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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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패션위크의 꽃, 오트 쿠튀르를 통해 궁극의 아름다움을 선사해온 샤넬.

클래식한 저택, 야자수와 귤나무가 우거진 오솔길, 아름다운 연못과 풀장이 조화를 이룬 18세기 지중해의 정원, 빌라(Villa) 샤넬에서 펼친 시적 낭만은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매 시즌 샤넬 쿠튀르 쇼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행사가 됩니다.” 지난 12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D7 카운트 다운>을 통해 쿠튀르가 선사하는 판타지와 궁극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샤넬. 다가올 파리 출장을 앞두고 오트 쿠튀르 컬렉션과 화보 촬영을 준비하면서 기대감과 설렘은 더욱 커졌다. 식료품점에서 비스트로, 빙하, 폭포, 로켓 발사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그랑팔레 속 웅장한 세트로 샤넬만의 초현실적인 세계로 안내해온 이 럭셔리 하우스가 이번에는 어떤 판타지로 우리를 감동시킬지 초대장을 받은 순간부터 궁금증은 계속된다.

샤넬 쿠튀르 쇼 당일. 갑작스러운 폭설로 거북이걸음을 하는 차량 안에서 바짝바짝 애가 탔다. 가까스로 도착해 하얀 눈으로 뒤덮인 그랑팔레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세상과는 완연히 다른, 한없이 평온하고 여유로운 18세기 지중해풍 정원이 펼쳐졌다. 정원이라면 일 년 전, 2018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떠올랐는데, 이번 시즌엔 런웨이 전면의 크고 넓은 저택, 따뜻한 남국에서 자라는 야자수와 귤나무가 조화롭게 늘어선 오솔길, 나무에 둘러싸인 풀장이 들어선 샤넬의 저택, ‘빌라(Villa) 샤넬’의 정원이다. 칼 라거펠트가 사랑하는 정원과 18세기는 그 시대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가장 프랑스적인 럭셔리를 대표하며 늘 영감의 대상이 된 주제다.

오프닝 룩으로 등장한 클래식한 트위드 슈트의 행렬은 넓은 보트형 네크라인, 부드럽게 둥글리고 각을 세운 그래픽적인 어깨, 그리고 높이 솟아오른 헤어스타일로 길고 우아한 실루엣을 그렸다. 길고 가녀린 실루엣 다음으로는 종 모양과 꽃송이 형태의 볼륨감 있는 드레스 행렬이 이어졌는데, 직선형 재킷에 풀 스커트를 매치하거나, 풍성한 상반신에 튜브 라인 스커트나 팬츠를 매치하는 등 상반된 조합의 미적 긴장감도 느껴졌다. 특히 눈에 띄는 세부 장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패널이 뒤집혀 끝을 둥글린 트임이 드레스의 칼라나 스커트, 재킷, 네크라인을 장식한 활용도는 볼륨에 대한 칼의 새로운 해석이라 하겠다. 클래식한 트위드, 라메 울 등에 수놓은 브레이드도 칼 라거펠트가 명명하는 ‘뉴 샤넬’을 강조하는 요소다.

18세기의 주요한 예술적 모티프로 꽃이 그 역할을 했듯이, 2019 S/S 시즌 역시 꽃이 컬렉션의 중심에 선다. 자수와 페인팅, 레이스, 깃털, 레진과 세라믹에 이르기까지 더욱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한 꽃 장식은 룩에 드라마와 판타지를 불어넣는다. 650개의 비즈를 손바느질로 고정한 실크 블라우스, 레진으로 보존한 생화를 수놓은, 볼레로 느낌의 오간자 드레스, 핸드 페인팅한 세라믹 꽃을 자수로 장식한 시퀸 드레스는 공방의 장인 정신과 노하우를 담은 하나의 작품처럼 보였다. 쇼의 대미를 장식한 건 빅토리아 세레티의 피날레 룩. 실버 시퀸을 화려하게 수놓은 화이트 베일 아래 보석 장식 수영복과 수영모를 쓰고 걸어 나온, 규칙을 파괴한 신부의 모습이었다. “새로운 형태와 함께 완벽하게 현재에 머무르는, 고요하고 이상적이며 시공을 초월한 컬렉션이다.” 건강 상태로 참석하지 못한 칼 라거펠트의 부재가 아쉬운 여운을 남긴 순간이었다.

자수와 페인팅, 레이스, 깃털, 레진과 세라믹에 이르기까지 더욱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한 꽃 장식은 룩에 드라마와 판타지를 불어넣는다.

-RIP, KARL-

패션 에디터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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