 그 시기를 살다가 결국엔 일찍 돌아가셨다. 당시에는 뭐 예술을 한다고 누군가 알아준다거나 그걸로 생활이 유지되는 시대가 아니었을텐데 할 줄 아는 건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었을 테고… 세상에 훌륭한 수많은 아티스트가 존재했지만 이중섭 작가님의 삶을 연기해보고 싶다.

두 분이 조금 닮은 것 같다. 많이 닮았다(웃음). 옛날에 군대에서 신문을 보는데 기사에 이중섭 작가 회고전 소식이 실려 있더라. 아주 작은 얼굴이 나왔는데 내가 언제 이렇게 콧수염을 길러서 붙였나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창밖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여의도 건물 36층에서 화보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어제도 여의도에서 드라마 촬영을 했다. 주로 여의도에서 찍는 신이 많고 서울 근교 부터 외곽에서도 촬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지역 혹은 공간이 있나?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을 좋아한다. 한강시민공원도 예전에 비해 많이 쾌적해졌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대도시에 이렇게 크고 넓게 흐르는 강이 별로 없다. 얼마나 활용 가치가 높은 강인데 그걸 좀 더 잘 살렸으면 좋겠다. 다리를 세울 거면 콘크리트로 아무 느낌 없이 저렇게 짓지 말고 조금 더 멋있게 지어서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무언가가 된다면 국민들이 충분히 한강을 즐길 수 있고 관광객도 더 많이 올 텐데 싶다.

‘한강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묻고 싶지만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을 하고 싶다. 배우 이정재가 리얼 국회로 갈 확률은? 절대! 저 바쁩니다. 시나리오 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