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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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글로 배워도 되는 걸까. 요즘 책들이 연애에 대해 말하는 법.

30대 이후로 갑작스럽게 찾아온 연애 정체. 뼈마디가 시리고 고독해서 ‘연애풍’이라도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연애 저체온증>(새얀)이라니. 동병상련을 자극하는 책 제목 앞에서 연애 세포에 수액이라도 놓겠다는 신념까지 생긴다. 좀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가? 누군가와의 감정 소비가 귀찮은가? 친해지면 갑자기 거리를 두고 싶은가? 그렇다면 ‘연애 저체온증’일 확률이 높다. 정신 건강 클리닉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일본인 저자는 ‘귀찮음’이라는 의식 뒤편에 감춰진 본래의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이라고 진단한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못하는 이유, 집착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 등에 대해 자신이 상담했던 환자들의 에피소드를 들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어른이 되면 다를 줄 알았지만, 우리는 결국 전과 똑같이 유치한 걸로 싸우고 헤어진다. 그리고 그 짓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늘 스스로 를 책망했다면, <어른의 연애>(유노북스)를 들추자 활명수를 먹은 듯 답답함이 가실 수 있다.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 작가였던 저자가 사랑과 이별을 정당화하며 끄적거린 글을 모은 책이다. “황망하게도 새로운 연애는 막지 않았다. 부서진 마음 조각 탓인지 다음 사랑은 싱겁게 시작되고 끝나기를 반복했다. 이제 ‘이 사람일까’ 하는 계산은 더이상하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나은 연애를 할 때마다 조금씩 덤덤한 이별을 하는 것, 어쩌면 조금은 영혼 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 그것이 어른의 연애라고 말한다.

<나는 아직 너와 헤어지는 법을 모른다>(썸 앤파커스)는 떠나간 사람에게 돌아와달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별 후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사랑을 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이별 후 수년의 시간이 흐르고 상처가 아물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만났던 게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마치 건물에 몇 명의 세입자가 들어왔다 나가는 동안 그들이 박은 못이나 뚫어놓은 구멍은 누군가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그래도 사랑뿐>, <곁> 등을 쓴 작가는 사랑 언어를 섬세하게 표현하는데, 덕분에 활자보다 여백이 더 많은 여느 에세이와는 다르게 글자가 빽빽하다. 왜 연애 서적들이 서점 매대를 채울까? N포 세대.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포기한 젊은 청춘들이 마지막으로 부들부들 부여잡고 있는 것이 바로 연애라서? 하기야 생각해보면 내 집 마련보다는 연애가 백 배 쉬울 것 같다.

프리랜스 에디터
박한빛누리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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