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쇼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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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나 iOS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애플이 진짜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루머가 들끓었다. 애플의 모든 이벤트는 늘 다양한 추측을 동반해왔지만, 이번 키노트는 더욱 그랬다. 아이패드, 아이맥, 하물며 에어팟까지, 대대적으로 발표할 만한 ‘핫’한 신제품을 키노트 전에 무심하게 공개해버렸기 때문이다. 분명 하드웨어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난 325일,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패러디한 키노트 오프닝 영상에서 그 실체를 엿볼 수 있었다. 주연은 매킨토시, 특별 출연은 휴대폰을 영원히 바꿔놓은 휴대폰(아이폰), 사운드트랙은 주머니 속 5천만 개의 곡(애플 뮤직), 각본은 애플 펜슬, 제작소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 알토스의 어느 차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런 문구가 떴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애플이 말하고자 하는 그들의 이야기란 서비스였다. 사실 애플은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브랜드다. 그리고 팀쿡이 강조했듯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합쳐졌을 때 극강의 사용자 경험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애플이 발표한 새로운 서비스는 4가지. 패션, 사회, 엔터테인먼트,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3백여 가지 매거진을 구독할 수 있는 ‘애플 뉴스 플러스’와 1백 가지 게임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 구독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 온라인 신용카드 서비스 ‘애플 카드’, 그리고 HBO, 쇼타임, 프라임 서비스 등 다양한 채널을 앱 하나로 모은 동영상 구독 서비스인 뉴 ‘애플 TV’다. 겉으로만 보면 흔한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애플은 디테일의 미학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브랜드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무언가를 더해서 사용자 경험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는 데 선수라는 얘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등 기기에 따라 레이아웃이 근사하게 달라지며 취향에 맞는 매거진과 양질의 정보, 프로그램을 쏙쏙 골라내는 양질의 큐레이션을 애플 TV와 뉴스, 아케이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물론 개인 사용 데이터는 따로 보관되거나 마케팅에 활용되지 않으니 안심해도 좋다.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더했다. 애플이 에디터나 큐레이터가 아니라 스토리텔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바로 “위대한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Great Stories can change the world)”는 말로 자신 있게 소개한, 애플 오리지널 콘텐츠 동영상 서비스인 ‘애플 TV 플러스’다. 확실히 스케일이 다르긴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드는 SF TV 쇼, 제니퍼 애니스톤과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하는 드라마, 오프라 윈프리의 다큐멘터리 등등 역대급 제작진과 다양한 쇼를 제작 중이다.

이번 애플 키노트는 콘텐츠와 구독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에서 아이폰의 매출이 떨어지자 콘텐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평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드웨어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인 데다 지금은 스트리밍 시대 아닌가. 옷, 차 하물며 오피스와 같은 공간까지 공유하는 요즘, 애플이 구매가 아니라 구독에 초점을 맞춘 건 자연스러운 수순일지 모른다. 물론 성공 요부는, 당연한 얘기지만 콘텐츠의 질에 달렸다. ‘휴대폰을 영원히 바꿔놓은 휴대폰’처럼 애플이 만든 콘텐츠와 서비스는 정말 무언가 다를 수 있을까? 이미 넷플릭스와 아마존 등이 매달 수백 개의 영상을 쏟아내고 있는 지금? 그 자신감은 오프닝 필름의 첫 장면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지개 컬러의 사과 로고와 함께 등장한 ‘Think Different 프로덕션’이란 문구로 말이다.

프리랜스 에디터
권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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