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와 떠난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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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꿈을 꾸는 여행자> 전시.

1937년생  에르메스 최초의 스카프에서 2018년생  스케이트보드까지, 움직임과 여행에 대한 에르메스의 풍요로운 유산을 만났다. <에르메스, 꿈을 꾸는 여행자> 전시에서.

다섯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에르메스, 꿈을 꾸는 여행자’ 전시 전경.

실크 스카프와 오렌지 박스로 각인된 에르메스의 시간은 언제부터였을까? 1837년 에르메스의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es)는 마구용품 제조사로 하우스 역사의 첫 장을 열었다. 이후 하우스의 장인들과 크리에이터들은 시대 흐름을 기민하게 수용하면서도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렇게 에르메스는 두 세기에 걸쳐 하우스의 상징적인 테마를 확립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부여하며 발전해왔다.

19세기 영국 장교의 식기 세트

1926년 제작한 여행용 오브제를 위한 광고(오른쪽)가 1995년 에르메스 테마였던 ‘길’을 위한 연하장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탄생한 에르메스의 풍요로운 유산, 이는 시간이 더할수록 빛을 발한다. 지난 329일부터 410일까지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전시 <에르메스, 꿈을 꾸는 여행자(Hermes Heritage In Motion)>는 에르메스의 움직임과 여행에 대한 오브제로 꾸며졌다. “디자인에는 기억 상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취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배움의 기회와 영감을 준다. 이것이 에르메스 헤리티지 전시의 목적이다.”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알렉시 뒤마는 이와 같이 전시를 소개했다. 북프랑스 도시 루베의 산업 예술 박물관인 ‘라 피신 (LA Piscine)’의 큐레이터 브루노 고디숑과 디자이너 로렌스 폰테인은 비행, 여행 그리고 방랑을 테마로 전시장을 총 5개 방으로 구성했다. 이 공간에는 창립자의 아들인 에밀 에르메스의 소장품과 에르메스의 아카이브 컬렉션 및 최근 컬렉션이 공존한다.

1937년에 제작된 에르메스 최초의 스카프 ‘쥬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쉬’.

1934년 항해를 위한 8개의 흘림 방지 유리잔 세트.

20세기 초 만들어진 소풍용 지팡이. 커트러리 세트가 담겨 있다.

첫 번째 ‘에르메스의 세계’ 공간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1937년 제작된 에르메스 최초의 스카프 ‘쥬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쉬’다. 수채 물감으로 선을 뚜렷하게 표현한 에르메스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1830년경 인기를 얻은 보드게임을 모티프로 디자인했다. 스카프 속 프린트는 1820년대 도입된 파리 최초의 대중교통을 떠올리게 하며, 말이 끄는 마차가 스카프 중앙의 메달리온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 공간은 ‘에밀 에르메스의 여행’이다. 이곳에 전시된 19세기 영국 장교의 아름다운 휴대용 식기 세트는 2019년인 지금 들고 피크닉을 떠나도 될 만큼 풍요롭고 정교하다. 이 밖에 18세기 등자와 19세기 말 랜턴, 기수의 부츠 등 독창적인 작품과 일상생활에 유용한 오브제들이 어우러져 있다. 세 번째 방의 주제는 ‘움직임의 우아함’. 편안함을 추구하는 에르메스의 1926년 여행용 오브제를 위한 광고는 1995년 에르메스 테마였던 ‘길’을 위한 연하장으로 재탄생했다. 2018년 컨템퍼러리 컬렉션에서 소개된 스케이트보드와 스니커즈 아래 달린 롤러스케이트는 현대 도시 곳곳을 누비며 자유롭게 움직이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한다. 전시 전반에 걸쳐 흥미로운 아이템이 대거 등장했는데 에르메스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독창적 메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공간에서 만난 8개의 흘림 방지 유리잔 세트, 인버서블은 1934년 아카이브 아이템으로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디자인되어 선원들이 잔을 든 채 항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에르메스식 유머러스한 실용성은 네 번째 ‘구성하기 게임’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가죽으로 감싼 1936년대 보온병, 카메라 모양으로 디자인된 20세기 초의 위스키 플라스크, 커틀러리 세트 한 벌을 보이지 않게 잘 담을 수 있는 피크닉 지팡이 등이다. 마지막 공간인 ‘움직이지 않는 여정’에서는 접이식 가구인 피파 데스크와 프로펠러를 닮은 편지 개봉용 칼, 운전용 장갑에서 영감 받은 까레 H 시계 등 앉아서 일할 때도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들을 모았다.

20세기 초 만들어진 카메라 모양의 위스키 플라스크.

1936년 돈피로 쌓여진 텀블러.

2018년 가을/겨울 컬렉션 켈리아도 II 백.

2016년 봄/여름 컬렉션 볼리드 피크닉 가방.

전시 큐레이터 브루노 고디숑은 이번 전시를 통해 에르메스가 제시하는 가치와 역사의 사이, 그리고 현대적 감각과 전통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며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온 브랜드의 유산과 현대성을 결합해 고유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1837년 이래 상상력과 창의성을 통해 우아함을 창조해온 에르메스의 여정은 지금도 그 시간을 쌓아가며 또 다른 유산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디지털 에디터
사공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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