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가는 곳마다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밀라노에 예술적 소동이 일어날 때 Vol.2

2019-06-13T16:03:44+00:002019.06.17|FEATURE, 컬처|

밀라노 디자인 위크 이야기 Vol.2

발길 가는 곳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진다. 가구와 디자인을 위시해 예술적 흥이 한껏 오르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이야기다. 도시 전역이 디자인 축제로 물드는 그곳을 <더블유>가 종으로 횡으로 누볐다.

패션이 예술을 입는 법

what : VARIOUS EXHIBITIONS

who : LOUIS VUITTON, COS, FENDI CASA, BULGARI, MISSONI HOME, VERSACE HOME

패션 브랜드 중 ‘가구의 예술화’에 남다른 관심을 지속하는 곳은 루이 비통이다. 루이 비통은 2012년부터 ‘오브제 노마드’라는 이름으로 유명 디자이너와 장인 정신을 결합한 한정판 가구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밀라노에서는 신작 10점을 포함해 무려 25점을 선보인 만큼 전시장 스케일부터 웅장했다. 18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장소 곳곳에 지금 가장 모던한 디자인 행보를 보이는 이들의 작품이 자리한 모습은 ‘클래식’과 ‘동시대’의 어울림 자체였다. 개인의 취향과 상관없이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던 건 캄파냐 형제의 ‘벌보 체어’다. 누에고치 혹은 열대식물을 닮은 모양새가 포근하게 안기는 느낌을 주는 이 의자는 조도가 낮은 전시장에서 밝은 컬러와 독특한 콘셉트 때문에 홀로 발랄했다. 마르셀 반더스는 20여 년 전 그를 세상에 널리 알린 매듭 의자처럼 소재가 얼기설기 엮인 ‘다이아몬드 체어와 소파’, 물방울 모양의 화병과 램프를 레드 가죽이라는 공통분모로 선보였다.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 패턴과 불교의 만다라 그림을 모티프로 태어난 만다라 스크린(자넬라토/보르토토 스튜디오), 물리적인 여행보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심리적 여행을 제안하는 큰 테이블인 아네모나 테이블(아틀리에 비아게티) 등 모든 작품은 디자이너가 브랜드에서 차용한 특징과 ‘여행 기술’이라는 루이 비통의 핵심 가치를 품는다.

시간에 따라 다른 빛을 만들어낸 COS의 ‘Conifera’. 

COS는 마당이 넓게 펼쳐진 16세기 건물에 동시대에서 좀 더 나아간 ‘미래’를 불러왔다. ‘Conifera(침엽수림)’는 건축가 아서 마무매니가 오직 3D 프린팅 바이오 플라스틱 모듈을 이용해 만든 설치 작품이다. 재생과 완전 분해가 가능한 반투명 친환경 소재, 그리고 전나무로 만든 목재 펄프 등이 재료다. COS의 설치 작품은 감상하기보다 경험하기를 제안했다. 육중한 두 기둥 사이로 설치물의 구조적인 격자무늬가 만드는 그림자를 지나면, 푸르고 너른 야외 정원이 펼쳐진다. 밀라노에 포진한 전시장을 숨 가쁘게 오가던 관객에게, 작품 바로 곁에서 볕을 쬐며 휴식을 취하는 잠깐의 시간을 안겨줬달까?

펜디가 펜디 카사의 새 라인으로 공개한 ‘Back Home’ 컬렉션 전시장에서는 좋은 리빙 전시를 볼 때면 울려 퍼지는 마음의 소리가 오랜만에 들렸다. ‘여기가 내 집이었으면.’ 전시 방법은 현관, 거실, 곁방, 테라스, 드레스룸 5개 영역을 상정해 각각의 공간을 모델 하우스처럼 완벽하게 제시하는 것. 그날, 이런 일기 혹은 소설을 쓸 뻔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 테라코타 타일이 넓게 깔린 테라스에서 감귤나무의 싱그러움을 느끼며 집으로 들어간다. 펜디의 상징인 페퀸 줄무늬가 장식된 소파에 앉아 가족과 오랜만에 담소를 나누다, 남성용 커프링크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럭스 조명 아래 가정의 안온함을 느낀다. 앗, 칼 라거펠트가 1983년에 디자인한 꽃 모양 그래픽 로고가 돋보이는 토우르네 카펫에 커피를 흘리고 말았네!’

어떤 곳은 전시장의 분위기와 모든 것이 그 브랜드의 시그너처를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불가리의 디자인 아이콘인 비제로원(B.zero1)은 여러 겹의 링이 쌓여 볼드한 링을 만드는 모양새다. 만약 이것을 거대하게 부풀리면 원형 통로와 비슷한 모양 아닐까? 비제로원 20주년 기념 전시장, 미래적인 분위기의 오렌지색 통로가 관객을 빨아들였다. 화려한 색감과 문양의 대표 주자 둘, 베르사체 홈과 미쏘니 홈은 서로 ‘누가누가 가장 컬러풀한가’ 내기하는 듯했다. 컬러를 푸는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베르사체는 2019 홈 컬렉션을 선보이며 밀라노 부티크를 온통 캔디와 네온 컬러로 꾸몄는데, 세트장에 관심 많은 할리우드 감독들도 이 공간을 반드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쏘니 홈은 컬렉션 제품을 보여주는 대신 동화 같은 세상을 마련했다. 크로셰 니트를 향한 브랜드의 사랑을 표현한 이 프로젝트 이름은 ‘Home Sweet Home’. 테이블 위의 스시 조각 하나까지 크로셰 니트로 섬세하게 재현한, 앙증맞은 정성스러움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

what : <MONOCHROME MONOLOGUE>, <CAVA.CITY.MILAN>

who :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카바 라이프

토르토나 지구, 슈퍼 스튜디오와 그 인근에서 발견한 한국 전시 두 개. 하나는 (재)한국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개최한 2019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수묵의 독백 (Monochrome Monologue)> 전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지역에 국한할 수 없는 모던한 미장센으로 연출할 수 있는 한국인은 누굴까? 답은, 정구호다. 더하고 치장하기보다 덜어내고 집중하며 정수만을 남기는 그의 연출 실력은 국립무용단 공연 <향연>과 <묵향>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수묵의 독백> 예술감독을 맡은 그는 흑과 백의 극명한 대조를 포인트로 내세웠다. 공간 한쪽에는 먹 하나로 색의 한계를 넘나드는 수묵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한 설치 작품을, 다른쪽에는 전통 민화 종류인 책가도(책장을 중심으로 한 각종 문방구와 골동품, 화훼 등을 그린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사방탁자에 작가 20명의 작품을 진열했다. 전통 공예품을 나무가 아닌 투명 소재로 제작한 탁자와 매치하는 정구호의 선택에 신선함을 느꼈다. 탁자는 곧 선반장이니, 이 디스플레이는 한국 전통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문화의 만남이기도 하다.

자그마한 공간에서 오직 기획과 정체성으로 승부를 본 이들은 다양한 장르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아트 커머스 브랜드, 카바 라이프(Cava Life)다. 지난해부터 서울의 흥미로운 작가들을 찾아 유무형의 콘텐츠를 판매로 이어온 카바 라이프는 팝업 전시장 <CAVA.CITY.MILAN>을 시작으로 글로벌한 전환을 알렸다. 이제 해외에서도 카바 라이프 웹사이트를 통해 한국 및 해외 작가의 작품을 접하고 구매할 수 있다. 이 현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공간에 전시된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 대신 카바 라이프는 방문한 관객에게 간단한 테스트를 제안했다. ‘Start Here!’라고 쓰인 곳에서 버튼을 눌러 웹사이트 QR 코드가 인쇄된 종이를 받는다. 폰으로 웹사이트에 접속해 취향을 가늠하기 위한 8가지 객관식 질문에 답한다. 그럼 나에게 어울리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 구매까지 가능한 링크가 QR 코드로 제시된다. 입장한 이들은 폰을 쥐고서 테스트를 즐겼고, 추천받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문의했다. 눈앞에 감상할 실물 작품이 없어도 화두가 생성되며, 사람들이 그 공간에 머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썰물이 진 자리

what : <TIDES>

who : NOROO with KWANGHO LEE X WANG & SÖDERSTRÖM

노루페인트의 밀라노 진출. 한국의 이광호, 스웨덴 듀오 팀과 함께 초현실적인 전시를 완성했다.

이 전시는 인생에서 자주 겪지는 못한, 하지만 모르지 않는 어떤 순간을 애써 떠올리게 만든다. 전시를 이해하려면  시 제목인 ’조류’를 직간접적으로 바라본 경험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썰물 때 물이 빠진 자리는 어떠했던가? 물을 머금어 표면이 매끈한 갯벌을 멀리서 보면 빛이 반사되며 흙과 다른 색을 내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웅덩이가 생긴 듯 균일하지 않은 모습이다. 전시는 바로 그 상태를 표현한다. ‘꼬임의 달인’ 한국의 이광호는 이번엔 꼬아 만든 무엇 대신 모듈식 스툴 100개를 동원 했다. ‘이클립스의 순간’ 시리즈다. 덴마크의 디자이너 듀오 왕&소더스트롬 은 해양 생물을 닮은 용기를 내놓았다. 전시장 전면에 떠 있는 달 혹은 해, 다양한 층위의 스툴이 연상시키는 물웅덩이, 바다에 서식하다 물이 빠진 자리에 남은 생명체, 물과 빛이 반사되며 불특정한 색을 내는 자리. <타이즈>는 관객이 전시장을 걸으며 비일상적인 조류의 순간을 체험하도록 권했다. 달과 태양, 지구와 자연, 시간 등 평소 실감하기 어려운 신비한 찰나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이 전시는 노루페인트가 기획했다. 전반적으로 탈색된 듯 미묘한 색감이 분위기에 큰 몫을 하는데, ‘색’을 담당하는 게 페인트가 아니라 빛이라는 점이 의외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what : WALLPAPER HANDMADE X LOVE

who : <WALLPAPER> MAGAZINE

당대의 디자인 흐름을 알고 싶을 때 보는 매거진, <월페이퍼>의 안목이 안일할 리는 없다. <월페이퍼 핸드메이드>라는 타이틀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건축가, 장인, 제조업체 등과 매해 테마를 정해 선보이는 큰 전시가 올해로 열 번째를 맞았다. 10주년 전시의 테마는 ‘사랑’이다. ‘이 작품이 사랑과 무슨 상관일까’ 싶은 것을 종종 마주쳤지만, 이내 반성했다. 로맨스, 가족 간의 사랑, 여행이나 그 무엇을 향한 사랑, 다양성을 지향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사랑 등 사랑이라는 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듀오 아티스트 엘름그 린&드라그셋은 전화기 두 대를 나란히 모실 수 있는 침대를 고안했다. 스마트폰, 그거야말로 로맨틱한 상호 작용을 방해하는 원흉이니까.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의 태오양 스튜디오는 타일 및 테라초 아이템 제조사인 후게트(Huguet)와 함께 어느 넉넉한 정원에 두면 좋을 ‘Three Isles Birdbaths’를 선보였다. 새 물통과 새 욕조에서 더 나아간, 새들을 위한 이 세 개의 섬은 한국 전통문화와 관련 있는 수반 (물을 담아 꽃을 띄우는 그릇)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60여 개 디자인 스튜디오가 참여한 전시 현장에서는 디자인 감상 외 다른 목적 때문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기도 했다. 디자인 위크의 수많은 전시장 중 흔치 않게 장내에 클래식이 흘렀다는 점. 엔니오 모리코네가 전시 테마에 맞춰 큐레이션한 음악이 뱅앤올룹슨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으니, 그것은 오래 붙잡고 싶은 숭고한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