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못다 한 이야기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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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환상의 2019 S/S 오트 쿠튀르 동화.

우리가 현실의 차가운 계절을 마주할 때, 패션 월드는 최고 수준의 장인 정신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쿠튀르 컬렉션으로 봄의 포문을 연다. 여성 곡예단과 서커스장으로 관객을 압도한 디올, 18세기 남프랑스의 지중해풍 정원으로 초대한 샤넬, 꽃으로 표현하는 옷의 한계를 뛰어넘은 발렌티노, 쿠튀리에의 영역에 다시 선 발맹. 진정으로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꿈과 환상의 2019 S/S 오트 쿠튀르 동화.

Viktor & Rolf

디자이너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뇌렌 듀오가 언제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했는지 기억이 희미할 만큼 쿠튀리에로 완벽하게 자리 잡은 빅터&롤프. 더블유는 지난 시즌에 이어 거대한 드레스 한 벌을 입기 위해 최소 5명의 스태프가 필요한 백스테이지 현장을 습격했다. 거대한 튤 드레스를 입은 소녀들이 그룹 지어 등장한 옷에는 “싫어요, 사진 찍지 마세요, 날 혼자 내버려두세요, 난 상관없어” 등등 단어부터 문장까지 관객을 겨냥한 듯한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정작 그들은 SNS 속 사진을 설명하는 단순한 캡션이라고 설명했지만 말이다. 파스텔 톤을 입은 8km에 달하는 튤과 건축적이고 과장된 형태, A라인과 모래시계 실루엣은 파스텔 톤과 버무려 소녀의 귀여운 시절처럼 보였다.

Schiaparelli

파리 오트 쿠튀르의 첫 쇼로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은 스키아파렐리의 베르트랑 귀용.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착안한 그는 동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로맨틱한 룩들로 오페라 가르니에를 채웠다. 반짝이 가루를 더한 크고 작은 별, 별자리를 그려넣은 코트와 재킷, 반짝이 가루를 꽃으로 그려넣은 튜브톱 드레스는 소녀적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어렸을 적 공주 놀이할 때 입었던 옷이 어른 버전으로 탄생한 느낌이라고 할까. 웨스턴 부츠와 스트랩 슈즈, 고글형 선글라스는 귀용이 건설한 꿈동산에 더없이 어울렸음은 분명하다.

Armani prive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강렬한 색채로 정의되는 중국의 옻칠과 그래픽 무늬, 기하학적인 형태가 특징인 아르데코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동서양의 아름다움이 결합된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비가 주는 강렬한 파열음. 프린지와 비즈 드레스, 스테인드 글라스를 연상케 하는 튜브톱 드레스, 헤드피스 등 곳곳에 등장해 쇼의 콘셉트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부채의 손잡이에 사용되는 술과 치파오의 여밈 장식, 구슬 장식 액세서리 등 동양적인 색채가 짙은 코드를 통해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Giambattista Balli

미로처럼 얽힌 작은 정원 형태를 따라 둘러앉아 1시간 넘게 지연된 쇼를 기다린 우리는 50여 벌의 환상적인 드레스 행렬에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한쪽 어깨를 거대하게 부풀리거나 소매를 풍선처럼 볼륨감 있게 만든 드레스, 짧은 튜브톱 깃털 드레스와 H라인 롱 드레스에는 원통형 병정모자와 경쾌한 웨스턴 모자를 매치했다. 물론, 지암바티스타 발리에서 거대한 티어드 튤 드레스를 못 보면 섭섭했을 거다. “저는 파리 하우스의 쿠튀리에가 되는 꿈을 꾸는 순간의 감정을 포착해서 컬렉션을 만듭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그는 메종에서 14년째 로맨틱한 상상을 하며 지내는 몽상가임이 틀림없다.

Alexandre Vauthier

쇼장에 셀린 디옹이 떴다는 것만으로도 빅 이슈가 되었던 알렉산드르 보티에.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의 대비를 담고자 했다는 그의 생각은 턱시도 재킷과 화이트 셔츠, 블랙 보 타이와 칼라, 슬리브, 블라우스, 미니드레스 등에 활용한 러플 장식으로 구현되었다. 레디투웨어와 쿠튀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느낌은 그만큼 현실성을 반영한 요소가 눈에 띄었기 때문. 크롭트 팬츠, 벌룬 스커트, 반짝이 드레스라는 일상적인 룩에 쿠튀르적 볼륨감과 실루엣으로 차별화를 더했다. 옷차림에 록적인 무드를 더하는 슬라우치 부츠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패션 에디터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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